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6주년특집> <일요시사> 탄생한 1996년 ‘그땐 무슨 일이?’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5.25 16: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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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면 치고 받고 터뜨리고…바람 잘 날 없었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화제와 특종에 강한 시사종합주간지 <일요시사>가 창간 16돌을 맞았다. 그리고 이제 어엿한 청년의 모습으로 독자들 앞에 다가섰다. 지난 1996년 5월15일 첫 신문 발행 이후 16년간은 정말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IMF사태, 정권교체, 남북정상회담,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등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일요시사>는 이런 역사적인 순간마다 현장을 지켜왔고, 독자들에게 보다 심층적이고 정확한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아 창간 초심을 되돌아본다는 의미에서 1996년 당시 숱한 화제와 이슈들은 물론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사고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일요시사>가 갓 태어난 1996년은 ‘문민정부’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국내 사정은 IMF(국제통화기금) 목전이었던 탓에 수많은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등 온 나라가 곡소리로 가득했다. 이 와중에도 국민들을 경악케 한 굵직한 사건·사고들은 끊이지 않았다. 각종 이권이 개입된 메가톤급 권력형 비리가 연거푸 터지기도 했다.

사상 최초
‘여소야대’ 탈바꿈

16년 전 정치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15대 총선이었다.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는 판문점 총격사건이 발생, ‘북풍’과 ‘세대교체’ 등 예상치 못한 사태가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아무리 ‘변수’와 ‘이변’이 따라다니는 게 선거라지만 당시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정치파괴의 길’을 선택한 듯 보였다. 만년 야당도시였던 서울이 사상 최초로 여대야소 지대로 탈바꿈 했는가 하면, 내로라하는 정치거물들은 정치신인 돌풍에 휘말려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15대 총선결과 집권당인 신한국당이 과반수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서울 등 수도권에서 승리를 거둬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원내 안정 의석을 확보했다. 반면 새정치국민회의는 부진을 면치 못했으며 자민련은 약진세를 보여 정치권이 ‘3당’ 구조로 재편됐다.


특히 서울지역 절반이 넘는 곳에서 신한국당 후보가 당선돼 여당이 서울에서 승리하는 이변을 낳았다. ‘정치의 1번지’라 불리는 종로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4선의 이종찬 의원이 정치 초년병 이명박 후보에게 일격을 당해 충격을 던져주었다.

‘레임덕·부정부패·경제난’ 3중고 겹쳐 국기 흔들흔들
‘IMF 문전’ 서민들 피눈물 뚝뚝…방방곡곡 곡소리

전국적인 ‘세대교체’ 바람 또한 거셌다. 당시는 한보그룹이 부도나면서 드러난 권력형 금융 부정 비리에 수십 명의 정치인들과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까지 연루된 일명 ‘한보사태’가 불거졌던 시기다.

당시 탄생한 정치신인 수만 140명이었다. 당시 이종찬 의원이 이명박 후보에게 진 것도 휘몰아친 세대교체 바람 때문이었다. 15대 총선 당시 종로에서 결전을 벌였던 이들은 16년이 지난 현재 한 사람은 대통령으로 한사람은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

특히 당시 패자였던 이종찬 전 의원은 15대 총선이후 1997년 대통령인수위원회 위원장, 1998년 김대중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하며 활발한 정치활동을 계속 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다음 초야에 묻혀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정태수 ‘한보사태’
대한민국 ‘발칵’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신경제화와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1996년도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회생시키겠다던 경제는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220억 달러를 넘어섰고, 외채가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당시 암흑의 시대를 예고한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줄도산은 한국경제를 한순간에 몰락시켰다. ‘대우그룹, 쌍용그룹, 동아그룹, 삼미그룹, 진로그룹, 해태그룹…’ 당시 기업의 도산과 감량경영으로 실업자가 40만 명에 육박했다. 한국경제 파탄의 서곡을 알린 기업이 바로 한보그룹이다.

1996년 재계서열 14위였던 한보그룹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다 결국 이듬해 1월 최종 부도처리 됐다. 이는 대기업들의 연쇄부도로 이어졌고, 한국경제의 파탄을 불러온 IMF 도화선이 됐다. 한보그룹의 부도액은 국내 부도사상 최대 금액인 1조원을 넘어 전 국민을 경악케 했다.

특히 부도과정에서 5조7000억 원에 달하는 특혜 대출 비리가 드러나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권력형 금융스캔들엔 정계와 관계, 금융계 등 핵심 인사들이 연루돼 충격을 더했다. 건국 이래 초유의 금융비리 사건으로 기록된 이른바 한보사태의 주역이 바로 정태수씨다.

한보그룹 오너였던 정씨는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1976년 그룹을 창업했다. 23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52세란 적잖은 나이에 무일푼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에 성공한 자금으로 그룹 몸집을 불려 신흥재벌로 급부상했다.

한보그룹은 문민정부 시절 급성장했는데, 정씨의 강력한 로비력으로 일군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이 도약의 디딤돌이었다. 그러나 정씨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올해 89세인 정씨는 비리 혐의로 법정과 감방을 들락거렸다.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많이 법원을 드나든 불명예를 안고 있다.

한편, 그해 12월 우리나라는 29번째로 OECD회원국이 됐다. 당시 국민들은 ‘우리나라도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사전 대비책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회원국 가입 추진은 오히려 독이 됐다. 외환자유화를 취하고 나니 해외여행과 해외유학이 급증하고, 사치성 소비재 수입과 과소비 등으로 경상수지 적자폭은 급증했으며 외환보유고는 급감했다. 그렇게 ‘IMF의 망령’이 서서히 다가왔다.

미모의 로비스트
‘린다 김’ 파장

당시 사회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부정부패와 사회기강 해이는 말할 것도 없다. 장학로사건, 이양호사건, 안경사협회사건 등이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뿌리째 흔들었고 은행장비리, 서울시버스비리, 공정거래위비리 등 굵직한 부정에다 나열하기조차 어려운 수많은 비리가 날마다 줄을 이었다. 여기에 미모의 여성 로비스트 ‘린다김’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으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무기 로비스트로 활동하던 린다김 로비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국방부 장관 등 정부 고위인사들이 백두사업 등의 무기도입 과정에서 린다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다.

백두사업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왔던 대북정보 수집능력을 독자적으로 갖추자는 목적에서 1991년부터 추진한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이다. 첨단 전자정보장비를 갖춘 정찰기가 한반도 전역의 음성통신을 감청하고 신호정보를 분석하는 것으로 이는 정찰기에 영상레이더 장치를 실어 평양 이남의 축구공만한 물체까지 촬영, 식별하는 금강사업과 맞물려 있다.

문제는 약 2200억 원이 소요되는 대형 국방프로젝트에 린다김을 고용한 미국의 E-시스템사가 응찰업체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했음에도 2개월 뒤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경쟁업체를 물리치고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탈락한 업체들이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고, 실제 최종사업자를 선정하기 3개월 전 당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정종책 환경부 장관의 소개로 린다김을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린다김은 국방부 장관 등 국내 고위급 인사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 촉망받던 ‘여성로비스트’에서 ‘섹스스캔들’ 주인공으로 전락했다.

같은 해 9월18일에는 북한 특수부대가 상어급 잠수함을 이용해 강릉으로 넘어온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새벽 1시30분경 택시기사가 강릉 대포동 앞바다에 좌초된 북한 잠수정을 발견하고 신고함으로써 드러났다.

당시 26명의 무장공비가 침투되어 신고 후 15시간 만에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날 밤에 달아난 나머지 간첩 8명이 분산 도주하면서 민가식량을 약탈하고 우리 군과 교전을 벌이는 등 긴장이 지속되었다.

줄도산, 권력형 비리 등 초대형 사건·사고 잇달아
말 많고, 탈 많았던 연예계의 슬픈 자화상 ‘침통’
 

그 가운데 잠수함이 좌초된 곳으로부터 서남방 5km지점인 청학산 중턱에서 무장간첩 11명이 숨져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숨진 간첩들은 모두 머리에 관통상을 입은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침투당시 무장공비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광수를 잡아 자세한 침투경로와 작전수행 목적 등 알아냈다. 또 다른 무장공비 한명은 행방이 묘연해 북한으로 도주한 것으로 결정짓고 사건은 종결됐다.

당시 우리군의 피해로는 군인 11명, 경찰 1명, 예비군 1명, 민간인 4명이 희생되는 인명피해를 당했고 엄청난 재산피해와 국가기밀 등 정보들이 북한으로 흘러나갔다. 이 사건은 현 정부에 들어서 많이 경색된 남-북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과거 본보기 사건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잇따른 자살과 은퇴

연예계 ‘쇼크’

1996년에는 연예계도 다사다난했다. 각종 사건 사고로 세상을 등진 스타들의 슬픈 소식으로 얼룩졌다. 그해 1월은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른 소식이 한해의 출발을 알렸는데, 미소년의 외모로 10대 소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틴 아이돌 가수 서지원이 자살했다.

95년 데뷔해 1집 타이틀곡 ‘또 다른 시작’으로 이름을 알리며 스타로 발돋움한 서지원은 1월1일 유서를 남긴 채 약물 과다복용으로 팬들 곁을 영원히 떠났다.

서지원은 일기장을 통해 “2집 앨범 녹음을 끝내고 활동을 앞둔 나는 더 이상 자신도 없고 군대도 가야하며 사무실 운영과 가족들을 책임지기에도 너무 벅차다. 내가 죽은 뒤에라도 홍보를 잘해 2집 앨범을 성공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힘든 심경을 토로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2집을 성공시켜 많은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은 그에게 너무도 과중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이혼을 겪는 등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던 서지원은 소속사와 부모님의 기대감을 이기지 못하고 1996년 1월1일 2집 발표를 앞두고 자살로 세상을 마감했다.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일어나’, ‘사랑했지만’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90년대 많은 이의 가슴을 적셨던 김광석이 96년 1월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픔이 묻어나는 김광석의 애절한 목소리만큼이나 슬픈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아직까지도 많은 가수들에게 리메이크되며 사랑받고 있으며 우리는 여전히 그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한다.

두 가수를 떠나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22일, 10대들의 우상이었던 서태지가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갑작스러운 은퇴선언에 팬들은 물론 사회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전국의 팬들이 서태지의 집 앞에 몰려와 장사진을 이뤘고 기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쉴 새 없이 우는 사람, 자살하겠다는 사람 등으로 전국이 연일 들썩였다.


서태지는 한국 가요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당시 한국 가요계에 처음으로 선보인 ‘랩 댄스곡’ 풍의 데뷔곡 ‘난 알아요’로 당시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현란한 안무를 선보이며 혜성같이 등장해 큰 인기를 모았다. 이러한 인기에 서태지에게는 ‘10대들의 대통령’ ‘X세대 문화의 상징’ 등 수 없이 많은 수식어가 붙여졌다. 하지만 4년 뒤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해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지난해에는 탤런트 이지아와 부부였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은 메가톤급 충격을 안겨줬다. 이 사건으로 서태지는 여배우 염문설, 10억+α설 등의 각종 루머에 휩싸이기도 해 지금껏 ‘신비주의’로 쌓아왔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는 서태지는 현재 9집 앨범을 준비 중이다.

한편, 잇따른 충격소식에 고달픈 와중에도 가수 영턱스 클럽의 히트곡 ‘정’은 1996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외 엄정화, 김원준, 클론, 김민종 등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추첨을 통해 선정된 팬들이 연예인들과 일주일동안 지내는 <TV데이트>라는 프로그램은 예능프로그램의 독특한 소재로 많은 관심 받기도 했다.

또 1996년은 에로동영상 대중화의 시작을 알린 해이기도 했다. <젖소부인 바람났네>라는 영화가 1996년 등장하자 <만두부인 속 터졌네>, <꽈배기부인 몸 풀렸네>, <연필부인 흑심 품었네> 등 유사 비디오물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 사이의 패러디가 유행한 것은 물론이다. 이를테면 명작영화 <은행나무 침대>가 극장 상영을 마치면 <은행나무 침대방>이 에로물로 등장하는 식의 ‘유사품 동영상 시리즈 출시’ 붐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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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사정기관의 칼끝이 문재인정부를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관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놓여있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됐고 새 대통령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정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는 이른바 ‘반쪽짜리 정부’ 상태에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앞두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180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형태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 정부는 여느 정부보다 ‘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새로운 정책을 펴거나 기존 정책을 발전시키는 행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라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유력 후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가는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국민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작은 사건이 대선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검찰과 감사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이전부터 해온 수사와 조사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하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21년 12월 시민단체 고발 이후 3년5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서씨가 취업했던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도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와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다혜씨, 서씨와 공모해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해외법인 격인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서씨는 2018년 8월 취업 이후 2020년 3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급여로 약 1억5000만원, 주거비 명목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 집값 통계 조작 결과 발표 청와대 외압 정황도 나와 검찰은 서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이 그간 다혜씨 부부에게 주던 생활비 지원을 중단한 점을 들어 문 전 대통령이 이 금액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기소”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그는 “법정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며 “수사권 남용 등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검찰을 개혁하는 기회로 여기겠다”는 발언도 내놨다.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도 문정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문정부 임기 동안 부동산 등 국가 통계를 광범위하게 조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가 통계 작성 기관 등에 압박을 가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 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 조사(고용통계) 등을 감사한 자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교통부(7명)·한국부동산원(7명)·통계청(6명) 등 총 31명에 대해 징계 요구(14명)·인사자료 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 요구를 처분했다. 검찰 기소 왜 지금? 감사원은 2023년 9월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소속 22명 가운데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및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주택 가격에 대해 부동산원에 ‘통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사전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 가격을 조작하는 등 통계 왜곡을 은폐했다. 이렇게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 확인 결과 102건에 달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외압은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 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에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시장이 요동치자, 객관적 근거도 없이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 정부 발표 내용이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 가격 동향 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 상황 및 민간 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으나 개별 표본 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 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정부가 핵심 정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도 정부 주도로 진행했다. 문제는 그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왜곡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 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 부동산·고용 다 건드렸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마사지’가 들어갔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 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 또 한 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 설명 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감사원 결과가 나온 이후 정치권은 들끓었다. 국민의힘은 ‘국기 문란 범죄’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 모든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감추고 국민의 고통 위에 거짓의 탑만 쌓아 올렸다. 거짓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자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했다”며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은 감사원을 민주당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 아래로 이관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표본도, 지수 작성 방식도, 자료 수집 방식도 다른 통계를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이미 전 정권이 돼버린 윤석열정권의 잔당들이 전 정권(문재인정부)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부른 희대의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시기도 지적했다. 한 최고위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착수한 감사를 새 정부 수립을 불과 47일 앞둔 때에 마무리한 저의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북한 GP 파괴 두고도 수사 요청 민주 “해체 준하는 개혁” 반발 감사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문정부 당시 군 인사 6명을 수사해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대한 우리 측의 불능화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경두·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18년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상호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총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한 뒤 북한군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북한군 GP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 당국이 이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전직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북한군 GP 불능화 검증 부실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감사원의 수사 요청인 셈이다.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와 감사원의 연이은 문정부 ‘공격’에 민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신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감사원이 북한의 GP 파괴 관련 결과를 내놓은 이후다. 조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이 이제 대통령선거에까지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마지막까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졸개이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란 세력이 벌이는 최후의 저항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아 국민 주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세 영향 미칠까? 앞서 민주당은 집값 등 통계 조작 관련 감사원 발표 이후 ‘해체에 준하는 개혁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 정권 탄압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서 나온 발언이다. 민주당은 “독립 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내란 옹호 기관이라는 오명을 안은 감사원에 닥칠 결말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문정부 표적 감사, 윤정부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최 원장은 직무에 복귀했으나 감사원장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