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조각과 회화의 만남’ 피터 부겐후트와 마리 클로케

시공간을 재조합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성북구 소재의 갤러리 제이슨함 주변은 한적했다. 갤러리를 스쳐가는 차들은 많았지만 머무르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시간이 차분하게 멈춰있는 듯했다. 하지만 갤러리 내부는 피터 부겐후트와 마리 클로케가 창조한 작품으로 시공간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 Marie Cloquet, Scorched earth XI,  2018, photographic emulsion & watercolour on paper on canvas,  150x200cm

 

지난 9일 오후 갤러리 제이슨함을 찾았다. 피터 부겐후트와 마리 클로케의 2인전 ‘Temporalizing Temporality’의 오픈 이틀째였다. 편한 복장으로 등장한 피터 부겐후트와 마리 클로케는 기자의 질문에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답했다. 두 작가는 한국서의 첫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묘한 앙상블

피터 부겐후트는 벨기에 겐트에서 활동하는 조각가로, 다양한 크기의 작품을 만든다. 이번 전시에선 소의 위장이나 먼지 등의 재료를 사용해 비교적 작은 크기의 작품을 선보였다. 마리 클로케는 파괴, 손상된 것에 주목해 회화로 표현한다. 인상적인 공간을 촬영한 후 스튜디오에서 재조작하는 단계를 거친다.

이번 전시는 시간성이 두드러지는 두 작가의 작품을 한데 모아 보려는 제이슨함의 기획서 시작됐다. 이지러진 시공간처럼 두 작가의 작품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비선형적 시간성에 착안했다. 전시 제목인 Temporalizing Temporality도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등장하는 시간성이라는 개념서 따왔다.

제이슨함 관계자는 과거-현재-미래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선형적이고 연속적인 시간 개념이 아니라 도래-기재-현전의 근원적 시간 속에 우리 존재가 놓여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이번 전시서 시간과 공간을 직조하는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벨기에 출신 두 작가
한국서 첫 전시

제이슨함은 피터 부겐후트의 조각을 갤러리 중앙에, 마리 클로케의 회화를 벽면에 배치했다. 실체가 분명한 네모난 방은 시간과 공간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완성된 작품을 품었다. 정형화된 공간과 분해융합을 거친 작품의 조화는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 Marie Cloquet, Obstacles VIII, 2018, photographic emulsion & watercolour on paper on canvas,  150x120cm

피터 부겐후트의 조각은 재현이라고 보기에는 추상적이고, 추상적이라기에는 실체가 존재한다. 개별적인가 싶으면 서로 닮아 있고 그러면서도 통일적이지 않은 서로 다른 개체로 구성돼있다. 상징주의나 보편적 시간 개념과는 동떨어졌다. 그는 작품을 통해 결여의 미학을 표현하려 했다.

피터 부겐후트의 작업은 재료를 모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특별한 기준을 갖고 재료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길가에 마음에 드는 재료가 있으면 트렁크에 넣어두는 식이라며 기존의 조각서 일부분을 가져와 다른 작품에 붙이기도 한다. 어떤 특별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료를 융합하고 구축하는 한편, 해체하고 다시 축적해 새로운 시공간의 맥락에 가져다둔다. 이 과정서 선형적 시간의 구조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개체로서 작업의 의미와 정체성이 지속적으로 생성된다. 새로운 시공간과 조형 언어를 통해 개념과 사상을 눈앞으로 끌고 오는 식이다.

마리 클로케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다. 먼저 세상의 주변부와 같은 장소를 탐색하고 촬영한다. 스튜디오에 돌아와서는 촬영한 사진의 일부를 선택해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한다. 이후 재조작된 이미지를 암실서 출력한다.

사진의 형태로 담긴 실제의 공간은 왜곡된 인쇄와 찢기, 파편화 등 물리적 해체 과정을 거쳐 콜라주로 재배열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공간, 존재하지 않는 장소로 재탄생된다. 마리 클로케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대해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이 반영된 이미지라고 말했다.
 


마리 클로케가 만들어낸 왜곡되고 조작된 화면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보이지만 세계화의 명암에 대한 염려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 과정서 그녀는 실제와 가상 사이, 개발과 소외 사이 그리고 역사의 틈 사이 어딘가에 놓인 경계의 균열 같은 영리한 공간을 창조한다.

비선형적 시간성에 주목
“관람객들 반응 기대돼”

처음 2인전을 가진 두 작가는 작품의 어우러짐에 주안점을 뒀다고 밝혔다. 특히 마리 클로케는 조각과의 조화를 위해 새로운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고 했다. 그녀는 피터와 나는 조각과 회화가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작품 선정에 신경을 많이 썼다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조화를 중점적으로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작가들은 한국 관람객들이 이번 전시에 많이 참여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피터 부겐후트는 미술에 대한 반응은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인도에서는 내 작품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전시장에 놓고 장난을 치는 것 같다 했고 핀란드에서는 작품이 죽음에 관한 것인지 묻곤 했다한국에서의 반응도 분명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반응이 나올지 매우 궁금하다고 전했다.
 

마리 클로케는 새로운 대중을 만나는 것은 늘 흥미롭다. 벨기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한국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매우 궁금하다한국서 우리의 전시가 어떻게 느껴질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작가들은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해체와 융합

제이슨함 갤러리 관계자는 두 작가는 공통적으로 구축-해체-재구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 과정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낸다기존의 시공간에 대한 관념을 자유롭게 모색하며 그 안에서 우리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흥미로운 유영의 경험이 될 것이라고 관심을 당부했다.

 

<jsjang@ilyosisa.co.kr>

 

[피터 부겐후트는?]

학력

Sint-Lucas, Installation art-Gent, Belgium(1982-1986)

개인전 및 2인전


Museo de la Ciudad de Queretaro, Querétaro, Mexico(2018)
Jason Haam, Seoul, South Korea(2018)
Galeria Hilario Galguera, San Rafael, Mexico City, Mexico(2017)
Galerie Laurent Godin, Paris, France(2017)
The Box, Los Angeles, USA(2017)
Neues Museum, Berlin, Germany(2017)

 

[마리 클로케는?]

학력

LUCA School of Arts-Gent, Belgium(1994-1998)

개인전

Jason Haam, Seoul, South Korea(2018)
Annie Gentils Gallery, Antwerp, Belgium(2017)
Annie Gentils Gallery BOZAR, Brussel, Belgium(2016)
Secondroom curated by Elke Andras Boon, Gent, Belgium(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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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