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죽었거나 미혼인 채로 죽은 처녀, 총각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행해지는 영혼결혼식. 이는 일반인들에게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교통사고나 자살 등으로 꽃다운 나이에 사망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영혼결혼식을 원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약 500여 쌍의 영혼결혼식을 성사시킨 ‘설산스님’을 서울 서대문구 홍은3동에 위치한 백련사에서 직접 만나 얽히고설킨 애절한 사연들을 들어봤다.
“동생의 사진을 안은 형과 신부가 마주보고 섰다. 동생의 사진을 안고 있는 형의 두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신랑 신부 맞절.’ 두 사람은 서로 허리를 깊이 숙여 맞절을 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영혼결혼식’
질긴 인연의 끈
산 사람의 결혼식이 아닌 ‘영혼결혼식’의 한 장면인 이 문구는 설산스님이 펴낸 <알몸>이란 책 내용의 일부분이다.
1981년부터 결혼식을 못 올리고 사는 동거부부들을 위해 무료 합동결혼식을 주관한 설산스님은 1년 뒤 이승에서 못 다한 인연을 맺어주는 영혼결혼식을 시작해 지금까지 1000여 쌍의 합동결혼식과 500여 쌍의 영혼결혼식을 성사시켰다. 스님이 가난한 이들과 죽은 이들의 결혼식을 고집해 온 이유는 무엇일까.
“81년 어느 신도가 남의 결혼식사진에 자기 부부 얼굴을 오려붙인 결혼사진을 보고 그들을 위한 무료결혼식을 마련해주겠다고 결심했지요. 영혼결혼식의 경우 이승에서 못 다한 인연을 맺어주는 일이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KAL기 추락사건, 산사태로 죽은 젊은 군인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기타의 수해사건 등으로 아깝게 목숨을 잃은 선남선녀들의 영혼을 맺어서 죽어서나마 부부의 인연을 맺게 해주는 일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설산 스님의 말에 따르면 원래 우리나라에서 영혼결혼식이란 문화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결혼 못하고 요절한 이들의 영혼끼리 맺어주는 관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백련사 설산 스님, 500여 쌍의 무료 영혼결혼식 성사
사돈될 집안의 가정환경…신체적 조건도 맘에 들어야
총각, 처녀가 죽으면 저승에 가지 못하고 구천에 떠돈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총각, 처녀가 죽으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몰래 십자로 암매장을 했다고 한다. 그 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면 이승에 맺힌 한을 떨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풍습이 언젠가부터 무속인들에 의해 볏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고운 한복을 입혀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첫날밤을 치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후 몇몇 절에서 스님들이 영혼결혼식을 치러주면서 영혼결혼식이 자주 행해지게 됐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 이들을 위해 설산스님이 무료 영혼결혼식을 해주기 시작하면서 백련사가 영혼결혼식 장소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즘은 신부가 없어서 영혼결혼식 성사가 힘들다고 설산스님이 다시 입을 뗀다. 20년 전쯤만 해도 총각 영혼이 부족해서 처녀영혼이 결혼을 못했는데, 현재는 처녀영혼이 없어 200여명의 총각영혼이 장가를 못 가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까다로운
신랑·신부 맞선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결혼을 하지 못한 채 죽은 처녀, 총각들을 맺어주는 일이 가장 많고 두 번째는 경제적 형편 등의 이유로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살다가 한 쪽이 먼저 세상을 등진 경우이다. 이 외에 혼인 날짜를 잡았으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한쪽이 죽어 식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가장 많은 경우인 죽은 처녀 총각들의 영혼결혼식은 서로 모르는 남녀가 저승의 객이 되어 올리는 것이지만 배우자를 선택하는 조건은 꽤 까다롭다.
사주와 궁합, 나이, 집안은 물론, 외모, 성격, 신체적 조건, 학력까지 꼼꼼하게 맞선을 본다. 서로 사주와 궁합이 잘 맞는 상대방을 구해서 짝까지 맺어주니, 스님은 ‘중매’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죽은 이유도 중요하죠. 자살해서 죽은 사람은 꺼리는 터라 보통 자살은 자살한 사람끼리 결혼식이 치러지죠. 교통사고는 교통사고, 병사는 병사끼리 맞추는 등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도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에요.”
“오히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 맺어주기가 더 힘들다”는 게 스님의 말이다. 살아있을 때 성격이 괴팍하거나, 대인관계가 좋지 않으면 성사가 어렵다. 양가의 가족들이 참여해 처음 선을 보는 날 스님의 신상파악 정보를 듣고 서로 궁금한 점을 묻고 사진을 교환한 뒤에 합의가 안 된 경우도 있다. 사돈끼리 성격이 맞지 않아서다.
맞선을 전후로 거의 대부분 영혼들이 부모나 형제·자매의 꿈에 나타난다고 한다. 원하는 짝이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거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원하지 않는 짝이면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년 전 연탄가스로 죽은 이화여대생이 있었어요. 좋은 신랑감이 있으면 연을 맺어달라는 부모의 부탁을 받고 상대를 찾아봤으나 한 달이 넘도록 적합한 대상을 찾지 못한 상태였죠. 기다리다 지친 부모들이 급하게 짝을 구해서 맺어줬는데 그날 밤 부모의 꿈에 나타나 ‘속았다’며 대성통곡을 하더라는 거예요. 자초지종을 듣고 다시 다른 총각의 영혼과 인연을 맺어줬더니 그날 밤에 딸이 나타나 ‘고맙다’며 큰절을 올리더라는 거예요.”
조건이 맞으면 결혼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좋은 날을 잡아 절에서 병풍을 치고 처녀, 총각을 깨끗이 목욕재계(실제로 목욕을 시킬 수 없으나 부처님의 법력으로)시킨 후, 병풍 안에 위패(지방)를 모셔놓고 첫날밤을 치르도록 한다.
이후에는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제가 진행된다. 양가는 이러한 인연을 시작으로 매년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엔 한 자리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등 대부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장례식장으로
변한 ‘결혼식’
기쁜 결혼식이 아닌 만큼 가슴 아픈 기억도 많다. 20년 전 설산스님은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급하게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갔는데 분위기가 너무 어두웠다. 붐비는 하객들의 표정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신랑의 모친으로 보이는 사라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알고 보니 결혼식을 3일 앞두고 신랑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행복할 결혼식 날이 장례식 날이 된 것이었다. 스님은 장례식장에서 죽은 신랑과 산 신부의 결혼식을 치러주었다. 주례사를 하는 도중 신부가 울기 시작했고 스님도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메어와 말문이 터지지가 않았다고 회고한다.
우연히 맞은 장례 날짜가 맺어준 영혼결혼식도 있었다. 화물차 운전사였던 신랑은 짐을 가득 싣고 바를 매느라고 당기고 있는데 지나가는 차에 치이면서 유명을 달리했다.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려다 보니, 한날한시에 같이 장례를 치르는 처녀가 있었던 것이다. 처녀는 연탄중독으로 고인이 됐다. 이를 안 병원 관리사무소에서 중매에 나섰고, 영혼결혼식 전문가인 스님을 부르면서 결혼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영혼결혼식에 얽힌 애절하고 슬픈 사연들 ‘가슴 먹먹’
“애틋하고 눈물겨운 고인에 대한 마지막 애도의식”
가장 최근에 영혼결혼식을 올린 사례도 스님의 기억에 생생하다고 한다. 33살, 동갑내기 부부가 결혼식을 못 올린 채 사랑하며 살아가다 부인이 그만 병으로 세상을 등지고 만 것이다.
부탁을 받고 인천에 영혼결혼식을 올리러 간 스님에게 남편은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설산스님은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주례사에 넣어서 들려준다. 대부분 젊은 나이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죽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든 집착과 원결을 풀어버리고 미련과 한도 다 버리고 이 세상에서 못다 받은 명과 복을 극락세계에서 듬뿍 받으라고 일러준다.
스님은 또 많은 죽음들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이치를 산 사람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우리가 마지막 가는 길에 정말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지 새롭게 인식하는 일이죠. 육체며, 명예며, 재물 등은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아요. 세상을 마치고 마지막 떠나는 길 위에서 그것은 더욱 분명해지죠. 내게 남는 거라곤 오직 알몸 뿐, 돌아갈 때 벌거벗은 알몸으로 업만 두르고 떠나는 길, 남아있는 인생이라도 남을 생각하며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면 좋겠어요.”
알몸으로 왔다
알몸으로 가는
물론 영혼결혼식이 좋은 의도에서 시작됐다 하더라도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영혼결혼식은 자식을 잃은 부모님이 가슴에 맺힌 평생의 한을 푸는, 애틋하고 눈물겨운 고인에 대한 마지막 애도의식의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