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연애술사 양성 ‘픽업아티스트’ 강습소 실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3.02 19: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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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One 10 MINUTES “그 여자가 내 것이 된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미스터 히치>라는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영화가 있다. 알렉스 히치(윌 스미스)는 영화 속에서 데이트 코치로 등장한다. 짝사랑에 빠져 잠 못 이루거나 연애로 고민하는 수많은 뉴요커들을 구제하는 전설적 연애 조언가다. 성공률은 100%. “전략 없이는 여자도 없다”는 게 히치의 지론이다. 바야흐로 연애에도 교육과 기술이 필요한 시대에 이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장소는 뉴욕이 아닌 서울. 연애 문제로 고민하는 청춘남녀들에게 연애방법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그 역할이 변질돼 길거리와 클럽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법,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성관계를 갖는 방법 등을 가르치고 있어 적잖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자칭 연애 고수·작업의 달인들이 ‘비법’ 전수
찌질남들이 주요고객…60만~300만원까지

깔끔한 옷차림으로 길거리, 지하철, 카페, 클럽 등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들의 전화번호를 받아내는 남자들. 이들은 유혹의 기술을 배우는 학원에 다니고 있는 수강생들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들의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코칭해주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들에게 돈을 받고 헌팅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일명 ‘연애술사’다.

연애도 ‘돈’ 주고
전수 받는다?

‘픽업 아티스트(PUA)’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자칭 ‘연애 고수’ ‘작업의 달인’들이다. 국내에는 2006년 무렵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젊은 세대가 많은 서울 홍대 앞, 신촌, 강남역 근처의 카페나 클럽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픽업 아티스트들의 강연 등이 인기를 끌면서 여성을 유혹할 수 있는 전문적인 테크닉을 가르치는 관련 학원이 성업 중이다.

이들에게 연애의 기술을 배우는 대가는 60만~300만원. 통상 온라인 수강료는 30만원, 오프라인 수강료는 150만원쯤 하는데 한 달 수강료가 무려 1000만원에 이르는 고액 학원도 있다.

커리큘럼은 ‘단과반’과 ‘종합반’으로 나뉠 뿐 아니라 실전교육을 강화한 스파르타 코칭, 1박 2일 동안 집중 교육을 받는 ‘부트캠프(신병훈련소)’까지 다양하다.

수업은 크게 4단계로 진행되는데 스타일.화술.접근방법 등을 배우는 첫 대면부터 여성과 친해지기, 마무리 짓기, 마지막으로 여자의 심리를 읽는 ‘유혹기술’까지이다.

그러나 연애를 교육하는 학원이라고 해서 기상천외한 비법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생활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상황에 따른 대처법을 알려준다. 여성의 헤어스타일로 성격을 파악하는 법, 데이트 코스, 길거리 헌팅, 소개팅에서 칭찬하는 법, 카톡 보내기, 유머의 기술 등이다.

만약 첫 만남 어색한 분위기에서 여성이 “제 첫인상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남들이 칭찬하지 않은 세밀한 부분을 칭찬하며 연관 지어 말해주라는 식이다.

세부적인 과목으로는 길거리에서 여성을 유혹하는 ‘헌팅이론’, 나이트클럽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클럽이론’, 즉석 만남에서 잠자리까지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는 ‘홈런이론’, 한 번 잠자리를 가진 여성과 또 한 번 만나기 위한 ‘재탕이론’ 등 이 있다.


이론교육이 끝나면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전훈련을 한다. 픽업 아티스트와 하루 동안 헌팅장소를 찾아 연습을 하는 것이다.

픽업 아티스트는 수강생의 헌팅장면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런저런 문제점을 파악해 알려준다. 또 수강생이 소개팅을 앞두고 있다면 소개팅 장면을 촬영해 잘못된 점을 고쳐주거나 상황극을 연출하기도 한다.

픽업 아티스트 A씨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여자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모태솔로들이나 여자에 대해 잘 알고 싶다는 분들이 주요 수강생”이라며 “대화하는 법부터 (전화)번호 따는 법, 홈런 치는 법까지 다 가르쳐 준다”고 했다.

그는 또 “직접 제작한 교재를 사용하고 한 번 강의를 듣고 나면 강사들과 지속적인 관계도 유지되니 인생이 180도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늑대의 탈을 쓰고
여자사냥(?)

그러나 픽업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일부 픽업 아티스트들이 본질에서 벗어나 경쟁적으로 여성을 ‘데리고 놀며’ 실적 올리기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또 여성을 마치 자신들이 즐기는 인터넷 게임 대상처럼 생각하는 경박한 풍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픽업 아티스트 커뮤니티에는 그들만의 용어로 연애 기술을 공유하고 ‘작업’이 성공했음을 과시하는 후기가 꾸준히 올라온다.

실제로 지난 20일 한 픽업 아티스트가 운영하는 L카페에는 ‘수강생 5분 만에 클럽 K-close’이라는 후기로 동영상이 올라왔다. 이외에도 수강생들의 F-close했다는 후기, A급 여자 강남로드 헌팅 동영상, 일본인과의 잠자리 후기와 인증샷 등이 올라와 있었다.

‘#-close’는 여성에게 전화번호를 받은 것을, ‘K-close’는 키스까지 한 것을, ‘F-close’는 성관계까지 가진 것을 뜻한다. ‘홈런’과 달리 성관계를 하지 못하고 돈만 쓰고 나왔을 경우엔 ‘새됐다’라는 용어를 쓴다.

‘클럽이론’ ‘홈런이론’, 아찔한 후기인증까지
즉흥성에 의존한 인간관계 만연 우려도… 
 

후기상에서 상대 여성의 외모를 지칭한 용어도 노골적이다. 얼굴과 몸매가 뛰어난 여성은 ‘엘프(요정이란 의미)’, 평범한 여성은 ‘휴먼(사람이란 의미)’, 외모가 떨어지는 여성을 ‘오크(괴물이란 뜻)’로 표현하는 식이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름으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또 카페에서 활동하는 전문 픽업 아티스트들은 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어디에서 만나, 어떻게 접근해, 무엇을 했는지를 증거 사진까지 곁들여 카페에 올리는 ‘필드 리포트’를 작성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면서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어설프게 모자이크 처리한 여성의 얼굴 사진을 그대로 올리고, 나이까지 적어놔 자칫 신상정보가 공개될 우려도 낳고 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관리나 해!

한 픽업 아티스트는 이를 “픽업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라고 하면서 “본래 픽업 아티스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자의 몸을 탐하기보다는 여자의 마음을 얻고 서로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현실 속 픽업 아티스트를 자처하거나 목표로 하는 이들의 절대다수는 결국 여성의 몸을 목적으로 한다. 결국 간단히 말해 ‘선수’에 가깝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직장인 명모(29·여)씨는 “여성을 놀이도구로만 여기는 것 아니냐? 불쾌하다”면서 “여자와의 하룻밤을 얻기 위해서는 여자를 낚는 기술을 배우는데 돈을 쓸게 아니라, 차라리 피부 관리를 받고 운동을 다니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교양과 에티켓을 갖추고,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남자가 되는 편이 더 낫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증가하는 픽업 아티스트들에 대해 대인관계의 왜곡은 물론 사생활 침해 등 우리 사회에 많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성단체 관계자는 “즉흥성에 의존한 인간관계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깊숙한 관계가 되기 위해선 인간관계의 친밀도가 필요한데 젊은이들 사이에선 인터넷 기술 등의 발달로 인스턴트 섹스의 갈망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인증샷 등을 볼 때 개인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도 느슨해지고 있다. 일부 픽업 아티스트의 증가로 기형적이고 불구 상태의 대인관계가 사회에 만연할까 우려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픽업 아티스트 용어>



로드헌팅 : 길거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접근 후 여성을 유혹하는 행위.
클럽헌팅 : 나이트클럽 또는 클럽에서 여성을 유혹하는 행위.
덜덜덜 A급 : 가슴이 덜덜덜 뛸 정도로 괜찮은 여자.
당일간지 : 오늘 원나잇 스탠드(하룻밤 잠자리)가 가능할 것 같은 느낌. (줄임말 '당간')
오까네 : 돈
구라신공(구라DHV) : 된장녀를 잡을 때 쓰는 기술로 약간의 스펙을 부풀리는 방법.
(한 분야에 대해 1시간 정도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습득 후 사용할 것)
레이저신공 : 맘에 드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방법으로 호감의 바디랭귀지의 일종. (갑자기 어색한 분위기가 왔을 때는 V자를 날려주는 센스)
엔빵 : 나이트 비용이나 여러 가지 비용이 나왔을 때 더치페이를 이르는 말.
ONS : 원나잇 스탠드. (동의어 '홈런')
새되다 : 아무런 성과 없이 해 뜨는 새벽을 맞이하여 훨훨 집으로 날아감.
AA : 접근공포증.
공작새 이론 : 의상에 화려한 포인트를 줘서 여자의 시선을 끌게 함. (명품옷, 명품시계, 명품가방 등)
: 외모의 수준이 떨어지는 여성을 이야기 하는 말. (비슷한 말 '오우거' 반의어 '엘프')
도시락 : 나이트나 클럽에 여자를 데리고 감. (뷔페에 도시락을 싸가는 격이라는 의미)
레포(라포르) :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신뢰를 얻는 것, 공감대 형성.
스팀팩 : 스타크래프트에서 마린이 뽕 맞듯이 무한 들이대기를 위해 약간의 알코올 섭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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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