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6주년특집> <일요시사> 탄생한 1996년 ‘그땐 무슨 일이?’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5.25 16:23:48
  • 댓글 0개

눈뜨면 치고 받고 터뜨리고…바람 잘 날 없었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화제와 특종에 강한 시사종합주간지 <일요시사>가 창간 16돌을 맞았다. 그리고 이제 어엿한 청년의 모습으로 독자들 앞에 다가섰다. 지난 1996년 5월15일 첫 신문 발행 이후 16년간은 정말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IMF사태, 정권교체, 남북정상회담,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등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일요시사>는 이런 역사적인 순간마다 현장을 지켜왔고, 독자들에게 보다 심층적이고 정확한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아 창간 초심을 되돌아본다는 의미에서 1996년 당시 숱한 화제와 이슈들은 물론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사고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일요시사>가 갓 태어난 1996년은 ‘문민정부’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국내 사정은 IMF(국제통화기금) 목전이었던 탓에 수많은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등 온 나라가 곡소리로 가득했다. 이 와중에도 국민들을 경악케 한 굵직한 사건·사고들은 끊이지 않았다. 각종 이권이 개입된 메가톤급 권력형 비리가 연거푸 터지기도 했다.

사상 최초
‘여소야대’ 탈바꿈

16년 전 정치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15대 총선이었다.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는 판문점 총격사건이 발생, ‘북풍’과 ‘세대교체’ 등 예상치 못한 사태가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아무리 ‘변수’와 ‘이변’이 따라다니는 게 선거라지만 당시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정치파괴의 길’을 선택한 듯 보였다. 만년 야당도시였던 서울이 사상 최초로 여대야소 지대로 탈바꿈 했는가 하면, 내로라하는 정치거물들은 정치신인 돌풍에 휘말려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15대 총선결과 집권당인 신한국당이 과반수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서울 등 수도권에서 승리를 거둬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원내 안정 의석을 확보했다. 반면 새정치국민회의는 부진을 면치 못했으며 자민련은 약진세를 보여 정치권이 ‘3당’ 구조로 재편됐다.


특히 서울지역 절반이 넘는 곳에서 신한국당 후보가 당선돼 여당이 서울에서 승리하는 이변을 낳았다. ‘정치의 1번지’라 불리는 종로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4선의 이종찬 의원이 정치 초년병 이명박 후보에게 일격을 당해 충격을 던져주었다.

‘레임덕·부정부패·경제난’ 3중고 겹쳐 국기 흔들흔들
‘IMF 문전’ 서민들 피눈물 뚝뚝…방방곡곡 곡소리

전국적인 ‘세대교체’ 바람 또한 거셌다. 당시는 한보그룹이 부도나면서 드러난 권력형 금융 부정 비리에 수십 명의 정치인들과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까지 연루된 일명 ‘한보사태’가 불거졌던 시기다.

당시 탄생한 정치신인 수만 140명이었다. 당시 이종찬 의원이 이명박 후보에게 진 것도 휘몰아친 세대교체 바람 때문이었다. 15대 총선 당시 종로에서 결전을 벌였던 이들은 16년이 지난 현재 한 사람은 대통령으로 한사람은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

특히 당시 패자였던 이종찬 전 의원은 15대 총선이후 1997년 대통령인수위원회 위원장, 1998년 김대중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하며 활발한 정치활동을 계속 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다음 초야에 묻혀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정태수 ‘한보사태’
대한민국 ‘발칵’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신경제화와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1996년도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회생시키겠다던 경제는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220억 달러를 넘어섰고, 외채가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당시 암흑의 시대를 예고한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줄도산은 한국경제를 한순간에 몰락시켰다. ‘대우그룹, 쌍용그룹, 동아그룹, 삼미그룹, 진로그룹, 해태그룹…’ 당시 기업의 도산과 감량경영으로 실업자가 40만 명에 육박했다. 한국경제 파탄의 서곡을 알린 기업이 바로 한보그룹이다.

1996년 재계서열 14위였던 한보그룹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다 결국 이듬해 1월 최종 부도처리 됐다. 이는 대기업들의 연쇄부도로 이어졌고, 한국경제의 파탄을 불러온 IMF 도화선이 됐다. 한보그룹의 부도액은 국내 부도사상 최대 금액인 1조원을 넘어 전 국민을 경악케 했다.

특히 부도과정에서 5조7000억 원에 달하는 특혜 대출 비리가 드러나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권력형 금융스캔들엔 정계와 관계, 금융계 등 핵심 인사들이 연루돼 충격을 더했다. 건국 이래 초유의 금융비리 사건으로 기록된 이른바 한보사태의 주역이 바로 정태수씨다.

한보그룹 오너였던 정씨는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1976년 그룹을 창업했다. 23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52세란 적잖은 나이에 무일푼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에 성공한 자금으로 그룹 몸집을 불려 신흥재벌로 급부상했다.

한보그룹은 문민정부 시절 급성장했는데, 정씨의 강력한 로비력으로 일군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이 도약의 디딤돌이었다. 그러나 정씨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올해 89세인 정씨는 비리 혐의로 법정과 감방을 들락거렸다.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많이 법원을 드나든 불명예를 안고 있다.

한편, 그해 12월 우리나라는 29번째로 OECD회원국이 됐다. 당시 국민들은 ‘우리나라도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사전 대비책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회원국 가입 추진은 오히려 독이 됐다. 외환자유화를 취하고 나니 해외여행과 해외유학이 급증하고, 사치성 소비재 수입과 과소비 등으로 경상수지 적자폭은 급증했으며 외환보유고는 급감했다. 그렇게 ‘IMF의 망령’이 서서히 다가왔다.

미모의 로비스트
‘린다 김’ 파장

당시 사회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부정부패와 사회기강 해이는 말할 것도 없다. 장학로사건, 이양호사건, 안경사협회사건 등이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뿌리째 흔들었고 은행장비리, 서울시버스비리, 공정거래위비리 등 굵직한 부정에다 나열하기조차 어려운 수많은 비리가 날마다 줄을 이었다. 여기에 미모의 여성 로비스트 ‘린다김’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으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무기 로비스트로 활동하던 린다김 로비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국방부 장관 등 정부 고위인사들이 백두사업 등의 무기도입 과정에서 린다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다.

백두사업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왔던 대북정보 수집능력을 독자적으로 갖추자는 목적에서 1991년부터 추진한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이다. 첨단 전자정보장비를 갖춘 정찰기가 한반도 전역의 음성통신을 감청하고 신호정보를 분석하는 것으로 이는 정찰기에 영상레이더 장치를 실어 평양 이남의 축구공만한 물체까지 촬영, 식별하는 금강사업과 맞물려 있다.

문제는 약 2200억 원이 소요되는 대형 국방프로젝트에 린다김을 고용한 미국의 E-시스템사가 응찰업체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했음에도 2개월 뒤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경쟁업체를 물리치고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탈락한 업체들이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고, 실제 최종사업자를 선정하기 3개월 전 당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정종책 환경부 장관의 소개로 린다김을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린다김은 국방부 장관 등 국내 고위급 인사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 촉망받던 ‘여성로비스트’에서 ‘섹스스캔들’ 주인공으로 전락했다.

같은 해 9월18일에는 북한 특수부대가 상어급 잠수함을 이용해 강릉으로 넘어온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새벽 1시30분경 택시기사가 강릉 대포동 앞바다에 좌초된 북한 잠수정을 발견하고 신고함으로써 드러났다.

당시 26명의 무장공비가 침투되어 신고 후 15시간 만에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날 밤에 달아난 나머지 간첩 8명이 분산 도주하면서 민가식량을 약탈하고 우리 군과 교전을 벌이는 등 긴장이 지속되었다.

줄도산, 권력형 비리 등 초대형 사건·사고 잇달아
말 많고, 탈 많았던 연예계의 슬픈 자화상 ‘침통’
 

그 가운데 잠수함이 좌초된 곳으로부터 서남방 5km지점인 청학산 중턱에서 무장간첩 11명이 숨져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숨진 간첩들은 모두 머리에 관통상을 입은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침투당시 무장공비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광수를 잡아 자세한 침투경로와 작전수행 목적 등 알아냈다. 또 다른 무장공비 한명은 행방이 묘연해 북한으로 도주한 것으로 결정짓고 사건은 종결됐다.

당시 우리군의 피해로는 군인 11명, 경찰 1명, 예비군 1명, 민간인 4명이 희생되는 인명피해를 당했고 엄청난 재산피해와 국가기밀 등 정보들이 북한으로 흘러나갔다. 이 사건은 현 정부에 들어서 많이 경색된 남-북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과거 본보기 사건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잇따른 자살과 은퇴

연예계 ‘쇼크’

1996년에는 연예계도 다사다난했다. 각종 사건 사고로 세상을 등진 스타들의 슬픈 소식으로 얼룩졌다. 그해 1월은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른 소식이 한해의 출발을 알렸는데, 미소년의 외모로 10대 소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틴 아이돌 가수 서지원이 자살했다.

95년 데뷔해 1집 타이틀곡 ‘또 다른 시작’으로 이름을 알리며 스타로 발돋움한 서지원은 1월1일 유서를 남긴 채 약물 과다복용으로 팬들 곁을 영원히 떠났다.

서지원은 일기장을 통해 “2집 앨범 녹음을 끝내고 활동을 앞둔 나는 더 이상 자신도 없고 군대도 가야하며 사무실 운영과 가족들을 책임지기에도 너무 벅차다. 내가 죽은 뒤에라도 홍보를 잘해 2집 앨범을 성공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힘든 심경을 토로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2집을 성공시켜 많은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은 그에게 너무도 과중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이혼을 겪는 등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던 서지원은 소속사와 부모님의 기대감을 이기지 못하고 1996년 1월1일 2집 발표를 앞두고 자살로 세상을 마감했다.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일어나’, ‘사랑했지만’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90년대 많은 이의 가슴을 적셨던 김광석이 96년 1월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픔이 묻어나는 김광석의 애절한 목소리만큼이나 슬픈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아직까지도 많은 가수들에게 리메이크되며 사랑받고 있으며 우리는 여전히 그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한다.

두 가수를 떠나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22일, 10대들의 우상이었던 서태지가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갑작스러운 은퇴선언에 팬들은 물론 사회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전국의 팬들이 서태지의 집 앞에 몰려와 장사진을 이뤘고 기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쉴 새 없이 우는 사람, 자살하겠다는 사람 등으로 전국이 연일 들썩였다.


서태지는 한국 가요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당시 한국 가요계에 처음으로 선보인 ‘랩 댄스곡’ 풍의 데뷔곡 ‘난 알아요’로 당시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현란한 안무를 선보이며 혜성같이 등장해 큰 인기를 모았다. 이러한 인기에 서태지에게는 ‘10대들의 대통령’ ‘X세대 문화의 상징’ 등 수 없이 많은 수식어가 붙여졌다. 하지만 4년 뒤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해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지난해에는 탤런트 이지아와 부부였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은 메가톤급 충격을 안겨줬다. 이 사건으로 서태지는 여배우 염문설, 10억+α설 등의 각종 루머에 휩싸이기도 해 지금껏 ‘신비주의’로 쌓아왔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는 서태지는 현재 9집 앨범을 준비 중이다.

한편, 잇따른 충격소식에 고달픈 와중에도 가수 영턱스 클럽의 히트곡 ‘정’은 1996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외 엄정화, 김원준, 클론, 김민종 등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추첨을 통해 선정된 팬들이 연예인들과 일주일동안 지내는 <TV데이트>라는 프로그램은 예능프로그램의 독특한 소재로 많은 관심 받기도 했다.

또 1996년은 에로동영상 대중화의 시작을 알린 해이기도 했다. <젖소부인 바람났네>라는 영화가 1996년 등장하자 <만두부인 속 터졌네>, <꽈배기부인 몸 풀렸네>, <연필부인 흑심 품었네> 등 유사 비디오물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 사이의 패러디가 유행한 것은 물론이다. 이를테면 명작영화 <은행나무 침대>가 극장 상영을 마치면 <은행나무 침대방>이 에로물로 등장하는 식의 ‘유사품 동영상 시리즈 출시’ 붐이 일기도 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