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춘 때문에 재론되는 ‘희대의 사형수들’ 현주소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6.14 10:06:34
  • 댓글 0개

“난 특실 감방서 럭셔리하게 지낸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길을 지나던 20대 여성을 납치해 엽기적으로 살해한 오원춘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지석배)는 지난 1일 수원지법 제11형사부 심리로 열린 오원춘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사형을 구형했으며, 30년의 전자장치 부착도 요구했다. 이 가운데 과연 재판부가 사형선고를 내릴지 사형집행을 할지, 또 사형제 존폐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은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맞는 것일까. 사형제의 역사를 통해 현재 사형수들을 되돌아보고 사형제 존폐논란을 들여다봤다.

오원춘(42). 지난 4월 1일 경기도 수원시 20대 여성의 사체를 280여 조각으로 나눈 희대의 살인범이다. 수십 년간 범죄현장을 지켜봐온 현장관계자들과 범죄 심리 전문가들도 이렇게 참혹한 광경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범행 수법은 처참했다.

때문에 그의 사형 구형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러한 잔혹범에 대한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사형제 존폐여부가 또 다시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원춘 사형 구형
죄책감 없어

검찰은 사형 구형 이유에 대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 죄책감이나 반성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며 “오원춘 사건이 우리 사회에 끼친 파장과 인간의 고귀한 존엄성을 짓밟은 범죄행위에 대해 법의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원춘은 그러나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결심재판 내내 “잘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등의 대답으로 일관,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한 이유 등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 심문에서 “밤을 새가며 시체를 훼손한 데에는 시체 유기 이외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특히 “피해자를 여행가방에 담아 버리기 위해 시체를 절단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집안에 있는 소형절단기를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절단과 상관없는 시체 훼손이었다”고 오원춘을 추궁했다.

오원춘 사형구형, 선고 및 집행 이뤄질까?
“사실상 사형 폐지국…한국 사형수 61명”

재판부는 또 오원춘이 강간을 시도하다가 피해여성이 거세게 반항해 이를 포기했다는 기소내용에 대해서도 “강간을 목적으로 피해여성을 납치 살인까지 한 피의자가 피해여성이 반항한다고 해서 당초의 목적을 포기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원춘은 “나도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며 중요 사실에 대한 진술을 거부했고, “피해자가 112에 신고한 사실도 알지 못했다”며 경찰과 검찰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내용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오원춘의 이런 모습에 대해 피해 유가족은 “가족의 삶이 처참하게 짓밟혔다”며 “법의 힘으로 피고인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선고공판은 오는 15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사형제가 다시 도마 위로 오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실제 사형을 집행하지도 않으면서 사형제를 유지해오고 있는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이다.

1948년 건국 이후 사형제를 도입한 우리나라는 1949년 7월 처음으로 사형을 집행했고, 지금까지 모두 99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국의 사형수
그들은 누구인가

정권별 집행 현황을 살펴보면 이승만 정부(월 2.4명), 박정희 정부(월 1.9명) 시절에 사형이 가장 많이 집행됐다. 사형 확정자 수는 박정희 정부 때가 414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승만 정부 335명, 전두환 정부 76명, 노태우 정부 60명, 윤보선 정부 14명, 김영삼 정부 12명 등의 순이었다.

범죄 유형별로는 살인 등의 강력 범죄자 562명이 사형을 통해 생을 마감했으며, 정치·사상범 가운데 사형을 당한 사람도 254명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12월 30일 23명을 사형집행 한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사형집행이 없었다. 당시 마지막으로 사라진 사형수는 1991년 시력장애로 직장에서 해고된 데 앙심을 품고 승용차로 서울 여의도광장을 질주해 2명을 살해하고 17명에게 상처를 입힌 김용제(27) 등 23명이었다.

현재 확정 사형수는 2010년 말 기준 61명이다. 이중 2명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현재 사형수는 서울·부산·대구 등지의 구치소에 분산 수감돼 있다.

가장 오래전 사형이 확정된 사람은 1992년 ‘살인 및 현주건조물 방화치사’로 구속돼 93년 사형이 확정된 원언식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특정종교에 심취한 데 불만을 품고 교회 건물에 불을 질러 15명을 숨지게 했다.

이후 친부모를 살해해 충격을 준 박한상, 폭력조직을 운영하며 다른 조직원 병원까지 쫓아가 살해 후 출동 경찰관 2명까지 살해한 강영성, 배신한 동거녀로 오인해 길 가던 여성을 살해하고 임시 의탁하던 사찰 주인과 할머니를 칼로 난자해 살해한 임명기 등이 1990년대 사형이 확정됐다.

보복범죄에서
금전·성욕으로

2000년대 초반에는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거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살해해 사형 확정을 받은 사형수들이 많았다. 

2000년 부산·울산에서 23건의 강도사건을 일으켜 9명을 살해한 정두영은 과도한 공격성을 보여 피해자의 온몸을 짓밟아 장기파열로 죽게 하거나 야구방망이나 망치로 머리를 집중적으로 내리쳐 살해했다. 당시 그는 “10억원을 모은 뒤 성인오락실이나 실내야구장을 차려 동거녀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김중호는 2002년 재혼한 아내가 데려온 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다 구속됐다. “더는 자신과 아이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조건을 내걸며 아내가 고소를 취하해 풀려난 그는 곧바로 아내와 의붓딸, 자신과 아내 사이에 낳은 두 자녀를 망치와 가위 등으로 살해해 2003년 사형이 확정됐다. 이후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로는 연쇄 살인범 유영철·강호순, 혜진 예슬 사건의 피의자 정성현 등이 있다. 

이들 사형수 61명이 살해한 피해자는 모두 210명이다. 사형수 한 명에게 평균 3.4명이 희생된 셈이다. 유영철이 20명을 살해했고, 강원 원주시 왕국회관에 불을 지른 원언식이 15명의 희생자를 냈다.

강호순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내와 장모를 불을 질러 살해하고,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해 부녀자 8명을 납치해 성폭행한 뒤 죽였다. 부녀자와 초등학생 13명을 연쇄 살해한 정남규는 2009년 말 구치소 안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범죄유형 다양…사형수 1인당 평균 3.4명 살해
‘범죄 억제’ vs ‘생명권 침해’ 사형제 끝없는 논란

전문가들은 사형수 1인당 살해 피해자 수는 증가 추세를 보인다고 진단했다. 2000년대 후반 12명의 사형수에게 희생된 피해자는 67명(평균 5.6명)이었다. 반면 최근 사형수들은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이 없어  예전에 비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라는 전언이다.

상황이 이러자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AI)는 지난해 연례 사형현황보고서 발표를 통해 한국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 실제 사형집행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에 대한 재판과정이 진행될 때마다 사형제 존폐여부는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오원춘 사형구형 소식을 놓고도 인터넷을 통해 찬반논쟁이 또 다시 점화되고 있다.

사형 찬성자들은 타인의 고귀한 생명을 잔혹하게 빼앗은 흉악범에게는 인권 및 생명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가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의 정의를 올바르게 잡고 범죄예방 효과를 위해서는 당연히 사형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사형수들의 숙식을 해결해야 하니 비용차원에서 생각하면 당연히 사형을 시켜야 맞다는 입장도 있다. 실제 법무부에 따르면 사형수 1명에게 들어가는 연간 예산은 약 160만원 정도다.

사형수 1명에게 들어가는 예산은 2008년 기준으로 연간 식비가 113만7000원(끼니당 약 1000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의료비 21만원, 연료비 10만1000원, 수용비 9만4000원, 피복비 5만3000원이 들어간다.

사형제 존폐 여부
끊임없는 찬반 논란

반면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은 사형이 범죄예방효과가 없고 강력범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데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타인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해도 죄를 뉘우칠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도 사형제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반된 입장 속에 키를 쥐고 있는 정치권은 여론의 눈치를 보며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있다. 워낙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보니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그간 사형제 존폐론을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국회부터 반성해야 한다”며 “범죄예방을 위해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흉악범을 일벌백계해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인 만큼 사형제를 폐지시키든지 재개여부를 결정하든지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해 달라”고 촉구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