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멋지게 살다간 신성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11.12 09:45:41
  • 호수 1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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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대스타의 파란만장 인생사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뉴 스타 넘버원(New Star Number One)’이 하늘의 별이 됐다. 대한민국 영화계 거장 신성일이 별세했다. 최고의 배우로서 국회에 입성해 뇌물로 징역까지.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 고인이 된 배우 신성일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지난 4일 새벽 향년 81세로 타계한 신성일은 한국 영화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한 스타였다. 빼어난 외모와 지적이고 반항적이면서 성적 매력이 넘치는 이미지는 1950∼1960년대 기존 배우들과 차별화하며 그를 당대 최고 청춘스타로 만들었다. 

시대 풍운아 
영면에 들다

1937년 서울서 출생, 생후 3일 만에 대구로 이주한 신성일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와 운동 등 여러 방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한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무작정 상경해 서울대 상대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갔다. 무려 3000 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당시 고 신상옥 감독이 세운 신필름 전속 연기자가 됐다. 데뷔 당시 신필름의 뉴 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으로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신성일(申星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신 감독 영화 <로맨스 빠빠>(1960년)로 데뷔한 이후 신필름을 나와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이었다. 


당시 고인은 170㎝가 넘는 큰 키와 수려한 용모.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로 당대 최고 스타가 됐다. 청춘영화 대명사가 된 이 작품은 당시 서울에서만 약 36만명을 동원할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한 청춘 영화들이 쏟아졌다.

신성일은 인기 최절정기인 그해 11월, 서울 워커힐호텔서 엄앵란과 결혼했다. 하객과 팬 4000명의 인파가 몰린 이 결혼식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신성일은 나중에 외도와 사업 실패 등으로 오랫동안 별거 상태로 지냈지만, 힘든 시기에는 서로 곁을 지키며 기둥이 돼줬다.

신성일의 전성기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됐다.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위험한 청춘>(1966), <불타는 청춘>(1966)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남자 배우로서는 독보적이었다. 100여명 이상의 여배우가 신성일의 상대역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1960년대 신성일 인기는 미국의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드롱과 비견될 정도였다.

부산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해 ‘신성일 회고전’을 맞아 펴낸 책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에 따르면 1967년 한해에만 신성일이 주연한 영화 51편이 극장에 걸릴 정도였다. 1964년부터 1971년까지 8년간 한국영화 개봉작 1194편 중 324편에 그가 등장했다.

잘생긴 외모·반항적 이미지
1950∼1960년대 청춘스타 등극

박찬욱 감독은 이 책에서 “이토록 한 사람에게 영화산업과 예술이 전적으로 의존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 신성일을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영화사는 물론 한국 현대 문화사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평했다.

신성일은 무력과 좌절에 빠진 지식인을 연기한 <별들의 고향>(1974)을 비롯해 <겨울여자>(1977), <장남>(1984), <길소뜸>(1985) 등 1970∼1980년대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다. 2005년에는 <태풍>에 특별 출연했고, 2013년에는 <망각 속의 정사>(1993) 이후 20년 만에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 주연을 맡으며 연기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만 해도 총 500편이 넘는다.
 

▲ 배우 신성일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화려한 수상 경력도 그의 이력 중 하나다. 그는 ▲제7·9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제7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인기상 ▲제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감독상 ▲제1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연기상 ▲제25회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남우조연상 ▲제25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연기상 ▲제28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제15회 황금촬영상 최우수 인기남우상 ▲제32회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이후에도 제41회 대종상영화제 발전공로상, 제28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상 특별공로예술가상, 제17회 부일영화상 영화발전공로상, 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 한국 영화를 빛낸 스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한국영화배우협회장, 춘사 나운규 기념사업회장,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대구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 계명대학교 연극예술과 특임교수 등 영화 관련 활동에도 발벗고 나섰다.

그가 배우 외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정치활동에 의지가 있었고, 1978년 박경원 전 장관의 특별보좌역으로 발탁돼 정계에 진출했다. 그는 1981년 11대 총선 서울 용산·마포구에 한국국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2위로 낙선했다. 1996년 15대 총선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 동구 갑에 출마했다가 낙선, 2000년 16대 총선서 한나라당 후보로  67.2%의 표를 얻어 대구 동구서 당선돼 의정활동을 했다. 

그는 정계서 활동하던 중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16대 국회의원이던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업자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05년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8700만원을 선고받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2007년 2월12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기념 특별사면 및 복권 대상자에 포함되면서 출소했다.  

주연만 500여편
‘영원한 스타’

영화계는 50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하는 등 고인이 한국영화에 남긴 업적을 기려 훈장 추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서도 적극 화답하고 나섰다. 신성일 장례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영화계가 뜻을 모아 정부에 훈장 추서를 건의하기로 했다”며 “장례가 끝난 후 문화체육관광부 측과 구체적인 협의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 김국현 한국배우협회 이사장, 이해룡 한국영화인원로회 이사장 등이 주축이 돼 서울아산병원 빈소를 방문한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장례추진위 관계자는 “유족 측도 영화계와 뜻을 같이하고 있으며, 정부가 고인을 예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신성일씨 빈소(사진=사진공동취재단)

나종민 차관은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신 분이 돌아가셔서 정부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영화계와 협의해 이분을 예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나 차관은 “영화계와 유족 측에서 훈장 추서를 말씀했다”며 “잘 협의해서 좋은 방향으로 해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훈장 추서를 결정하는데 두세 달 정도 걸리고, 결정되더라도 영화계에 좋은 계기나 행사가 있을 때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8 정부포상 업무지침’에 따르면 공적이 현저히 탁월하고 그 공적에 비해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이 경미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 추천이 가능하다. 또 본인의 고의·중과실 여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한 경우 규명이 완료된 후 포상을 추천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정계 활동 당시 뇌물수수 혐의 등이 걸림돌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계가 신성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훈장 추서를 추진 중이다.


당대 최고 스타답게 스캔들도 끊이지 않았다. 많은 여자와 불륜 관계를 맺었으며, 그 과거사를 자서전으로 써낸 적이 있었다. 2011년 발표된 이 자서전서 자신의 엄청난 과거사를 여과 없이, 그것도 상대 여성의 신상을 숨기지 않고 공개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2011년에 펴낸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서 연극배우와 아나운서로 활동한 고 김영애씨를 1970년대에 만나 사랑한 이야기를 공개, 파장을 일으켰다. 신성일은 출간 기념 간담회서 “아내 엄앵란도 몰랐던 이야기”라며 “(김영애는)내가 생애 최고로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여성계를 중심으로 소위 ‘반 신성일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다.

아내 엄앵란
굴곡진 사랑

신성일의 아내 엄앵란과의 굴곡진 사랑도 조명되고 있다. 여러 작품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확연히 다른 생활 습관 탓에 1975년부터 별거했음이 한 방송을 통해 밝혀졌다. 신성일은 2011년 발간한 자서전을 통해 동아방송 아나운서였던 고 김영애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털어놨다. 

엄앵란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이혼만큼은 하지 않았다.

2011년 SBS <좋은아침>에 출연해 “(사람들이)심심하면 이혼했다고 한다. 신문에 언급한 대로라면 50번은 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도 있고 저렇게 사는 것도 있지 어떻게 교과서적으로 사느냐”며 “악착같이 죽을 때까지 (신성일과)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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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채널A <명랑해결단>에서는 “과거 역술인들이 우리 두 사람의 궁합에 대해 제게는 최악이지만 남편에게는 최고라고 했다. 부모님도 결혼을 반대했는데 당시에 신성일에게 푹 빠져 있었기에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고 말했다. 

고난은 이어졌다. 2016년 엄앵란이 갑작스럽게 유방암에 걸려 부분 절제 수술을 받는 등 투병하게 된 것. 20여년 넘게 집을 나간 신성일이 이를 계기로 돌아와 엄앵란을 간호했다. 이후 신성일도 폐암으로 투병했다.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동지’가 됐다. 

올해 3월 방송된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신성일을 향한 엄앵란의 진심이 전해졌다. 엄앵란은 “신성일은 내가 책임져야 할 큰아들”이라고 표현했다. 엄앵란은 “내가 먹여 살려야 하고, 죽을 때까지 VVIP 특실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 작은 방에 병원비도 없어서 돌아가시는 것을 나는 못 본다. 내 남편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스캔들과 상관없이 신성일은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도 컸다. 그는 연기를 넘어 1971년엔 <연애교실>로 감독에 입문했고, 1989년에는 성일시네마트를 설립해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70대에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며 건강에 신경 쓴 그는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는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떨쳐내겠다. 이겨낼 자신 있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학창시절 육상과 평행봉, 유도 등 다양한 운동을 한 그는 병마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회고전을 비롯해 올해 10월 열린 부산영화제에도 참석해 레드 카펫을 밟으며 손하트를 날리기도 했다.

국회의원 지내다 구속 복역도 
2008년부터 영천 한옥서 지내

그는 지난해 부산서 취재진과 만나 “나는 ‘딴따라’ 소리가 제일 싫다. 딴따라 소리 들으려고 영화계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종합예술 속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투병 이후 인생 2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었다. 그는 “막장드라마 대신 따뜻하고 애정 넘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영화 <행복>이라는 작품을 기획 중이며, 김홍신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도 영화로 옮길 계획”이라고 했다. 경북 영천에 한옥을 지어 살던 고인은 그곳에서 일년에 한 번씩 소규모 음악회를 여는 등 사람들의 쉼터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힌 바 있다. 
 

▲ 배우 신성일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고인은 마지막 바람들을 끝내 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지난 4일 오전 2시30분 경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전남대학교병원서 81세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해 6월 폐암말기 진단을 받고 서울과 화순에 있는 요양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증세가 악화되자 전남대학교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영면했다. 

지난 7일 경북 영천시 괴연동 배우 신성일의 한옥 자택 성일가서 추도식이 열렸다. 엄앵란은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올리며 “남편이 너무 바빠서 같이 베개를 베고 자기도 힘들었는데, (나도 죽고 나면)아주 싫증나게 남편 옆에 붙어서 영면하겠다”고 언급했다. 

추도식에는 유가족과 친지, 주민, 팬 등 5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애도했다. 사회는 배우 안재욱이 맡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영천에 오니 별빛밖에 안 보이던데 고인이 여기서 별이 되려고 오셨나 보다”라며 “이제 고인은 떠났지만 이곳 별들의 고향, 영천 하늘서 언제나 찬란한 별이 되어 빛날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추도식에서는 생전에 예술을 사랑했던 고인을 위한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경북도립교향악단이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베토벤의 가곡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를 연주했다. 이어 가수 김명상씨가 기타 연주와 함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노래하자 엄영란은 눈시울을 붉히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추도식은 평소 고인과 가까웠던 지인을 중심으로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로 구성된 추도위원회 주최로 거행했다. 추도식의 각종 실무는 고인이 2대 이사장과 명예조직위원장을 맡았던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딤프) 사무국이 맡았다. 

“딴따라 소리
제일 싫었다”

고인의 자택 옆 공터에는 신성일 기념관 건립이 추진된다. 공동추도위원장을 맡은 최기문 영천시장은 “고인이 영천서 제3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며 “유족이 동의한다면 고인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모두가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성일은 지인의 추천으로 2008년부터 영천에 한옥을 짓고 살며 마을 주민들과 정을 나눴다. 영천은 맑은 날이 연간 150일 이상인 만큼 별을 관측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 영화의 별 신성일은 그가 사랑했던 별의 도시 영천서 영면에 들어갔다. 자택 정원에 묻힌 그의 묘지 비석에는 ‘배우의 신화 신성일 여기 잠들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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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