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추적>모니터 속 ‘별창녀’의 아찔한 유혹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3.22 09: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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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풍선 날려준다면…옷 벗고 춤추고 윙크하고~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한때 논란이 됐었던 ‘별창녀’라는 단어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시금 퍼지고 있다. 별창녀는 ‘별풍선을 받는 창녀’의 줄임말로 일부 여성BJ(방송자키)들을 비꼬는 말이다. 이들은 주수입인 ‘별풍선’을 얻기 위해서 욕설은 물론 음란방송도 마다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또 스타BJ의 경우 별다른 콘텐츠도 없이 노래를 틀고 화면을 향해 웃어주는 것만으로 하루에 수천 개에서 많게는 수만 개의 별풍선을 받아 거액을 챙기면서 ‘별풍선 시스템’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연 이들은 예쁜 외모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별창녀’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BJ의 노골적 유혹… 섹시댄스, 자는 모습, 옷 갈아입는 모습까지
음란방송 이유는 돈?…“별풍선 줄 테니 살짝 보여 달라” 요구도

연예인처럼 예쁜 여자가 섹시한 옷을 입고 등장한다. 노래를 틀어놓은 가운데 얼굴을 보여주면서 흥얼거린다. 자신의 얼굴과 방송을 보기 위해 접속한 아이디에 인사하고 ‘별풍선’을 받으면 고맙다는 말을 날린다.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 여성과 대화가 가능하다. 시청자들은 “님 턱 깎았어요?” “교복으로 갈아입고 오시면 안 돼요?” “가슴사이즈 몇이에요” “어디 살아요? 허리사이즈 몇이에요?” 등등을 물어본다.

여성은 일부 요구를 들어주기도 하고 “알아서 뭐하려고?”라는 까칠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또 “별풍선 100개 주시면 노래를 불러주겠다” “별풍선을 주면 신체 특정부위를 노출해준다”는 등 자극적인 멘트를 날리기도 한다. 

‘별창녀’를
아시나요? 


나우콤에서 제공하는 아프리카TV에서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는 BJ(방송자키)들의 모습이다. BJ들은 하루에 보통 3~4시간 방송하는데 그들의 주수입은 별풍선이다.

시청자가 BJ에게 선물하는 스폰서 개념의 아이템이기도 하고 시청료이기도 하다. 별풍선은 시청자들에게 1개당 100원에 판매되고, BJ는 선물 받은 별풍선이 약 500개정도 모이면 이를 환전하여 현금화 할 수 있다.

아프리카TV는 별풍선 한 개당 주민세·소득세 등을 원천징수해 일정액의 수수료(30%)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70%)을 BJ들에게 현금으로 지급한다. 이 때문에 일부 시청자들은 외모를 내세워 돈을 버는 BJ들을 빗대 별풍선 창녀의 줄임말인 ‘별창녀’라 부른다.

아프리카TV의 모태는 미국의 한 성인 웹캠 사이트이다. 그 사이트도 아프리카TV와 똑같이 개인이 웹캠으로 실시간 방송을 하는데 다른 점은 완전한 성인용이라는 것이다.

그곳에도 똑같이 BJ들에게 ‘토큰’ 이라고 별풍선을 줄 수 있는데 그곳은 차원이 다르다. 토큰 100개면 엉덩이를 흔들어 주고 200개면 가슴을 보여주고 거기에 50개 추가하면 가슴을 주무르고 흔들어주기도 하고 300개면 팬티를 벗는다.

토큰을 많이 보내 줄수록 점점 수위가 높아 가는데 이들은 '토큰창녀', '토창녀'라 불린다.

국내에 정착한 아프리카TV는 이정도로 수위가 높지 않지만 일부 BJ들은 인기를 위해서 욕설은 물론 음란방송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프리카TV 애청자는 “BJ들은 대충 두 가지 부류가 있는데 가슴골 내놓고 짙은 화장하고 콧소리로 구걸하는 여성들 부류와 입에서 거친 욕설을 내뿜으며 웃긴 방송을 하는 남성들이 그것이다”라며 “이 두 부류 모두 중간 중간에 항상 ‘별풍선 잊지마시구요’라고 외친다”라고 말했다.

실제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놈, 이×××’ 등 온갖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는 10대 여성 BJ, 가슴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스타킹을 신는 모습을 보여주는 BJ, 자는 모습을 보이거나 옷을 갈아입는 BJ, 용돈을 달라며 자신의 계좌번호를 적어놓는 BJ 등 다양한 BJ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런 세태에 대해 한 BJ는 “예전부터 BJ들이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돌자 너도 나도 뛰어들어서 과거보다 상당히 많은 수의 BJ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갖춰 돈을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예쁜 BJ가
돈 버는 심리학

현재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는 스타BJ들은 대부분 여성이며 외모가 연예인처럼 예쁘고 몸매가 좋거나 언변술이 뛰어나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인 BJ들은 수천 명에 이르는 팬클럽을 보유하는 등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당연히 시청자 대부분은 남성들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남자들은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스타BJ와 1:1로 대화를 하는 듯한 묘한 쾌감을 느낀다.

이 때문에 고액을 들여 별풍선을 구입하고 그러한 별풍선을 아무 거리낌 없이 좋아하는 BJ에게 선물로 주곤 한다. 간혹 BJ에세 별풍선을 수천개 혹은 만개(100만원)를 쏘는 시청자가 나오기도 하는데 “유익하지도 않은 방송을 보고 생돈을 주다니 미친 거 아니냐”는 일부 시청자들도 있다. 하지만 여기엔 BJ와 시청자 간의 교묘한 심리극이 존재한다.

어찌됐건 마음에 드는 BJ들에게 별풍선을 거하게 쏘는 남성들이 꽤 존재함으로써 수입이 좋은 스타BJ는 앉아서 하루에 수십만 원 이상을 벌기도 한다.

닉네임 레드**는 “아프리카 BJ는 매우 예쁜 여성들이 인터넷으로 자기 닉네임을 불러주고 별풍선을 많이 쏘면 닉네임을 기억하고 자기 질문에 대답도 하는데 간접적으로나마 양방향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별풍선’ 현금화 가능…한 달 수입 400~1000만원 스타BJ 등장
외모를 이용해 돈벌이에 이용? 제도의 무관심이 사태 악화시켜

“혹시 별풍선을 많이 쏘면 더 친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남성 시청자들도 많다. 이 남자들의 과열된 경쟁으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인 계급과 경쟁이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과시욕이 강한 시청자들이 별풍선을 몇 천개~몇 만개까지 쏘기도 하고, 여성BJ와 더 친해지고 어떻게 하면 개인적으로 소통되어서 밥이라도 먹을까 혹은 그 이상을 기대하는 하는 사람들이 모임으로써 아프리카TV의 BJ 시스템은 완성된다.

물론 그들의 심리를 이용해 만날 듯 안 만날 듯 적당히 친하게 지내는 것도 스타BJ가 시청자들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별풍선 제도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별풍선은 아프리카TV 측이 개인방송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방법이지만 그 이후 별풍선 제도에 대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게 사실이다.

과거 벌어졌던 스타BJ들에 대한 낙태, 조건만남 등 좋지 않은 소문이나 그로 인한 고소사건, 성기노출사건 등은 별풍선 제도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 한 것이다.

또 일반적인 노동의 대가로 치부하기에는 방송내용이 유익하지 않으며 별풍선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너무나도 크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하루종일 밖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일반 직장인들에게 하나의 박탈감과 자괴감로 받아들여지고 이러한 것이 열등감 내지는 적개심으로 바뀌어 별풍선을 과하게 받는 일부 BJ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별창녀라는 부정적인 의미의 신조어가 나온 것이고, 일부 부유층 BJ들로 인해 개인적인 방송을 즐기는 다른 선량한 BJ들까지 별창녀 취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일부 BJ들은 시청자들에게 “별풍선을 주면 강퇴(강제퇴장)시킨다”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자신은 별창녀 소리를 듣기 싫다는 얘기다. 바로 이러한 여러 가지 현상들이 별풍선 제도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제도권 무관심이
사태 악화시켜

반면 일부 시청자들은 부유층 BJ들에 대한 반감으로 모든 BJ들을 싸잡아 비난하기 보다는 좀 더 나은 방송이 될 수 있도록 건전한 비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들이 별창녀 소리까지 들어가며 방송을 할 수 밖에 없는 건지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별풍선을 받는다고 하여 무조건 별창녀라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어떻게 보면 정당한 노동의 대가일 수 있는 이러한 별풍선을 무조건 잘못됐다는 식의 주장은 좀 과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적당히 받고 적당히 주면 별풍선 제도도 그렇게 나쁘게만 볼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여성BJ들이 주로 쓰는 차별화된 전략이란 것이 남들보다 상당히 예쁜 외모, 섹시한 춤, 닉네임 기억해서 애교부리기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경쟁력이 없어 나중에 도태되고 말 것이다”라며 “별풍선 제도에 관심을 갖고, BJ들의 방송콘텐츠가 더욱 발전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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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