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①천안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열사 생가

그날의 함성을 되새기며…

▲ 국민 모금 운동으로 건립한 독립기념관. 사진은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설계한 ‘겨레의집’이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봄, 아이들 손을 잡고 충남 천안으로 떠나보자. 감동과 교훈이 함께하는 여행이다. 천안에는 독립운동의 함성과 결의,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되새겨볼 만한 곳이 여럿 있다.
 

▲ 방문객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하는 ‘겨레의탑’
▲ ‘태극기한마당’은 2005년에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조성했다.

충남 천안시 목성읍 흑성산 아래 들어선 독립기념관으로 가자. ‘독립기념관’이 탄생한 계기는 1982년 일본 고교 역사 교과서 검정 당시, 문부성이 한국에 관련된 내용을 일본 측에 유리하게 수정한 역사 왜곡 때문이다. 독립기념관 건립 계획은 국권피탈 72년 하루 전날인 1982년 8월28일에 발표됐다. 이후 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 결과 500억원이 모였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1986년 8월15일 개관 예정이었지만, 열흘 남짓 앞두고 화재가 난 것. 결국 이듬해 8월15일 개관했다.
 

▲ 독립을 위해 애쓴 순국선열을 만날 수 있는 독립기념관

감동과 교훈

독립기념관은 이름 그대로 무수한 외침을 극복하고 자주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를 살펴보고, 겨레의 독립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겨레의탑’을 만나보자. 높이 51m로 고개를 힘껏 젖혀야 꼭대기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다. 주차장에 설 때부터 방문객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 제2전시관에 을사늑약 장면을 연출한 모형이 있다.
▲ 한국광복군에 대한 자료가 있는 제5전시관

겨레의탑을 지나면 또 한 번 놀란다. 방문객 앞에 버티고 선 ‘겨레의집’은 웅장함 그 자체다. 길이 126m, 너비 68m, 높이 45m에 달하는 동양 최대 기와집이다.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설계했으며 기념 홀 같은 역할을 한다. 기와는 구리로 제작했으며 현판은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썼다. 
 

▲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 손색이 없는 독립기념관

겨레의집 내부에는 ‘불굴의 한국인상’이라는 조각상이 있다. 한 무리 사람들이 힘찬 동작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형상이다. 온몸을 바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연 순국선열을 상징한다. 겨레의집 앞으로 태극기 815기를 연중 게양하는 ‘태극기한마당’이 펼쳐진다. 2005년에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조성했다.
 

▲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 영정

독립기념관은 7개 전시관과 입체영상관으로 구성된다.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전시관이 넓어, 꼼꼼히 둘러보려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미리 정보를 알고 동선을 짜서 가는 것이 좋다. 7개 전시관에서는 일제의 잔인한 침략상과 각지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을 시기별로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문헌 자료와 미니어처, 영상물이 이해를 돕는다.
 

▲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 당시 전소된 것을 복원한 유관순 열사 생가

제1전시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인 1860년 이전까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외세 극복의 역사를 정리한다. 고인돌 모형, 가야 기마 무사상 모형, 거북선 재현 모형 등이 눈길을 끈다. 제2전시관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1860년부터 1940년대까지) 우리 민족의 시련을 살펴볼 수 있고, 제3전시관은 일제에 항거한 의병 전쟁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 등 구한말 국권 회복 운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다. 제4전시관은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공간으로 다양한 시각 자료가 감성을 자극한다. 국외에서 활동한 독립군과 광복군의 흔적이 있는 제5전시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의 밀랍 모형이 눈길을 끄는 제6전시관, 관람객이 독립 만세를 불러보는 등 국내외에서 전개된 다양한 독립운동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민 제7전시관도 발길을 붙든다.
 

▲ 유관순 열사가 다닌 매봉교회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 살펴보고
겨레의 독립 의지 느낄 수 있는 곳

전시관 위주로 살펴봐도 좋고 인근 숲길 탐방 등과 함께 일정을 짜도 좋다. 독립기념관은 주변에 숲과 호수가 어우러지고 캠핑 공간과 꼬마열차, 어린이방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 손색이 없다. 첨단 디지털 시스템으로 화려한 영상과 특수 효과를 체험하는 입체영상관은 아이들에게 인기다. 홈페이지에서 전시관 해설 신청도 가능하다.
 

▲ 병천 순대는 누린내가 나지 않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는 도화선이 된 것이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이다. 아우내를 한자로 쓴 지명이 병천(竝川)이다. 1902년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진학한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다. 3월10일 전국에 휴교령이 떨어지자, 열사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사촌 언니 유예도와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만세 운동을 주도한다. 이것이 4월1일 일어난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이다. 당시 3000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으로 유관순 열사의 부모가 죽고 자신도 체포돼 3년 형이 선고된다. 재판 당시 “다시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대일본제국 신민으로 살아갈 것을 맹세하겠는가?”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유 열사는 “나는  왜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언젠가 네놈들은  천벌을 받아 반드시 망할 것이다”라며 재판장에게 의자를 던졌다. 옥중에서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열사는 이듬해 4월 이왕세자(영친왕)가 도쿄에서 결혼하는 것을 기념해 1년6개월로 감형됐지만, 1920년 9월28일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한다.
 

▲ 아라리오광장 옆에 자리한 아라리오갤러리 외관

‘유관순 열사 생가’는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 당시 일본 관헌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빈터만 남은 것을 1991년 12월30일 복원했으며, 봉화 터와 함께 사적 230호로 지정됐다. 생가 옆에는 박화성이 시를 짓고 이철경이 글씨를 쓴 기념비가 세워졌다. 생가에서 유관순 열사 사적지까지 10여분이면 걸어갈 수 있으며, 열사의 영정이 모셔진 추모각과 동상, 기념관 등이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
유관순 열사가 만세 운동을 펼친 아우내장터 일대는 지금 병천순대거리가 조성됐다. 순대를 내는 식당 50여곳이 들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1960년대 인근에 돼지고기를 가공하는 공장이 있었는데,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로 순대를 만들어 팔며 시작됐다고 한다. 당면 대신 채소와 선지로 속을 꽉 채운 병천 순대는 누린내가 나지 않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 리각미술관 야외조각공원에 전시된 작품

천안은 미술 테마 여행으로 즐겨도 좋다. 천안종합터미널 앞에 조성된 아라리오광장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필수 순례지로 꼽히는 곳. 해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된 야외 갤러리다.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Hymm)’와 ‘채러티(Charity)’, 키스 해링의 ‘줄리아(Julia)’, 코헤이 나와의 ‘매니폴드(Manifold)’ 등 세계적인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광장 옆에 자리한 아라리오갤러리에서도 수준 높은 전시가 열린다.
 

▲ 벽화가 예쁜 800여 m 골목이 방문객을 반기는 미나릿길골목벽화마을

미술 테마 여행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조각가로 명성을 날린 이종각의 작품이 있는 리각미술관도 가볼 만하다. 대지 1만5700㎡에 펼쳐진 야외조각공원과 830㎡에 이르는 실내 전시 공간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근사한 찻집도 있어 데이트 코스로 인기다.
아라리오광장과 리각미술관에서 미나릿길골목벽화마을이 가깝다. 예쁜 벽화가 그려진 800여m 골목이 방문객을 반긴다. 골목을 걷다 보면 야외 미술관에 온 느낌이 든다. 천안역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이 나오고, 걸어도 15분이 채 안 걸려 접근이 편하다.


<여행 정보>

당일 코스 독립기념관→유관순 열사 생가→병천순대거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독립기념관→유관순 열사 생가→병천순대거리 
둘째 날: 아라리오광장→리각미술관→미나릿길골목벽화마을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시민의행복을위한천안의흥(천안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www.cheonan.go.kr/tour.do
- 독립기념관 www.i815.or.kr
- 아라리오갤러리 www.arariogallery.com
- 리각미술관 http://ligakmuseum.co.kr

문의 전화
- 천안시청 문화관광과 041)521-5173
- 독립기념관 041)560-0114
- 유관순열사기념관 041)564-1223
- 아라리오갤러리 041)551-5100
- 리각미술관 070-4111-3463 

대중교통 정보
- 기차: 서울역-천안역, 무궁화호 하루 20여 회(05:56~22:50) 운행, 약 1시간10분 소요. 천안역에서 400번 버스(10분 간격 운행), 약 25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 버스: 서울-천안,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0~20분 간격(06:00 ~다음 날 00:20) 운행, 약 1시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15~20분 간격(06:00~22:20) 운행, 약 1시간20분 소요. 천안종합터미널에서 400번 버스(10분 간격 운행), 약 30분 소요.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 전철: 서울역-천안역, 지하철 1호선 50여 회(06:48~22:27) 운행, 약 2시간 소요. 천안역에서 400번 버스(10분 간격 운행), 약 25분 소요. 
*문의: 서울교통공사 1577-1234, www.seoulmetro.co.kr

자가 운전
경부고속도로 목천(독립기념관) IC→목천·독립기념관 방면→독립기념관

숙박 정보
- E천안호텔: 서북구 양지21길, 041)592-0000, www.cheonanhotel.kr
- 천안상록호텔: 동남구 수신면 수신로, 041)560-9114, www.sangnokresort.co.kr
- 굿모닝호텔: 서북구 차돌들길, 041)578-6363

식당 정보
- 충남집순대(순댓국): 동남구 병천면 충절로, 041)564-1079
- 아우내한방순대(순대):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순대길, 041)555-9833
- 쪽문만두(만두): 동남구 수선정길(남산중앙시장 내), 041)562-5447
- 평양냉면(순대·만둣국·녹두부침): 동남구 큰시장길(남산중앙시장 내), 041)551-4851

주변 볼거리
각원사, 천안홍대용과학관, 태학산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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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