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필승카드' 이해찬 민주통합당 신임 대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6.11 13: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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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악재에도 당권 거머쥔 '역전의 명수' "저력 빛났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4·11총선 패배로 침울했던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이 6·9전당대회를 통해 되살아났다. 당 지도부를 뽑는 지역 순회 경선이 예상 밖 흥행을 일으키며 연일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해찬-김한길 후보의 치열한 대결이 있었다. '이-박 담합론'과 전화인터뷰 보이콧, 종북색깔론 등 다양한 악재에도 이해찬 대표가 당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그가 필요하다는 지지층의 결집이 있었다. 이해찬 당대표 체제가 출범함으로써 사실상 그의 후견인으로 활동했던 문재인 고문의 대세론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이해찬 후보가 지난 9일 극적으로 민주당 대표에 선출됐다. 선거 초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대선승리를 위한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라는 이른바 '이-박 담합론'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또 지난 5일에는 생방송으로 진행된 YTN 라디오 <김갑수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이 후보가 전화인터뷰 도중 사회자의 질문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방송사고를 일으키자 선거판세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여 공세 본격화
대권행보 빨라져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이러한 위기가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이해찬'이 꼭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이로써 문재인 고문의 대권 대세론은 더욱 굳건해졌다. 문 고문 측 관계자는 "당 대표 경선은 대선 후보 경선의 전초전이 아니다"라며 거리를 두긴 했지만 이번 경선은 사실상 당내 대권주자 간 '그림자 경선'이라고 불렸다는 점에서 최소한 문 고문의 당내 입지는 한층 더 탄탄해졌다.

대권을 향한 민주당의 행보도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이-박 연대에 대한 비판 속에서도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체제가 확정되자 민주당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정치10단의 이해찬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대선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박 원내대표가 취임하자마자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향해 연일 맹공을 퍼부으면서 새누리당 내에서는 이-박 연대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해찬 승리에 문재인 대세론 '탄력' 대권레이스 본격화
'이-박' 꿈의 조합…"오직 '대선승리' 힘 모으겠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황 대표 입장에서도 김한길 의원이 차라리 수월했을 것이다. 이-박 체제의 완성으로 민주당 차원의 대선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대권주자들은 이미 이번 선거결과가 대선레이스에 미칠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바쁘다.

이 대표는 1952년 7월 10일 충청남도 청양에서 공무원이던 아버지 이인용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가계는 조선왕조의 왕족으로, 그는 조선 14대 왕 선조의 생부 덕흥대원군의 14대손이다.

이 대표는 청양초등학교와 덕수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길에 올라 용산고에 입학했다. 1971년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에 진학한 그는 학생운동에 투신하다 72년 섬유공학과를 중퇴하고 같은 해에 다시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환경을 맞았지만 막일 등으로 생계비와 학비를 조달하며 학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되고 또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는 등 학생운동으로 투옥과 석방을 반복해 대학입학 후 14년 만인 1985년에야 서울대학교를 졸업(사회학 학사)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 '갈망'
14년 만의 졸업

이 대표는 그 과정에서 광장서적, 돌베개출판사 대표 등을 지냈으며, 1987년 <한겨레신문>의 창간 발기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출판인, 언론인 등으로 활동했다.

그의 본격적인 정치행보는 1987년 11월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시작됐다. 1987년 말 DJ가 학생운동권 인사들을 두루 영입할 때 그도 평민당에 입당했다. 그는 바로 다음 해인 198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서울 관악구 평민당 후보로 당선돼 이후 내리 5선을 지냈다. 첫 당선 당시 그는 겨우 36세였다. 특히 1988년 5·18 광주청문회 당시에는 5공 관련자들을 논리정연하게 추궁해 일약 '청문회스타'로 떠올랐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제38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재임 시절 그는 교원비리 근절 및 무시험 대학입학 전형, 학급 정원 단축, 교원정년 단축 등의 개혁을 추진했지만 일명 '이해찬 세대'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주로 고교 평준화, 연합고사 폐지, 보충수업 폐지 등의 개혁안을 추진했는데 성급한 입시개혁이 결국 이해찬 세대의 학력저하를 불러왔다는 비판이었다. 또 교원비리 근절에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교사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과감한 개혁정책은 학교 내 촌지 등 각종 비리를 척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신뢰를 얻었다. 2004년 제36대 국무총리로 임명된 것이다. 이 대표는 국무총리 재임 당시 19년 간 미결과제로 남아있던 원전폐기물처리장 설치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가 하면 공공기관 지방이전안을 추진해 현재 세종시의 기반을 닦았다.

과감한 교육개혁
평가는 엇갈려

국무총리 정무비서관실 국장 출신인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이 대표에 대해 "역대 총리들은 대부분 의전총리, 대독총리에 그쳤는데 이 전 총리는 '밥값'을 제대로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렇게 별다른 문제없이 2년가량 총리직을 수행하던 그는 안타깝게도 2006년 3·1절 골프파문으로 인해 총리직을 사퇴했다.

이에 대해 전남대 고용 교수는 "이해찬 대표는 사실 무척 소박한 사람"이라며 "골프사건 하나로 이미지가 훼손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이 대표가 총리로 재직할 때 하루는 총리 일행이 지나간다고 경찰들이 신호등을 길게 잡았다. 그러자 그는 퇴근길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며 혼자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가 버렸다. 정책을 두고 토론할 때는 속칭 '갈매기 눈썹'이라고 불리는 날카로운 모습으로 집중하지만, 소소한 자리에서는 담배 한 대  피워가며 사람들과 담소하고, 청양 시골소년으로 돌아가 해맑고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그런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야당 대통령 만든 진정한 '킹메이커' 
"18대 대선서 어떤 활약할까?" 벌써부터 이목 집중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역시 이 대표를 '사무사(思無邪)의 정치인'으로 표현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삿되거나 간사한 언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유 전 대표는 "매순간 선택을 요구 받는 것이 정치인인데, 그는 스스로 정당화 할 수 없는 타협이나 아부를 절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1991년 첫 지방선거 당시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민당 지도부가 돈 공천을 하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에서 나왔다. 또 2002년 여름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한 노무현 후보를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낙마시키자는 의견이 팽배할 때도 그는 묵묵히 노무현 후보 선대위의 핵심 요직을 맡아 승리를 일구어 냈다. 선거에 지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바른 도리라는 단순한 원칙에 따른 행동이었다.


이 대표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바로 정권교체다. 그는 "제가 가진 모든 경험과 능력을 제3기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쏟아 붓겠다"고 말했다.

또한 "대선 경선과정에서 엄정 중립을 지키고 공정하게 관리하겠다"며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여 검증된 후보, 경쟁력 있는 후보가 우리당의 후보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당의 후보가 결정되면 후보의 당선을 위한 총력 지원체제를 구축해 반드시 대선 승리를 일궈내겠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행보는?
정권 교체 '총력'

이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당내 대권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누가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결정되든 '이해찬-박지원'의 든든한 후원이 있다면 해볼만 하다는 평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총괄기획을 맡아 불리한 선거판세를 뒤집어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초의 야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이제 대선을 향한 민주당의 밑그림은 모두 그려졌다. 이 신임대표가 18대 대선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해찬 대표 프로필>

▲ 1971 용산고 졸
▲ 1978 돌베개출판사 대표
▲ 1983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 1985 서울대 졸
▲ 1988 제13대 국회의원
▲ 1992 제14대 국회의원
▲ 1995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 1996 제15대 국회의원
▲ 1998 제38대 교육부 장관
▲ 2000 제16대 국회의원
▲ 2004 제17대 국회의원
▲ 2004 제36대 국무총리
▲ 2011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2012 제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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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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