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③완도 소안도

항일의 땅, 해방의 섬

▲ 일제강점기에 소안도 주민의 모금으로 세운 사립소안학교는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항일 정신을 가르쳤다. 사진은 복원된 사립소안학교에서 종을 치는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장.

소안도는 아름다운 저항정신이 깃든 섬이다. 암울하고 참담한 일제강점기를 꿋꿋이 버텨냈다. 1년 내내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도 소안도의 자랑이다.

소안도에 가려면 완도 화흥포여객선터미널에서 소안항까지 하루 10~12회 운항하는 여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여객선 3척이 운항하는데, 소안도의 항일정신을 기리려는 듯 이름이 대한호·민국호·만세호다. 어느 여객선을 타도 소안도의 자부심이 절로 느껴진다. 화흥포를 출발한 여객선은 노화도 동천항을 거쳐 1시간 만에 소안도 소안항에 닿는다. 선착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 푯돌을 만난다. 가슴이 뭉클하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소안도는 어떻게 항일의 땅, 해방의 섬이 되었을까? 먼저 소안항일운동기념관으로 가자. 소안항에서 출발해 소안면 소재지를 지나면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지척이다. 가는 길에 태극기가 유난히 많다. 소안도는 일제에 저항한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태극기의 섬으로 거듭났다. 소안도 주민 1300여명의 집과 도로 곳곳에 태극기를 게양한 것이다. 태극기 게양은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른 규정이 있다. 아무 때나 게양할 수 없기에 완도군은 소안도에서 365일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연중 펄럭이는 태극기가 무려 1500여기. 소안도가 태극기의 섬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겨볼 일이다.
 

▲ 소안항일운동기념탑 전경

소안도는 예부터 달목도라 했다. 초승달처럼 허리가 잘록해서 붙은 이름이다. 소안도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본래 남쪽과 북쪽에 각각 2개의 섬이었다. 파도가 실어온 퇴적물 덕분에 사주로 연결됐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은 이 사주에 있어 동서로 바다가 훤히 보인다. 기념관이 위치한 곳은 일제강점기에 소안도 주민의 모금으로 세운 사립소안학교가 있던 자리라 의미도 깊다. 기념관과 함께 소안항일운동기념탑, 복원된 사립소안학교가 있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은 일제강점기에 소안도 주민의 끈질긴 저항정신을 그대로 녹여낸 곳이다. 기념관은 영상실과 전시실로 나뉜다. 영상실에서는 소안도의 항일운동 역사를 자세히 소개한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전국 항일운동 지도가 보인다. 소안도는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린다. 세 지역은 지속적이고 다양한 항일운동을 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전시된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 디오라마

소안도에서는 평화적 시위와 무력항쟁, 교육운동과 노농운동, 비밀결사와 법정투쟁, 섬 주민의 자발적인 학교 설립 등 일제강점기 내내 다양한 항일운동이 전개됐다.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을 비롯해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 사립소안학교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완도 본섬에서 한참 떨어진 데다 인구가 6000여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는 사실로도 항일운동의 성지가 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 복원된 사립소안학교

전시관에서는 진(盡·온 힘을 다하다), 인(人·사람이 희망이다), 사(事·행동하는 양심, 역사가 되다), 대(待·힘을 모아 막아내다), 천(天·하늘이 내린 천직을 받들다), 명(命·힘을 보태 강해지다)을 테마로 항일운동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시관 중심에 소안도 항일운동의 시발점이 된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의 디오라마가 있고, 천장은 다양한 태극기로 수놓아져 있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서, 1920~1930년대 신문 지면을 장식한 소안도 기사, 독립운동가의 형사판결 원본 등 당시의 유물과 기록도 전시된다.
 

▲ 가슴 뭉클한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 푯돌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은 소안도 항일운동의 시작점이다. 1909년 일본은 본국을 향해 먼 바다로 나가는 상선을 돕기 위해 당사도에 등대를 세웠다. 소안도 출신 동학군 이준화를 비롯한 5명은 일본 선박의 남해 항로를 방해하기 위해 거친 해안 절벽을 기어올라 일본인 등대원 4명을 죽이고, 등대를 파괴했다. 당사도등대가 생긴 지 불과 2개월 만이다. 당시 불빛을 밝히던 등명기를 파괴하려 했지만, 너무 단단해 바다에 빠뜨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등대 주변에는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항일전적비와 광복 후 파괴된 등대원추모비 일부가 역사의 증인처럼 오롯이 서 있다.
 

▲ 복원된 사립소안학교 내 작은도서관에서 소안도를 배경으로 한 동화책을 들어 보이는 어린이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도 같은 해 시작됐다. 소안도는 왕실에 세금을 내는 궁납전이었는데, 1905년 친일 매국노 이기용이 토지를 사유화하자 소송을 벌였다. 일본과 조선 왕실을 상대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지만, 13년의 법정투쟁 끝에 승리를 거뒀다. 소송 승리의 기쁨은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소안도 주민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여 1만원이 넘는 돈을 모금했다. 당시 소 한 마리 값이 70원인 점을 생각하면 꽤 큰 액수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립’을 강조하는 이유는 마을 주민이 스스로 세웠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사립소안학교에는 일장기가 없었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항일정신을 가르쳤다. 노화도를 비롯한 주변 섬뿐 아니라 해남과 제주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
 

▲ 천연기념물 339호로 지정된 완도 미라리 상록수림 전경

1년 내내 태극기 휘날리는 ‘태극기의 섬’
일제강점기 내내 다양한 항일운동 전개

하지만 사립소안학교는 일제에 ‘항일운동의 배후’로 지목돼 1927년 강제 폐교된다. 소안도 주민은 격렬히 항거했고, 학교를 다시 열기 위해 탄원서를 돌리기도 했다. 이 일로 소안도 주민 6000여명 가운데 800명이 불령선인(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사람)이 돼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고초를 겪었다. 이후에도 주민들은 수의위친계, 배달청년회, 살자회 등 항일 비밀결사를 만들어 조직적인 저항운동을 벌였다. 감옥으로 끌려간 이웃을 생각하며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잤다는 일화가 있다.
 

▲ 물치기미전망대에서 본 풍경

소안도 항일운동의 중심에는 송내호 선생이 있다. 사립소안학교의 전신인 사립중화학원을 설립해 교육에 힘썼고, 이후 사립소안학교를 세우는 데 앞장섰다. 1919년 경성(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고 불과 2주 뒤, 완도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비밀결사 수의위친계를 조직했으며 배달청년회, 소안노농대성회, 살자회 등에 참여해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그는 배달청년회 사건으로 수감돼 이듬해인 1928년 세상을 떠났다.
사립소안학교는 지난 2003년 복원돼 평생학습원과 작은도서관으로 운영 중이다. 작은도서관은 시간 내서 들러볼 만하다. 아늑한 공간에 동화책, 소설책 등이 빼곡하다. 소안도를 배경으로 한 동화책 <노래를 품은 섬 소안도>를 읽어보기 바란다. 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 주먹만 한 몽돌이 깔린 진산해변

이제 소안도를 한 바퀴 둘러보자. 소안항일운동기념관 앞으로 난 길은 소안도 남쪽 맹선리, 진산리, 소진리, 부상리, 미라리를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 도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과 몽돌 해변, 제주 한라산과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전망대 등 진경을 볼 수 있다.
맹선리로 방향을 돌리면 가장 먼저 완도 맹선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340호)을 만날 수 있다. 해풍을 막아주는 방풍림과 물고기를 불러 모으는 어부림 구실을 하는 숲이다.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등 상록수가 빽빽하다.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구한말, 소안도 주민이 무단으로 들어와 살던 일본인 거주지를 불태운 사건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맹선리를 지나면 소안도 남쪽 해안 절벽을 따라 고갯길이 이어진다. 고갯마루에 물치기미전망대가 있다. 당사도와 그 너머로 추자도가 보이고, 맑은 날은 제주도의 한라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당사도 왼쪽 끄트머리에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당사도등대가 보인다.
 

▲ 완도 미라리 상록수림의 거대한 해송

고갯마루를 내려가면 진산리다. 주먹만 한 몽돌이 깔린 진산해변은 둥글게 호를 그리는데, 잔잔한 가운데 몽돌을 파고드는 파도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진산리에서 부상리 마을을 지나 한 굽이 올라서면 잘 알려지지 않은 전망대가 나온다. 바로 해맞이일출공원으로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하다. 숲길을 따라 200m 정도 가면 해안 절벽 꼭대기에 닿는다. 서쪽으로 대모도와 청산도, 완도의 끝 섬 여서도가 나란하고, 남쪽은 사수도 너머로 제주도가 가깝다. 벤치에 앉아 너른 바다와 섬을 바라보며 쉬기 좋다. 절벽 아래에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가 은신한 해안 동굴도 있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미라리가 지척이다. 몽돌이 예쁜 미라해변과 완도 미라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339호)이 한데 어울려 있다. 미라리 상록수림은 해송이 가장 많고, 생달나무와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특히 숲에서 해변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거대한 해송과 2그루와 바다가 그림 같다.
 

▲ 보길도윤선도원림 동천석실에서 본 부용동

보길도 여행

소안도에서 완도로 갈 때 경유하는 노화도는 다리 하나로 보길도와 이어진다. 완도로 돌아가기 전 노화도 동천항에 내리면 보길도 여행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은둔의 삶을 찾아 제주도로 가다 운명적으로 만난 섬이다. 윤선도가 이곳에서 지낸 흔적은 보길도윤선도원림(명승 34호)에 고스란히 남았다. 흐르는 물을 끌어들여 만든 연못에 세연정을 지어 풍류를 즐겼고, 곡수당에서는 〈어부사시사〉처럼 주옥같은 작품을 탄생시켰고, 동천석실에서는 낙서재를 바라보며 유유자적 다도를 즐겼다. 85세에 화려한 삶을 마감한 고산이 기거한 낙서재까지 그의 혼이 배지 않은 곳이 없다. 특히 10분 정도 산행해야 하는 동천석실은 꼭 가보자. 그곳에서 연꽃을 닮은 부용동의 아름다운 자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소안항일운동기념관→소안도 일주(완도 맹선리 상록수림-물치기미전망대-진산해변-해맞이일출공원-완도 미라리 상록수림)→가학산 등산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소안항일운동기념관→소안도 일주(완도 맹선리 상록수림-물치기미전망대-진산해변-해맞이일출공원-완도 미라리 상록수림)→가학산 등산
둘째 날: 보길도윤선도원림(곡수당과 낙서재-동천석실)→예송갯돌해변→우암송시열글씐바위→완도수목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완도문화관광 www.wando.go.kr/tour
- 소안항일운동기념관 http://bizjhp.cafe24.com

문의 전화
- 완도군청 관광정책과 061)550-5412
- 완도군관광안내소 061)550-5151~3
- 소안항일운동기념관 061)552-0516
- 보길면관광안내소 061)553-5177
- 보길도윤선도원림 061)553-5632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완도,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4회(08:10~17:20) 운행, 약 5시간 소요. 완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 화흥포여객선터미널까지 셔틀버스로 이동.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hticket.co.kr 완도공용버스터미널 061)552-1500
여객선: 완도-소안도, 화흥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10~12회(06:50~17:20) 운항, 1시간 소요(노화도 동천항 경유). 
*문의: 화흥포여객선터미널 061)555-1010 소안도여객선터미널 061)553-8177

자가운전
남해고속도로 서호학산 IC→지방도819호선 13.4km 직진, 학산교차로에서 강진 방면 국도2호선→월산교차로에서 완도 방면 국도13호선→완도대교 건너 원동교차로에서 군외 방면 국도77호선으로 좌회전, 8.5km 직진→청해포구촬영장 끼고 우회전, 510m 이동→청해진서로로 우회전, 약 1.9km 직진→화흥포길로 우회전→화흥포여객선터미널→소안도여객선터미널→소안로 따라 2.6km 직진→소안항일운동기념관

숙박 정보 
- 미라펜션: 소안면 소안로, 061)552-4711, http://061-552-4711.kti114.net
- 소안그린펜션: 소안면 소안로, 010-8070-1259, https://cafe.naver.com/soannhgreen
- 동남펜션: 소안면 소안로232번길, 010-3607-7938, http://동남펜션.com
- 미소펜션: 소안면 소안로538번길, 061)555-3667, http://soanmiso.com 
- 블랙스톤펜션: 보길면 예송로, 061)554-1009, http://blackstonepension.co.kr 
- 해그림펜션: 보길면 보길동로, 010-9194-6254, www.haegrim.co.kr 
- 전라남도완도자연휴양림: 완도읍 대야일구1길, 061)550-3570, http://forest.jeonnam.go.kr
- 두바이모텔: 완도읍 해변공원로, 061)553-0688
- 무릉도원한옥집: 군외면 청해진로, 061)552-4779, https://0615524779.modoo.at

식당 정보
- 소안도맛집(백반): 소안면 소안로, 061)555-9966
- 작은섬식당(백반): 소안면 소안로, 061)552-7088
- 바다를담은면(바다를담은해조비빔밥): 군외면 초평길, 061)555-9988, https://badam.modoo.at
- 은혜기사식당(백반정식): 완도읍 개포로130번길, 061) 552-2774


주변 볼거리
청해포구촬영장, 완도수목원, 완도타워와 완도모노레일, 장도청해진장보고유적, 청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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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