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멋지게 살다간 신성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1.12 09:45:41
  • 호수 1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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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대스타의 파란만장 인생사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뉴 스타 넘버원(New Star Number One)’이 하늘의 별이 됐다. 대한민국 영화계 거장 신성일이 별세했다. 최고의 배우로서 국회에 입성해 뇌물로 징역까지.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 고인이 된 배우 신성일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지난 4일 새벽 향년 81세로 타계한 신성일은 한국 영화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한 스타였다. 빼어난 외모와 지적이고 반항적이면서 성적 매력이 넘치는 이미지는 1950∼1960년대 기존 배우들과 차별화하며 그를 당대 최고 청춘스타로 만들었다. 

시대 풍운아 
영면에 들다

1937년 서울서 출생, 생후 3일 만에 대구로 이주한 신성일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와 운동 등 여러 방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한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무작정 상경해 서울대 상대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갔다. 무려 3000 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당시 고 신상옥 감독이 세운 신필름 전속 연기자가 됐다. 데뷔 당시 신필름의 뉴 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으로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신성일(申星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신 감독 영화 <로맨스 빠빠>(1960년)로 데뷔한 이후 신필름을 나와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이었다. 


당시 고인은 170㎝가 넘는 큰 키와 수려한 용모.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로 당대 최고 스타가 됐다. 청춘영화 대명사가 된 이 작품은 당시 서울에서만 약 36만명을 동원할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한 청춘 영화들이 쏟아졌다.

신성일은 인기 최절정기인 그해 11월, 서울 워커힐호텔서 엄앵란과 결혼했다. 하객과 팬 4000명의 인파가 몰린 이 결혼식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신성일은 나중에 외도와 사업 실패 등으로 오랫동안 별거 상태로 지냈지만, 힘든 시기에는 서로 곁을 지키며 기둥이 돼줬다.

신성일의 전성기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됐다.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위험한 청춘>(1966), <불타는 청춘>(1966)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남자 배우로서는 독보적이었다. 100여명 이상의 여배우가 신성일의 상대역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1960년대 신성일 인기는 미국의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드롱과 비견될 정도였다.

부산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해 ‘신성일 회고전’을 맞아 펴낸 책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에 따르면 1967년 한해에만 신성일이 주연한 영화 51편이 극장에 걸릴 정도였다. 1964년부터 1971년까지 8년간 한국영화 개봉작 1194편 중 324편에 그가 등장했다.

잘생긴 외모·반항적 이미지
1950∼1960년대 청춘스타 등극

박찬욱 감독은 이 책에서 “이토록 한 사람에게 영화산업과 예술이 전적으로 의존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 신성일을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영화사는 물론 한국 현대 문화사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평했다.

신성일은 무력과 좌절에 빠진 지식인을 연기한 <별들의 고향>(1974)을 비롯해 <겨울여자>(1977), <장남>(1984), <길소뜸>(1985) 등 1970∼1980년대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다. 2005년에는 <태풍>에 특별 출연했고, 2013년에는 <망각 속의 정사>(1993) 이후 20년 만에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 주연을 맡으며 연기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만 해도 총 500편이 넘는다.
 

▲ 배우 신성일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화려한 수상 경력도 그의 이력 중 하나다. 그는 ▲제7·9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제7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인기상 ▲제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감독상 ▲제1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연기상 ▲제25회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남우조연상 ▲제25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연기상 ▲제28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15회 황금촬영상 최우수 인기남우상 ▲제32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이후에도 제41회 대종상영화제 발전공로상, 제28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상 특별공로예술가상, 제17회 부일영화상 영화발전공로상, 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 한국 영화를 빛낸 스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한국영화배우협회장, 춘사 나운규 기념사업회장,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대구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 계명대학교 연극예술과 특임교수 등 영화 관련 활동에도 발벗고 나섰다.

그가 배우 외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정치활동에 의지가 있었고, 1978년 박경원 전 장관의 특별보좌역으로 발탁돼 정계에 진출했다. 그는 1981년 11대 총선 서울 용산·마포구에 한국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2위로 낙선했다. 1996년 15대 총선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 동구 갑에 출마했다가 낙선, 2000년 16대 총선서 한나라당 후보로  67.2%의 표를 얻어 대구 동구서 당선돼 의정활동을 했다. 

그는 정계서 활동하던 중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16대 국회의원이던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업자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05년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8700만원을 선고받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2007년 2월12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기념 특별사면 및 복권 대상자에 포함되면서 출소했다.  

주연만 500여편
‘영원한 스타’

영화계는 50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하는 등 고인이 한국영화에 남긴 업적을 기려 훈장 추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서도 적극 화답하고 나섰다. 신성일 장례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영화계가 뜻을 모아 정부에 훈장 추서를 건의하기로 했다”며 “장례가 끝난 후 문화체육관광부 측과 구체적인 협의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 김국현 한국배우협회 이사장, 이해룡 한국영화인원로회 이사장 등이 주축이 돼 서울아산병원 빈소를 방문한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장례추진위 관계자는 “유족 측도 영화계와 뜻을 같이하고 있으며, 정부가 고인을 예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신성일씨 빈소(사진=사진공동취재단)

나종민 차관은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신 분이 돌아가셔서 정부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영화계와 협의해 이분을 예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나 차관은 “영화계와 유족 측에서 훈장 추서를 말씀했다”며 “잘 협의해서 좋은 방향으로 해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훈장 추서를 결정하는데 두세 달 정도 걸리고, 결정되더라도 영화계에 좋은 계기나 행사가 있을 때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8 정부포상 업무지침’에 따르면 공적이 현저히 탁월하고 그 공적에 비해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이 경미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 추천이 가능하다. 또 본인의 고의·중과실 여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한 경우 규명이 완료된 후 포상을 추천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정계 활동 당시 뇌물수수 혐의 등이 걸림돌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계가 신성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훈장 추서를 추진 중이다.


당대 최고 스타답게 스캔들도 끊이지 않았다. 많은 여자와 불륜 관계를 맺었으며, 그 과거사를 자서전으로 써낸 적이 있었다. 2011년 발표된 이 자서전서 자신의 엄청난 과거사를 여과 없이, 그것도 상대 여성의 신상을 숨기지 않고 공개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2011년에 펴낸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서 연극배우와 아나운서로 활동한 고 김영애씨를 1970년대에 만나 사랑한 이야기를 공개, 파장을 일으켰다. 신성일은 출간 기념 간담회서 “아내 엄앵란도 몰랐던 이야기”라며 “(김영애는)내가 생애 최고로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여성계를 중심으로 소위 ‘반 신성일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다.

아내 엄앵란
굴곡진 사랑

신성일의 아내 엄앵란과의 굴곡진 사랑도 조명되고 있다. 여러 작품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확연히 다른 생활 습관 탓에 1975년부터 별거했음이 한 방송을 통해 밝혀졌다. 신성일은 2011년 발간한 자서전을 통해 동아방송 아나운서였던 고 김영애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털어놨다. 

엄앵란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이혼만큼은 하지 않았다.

2011년 SBS <좋은아침>에 출연해 “(사람들이)심심하면 이혼했다고 한다. 신문에 언급한 대로라면 50번은 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도 있고 저렇게 사는 것도 있지 어떻게 교과서적으로 사느냐”며 “악착같이 죽을 때까지 (신성일과)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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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채널A <명랑해결단>에서는 “과거 역술인들이 우리 두 사람의 궁합에 대해 제게는 최악이지만 남편에게는 최고라고 했다. 부모님도 결혼을 반대했는데 당시에 신성일에게 푹 빠져 있었기에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고 말했다. 

고난은 이어졌다. 2016년 엄앵란이 갑작스럽게 유방암에 걸려 부분 절제 수술을 받는 등 투병하게 된 것. 20여년 넘게 집을 나간 신성일이 이를 계기로 돌아와 엄앵란을 간호했다. 이후 신성일도 폐암으로 투병했다.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동지’가 됐다. 

올해 3월 방송된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신성일을 향한 엄앵란의 진심이 전해졌다. 엄앵란은 “신성일은 내가 책임져야 할 큰아들”이라고 표현했다. 엄앵란은 “내가 먹여 살려야 하고, 죽을 때까지 VVIP 특실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 작은 방에 병원비도 없어서 돌아가시는 것을 나는 못 본다. 내 남편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스캔들과 상관없이 신성일은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도 컸다. 그는 연기를 넘어 1971년엔 <연애교실>로 감독에 입문했고, 1989년에는 성일시네마트를 설립해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70대에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며 건강에 신경 쓴 그는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는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떨쳐내겠다. 이겨낼 자신 있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학창시절 육상과 평행봉, 유도 등 다양한 운동을 한 그는 병마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회고전을 비롯해 올해 10월 열린 부산영화제에도 참석해 레드 카펫을 밟으며 손하트를 날리기도 했다.

국회의원 지내다 구속 복역도 
2008년부터 영천 한옥서 지내

그는 지난해 부산서 취재진과 만나 “나는 ‘딴따라’ 소리가 제일 싫다. 딴따라 소리 들으려고 영화계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종합예술 속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투병 이후 인생 2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었다. 그는 “막장드라마 대신 따뜻하고 애정 넘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영화 <행복>이라는 작품을 기획 중이며, 김홍신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도 영화로 옮길 계획”이라고 했다. 경북 영천에 한옥을 지어 살던 고인은 그곳에서 일년에 한 번씩 소규모 음악회를 여는 등 사람들의 쉼터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힌 바 있다. 
 

▲ 배우 신성일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고인은 마지막 바람들을 끝내 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지난 4일 오전 2시30분 경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전남대학교병원서 81세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해 6월 폐암말기 진단을 받고 서울과 화순에 있는 요양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증세가 악화되자 전남대학교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영면했다. 

지난 7일 경북 영천시 괴연동 배우 신성일의 한옥 자택 성일가서 추도식이 열렸다. 엄앵란은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올리며 “남편이 너무 바빠서 같이 베개를 베고 자기도 힘들었는데, (나도 죽고 나면)아주 싫증나게 남편 옆에 붙어서 영면하겠다”고 언급했다. 

추도식에는 유가족과 친지, 주민, 팬 등 5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애도했다. 사회는 배우 안재욱이 맡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영천에 오니 별빛밖에 안 보이던데 고인이 여기서 별이 되려고 오셨나 보다”라며 “이제 고인은 떠났지만 이곳 별들의 고향, 영천 하늘서 언제나 찬란한 별이 되어 빛날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추도식에서는 생전에 예술을 사랑했던 고인을 위한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경북도립교향악단이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베토벤의 가곡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를 연주했다. 이어 가수 김명상씨가 기타 연주와 함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노래하자 엄영란은 눈시울을 붉히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추도식은 평소 고인과 가까웠던 지인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로 구성된 추도위원회 주최로 거행했다. 추도식의 각종 실무는 고인이 2대 이사장과 명예조직위원장을 맡았던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딤프) 사무국이 맡았다. 

“딴따라 소리
제일 싫었다”

고인의 자택 옆 공터에는 신성일 기념관 건립이 추진된다. 공동추도위원장을 맡은 최기문 영천시장은 “고인이 영천서 제3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며 “유족이 동의한다면 고인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모두가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성일은 지인의 추천으로 2008년부터 영천에 한옥을 짓고 살며 마을 주민들과 정을 나눴다. 영천은 맑은 날이 연간 150일 이상인 만큼 별을 관측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 영화의 별 신성일은 그가 사랑했던 별의 도시 영천서 영면에 들어갔다. 자택 정원에 묻힌 그의 묘지 비석에는 ‘배우의 신화 신성일 여기 잠들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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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민희진·뉴진스 어두운 미래

‘사면초가’ 민희진·뉴진스 어두운 미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여론은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가 힘을 실어주면서다. 하지만 무대가 법정으로 옮겨간 이후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동시에 여론도 뒤집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2024년 4월 연예기획사 하이브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를 상대로 내부 감사에 착수한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해 어도어를 독립시키려 한 정황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당시 어도어 소속 가수는 아이돌 뉴진스가 유일했기에 분쟁의 크기는 순식간에 커졌다. 상처 입은 톱 아이돌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분쟁, 이른바 ‘민-하 대전’이 2년째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민 전 대표가 전면에서 하이브와 이른바 ‘맞다이’를 벌였지만 이후 뉴진스가 직접 판에 뛰어들면서 새 국면을 맞이했다. 동시에 빌리프랩 등 하이브의 다른 레이블, 어도어의 전 직원, 광고 제작사 돌고래유괴단 등이 전선에 합류했다. 민-하 대전에서 여론은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처음 민 전 대표에 대한 감사 소식이 전해진 이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은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은 민 전 대표를 옹호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민 전 대표는 ‘선’, 하이브는 ‘악’이라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뉴진스는 2024년 11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어도어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민-하 대전이 시작된 지 7개월 만에 뉴진스가 전면에 나서면서 파장이 커졌다. 뉴진스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연말마다 발표하는 ‘올해를 빛낸 가수’ 순위에서 2023년과 2024년 연달아 1위를 기록할 만큼 대중성이 높다. 그런 가수가 소속사와 정면 대결을 선택하자 연예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뉴진스가 소송 대신 구두로 계약 해지를 선언한 방식이 합당한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 ‘소속사 간 다툼에 아티스트를 끌어들이면 안 된다’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하면서 갈등의 무대는 정치권으로까지 넓어졌다. 하이브와 뉴진스, 민 전 대표 간의 갈등 양상을 비롯해 연예인의 노동자성까지 화두로 떠올랐다. 뉴진스 상대 전속계약 유지 인정 해인 혜린 하니 복귀 다니엘 해지 일각에서는 뉴진스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시점을 국감 때로 보기도 한다. 연예계 갈등을 국정감사에서 다루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 전 대표와 뉴진스에 대해 여론은 나름 호의적이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미국에서 여성 BJ와 만났다는 내용의 사생활 이슈 등이 도마 위에 오른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SNS나 기자회견 등 민 전 대표와 뉴진스가 이른바 여론전을 위해 올랐던 무대가 법정으로 바뀌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하이브와 어도어, 민 전 대표와 뉴진스 등이 연루된 소송은 10여개에 이른다. 소속사와 아티스트 간 전속계약, 민 전 대표가 하이브와 맺은 풋옵션 계약, 민 전 대표와 어도어 전 직원 간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표절 논쟁에서 시작된 민 전 대표와 빌리프랩 간의 손해배상 소송, 지식재산권 침해와 관련한 어도어와 돌고래유괴단의 손해배상 소송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흥미로운 대목은 여론과 법원 판결의 괴리다. 특히 어도어가 뉴진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여론까지 뒤집을 정도로 ‘원사이드’ 판결로 이어졌다. 뉴진스 측이 제시한 전속계약 해지 이유를 법원은 단 한 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도어의 전속계약 유효 소송에 법원이 연이어 ‘인용’ 판결을 내리면서 뉴진스는 벼랑 끝까지 몰렸다. 뉴진스는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 어도어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던 뉴진스의 태도가 누그러진 것도 이 시기다. 독자 활동이 완벽하게 막혔고 활동을 위해서는 어도어에 돈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나왔다. 연예계에서는 뉴진스가 복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여론도 뒤바뀌어 실제 뉴진스는 복귀했다. 멤버 5명 모두가 함께 어도어로 돌아가는 ‘완전체’ 복귀는 아니었기에 각종 설이 흘러나왔다. 연예계에서는 판결을 기점으로 멤버들 사이가 갈라진 것 같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법원이 어도어의 손을 들어준 만큼 향후 발생할 손해배상, 위약벌 등이 천문학적 금액에 이를 수 있다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난해 11월 뉴진스 멤버 해린과 혜인이 먼저 복귀했다. 어도어는 두 멤버의 복귀를 발표하면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남은 세 멤버(하니, 다니엘, 민지)와도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후 하니 복귀, 다니엘 계약 해지라는 결론이 나왔다. 민지는 논의 중인 상황이다. 어도어는 완전체를 깨더라도 다니엘과는 함께 갈 수 없다고 했다. 실제 어도어는 다니엘과 그의 가족 1인, 민 전 대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다니엘 등에게 이번 사태와 관련한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어도어가 다니엘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총 431억원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다니엘에게 청구된 소송 액수는 331억원으로 이중 300억원은 위약벌, 31억원은 활동 중단과 광고 촬영 미이행 등에 따른 손해배상이다. 그외 100억원은 민 전 대표와 다니엘의 모친에게 뉴진스 이탈과 복귀 지연 등으로 인한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청구액으로 알려졌다. 다니엘은 지난 12일 어도어로부터의 피소 이후 첫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심경을 전했다. 9분간 이어진 라이브 방송에서 다니엘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수백억원대의 소송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불리한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재판 간 연쇄 반응 뉴진스와의 소송전에서 압승을 거둔 어도어는 이제 급할 게 없는 상황이다. 뉴진스가 이미지 훼손, 금전적 손해 등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반면, 어도어는 뉴진스라는 이름을 지켜냈다. 특히 다니엘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그간의 사정이 드러나면 여론 자체가 급격하게 기울 가능성도 보인다. 한때 ‘뉴진스의 엄마’로 불렸던 민 전 대표도 코너에 몰렸다. 최근 민 전 대표가 증인으로 나섰던 돌고래유괴단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어도어의 손을 들어준 것도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15년 설립된 돌고래유괴단은 지난해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홍보 영상 ‘주차장에서 생긴 일’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2부는 어도어가 돌고래유괴단과 그 대표인 신우석 감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돌고래유괴단이 어도어에 10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신 감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어도어 측은 “돌고래유괴단 측을 상대로 낸 소송액 11억원 중 법인의 계약 위반 10억원이 인정됐고, 명예훼손으로 별도로 제기한 1억원은 기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돌고래유괴단은 뉴진스의 곡 ‘디토’ ‘OMG’ ‘ETA’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2024년 8월 ETA 뮤직비디오를 ‘디렉터스컷(감독판)’으로 제작해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일이다. 어도어는 “당시 광고주로부터 해당 영상에 대한 컴플레인을 접수했다”며 “뉴진스 관련 영상 소유권은 어도어에 있고 계약서에 명시된 사전 동의 절차가 없었으므로 영상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돌고래유괴단 10억원 배상 판결 주주 간 계약 해지&풋옵션 쟁점 그러자 돌고래유괴단은 ETA 감독판은 물론 자신들이 운영하던 비공식 뉴진스 팬덤 유튜브 채널인 ‘반희수’에 게시돼있던 뉴진스 관련 영상을 전부 삭제했다. 어도어는 ETA 감독판 영상에 대한 게시 중단을 요청했을 뿐 뉴진스 관련 모든 영상 삭제는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민 전 대표는 증인으로 출석해 감독판 영상을 별도로 게시하는 것에 대한 구두 협의가 있었으며 어도어 측 주장에 “바보 같고 어이없다”고 말한 바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번 판결이 민 전 대표의 소송에 미칠 영향이다. 민 전 대표는 현재 하이브와 주주 간 계약 및 풋옵션(주식매수 청구권) 행사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뉴진스와 어도어가 벌인 전속계약 관련 소송 등도 판결이 나왔을 당시 민 전 대표와 하이브 사이의 재판에 끼칠 영향을 두고 법조계의 의견이 분분했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는 하이브가 민 전 대표 등 2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 간 계약 해지 확인 소송과 민 전 대표 등 3명이 하이브를 상대로 낸 풋옵션 행사 관련 주식 매매대금 청구 소송의 마지막 변론기일 재판을 열었다. 하이브는 민 전 대표가 경영권 찬탈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며 주주 간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민 전 대표와 전 어도어 이사진은 풋옵션 행사에 따른 주식 매매대금 지급을 청구한 게 골자다. 이날 하이브는 데뷔도 하지 않은 뉴진스를 위해 어도어에 210억원을 투자하는 등 민 전 대표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민 전 대표가 신뢰 관계를 파괴하고 하이브에 타격을 주는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고의로 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민 전 대표 측은 어도어를 탈취할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았고 투자자를 만난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다. 2월이면 결론 난다 법적 흐름은 민 전 대표에게 단연 불리한 상황이다. 모든 소송이 민-하 대전에서 파생된 만큼 각각 재판에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주 간 계약 해지 및 풋옵션 행사 관련 소송이 향후 어도어가 다니엘과 그 모친, 민 전 대표에게 제기한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주 간 계약 해지 및 풋옵션 행사 관련 소송의 선고기일은 다음 달 12일로 예정돼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