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구석구석 둘러본 ‘노짱이 꿈꾼 나라’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5.09 09: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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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딱 3년 전, 그러니까 2009년은 잊을 수 없는 해였다. 그해 5월23일 노무현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향년 63세의 일기로 서거했기 때문이다. 어린 손녀를 태운 자전거를 몰며 함박웃음을 짓던 밀짚모자 노무현을 국민들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의 연대기는 그렇게 끝이 났고, 그가 만들었던 시간은 마감되었다. 그 자리는 남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3년, 세 번째 5월이 다시 찾아왔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추모전엔 다시 사람의 물결로 넘실거렸다. 벌써3년, 그곳에선 정말 잘 지내시나요.

때 이른 초여름의 열기가 내려쬐던 지난 5월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노무현이 꿈꾼 나라’ 추모전시회를 찾았다. 이른 무더위 속에서도 3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이 손을 잡고 전시회장을 찾은 30~40대 부부, 풋풋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20대 대학생, 편안한 차림의 할머니부터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멘 아저씨까지…. 3년이 지났는데도 그를 떠나보낸 안타까움은 계속되는 듯했다.

과연 이곳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치열했던 삶과 다시 마주하다

전시관을 들어서는 입구에 들어서자 군복에 환한 미소의 노 전 대통령이 관람객들을 맞았다. 그리고 만화가 강풀의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빗속에 밀짚모자가 하나 떠 있고, 모자를 쓴 사람 대신 자라나는 꽃 한 송이가 있다.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잘 모르겠어요. 왜 비가 오면 당신 생각이 나는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강풀이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그린 이 그림을 지나면 ‘노무현이 꿈꾼 나라’ 전시실로 이동하게 된다. 이번 추모전시회는 ‘인간 노무현’의 출생에서부터 서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테마로 구성되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1946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인 아버지 노판석씨와 어머니 이순례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다”라는 글로 인간 노무현의  일대기가 시작된다.


노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 졸업앨범, 그리고 권양숙 여사와 커피한잔 값 들이는 일 없이 맨입으로 연애한 이야기까지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가 연표로 정리되어 있다.

한 자 한 자, 노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꼼꼼히 읽는 관람객들이 많아 여느 전시와 달리 동선의 움직임이 매우 느리다. “벌써 3년이 지났다니 믿기지 않아” 20대 여성 관람객들이 대화를 나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바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모습들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서민 여러분과 소주 한 잔을 함께 기울일 줄 아는 따뜻한 대통령이 되고자 합니다!” 연대기 사이사이에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책과 읽은 책, 모자·필기구·안경·재떨이 등 유품과 각종 증명서 및 명함 등도 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전시회…잔잔·애틋한 추모행렬
출생에서부터 서거까지 ‘인간 노무현’이 걸어온 길 재조명

전시장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토로했다.

광주에서 온 윤이경(30·남)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나에게 늘 고마움이었고 미안함이었다. 그 분을 통해 식어버렸던 내 마음 속의 열정이 다시 타올랐고 그 분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통해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미래를 봤다”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너무도 쉽게 그분에게서 등을 돌렸고 그분은 너무도 어이없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분을 그런 극단적인 결정으로 내 몬 것은 새로운 권력의 횡포가 아닌 나의 무관심이었고 손가락질이었다. 그렇게 그분이 떠난 후에야 나는 그분의 존재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학생 김지혜(23·여)씨는 “진실과 올바른 것, 우리 국민들을 위해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던 대통령님의 모습을 늘 존경해 왔다”며 “‘국민고생시대’에 살고 있는 현정권에서 더더욱 노 대통령이 그립고, 그런 그분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고 말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에는 노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여러 가지 정책들에 대한 어록들과 자료들이 등장한다.

‘민주주의’ 부분에는 노 전 대통령 마지막 신년인사회였던 2008년 1월3일 “민주주의가 많이 아쉽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왜 일찍 만족하고 일찍 포기해 버릴까, 이런 답답함이 있습니다”라고 토로한 심경을 소개했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정리해 생전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복지, 경제, 외교 등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의 업적과 정치 철학에 대해서도 정리되어 있고, 노 전 대통령의 피규어와 함께 방북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수원에서 온 관람객 정승연(27·여)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시대정신과 정치철학을 둘러보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그를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써 부끄럽다”며 “이젠 시민이 힘을 모아 민주주의를 지키고, 성장해 나가야 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바로 이 메시지를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MB시대 깊어진 ‘노무현 향수’

이쯤 발걸음을 옮기면 눈시울을 붉히는 관람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에 관련한 전시에서는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는 관람객도 보였다.

서거 당시 치러진 국민장과 노란 추모물결 영상에 관람객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사랑합니다. 편히 쉬세요”라는 영상의 마지막 메시지도 관람객들을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냄새 풍기는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미공개 사진전’ 코너. 그동안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대통령의 공간과 일상모습 등 30여점이 새로 공개됐다. 청와대 본관에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손녀 서은이와 함께한 ‘할아버지 노무현’의 모습은 물론 민간인 노무현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공개된 사진에는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 여사와 대통령 전용기에서 라면으로 식사하고 있는 모습, 관저 이발소에서 분장사로부터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모습, 손녀와 함께 잔디밭에 앉아 과자를 먹는 모습, 비둘기들에게 ‘이리온나’라는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 등이 담겨있다.

또 사진과 더불어 “사랑하는 할매 할배”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사인하고 손녀들의 이름을 각각 써넣어 서로 구분할 수 있게 배려한 손녀들의 장화 세 켤레와 밀짚모자도 함께 전시돼 있다.

미공개 사진 30여점, 영상 및 유품 공개에 가슴 먹먹
관람객들 “해가 지날수록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대통령”

미공개 사진을 보고 나오면 한 쪽 벽면에 빼곡히 들어찬 ‘방문객들의 메시지’가 있다. “당신의 서거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역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돌김”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꿈 꾼 나라 꼭 이루겠습니다!-형규·민규 아빠” “당신을 사랑하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 합니다” 등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들이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웠다.

노 전 대통령의 살아생전 ‘말씀’을 캘리그래프(손글씨)로 손수 엽서에 적어주는 서비스도 시행한다. 재능기부를 한 캘리그피스트인 허수연씨는 “팔이 아플까 미안해하지 마셔요. 저는 마음으로 씁니다”라는 문구를 붙여 놓고 관람객들이 원하는 글귀를 그 자리에서 직접 쓴 뒤 나눠줬다.

그 옆에선 추모 특별 영상전이 진행 중이다. 앉아서 편히 볼 수 있도록 의자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선 퇴임 뒤 활동과 국회 5공 청문회 장면, 노래 부르는 모습 등 노 대통령을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영상이 전시된다.

이 밖에도 판화, 바람개비 등을 나눠 주는 서비스와 노 전 대통령 관련 출판물, 강풀의 일러스트로 꾸며진 휴대폰 케이스, 배지, 티셔츠, 가방 등을 파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전시회 관람은 무료다. 대신 출구 쪽에 ‘자발적 모금함’이 있다. 대부분 관람객들은 적게는 몇 천원에서 많게는 몇 만원까지 자발적 요금을 내고 있었다.  

관람을 마친 김영진(48·남)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얼마나 시대에 앞서갔는지 역사가 증명해 줄 것이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그의 발자취를 보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대통령이 있었음을 감사하고 기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기리며


또 다른 관람객 이민규(33·남)씨는 “전시를 보는 내내 죄송하고 죄송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그러나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노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고 우리는 그 분이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를 풀어야 한다. 바로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곳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번 추모전시회가 우리 사회의 과제를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며 “밀짚모자가 유난히 잘 어울리던 그를 더는 볼 수 없지만 그의 소신과 철학을 실천해야 한다는 슬픈 다짐이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때 이른 더위 속에서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자 하는 관람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전시회장 밖으로 나오자 관람객들의 긴 행렬이 세종문화회관을 돌아서까지 이어졌다.

관람을 마친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는 또 누군가의 발걸음으로 채워졌다. 노무현이 꿈 꾼 나라 속으로…. 그들의 수많은 발걸음은 어떤 의미일까.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전시회에서 받은 노란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좋은 바람이 불면 당신인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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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