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네버엔딩 비자금’ 까발린 속내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6.18 10: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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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도 ‘내 돈’, 내 돈도 ‘내 돈’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이 17년여 만에 은닉 비자금을 추가로 털어놔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에게 맡긴 400억원대의 비자금이 더 있다고 밝힌 것. 노 전 대통령은 1997년 4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17년, 추징금 2628억원이 확정된 이후 물어야할 추징금이 231억원이 남아 있는 상태다. 언뜻 봐서는 뇌물로 받았을 비자금을 왜 스스로 실토하고 나선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실토 속사정과 과거 비자금 사건을 들여다봤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 1일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을 수사해달라며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냈다. 대통령 재임 때 서울 소공동 서울센터빌딩 매입과 강남 동남타워 신축 비용으로 신 전 회장에게 비자금 654억 원을 맡겼는데, 이 돈으로 불린 재산을 자신의 동의 없이 처분했다는 것이다.

사돈에 맡긴
비자금 폭로?

이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1995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당시 비자금 가운데 230억 원이 신 전 회장에게 건네진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진정서 내용대로라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자금 424억 원이 더 있다는 것을 노 전 대통령 스스로 밝힌 셈이다.

그 사이 신동방그룹 계열사인 정한개발이 빌딩을 계속 소유하면서, 2007년 이후 건물을 담보로 2개 저축은행에서 회사 명의로 150억 원 가량의 대출이 이뤄진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소공동 빌딩을 담보로 저축은행에서 150억 원을 대출해 개인 빚을 갚은 것은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동남타워는 지난 1999년 한국통신에 매각됐다. 대검찰청으로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계획이다.


상황이 이러자 노 전 대통령이 17년 넘게 숨겨온 거액의 비자금 존재를 공개하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뒷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은 미납 추징금을 납부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라고 밝히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 받았다. 같은 해 12월 사면·복권됐으나 추징금은 여기에서 제외됐다. 지금까지 총 2397억 원(91.2%)을 납부해 231억 원이 미납돼 있는 상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천2백5억 원의 추징금 중 5백30억 원만 낸 것과 대조적이다.

노태우 “사돈이 맘대로 쓴 비자금 424억 수사해 달라”
이혼 소송중인 외아들 재산정리·현충원 안장 ‘이중포석’

일각에서는 건강이 좋지 않은 노 전 대통령이 사후 국립현충원 안장을 위해 추징금 미납이라는 걸림돌 제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희귀병인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뇌의 크기가 점점 축소되는 이 질환은 똑바로 걸을 수 없거나 어지럼증을 느끼게 되며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당초 노 전 대통령과 가족들은 병명을 밝히기 꺼려했으나 2008년 4월 국군서울지구병원에 입원하면서 언론에 공개됐다.

노 전 대통령의 외아들 재헌씨가 신 전 회장의 딸과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에서 재산 정리에 나섰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두 사람은 1990년 결혼했다 최근 홍콩과 한국 법원에서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두 사람의 소송이 본격화 되자 법조계 일각에서는 “노씨 부부의 이혼소송을 통해 양가에 얽혀 있는 재산 관계가 정리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내역이 추가로 공개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앞으로 돈을 돌려받기 위한 민사소송을 대비한 사전준비 작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노 전 대통령과 신 전 회장이 사돈 간이긴 하지만 자녀들의 이혼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노 전 대통령이 소송을 통해 나머지 비자금을 회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잘~나가는 SK와
거리두기?

노 전 대통령의 사위가 회장으로 있는 SK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신동방그룹이 밉보이자 미련 없이 버리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권력이 있는 집안과 돈이 있는 집안이 결합해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협력하였지만 권력이 사라지고 난 지금, SK는 그 권력을 이용해서 거대 공룡기업이 됐고 신동방그룹은 권력을 십분 활용하지 못했다. 결국 두 기업의 ‘덩치’차이가 지금처럼 ‘돈’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상황까지 만들었다는 것. 실제 노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와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그 많았던 스캔들과 각종 사건 사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트위터에는 “도대체 얼마를 해드신 거야?”, “이혼하기 전에 돈 내놔라 이거군”, “검찰이 찾아주면 추징금 내고도 남는 장사” 등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꼬리가 처음 밟힌 것은 지난 1993년 동화은행장 비자금사건 때였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함승희 검사(전 민주당 국회의원)는 안영모 동화은행장의 비자금 계좌를 추적하던 중, 노태우 정권 시절 청와대 경호실장이던 이현우가 안 행장으로부터 2억1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시작으로 더 캐 들어가다 보니, 이 실장이 안 행장으로부터 3000만원씩 7차례에 걸쳐 받은 돈은 은행장 연임을 위한 청탁의 대가가 아니라, 바로 노태우 비자금 1000억원을 1991년 3월 동화은행에 예치해준 데 대한 대가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 측근· 재벌· 금융권 등이 유착하여 대규모의 정치자금을 형성한 ‘노태우 비자금’은 이미 1993년 4월에 1000억원 이상이 발견됐던 셈이다.

군부정권의
부끄러운 자화상

이후 1995년 10월, 박계동 전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노 전 대통령의 숨겨놓은 비자금을 폭로했다. 박 전 의원이 신한은행 서소문 지점에서 (주)우일양행 명의로 예치된 110억원의 예금계좌 조회표를 제시, 노태우 비자금 4000억 원이 여러 시중 은행에 차명계좌로 분산 예치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백일하에 들어났다.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성명을 통해 “기업체로부터 5천억 원 가량을 받아 1700억원 가량이 남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수사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기업체로부터 3500억 원을 받았고,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조성한 자금 중 사용하고 남은 돈과 당선 축하금 1100억 원을 합해 조성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진술을 통해 이 자금의 사용처를 밝혀냈으나, 900여 억 원에 대하여는 사용처가 불명하며,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1992년 대선 자금 지원에 관한 부분도 진술을 거부하여 밝혀지지 않았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5천여억 원 규모에 이르는 노태우의 비자금은 이후 그 내막이 거의 속속들이 드러났다.

지난 5월에는 동생과 조카 등을 상대로 비자금 120억 원으로 설립한 (주)오로라씨에스의 주주지위확인 청구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후대를 위한 기업체를 만들라”며 “1998년,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120억 원을 친동생 재우씨에게 맡겼고, 재우씨는 이 돈으로 냉동 창고업체 오로라씨에스(옛 ㈜미락냉장)를 설립해 아들 호준씨에게 회사 대표이사직을 넘겨줬다”고 진술했다.

1993년 첫 비자금 꼬리 밟힌 후 계속되는 비자금과의 전쟁
“뇌물로 받아 챙긴 돈, 차액 수금된다면 국가에 헌납해라”

노 전 대통령이 법원으로부터 “국가에 120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자 호준씨는 추징을 피하기 위해 2004년 이 회사의 부동산을 시티유통에 헐값에 매각한 뒤 2009년 2월 오로라씨에스와 시티유통을 인수 합병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오로라씨에스의 실질 주주는 자신이고, 실 주주가 빠진 주주총회 결의는 무효라며 조카 호준씨를 상대로 합병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수원지법 민사9부(함종식 부장판사)는 노 전 대통령이 낸 소송에 대해 “원고 부적격자가 제기한 소는 부적합하다”며 각하했다.

거액의 부정축재로 세상을 놀라게 한 노 전 대통령. 그의 계속되는 비자금 전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대부분이 “국가재산을 자신의 재산으로 취급하고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다니 뻔뻔하다”는 반응이다. 뇌물로 받아 챙긴 돈인 만큼 차액이 수금된다면 국가에 헌납하든지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이번 검찰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 주장대로 654억6500만원이 자신이 맡긴 돈으로 드러날 경우 미납 추징금 231억여 원이 국가에 귀속되는 것과는 별개로 남은 차액이 과연 누구의 것이냐는 문제가 생긴다.

비자금 진실
자세히 밝혀야

검찰내부나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추징금을 제외한 남은 돈은 법적으로 노 전 대통령 소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뇌물로 받은 부정한 돈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이 미납 추징금도 납부하고 뇌물로 받아 챙긴 남은 돈도 끝까지 되찾으려는 ‘꼼수’를 부린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그 배경이야 어찌됐든 반란과 뇌물수수로 단죄를 받은 전직 대통령의 처량한 말로를 국민들은 다시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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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