<피플 인 베이스볼> ‘아마야구 서포터’ 임용수 아나운서

  • 홍현선 기자 ihu2000@naver.com
  • 등록 2019.04.01 10:19:11
  • 호수 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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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왔다, 야구 현장으로!

[JSA뉴스] 홍현선 기자 = 임용수 아나운서가 프로야구 중계 현장으로 돌아왔다. SPOTV는 지난 1월 말 임 아나운서를 2019 KBO리그 중계 캐스터로 섭외했고, 이로써 프로야구팬들은 올 시즌 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TV를 통해 다시 접할 수 있게 됐다.
 

임용수 아나운서는 1997년 한국스포츠TV에 공채 2기로 입사했다. 그 후 한국스포츠가 SBS스포츠로 명칭이 바뀐 다음에도 SBS스포츠서 계속 근무했다. 2005년에 SBS스포츠를 퇴사한 후 현재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다.

임 아나운서는 2005년 대한야구협회 주최로 열린 최우수고교야구대회 전 경기를 중계한 기록을 갖고 있다. 당시 SBS스포츠에서는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으로 동대문야구장서 벌어진 최우수고교야구대회 전 경기를 중계(일부 경기는 녹화방송)한 적이 있는데 임 아나운서가 그 현장에 있었다.

기자가 임 아나운서를 처음 만난 것도 그 무렵. 당시 임 아나운서는 아마야구의 열악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기자에게 앞으로는 내가 아마야구의 홍보대사라는 마음으로 중계를 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임 아나운서는 그 후 XTM, 스카이스포츠 등을 통해 계속 방송 현장서 일해왔고, 최근에는 야구 종목만을 중계하는 전문 캐스터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임 아나운서가 소속된 스카이스포츠가 프로야구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 중계권 문제로 마이크 잡지 못해
대신 IB 스포츠 고교야구 중계 …2년 만에 복귀


그러나 야구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다. 비록 KBO리그가 열리는 경기장의 중계석에는 앉을 수 없었지만, 계속 TV중계나 경기장을 찾아서 프로야구 경기를 지켜봤다고 한다. 종종 IB스포츠를 통해 고교야구 경기를 목동야구장서 중계하기도 했고,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때는 아프리카TV를 통해 팬들에게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년 만에 프로야구 현장에 복귀하면서 인터뷰에 응한 임 아나운서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지난 시즌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올 시즌 KBO리그 중계를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는 임 아나운서를 만나 그동안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작년에 목동야구장에서 뵙고 오랜만이네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 1월 말에 SPOTV 방송사와 KBO리그 중계 계약을 맺었습니다. 요즘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있는데, 시범경기부터 보면서 올 시즌 중계를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처음 접하신 것은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다닐 때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야구장(구 서울운동장)에 고교야구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제가 강남중학교 출신인데, 학교에 야구부가 있어서 재학 중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응원을 간 기억도 있고요. 1982년에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TV중계를 보기도 했고 가끔씩 경기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잠시 다른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1997년 한국스포츠TV에 입사하면서 스포츠아나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명재 아나운서, 김성주 아나운서가 저랑 동기죠. 어려서부터 방송을 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결국 이뤄졌네요.

-야구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야구는 우선 혼자서 할 수 없는 단체종목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투수나 타자가 아무리 잘해도 다른 선수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기기 어렵습니다.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죠. 회사에서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마케팅을 잘 못하거나 마케팅을 잘해도 물건이 좋지 않으면 팔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협조가 중요하죠. 야구 경기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 그런 점에서 매력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방송 준비는 어떻게 하시나요? 자기 계발은 어떻게 하시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우선 시즌 중에는 중계가 끝난 후 다른 경기결과도 챙겨봅니다. 야구는 매일 경기를 하니까 자료를 매일매일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저는 손으로 직접 정리를 합니다. 국내 경기뿐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경기들도 관심을 갖고 보죠.
 

또 중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야구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세상 돌아가는 다양한 소식들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뉴스 프로그램도 항상 관심을 갖고 챙겨보고 있습니다. 중계가 있는 날에는 오후 23시경 구장에 도착해서 방송 준비를 하고, 중계가 끝나면 다른 경기들도 찾아보고, 다음 날 오전에는 또 자료 정리하고 그렇게 야구와 씨름하다 보면 하루가 가더군요.

-본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중계는 무엇인가요?

다른 캐스터들의 중계방송도 많이 봅니다. 요즘 중계방송을 보면 너무 디지털화된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기록은 참고자료일 뿐 야구는 의외성이 많은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방송이 너무 전문적일 필요는 없고 때로는 아날로그 같은 중계도 필요합니다. 세미나 같은 방식보다는 토크쇼 같은 중계가 좋지 않을까요?

-특별히 기억나는 중계방송이 있으신가요?

2003년 이승엽 선수가 아시아신기록인 56호 홈런을 터뜨렸을 때와 2010년 이대호 선수가 9경기 연속 홈런 세계신기록을 세웠을 때 그 경기를 제가 현장서 중계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경기를 중계했지만 특히 두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방송을 하시면서 보람을 느꼈던 것은 언제인가요?

야구장서 팬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때입니다. SNS에서 방송 잘 봤다는 반응을 해주실 때도 감사하고요. 요즘은 야구장 아닌 곳에서도 알아보고 먼저 인사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올해는 시즌 오픈 전에 야구장이 아닌 곳에서 팬들과 오프라인을 통해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계를 하시며 힘든 점이 있다면요?

요즘 팬들은 대부분 야구 박사들이시죠. 예전보다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져서 방송을 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좋은 자극제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한국 야구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1982년 프로야구가 창설된 후 이 시점서 방향성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야구계의 상황을 보면 야구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과 공유가 부족합니다. 당장 오늘이나 일주일이 아닌 먼 미래를 보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KBO를 중심으로 야구인들이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봤으면 합니다. 정확한 목표와 방향이 설정되어야 야구가 좀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선 당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KBO리그에서는 우선 타고투저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개선이 시급합니다. 스트라이크존 확대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고요, 경기시간도 단축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2018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에는 3할 타자가 18(30)이었고 일본은 20(12)이었는데 한국은 34(10)이나 되었습니다. 그만큼 타고투저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죠.


-롤모델은 어떤 분인가요?

이장우 아나운서를 꼽고 싶습니다. 예전 KBS에서 방송을 하실 때는 TV를 통해 중계를 접했고 제가 한국스포츠TV에 입사한 후에는 같은 방송국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이장우 아나운서와는 요즘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중계 캐스터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경기 중계는 캐스터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계방송을 할 때 해설하시는 분과 평소에도 많은 대화를 합니다. 그래야 해설자의 말하는 습성이라든지 많은 정보들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자와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타방송사의 중계방송도 많이 보고 있고 야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의 중계방송도 보면서 참고하고 있습니다. 캐스터는 타순이라든지 자막 등을 포함한 경기 상황을 빠짐없이 전달해줘야 하고 경기 외적으로도 적절한 비유를 섞어서 멘트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예전에는 라디오중계를 경험한 아나운서들이 많이 계셨죠. 저도 원음방송서 라디오 중계를 잠시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라디오는 TV와는 달리 화면 없이 중계를 해야 하니까 캐스터의 표현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취미는 무엇인가요?

평소에 많이 걷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종로나 청계천변을 걷기도 하고 또 근처 서점에 가서 책을 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
‘아마야구 홍보대사’ 마음으로 중계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어떤 아나운서로 기억되기를 바라시는지요?

솔직히 지난해 중계를 못하게 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중계할 수 있게 된 지금 상황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좀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려고 합니다. 여건이 된다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야구중계를 계속 하고 싶습니다.

제가 2005년에 SBS스포츠서 퇴사하고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회사에서는 제게 방송보다는 조직 관리를 원했는데, 저는 중계현장에 좀 더 많이 그리고 오래 있고 싶었습니다.

또 그동안 제가 아마야구에는 좀 소홀했던 것 같은데 지난해 IB스포츠서 고교야구 경기를 가끔씩 중계하면서 또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포스트시즌 아프리카TV 중계도 마찬가지이고요. 팬들께는 임용수 아나운서를 생각했을 때 재미있고 향기 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드리고 싶습니다. 향기와 냄새는 느낌부터 다르잖아요.

-후배 아나운서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요?

중계방송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이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지식이 뛰어난 후배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지식과 지혜는 엄연히 다르죠. 지식을 기본으로 지혜를 갖춘 아나운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혜라는 것은 결코 저절로 생기지 않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팬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잊혀지는 것이겠죠. 제가 잊히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야구 중계 현장에 다시 설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인사할 때 안녕하세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하죠. 세상살이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다시 한 번 팬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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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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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