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구석구석 둘러본 ‘노짱이 꿈꾼 나라’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5.09 09: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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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딱 3년 전, 그러니까 2009년은 잊을 수 없는 해였다. 그해 5월23일 노무현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향년 63세의 일기로 서거했기 때문이다. 어린 손녀를 태운 자전거를 몰며 함박웃음을 짓던 밀짚모자 노무현을 국민들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의 연대기는 그렇게 끝이 났고, 그가 만들었던 시간은 마감되었다. 그 자리는 남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3년, 세 번째 5월이 다시 찾아왔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추모전엔 다시 사람의 물결로 넘실거렸다. 벌써3년, 그곳에선 정말 잘 지내시나요.

때 이른 초여름의 열기가 내려쬐던 지난 5월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노무현이 꿈꾼 나라’ 추모전시회를 찾았다. 이른 무더위 속에서도 3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이 손을 잡고 전시회장을 찾은 30~40대 부부, 풋풋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20대 대학생, 편안한 차림의 할머니부터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멘 아저씨까지…. 3년이 지났는데도 그를 떠나보낸 안타까움은 계속되는 듯했다.

과연 이곳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치열했던 삶과 다시 마주하다

전시관을 들어서는 입구에 들어서자 군복에 환한 미소의 노 전 대통령이 관람객들을 맞았다. 그리고 만화가 강풀의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빗속에 밀짚모자가 하나 떠 있고, 모자를 쓴 사람 대신 자라나는 꽃 한 송이가 있다.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잘 모르겠어요. 왜 비가 오면 당신 생각이 나는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강풀이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그린 이 그림을 지나면 ‘노무현이 꿈꾼 나라’ 전시실로 이동하게 된다. 이번 추모전시회는 ‘인간 노무현’의 출생에서부터 서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테마로 구성되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1946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인 아버지 노판석씨와 어머니 이순례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다”라는 글로 인간 노무현의  일대기가 시작된다.


노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 졸업앨범, 그리고 권양숙 여사와 커피한잔 값 들이는 일 없이 맨입으로 연애한 이야기까지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가 연표로 정리되어 있다.

한 자 한 자, 노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꼼꼼히 읽는 관람객들이 많아 여느 전시와 달리 동선의 움직임이 매우 느리다. “벌써 3년이 지났다니 믿기지 않아” 20대 여성 관람객들이 대화를 나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바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모습들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서민 여러분과 소주 한 잔을 함께 기울일 줄 아는 따뜻한 대통령이 되고자 합니다!” 연대기 사이사이에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책과 읽은 책, 모자·필기구·안경·재떨이 등 유품과 각종 증명서 및 명함 등도 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전시회…잔잔·애틋한 추모행렬
출생에서부터 서거까지 ‘인간 노무현’이 걸어온 길 재조명

전시장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토로했다.

광주에서 온 윤이경(30·남)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나에게 늘 고마움이었고 미안함이었다. 그 분을 통해 식어버렸던 내 마음 속의 열정이 다시 타올랐고 그 분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통해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미래를 봤다”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너무도 쉽게 그분에게서 등을 돌렸고 그분은 너무도 어이없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분을 그런 극단적인 결정으로 내 몬 것은 새로운 권력의 횡포가 아닌 나의 무관심이었고 손가락질이었다. 그렇게 그분이 떠난 후에야 나는 그분의 존재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학생 김지혜(23·여)씨는 “진실과 올바른 것, 우리 국민들을 위해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던 대통령님의 모습을 늘 존경해 왔다”며 “‘국민고생시대’에 살고 있는 현정권에서 더더욱 노 대통령이 그립고, 그런 그분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고 말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에는 노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여러 가지 정책들에 대한 어록들과 자료들이 등장한다.

‘민주주의’ 부분에는 노 전 대통령 마지막 신년인사회였던 2008년 1월3일 “민주주의가 많이 아쉽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왜 일찍 만족하고 일찍 포기해 버릴까, 이런 답답함이 있습니다”라고 토로한 심경을 소개했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정리해 생전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복지, 경제, 외교 등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의 업적과 정치 철학에 대해서도 정리되어 있고, 노 전 대통령의 피규어와 함께 방북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수원에서 온 관람객 정승연(27·여)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시대정신과 정치철학을 둘러보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그를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써 부끄럽다”며 “이젠 시민이 힘을 모아 민주주의를 지키고, 성장해 나가야 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바로 이 메시지를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MB시대 깊어진 ‘노무현 향수’

이쯤 발걸음을 옮기면 눈시울을 붉히는 관람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에 관련한 전시에서는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는 관람객도 보였다.

서거 당시 치러진 국민장과 노란 추모물결 영상에 관람객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사랑합니다. 편히 쉬세요”라는 영상의 마지막 메시지도 관람객들을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냄새 풍기는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미공개 사진전’ 코너. 그동안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대통령의 공간과 일상모습 등 30여점이 새로 공개됐다. 청와대 본관에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손녀 서은이와 함께한 ‘할아버지 노무현’의 모습은 물론 민간인 노무현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공개된 사진에는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 여사와 대통령 전용기에서 라면으로 식사하고 있는 모습, 관저 이발소에서 분장사로부터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모습, 손녀와 함께 잔디밭에 앉아 과자를 먹는 모습, 비둘기들에게 ‘이리온나’라는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 등이 담겨있다.

또 사진과 더불어 “사랑하는 할매 할배”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사인하고 손녀들의 이름을 각각 써넣어 서로 구분할 수 있게 배려한 손녀들의 장화 세 켤레와 밀짚모자도 함께 전시돼 있다.

미공개 사진 30여점, 영상 및 유품 공개에 가슴 먹먹
관람객들 “해가 지날수록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대통령”

미공개 사진을 보고 나오면 한 쪽 벽면에 빼곡히 들어찬 ‘방문객들의 메시지’가 있다. “당신의 서거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역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돌김”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꿈 꾼 나라 꼭 이루겠습니다!-형규·민규 아빠” “당신을 사랑하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 합니다” 등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들이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웠다.

노 전 대통령의 살아생전 ‘말씀’을 캘리그래프(손글씨)로 손수 엽서에 적어주는 서비스도 시행한다. 재능기부를 한 캘리그피스트인 허수연씨는 “팔이 아플까 미안해하지 마셔요. 저는 마음으로 씁니다”라는 문구를 붙여 놓고 관람객들이 원하는 글귀를 그 자리에서 직접 쓴 뒤 나눠줬다.

그 옆에선 추모 특별 영상전이 진행 중이다. 앉아서 편히 볼 수 있도록 의자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선 퇴임 뒤 활동과 국회 5공 청문회 장면, 노래 부르는 모습 등 노 대통령을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영상이 전시된다.

이 밖에도 판화, 바람개비 등을 나눠 주는 서비스와 노 전 대통령 관련 출판물, 강풀의 일러스트로 꾸며진 휴대폰 케이스, 배지, 티셔츠, 가방 등을 파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전시회 관람은 무료다. 대신 출구 쪽에 ‘자발적 모금함’이 있다. 대부분 관람객들은 적게는 몇 천원에서 많게는 몇 만원까지 자발적 요금을 내고 있었다.  

관람을 마친 김영진(48·남)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얼마나 시대에 앞서갔는지 역사가 증명해 줄 것이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그의 발자취를 보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대통령이 있었음을 감사하고 기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기리며


또 다른 관람객 이민규(33·남)씨는 “전시를 보는 내내 죄송하고 죄송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그러나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노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고 우리는 그 분이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를 풀어야 한다. 바로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곳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번 추모전시회가 우리 사회의 과제를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며 “밀짚모자가 유난히 잘 어울리던 그를 더는 볼 수 없지만 그의 소신과 철학을 실천해야 한다는 슬픈 다짐이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때 이른 더위 속에서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자 하는 관람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전시회장 밖으로 나오자 관람객들의 긴 행렬이 세종문화회관을 돌아서까지 이어졌다.

관람을 마친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는 또 누군가의 발걸음으로 채워졌다. 노무현이 꿈 꾼 나라 속으로…. 그들의 수많은 발걸음은 어떤 의미일까.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전시회에서 받은 노란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좋은 바람이 불면 당신인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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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