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입법부 장악한 '박의 남자' 강창희 국회의장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6.06 11: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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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부 수장이 '박근혜 킹메이커' 노릇 한다고?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 이변은 없었다. 6선의 강창희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출 된 것. 비록 친박계 독식논란과 5공 인사라는 비판에 부딪혔지만 국회의장은 다선(多選)과 연장자를 우선으로 한다는 관례를 깨기엔 역부족이었다. 또 강 의장이 새누리당의 취약지역인 충청 출신임을 감안해 대선정국을 앞두고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뼛속까지 친박'이라는 강창희 신임 국회의장이 선출됨으로써 친박계는 명실상부 당권과 입법부까지 완벽하게 장악하게 됐으며, 충청권의 민심도 얻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다.

강창희 새누리당 의원(대전 중구)이 임기 2년의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대전 중구가 지역구인 강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면서 헌정사 64년 만에 충청권 국회의장이 처음으로 탄생했다. 그동안 20명의 국회의장이 있었지만 충청권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로 분류되는 그는 당대표, 원내대표, 사무총장에 이어 국회의장까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친박계 독식논란'에 대해 "국회의장은 당적을 이탈해야 하는데 계파가 무슨 의미가 있냐. 다 초월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충청권 대표 '친박'
5공 출신 '독' 될 수도

하지만 강 의장이 당선된 것에는 친박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전 출신의 강 의장이 입법부의 수장이 됨으로써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대선에서 충청권 표를 얻는데 한층 수월하다는 논리다.

반면 강 의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5공 출신이라는 점은 오히려 박 전 위원장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박 전 위원장 역시 아직까지도 유신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 의장은 지난 2009년 발간된 자서전 <열정의 시대>에서 "나의 군생활이나 정치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소위로 동해안에서 소대장을 하던 시절 나를 청와대 경비임무를 하는 수경사 30대대로 전입시킨 이가 전두환 장군이고, 정치를 시작한 것도 전두환 대통령 밑에서였다. 또한 군대시절 하나회 멤버였다"고 적었다.


그가 내린 5공화국에 대한 평가도 논란거리다. 강 의장은 "5공은 물가를 잡고 기초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지금도 '그래도 전두환 때가 낫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충청권 최초 국회의장 선출에 기대감
국민이 공감하는 '열린국회'가 최대 목표

강 의장은 1946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충남대학교 총장을 지낸 강진형 박사, 어머니는 대전 보육대 교수와 걸스카우트 충남연맹장을 지낸 문장희 여사다. 어렸을 때부터 큰 정치지도자를 꿈꾸며,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등 군인 출신 정치지도자를 동경했다. 대전 토박이인 그는 대전 대흥초, 대전중, 대전고를 졸업한 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강 의장은 육군사관학교(제25기)를 나와 11, 12, 14, 15, 16대 국회의원과 초대 과학기술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최근엔 새누리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박 전 위원장의 원로자문그룹 '7인회'의 일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7인회는 강 의장을 비롯해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과 김기춘 전 법무장관, 김용갑·현경대 전 의원,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등이 참여하는 친박 원로 그룹이다.

강 의장은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 충청권을 대표하는 친박 인사다. 그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열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을 계기로 박 전 위원장과 가까워졌다.

당시 강 의장은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인사들과 함께 박 전 위원장을 당대표로 내세우자고 제안했다. 박 전 위원장이 정중하게 고사하자 강 의장은 "나라가 어려운데 아버지(고 박정희 전 대통령)라면 어떻게 판단했겠느냐"는 말로 설득했고, 박 전 위원장은 마침내 강 의장의 제안을 수락했다.

30여 년 정치인생
강직한 성품 정평


강 의장은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충청권의 압승을 이끌어냈고, 2007년 17대 대선 경선에서는 '박근혜 후보 경선 선거대책본부 고문'을 맡는 등 정치적 고비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박 전 위원장을 도왔다.

강 의장은 본래 박 전 위원장이 아닌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 사람이었다. 1983년 11대 국회에 민정당 전국구(현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한 강 의장은 대전 중구에서 12대(민정당)에 이어 14대 때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1995년 자민련에 입당해 사무총장, 원내총무(현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을 거쳤다.

16대 대선 때 김대중ㆍ김종필(DJP) 연합으로 정권을 잡은 국민의 정부에서는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자민련이 민주당 의원 3명을 임대받아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에 반발하다 당에서 제명되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국민들은 6선에 빛나는 강 의장에게 노련한 정국 핸들링을 기대하고 있다. 강 의장은 19대 전반기 국회의장의 과제로 △국가 정체성과 헌법정신 수호 △상식과 순리가 통하는 국회상 정립 △국민이 공감하는 열린 국회 만들기를 제시하며 "여당과 소통하고 야당과 대화하는 ‘여소야대’ 의장, 또 여당과 대화하고 야당과 소통하는 ‘여대야소’ 의장이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6선 고지까지
절치부심 '2전3기'

아울러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며 "국민과 한 치도 떨어지지 않는 현장 국회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강 의장의 제19대 총선 승리는 '와신상담'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무려 8년간을 원외에서 머물렀다. 17ㆍ18대에 연거푸 낙선하자 주위에선 '강창희의 정치인생도 끝'이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8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다시 국회에 입성, 6선 고지에 오른 것이다.

무엇보다 젊은 시절 정치에 입문한 강 의장은 그동안 '승승장구'하며 주야장천 오르막길만 걸어왔다. 오히려 지난 8년(17·18대)간의 내리막길을 통해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낙선 후 "올라갈 땐 보이지 않았던 꽃이 내리막길에선 보이더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밖에서 바라본 국정과 지역 현안은 의원 시절 바라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는 의미다.

그만큼 지난 8년은 강 의장을 더욱 성장시켰다. 그는 "전국구를 포함한 지난 5번의 의정활동 경험과 오랜 기간 야인생활로 다져진 남다른 각오로 지역을 발전시키고 나라에 큰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5공 인사 비판에 "난 부끄러운 것 없다"
자랑스런 19대 국회만들기 '집중'

충청권에서는 벌써부터 강 의장에 대한 기대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충청권의 대표적인 친박 인사인데다 국회수장까지 맡게 된 강 의장이 국회에서 얼마만큼 실력(국비확보 등)을 발휘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강 의장은 '친박계 독식논란'이 일자 국회의장은 당적이 없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12월19일 18대 대선에서 그가 '박근혜 킹메이커'로서 무언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 이견을 갖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강 의장은 그동안 공공연히 '정권창출의 선봉에 서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해왔다. 심지어 강 의장은 제19대 총선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도 "마지막 기회를 주신다면 1년은 박근혜 집권을 위해 뛰고, 남은 3년은 지역을 위해 바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강 의장을 돕기 위해 개소식을 찾은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또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인물"이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일각에서는 강 의장이 다가오는 대선에서 박 전 위원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엔 한계가 있는 국회의장직을 선택한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당초 대부분의 정치전문가들은 뼛속까지 친박인 강 의장이 대선을 염두에 두고 국회의장보다는 당권을 선택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평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말을 되풀이 해온 강 의장이기에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킹메이커' 될까?
친박 독식논란 여전

강 의장의 측근은 "국회의장이나 당대표 모두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박 전 위원장의 대선행보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역할이라도 맡아 일하겠다는 것이 강 의장 뜻"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강 의장은 직책을 떠나 어떤 식으로든 '킹메이커'로서의 길을 걷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수많은 현안이 산적해 있는 19대 국회에서 충청권 최초의 국회의장인 그가 어떠한 성과와 발자취를 남길지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강창희 국회의장 프로필>
▲ 대전고등학교 졸
▲ 육군사관학교 졸
▲ 1983 제11대 민정당 국회의원
▲ 1985 제12대 민정당 국회의원
▲ 1992 제14대 무소속 국회의원
▲ 1996 제15대 자민련 국회의원
▲ 1998 제1대 과학기술부 장관
▲ 2000 제16대 자민련 국회의원
▲ 2001 한나라당 입당
▲ 2012 제19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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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