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멋지게 살다간 신성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1.12 09:45:41
  • 호수 1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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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대스타의 파란만장 인생사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뉴 스타 넘버원(New Star Number One)’이 하늘의 별이 됐다. 대한민국 영화계 거장 신성일이 별세했다. 최고의 배우로서 국회에 입성해 뇌물로 징역까지.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 고인이 된 배우 신성일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지난 4일 새벽 향년 81세로 타계한 신성일은 한국 영화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한 스타였다. 빼어난 외모와 지적이고 반항적이면서 성적 매력이 넘치는 이미지는 1950∼1960년대 기존 배우들과 차별화하며 그를 당대 최고 청춘스타로 만들었다. 

시대 풍운아 
영면에 들다

1937년 서울서 출생, 생후 3일 만에 대구로 이주한 신성일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와 운동 등 여러 방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한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무작정 상경해 서울대 상대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갔다. 무려 3000 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당시 고 신상옥 감독이 세운 신필름 전속 연기자가 됐다. 데뷔 당시 신필름의 뉴 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으로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신성일(申星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신 감독 영화 <로맨스 빠빠>(1960년)로 데뷔한 이후 신필름을 나와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이었다. 


당시 고인은 170㎝가 넘는 큰 키와 수려한 용모.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로 당대 최고 스타가 됐다. 청춘영화 대명사가 된 이 작품은 당시 서울에서만 약 36만명을 동원할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한 청춘 영화들이 쏟아졌다.

신성일은 인기 최절정기인 그해 11월, 서울 워커힐호텔서 엄앵란과 결혼했다. 하객과 팬 4000명의 인파가 몰린 이 결혼식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신성일은 나중에 외도와 사업 실패 등으로 오랫동안 별거 상태로 지냈지만, 힘든 시기에는 서로 곁을 지키며 기둥이 돼줬다.

신성일의 전성기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됐다.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위험한 청춘>(1966), <불타는 청춘>(1966)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남자 배우로서는 독보적이었다. 100여명 이상의 여배우가 신성일의 상대역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1960년대 신성일 인기는 미국의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드롱과 비견될 정도였다.

부산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해 ‘신성일 회고전’을 맞아 펴낸 책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에 따르면 1967년 한해에만 신성일이 주연한 영화 51편이 극장에 걸릴 정도였다. 1964년부터 1971년까지 8년간 한국영화 개봉작 1194편 중 324편에 그가 등장했다.

잘생긴 외모·반항적 이미지
1950∼1960년대 청춘스타 등극

박찬욱 감독은 이 책에서 “이토록 한 사람에게 영화산업과 예술이 전적으로 의존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 신성일을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영화사는 물론 한국 현대 문화사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평했다.

신성일은 무력과 좌절에 빠진 지식인을 연기한 <별들의 고향>(1974)을 비롯해 <겨울여자>(1977), <장남>(1984), <길소뜸>(1985) 등 1970∼1980년대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다. 2005년에는 <태풍>에 특별 출연했고, 2013년에는 <망각 속의 정사>(1993) 이후 20년 만에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 주연을 맡으며 연기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만 해도 총 500편이 넘는다.
 

▲ 배우 신성일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화려한 수상 경력도 그의 이력 중 하나다. 그는 ▲제7·9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제7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인기상 ▲제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감독상 ▲제1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연기상 ▲제25회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남우조연상 ▲제25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연기상 ▲제28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15회 황금촬영상 최우수 인기남우상 ▲제32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이후에도 제41회 대종상영화제 발전공로상, 제28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상 특별공로예술가상, 제17회 부일영화상 영화발전공로상, 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 한국 영화를 빛낸 스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한국영화배우협회장, 춘사 나운규 기념사업회장,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대구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 계명대학교 연극예술과 특임교수 등 영화 관련 활동에도 발벗고 나섰다.

그가 배우 외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정치활동에 의지가 있었고, 1978년 박경원 전 장관의 특별보좌역으로 발탁돼 정계에 진출했다. 그는 1981년 11대 총선 서울 용산·마포구에 한국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2위로 낙선했다. 1996년 15대 총선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 동구 갑에 출마했다가 낙선, 2000년 16대 총선서 한나라당 후보로  67.2%의 표를 얻어 대구 동구서 당선돼 의정활동을 했다. 

그는 정계서 활동하던 중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16대 국회의원이던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업자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05년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8700만원을 선고받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2007년 2월12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기념 특별사면 및 복권 대상자에 포함되면서 출소했다.  

주연만 500여편
‘영원한 스타’

영화계는 50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하는 등 고인이 한국영화에 남긴 업적을 기려 훈장 추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서도 적극 화답하고 나섰다. 신성일 장례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영화계가 뜻을 모아 정부에 훈장 추서를 건의하기로 했다”며 “장례가 끝난 후 문화체육관광부 측과 구체적인 협의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 김국현 한국배우협회 이사장, 이해룡 한국영화인원로회 이사장 등이 주축이 돼 서울아산병원 빈소를 방문한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장례추진위 관계자는 “유족 측도 영화계와 뜻을 같이하고 있으며, 정부가 고인을 예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신성일씨 빈소(사진=사진공동취재단)

나종민 차관은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신 분이 돌아가셔서 정부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영화계와 협의해 이분을 예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나 차관은 “영화계와 유족 측에서 훈장 추서를 말씀했다”며 “잘 협의해서 좋은 방향으로 해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훈장 추서를 결정하는데 두세 달 정도 걸리고, 결정되더라도 영화계에 좋은 계기나 행사가 있을 때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8 정부포상 업무지침’에 따르면 공적이 현저히 탁월하고 그 공적에 비해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이 경미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 추천이 가능하다. 또 본인의 고의·중과실 여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한 경우 규명이 완료된 후 포상을 추천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정계 활동 당시 뇌물수수 혐의 등이 걸림돌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계가 신성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훈장 추서를 추진 중이다.


당대 최고 스타답게 스캔들도 끊이지 않았다. 많은 여자와 불륜 관계를 맺었으며, 그 과거사를 자서전으로 써낸 적이 있었다. 2011년 발표된 이 자서전서 자신의 엄청난 과거사를 여과 없이, 그것도 상대 여성의 신상을 숨기지 않고 공개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2011년에 펴낸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서 연극배우와 아나운서로 활동한 고 김영애씨를 1970년대에 만나 사랑한 이야기를 공개, 파장을 일으켰다. 신성일은 출간 기념 간담회서 “아내 엄앵란도 몰랐던 이야기”라며 “(김영애는)내가 생애 최고로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여성계를 중심으로 소위 ‘반 신성일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다.

아내 엄앵란
굴곡진 사랑

신성일의 아내 엄앵란과의 굴곡진 사랑도 조명되고 있다. 여러 작품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확연히 다른 생활 습관 탓에 1975년부터 별거했음이 한 방송을 통해 밝혀졌다. 신성일은 2011년 발간한 자서전을 통해 동아방송 아나운서였던 고 김영애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털어놨다. 

엄앵란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이혼만큼은 하지 않았다.

2011년 SBS <좋은아침>에 출연해 “(사람들이)심심하면 이혼했다고 한다. 신문에 언급한 대로라면 50번은 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도 있고 저렇게 사는 것도 있지 어떻게 교과서적으로 사느냐”며 “악착같이 죽을 때까지 (신성일과)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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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채널A <명랑해결단>에서는 “과거 역술인들이 우리 두 사람의 궁합에 대해 제게는 최악이지만 남편에게는 최고라고 했다. 부모님도 결혼을 반대했는데 당시에 신성일에게 푹 빠져 있었기에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고 말했다. 

고난은 이어졌다. 2016년 엄앵란이 갑작스럽게 유방암에 걸려 부분 절제 수술을 받는 등 투병하게 된 것. 20여년 넘게 집을 나간 신성일이 이를 계기로 돌아와 엄앵란을 간호했다. 이후 신성일도 폐암으로 투병했다.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동지’가 됐다. 

올해 3월 방송된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신성일을 향한 엄앵란의 진심이 전해졌다. 엄앵란은 “신성일은 내가 책임져야 할 큰아들”이라고 표현했다. 엄앵란은 “내가 먹여 살려야 하고, 죽을 때까지 VVIP 특실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 작은 방에 병원비도 없어서 돌아가시는 것을 나는 못 본다. 내 남편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스캔들과 상관없이 신성일은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도 컸다. 그는 연기를 넘어 1971년엔 <연애교실>로 감독에 입문했고, 1989년에는 성일시네마트를 설립해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70대에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며 건강에 신경 쓴 그는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는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떨쳐내겠다. 이겨낼 자신 있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학창시절 육상과 평행봉, 유도 등 다양한 운동을 한 그는 병마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회고전을 비롯해 올해 10월 열린 부산영화제에도 참석해 레드 카펫을 밟으며 손하트를 날리기도 했다.

국회의원 지내다 구속 복역도 
2008년부터 영천 한옥서 지내

그는 지난해 부산서 취재진과 만나 “나는 ‘딴따라’ 소리가 제일 싫다. 딴따라 소리 들으려고 영화계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종합예술 속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투병 이후 인생 2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었다. 그는 “막장드라마 대신 따뜻하고 애정 넘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영화 <행복>이라는 작품을 기획 중이며, 김홍신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도 영화로 옮길 계획”이라고 했다. 경북 영천에 한옥을 지어 살던 고인은 그곳에서 일년에 한 번씩 소규모 음악회를 여는 등 사람들의 쉼터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힌 바 있다. 
 

▲ 배우 신성일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고인은 마지막 바람들을 끝내 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지난 4일 오전 2시30분 경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전남대학교병원서 81세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해 6월 폐암말기 진단을 받고 서울과 화순에 있는 요양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증세가 악화되자 전남대학교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영면했다. 

지난 7일 경북 영천시 괴연동 배우 신성일의 한옥 자택 성일가서 추도식이 열렸다. 엄앵란은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올리며 “남편이 너무 바빠서 같이 베개를 베고 자기도 힘들었는데, (나도 죽고 나면)아주 싫증나게 남편 옆에 붙어서 영면하겠다”고 언급했다. 

추도식에는 유가족과 친지, 주민, 팬 등 5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애도했다. 사회는 배우 안재욱이 맡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영천에 오니 별빛밖에 안 보이던데 고인이 여기서 별이 되려고 오셨나 보다”라며 “이제 고인은 떠났지만 이곳 별들의 고향, 영천 하늘서 언제나 찬란한 별이 되어 빛날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추도식에서는 생전에 예술을 사랑했던 고인을 위한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경북도립교향악단이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베토벤의 가곡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를 연주했다. 이어 가수 김명상씨가 기타 연주와 함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노래하자 엄영란은 눈시울을 붉히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추도식은 평소 고인과 가까웠던 지인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로 구성된 추도위원회 주최로 거행했다. 추도식의 각종 실무는 고인이 2대 이사장과 명예조직위원장을 맡았던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딤프) 사무국이 맡았다. 

“딴따라 소리
제일 싫었다”

고인의 자택 옆 공터에는 신성일 기념관 건립이 추진된다. 공동추도위원장을 맡은 최기문 영천시장은 “고인이 영천서 제3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며 “유족이 동의한다면 고인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모두가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성일은 지인의 추천으로 2008년부터 영천에 한옥을 짓고 살며 마을 주민들과 정을 나눴다. 영천은 맑은 날이 연간 150일 이상인 만큼 별을 관측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 영화의 별 신성일은 그가 사랑했던 별의 도시 영천서 영면에 들어갔다. 자택 정원에 묻힌 그의 묘지 비석에는 ‘배우의 신화 신성일 여기 잠들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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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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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