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필승카드' 이해찬 민주통합당 신임 대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6.11 13: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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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악재에도 당권 거머쥔 '역전의 명수' "저력 빛났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4·11총선 패배로 침울했던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이 6·9전당대회를 통해 되살아났다. 당 지도부를 뽑는 지역 순회 경선이 예상 밖 흥행을 일으키며 연일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해찬-김한길 후보의 치열한 대결이 있었다. '이-박 담합론'과 전화인터뷰 보이콧, 종북색깔론 등 다양한 악재에도 이해찬 대표가 당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그가 필요하다는 지지층의 결집이 있었다. 이해찬 당대표 체제가 출범함으로써 사실상 그의 후견인으로 활동했던 문재인 고문의 대세론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이해찬 후보가 지난 9일 극적으로 민주당 대표에 선출됐다. 선거 초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대선승리를 위한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라는 이른바 '이-박 담합론'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또 지난 5일에는 생방송으로 진행된 YTN 라디오 <김갑수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이 후보가 전화인터뷰 도중 사회자의 질문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방송사고를 일으키자 선거판세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여 공세 본격화
대권행보 빨라져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이러한 위기가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이해찬'이 꼭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이로써 문재인 고문의 대권 대세론은 더욱 굳건해졌다. 문 고문 측 관계자는 "당 대표 경선은 대선 후보 경선의 전초전이 아니다"라며 거리를 두긴 했지만 이번 경선은 사실상 당내 대권주자 간 '그림자 경선'이라고 불렸다는 점에서 최소한 문 고문의 당내 입지는 한층 더 탄탄해졌다.

대권을 향한 민주당의 행보도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이-박 연대에 대한 비판 속에서도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체제가 확정되자 민주당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정치10단의 이해찬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대선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박 원내대표가 취임하자마자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향해 연일 맹공을 퍼부으면서 새누리당 내에서는 이-박 연대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해찬 승리에 문재인 대세론 '탄력' 대권레이스 본격화
'이-박' 꿈의 조합…"오직 '대선승리' 힘 모으겠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황 대표 입장에서도 김한길 의원이 차라리 수월했을 것이다. 이-박 체제의 완성으로 민주당 차원의 대선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대권주자들은 이미 이번 선거결과가 대선레이스에 미칠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바쁘다.

이 대표는 1952년 7월 10일 충청남도 청양에서 공무원이던 아버지 이인용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가계는 조선왕조의 왕족으로, 그는 조선 14대 왕 선조의 생부 덕흥대원군의 14대손이다.

이 대표는 청양초등학교와 덕수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길에 올라 용산고에 입학했다. 1971년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에 진학한 그는 학생운동에 투신하다 72년 섬유공학과를 중퇴하고 같은 해에 다시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환경을 맞았지만 막일 등으로 생계비와 학비를 조달하며 학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되고 또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는 등 학생운동으로 투옥과 석방을 반복해 대학입학 후 14년 만인 1985년에야 서울대학교를 졸업(사회학 학사)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 '갈망'
14년 만의 졸업

이 대표는 그 과정에서 광장서적, 돌베개출판사 대표 등을 지냈으며, 1987년 <한겨레신문>의 창간 발기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출판인, 언론인 등으로 활동했다.


그의 본격적인 정치행보는 1987년 11월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시작됐다. 1987년 말 DJ가 학생운동권 인사들을 두루 영입할 때 그도 평민당에 입당했다. 그는 바로 다음 해인 198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서울 관악구 평민당 후보로 당선돼 이후 내리 5선을 지냈다. 첫 당선 당시 그는 겨우 36세였다. 특히 1988년 5·18 광주청문회 당시에는 5공 관련자들을 논리정연하게 추궁해 일약 '청문회스타'로 떠올랐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제38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재임 시절 그는 교원비리 근절 및 무시험 대학입학 전형, 학급 정원 단축, 교원정년 단축 등의 개혁을 추진했지만 일명 '이해찬 세대'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주로 고교 평준화, 연합고사 폐지, 보충수업 폐지 등의 개혁안을 추진했는데 성급한 입시개혁이 결국 이해찬 세대의 학력저하를 불러왔다는 비판이었다. 또 교원비리 근절에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교사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과감한 개혁정책은 학교 내 촌지 등 각종 비리를 척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신뢰를 얻었다. 2004년 제36대 국무총리로 임명된 것이다. 이 대표는 국무총리 재임 당시 19년 간 미결과제로 남아있던 원전폐기물처리장 설치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가 하면 공공기관 지방이전안을 추진해 현재 세종시의 기반을 닦았다.

과감한 교육개혁
평가는 엇갈려

국무총리 정무비서관실 국장 출신인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이 대표에 대해 "역대 총리들은 대부분 의전총리, 대독총리에 그쳤는데 이 전 총리는 '밥값'을 제대로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렇게 별다른 문제없이 2년가량 총리직을 수행하던 그는 안타깝게도 2006년 3·1절 골프파문으로 인해 총리직을 사퇴했다.

이에 대해 전남대 고용 교수는 "이해찬 대표는 사실 무척 소박한 사람"이라며 "골프사건 하나로 이미지가 훼손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이 대표가 총리로 재직할 때 하루는 총리 일행이 지나간다고 경찰들이 신호등을 길게 잡았다. 그러자 그는 퇴근길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며 혼자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가 버렸다. 정책을 두고 토론할 때는 속칭 '갈매기 눈썹'이라고 불리는 날카로운 모습으로 집중하지만, 소소한 자리에서는 담배 한 대  피워가며 사람들과 담소하고, 청양 시골소년으로 돌아가 해맑고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그런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야당 대통령 만든 진정한 '킹메이커' 
"18대 대선서 어떤 활약할까?" 벌써부터 이목 집중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역시 이 대표를 '사무사(思無邪)의 정치인'으로 표현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삿되거나 간사한 언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유 전 대표는 "매순간 선택을 요구 받는 것이 정치인인데, 그는 스스로 정당화 할 수 없는 타협이나 아부를 절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1991년 첫 지방선거 당시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민당 지도부가 돈 공천을 하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에서 나왔다. 또 2002년 여름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한 노무현 후보를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낙마시키자는 의견이 팽배할 때도 그는 묵묵히 노무현 후보 선대위의 핵심 요직을 맡아 승리를 일구어 냈다. 선거에 지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바른 도리라는 단순한 원칙에 따른 행동이었다.


이 대표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바로 정권교체다. 그는 "제가 가진 모든 경험과 능력을 제3기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쏟아 붓겠다"고 말했다.

또한 "대선 경선과정에서 엄정 중립을 지키고 공정하게 관리하겠다"며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여 검증된 후보, 경쟁력 있는 후보가 우리당의 후보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당의 후보가 결정되면 후보의 당선을 위한 총력 지원체제를 구축해 반드시 대선 승리를 일궈내겠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행보는?
정권 교체 '총력'

이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당내 대권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누가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결정되든 '이해찬-박지원'의 든든한 후원이 있다면 해볼만 하다는 평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총괄기획을 맡아 불리한 선거판세를 뒤집어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초의 야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이제 대선을 향한 민주당의 밑그림은 모두 그려졌다. 이 신임대표가 18대 대선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해찬 대표 프로필>

▲ 1971 용산고 졸
▲ 1978 돌베개출판사 대표
▲ 1983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 1985 서울대 졸
▲ 1988 제13대 국회의원
▲ 1992 제14대 국회의원
▲ 1995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 1996 제15대 국회의원
▲ 1998 제38대 교육부 장관
▲ 2000 제16대 국회의원
▲ 2004 제17대 국회의원
▲ 2004 제36대 국무총리
▲ 2011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2012 제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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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