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生현장 르포>Senior 그들만의 아지트를 가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2.22 11: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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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노년 신(新)문화 "늙었다고 다 서글프다는 편견은 버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도 있고 시간도 있지만 갈 곳은 없다. 풀릴 듯 말 듯한 날씨 덕에 공원 나들이도 쉽지 않다. "요즘 뭐하세요?"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 "늙어서 주책이다"는 말도 듣기 싫다. 누구일까? 적극적인 소비와 문화 활동을 한다는 데서 기존의 '실버' 세대와는 구별되는 '시니어' 세대들이다. 이들은 경로당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탑골공원을 떠도는 백발의 노인들과는 다르다. 본격적인 은퇴시기와 맞물려 여유를 갖게 되면서 그들이 젊은 시절 누렸던 감성과 과거의 문화적 향수를 찾아 나서면서 서울시 종로구에 '시니어 특수'가 형성되고 있다. 노인전용영화관과 식당이 생겼고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됐던 카페에도 노인들만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일요시사>가 서울 종로구 낙원동을 찾았다.

영화도 보고 국화빵도 먹고…단돈 2000원에?
노년들만을 위한 식당, 라이브공연과 DJ까지

"이번 역은 종로3가역, 종로3가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12시께 두 번의 환승을 거쳐 기자가 도착한 곳은 1호선 종로3가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1번 출구로 나가는 기자 앞을 멋들어진 중절모와 반짝이는 머리핀으로 한껏 멋을 낸 중년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지나갔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다.

종로구에 날아든
'시니어 특수'

스마트폰을 꺼내 탑골공원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잠깐 고개를 숙인 사이에 중년부부는 H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발걸음을 재촉해 기자도 커피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메뉴판을 보다가 이내 능숙하게 커피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 두 잔하고 ○○머핀 한 개 줘요"


주문을 마친 노신사는 진동벨과 영수증을 들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부인에게 다갔다. 기자도 얼떨결에 커피 한잔을 주문해 그들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뒤 할아버지가 쟁반에 담긴 커피와 빵을 받아와 할머니 앞에 놓아줬다. 커피를 마시며 나긋나긋하게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30여 분 뒤 쟁반을 말끔하게 정리한 노부부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꼭 잡고 커피숍을 떠났다. 기자도 밖으로 나와 낙원상가로 향했다.

낙원상가를 가기위해 탑골공원 오른편 종로17길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담배꽁초와 종이컵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3000원짜리 이발소와 2000원짜리 밥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방금 만난 노부부와는 다른 분위기의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100원짜리 커피를 마시거나 대낮부터 벌건 얼굴로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은 많았지만 활기는 느낄 수 없었다.

200여m를 지났을까? 국내 최대의 악기매장인 낙원상가가 보였다. 장기판을 펼쳐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노인들을 지나 2층으로 통하는 외부계단을 올랐다. 세상의 모든 악기들을 다 모아 놓은 것 같은 악기 매장 사이를 한참 해맨 끝에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리는 순간 달콤한 국화빵 냄새와 함께 밝은 표정의 노인들이 기자를 반겼다. 국내 1호 노인전용영화관 '허리우드클래식'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족히 200여 명은 넘어 뵈는 노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자에게 꽂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김은주 허리우드클래식 대표를 만나 취재요청을 하고 본격적으로 극장 탐방에 나섰다.

가장 먼저 기자의 발길이 닿은 곳은 매표소. 멀티플랙스급 영화관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상영됐던 영화의 포스터나 눈이 흐릿한 노인들을 배려해 큰 글씨체로 적혀있는 안내문들이 어딘지 모르게 정겹다.

영화 관람료를 확인해봤다. 55세 이상은 2000원, 대학생을 포함한 일반인은 7000원, 학생은 5000원. 1000원 짜리 지폐 2장을 내고 영화표를 받아들고 가려는 노인 한명을 매표소 직원이 붙잡는다.

"할아버지~ 쿠폰 받아가셔야죠~ 국화빵 안 드실 거예요?"


영화관 입구로 이동하던 노인이 급하게 매표소로 다시 돌아와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한 장을 받아갔다. 노인을 따라 영화관 한쪽의 휴게실로 들어섰다. LP판이 가득한 DJ박스에서는 추억의 팝송과 가요가 흘러나왔고 60대로 보이는 노인 두 분이 연신 국화빵을 구워내고 있었다. 옆에서는 자원봉사 명찰을 단 할머니 한 분이 손님들의 쿠폰을 받고 고깔모양의 종이에 국화빵을 두 개씩 담아 건네고 있었다.

달달한 국화빵 향기
극장 안에 가득

어느덧 오후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출출해진 기자가 '1000원어치만 싸 달라'고 하자 국화빵 뒤집기에 여념이 없던 할아버지 한 분이 안 판단다. 이유를 물었다.

"여기 국화빵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거든 젊은 양반 말고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들 팔라고 해. 그런데 그러면 여기가 너무 복잡해지더라고. 돈 때문에 이런 것 하는 게 아니야. 여기 취재 왔다니까 내가 특별히 공짜로 줄게."

갓 구워낸 따끈한 국화빵 두 개를 받았다. 쿠폰 개수를 파악하던 자원봉사 할머니는 "오늘만 벌써 500명이 넘게 왔어"라며 커피 한 잔도 건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손에 들고 있는 국화빵 두 개가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지금 막 신청곡 쪽지를 받아 LP판을 바꿔 트는 DJ 장민욱씨와 얘기를 나눴다. 장씨는 지난해 6월부터 이곳에서 노인들을 위한 DJ로 활동하고 있다. 장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카페나 다방, 방송국에서 DJ를 할 때보다 행복해요. 아직 조금이라도 어린 내가 이 자리에서 인생의 선배들에게 아날로그의 추억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트는 노래로 인해 노인들이 인생의 황금기를 되돌아 볼 수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이 일을 할 생각이에요."

옆에 앉아 장씨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할머니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1월에도 왔고 12월에도 왔어. 저번 달에는 여기서 여고동창 모임도 했지. 인터넷에서도 들을 수 없는 노래 들으려고 여기 오는 사람들 많아. 영화를 안 봐도 여긴 올 수 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영화관, 365일 전석 매진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인 '맞춤형' 문화 절실

노인들과 정겨운 수다를 나누던 도중 상영관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영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니 한바탕 축제분위기다. 기자를 발견한 김 대표가 다가와 "왜 이렇게 늦었냐"고 타박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30분에 노인들을 위한 자선공연이 펼쳐진 다는 것. 기자가 도착했을 때는 전통가락에 맞춘 풍물패 공연이 한창이었다. 브라운관 앞 무대에서 북과 꽹과리, 징 등을 치며 공연을 하는 사람들, 공연을 보며 박수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모두 50대를 넘긴 노인들이었다. 풍물패가 연주하는 가락의 박자가 바뀔 때마다 흘러나오는 환호는 <전국노래자랑>을 방불케 했다. 비록 노인들과의 시간가는 줄 모르는 대화 덕에 앞부분 '복고 통기타' 공연은 놓쳤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20여 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브라운관에 김은주 대표가 나타나 화재 시 대피로를 설명했다. 영화 시작 전 화면에는 요실금, 임플란트, 관절파스 등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 광고가 비춰졌고 이내 이번 주 상영작인 <율리시스>(1954년작)가 시작됐다. 상영관은 장애인석 5석을 제외한 295석 모두 만석이었다.

허리우드클래식에서 현재까지 상영된 작품은 140편이 넘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 <해저2만리>(1954년) <하녀>(1960년) <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 <별들의 고향>(1974년) <지옥의 묵시록>(1979년) <영웅본색>(1986)년 등의 고전영화는 물론 <러브 액츄얼리>(2003년) <맘마미아>(2008년) <시>(2010년) 등 비교적 최신영화도 상영했다.

매달 적자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상영관을 빠져나와 김 대표를 만나 영화관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취재를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점은 '영업을 어떻게 할까?'였다. 김 대표는 개인 돈으로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그녀는 시사회 전용관을 운영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지난 2009년 1월 낙원상가 4층에 허리우드클래식을 개관했다. 반응은 한마디로 폭발적이었다. 지난해에만 관객 15만6000여 명이 이 극장을 찾았고 전국 곳곳에서 영화관을 찾았던 노인들이 영화관으로 감사의 선물을 보내온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적자가 나도 사업을 접을 수 없다고 했다.

"집도 팔고 차도 팔았어요. 가끔 들어오는 광고수익과 기부금으로는 연간 5억 가까이 되는 운영자금을 충당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어르신들 스스로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시며 전단지를 돌려주시기도 하고 떡이나 제사음식, 과일 같은 선물도 자주 보내주시니까 '보람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젊은 시절 (시사회 전용관을 운영하며) 돈 많이 벌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요."

뉘엿뉘엿 서산에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오후 5시30분께 영화를 보고 나오는 노인들 틈에 껴 낙원상가를 빠져나왔다. 가만히 노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대부분 식사를 하러 가는 듯 했다. 노인전용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노인들은 어디서 식사를 할지 궁금해졌다. 뒤를 따라 걸었다. 노인들은 기자가 낙원상가를 가기위해 지나왔던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탑골공원 돌담을 따라 2000~3000원짜리 메뉴로 가득한 허름한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노인들이 그 중 한곳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했던 기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골목을 빠져나간 그들은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건물을 올려다보니 '파고다타운'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식당 내부는 라이브공연이 한창이었으며 골목에서 봤던 식당과는 다르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아버지 대신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상준 사장의 안내에 따라 가게 전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박 사장의 말에 따르면 이 식당은 노인전용식당이다. 지난해 3월 오픈한 이 식당은 초기부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삼아 영업을 해왔다. 종업원들도 50대 이상이며 정기적으로 무료급식도 진행한다. 식당 내부는 노인들을 배려해 모두 금연구역이고 영업시간도 노인들의 생활패턴에 맞췄다. 종업원 모두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가게를 빠져나와 60세 이상의 어르신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타고 서빙도 한다는 실버카페로 향했다. 안국역 5번 출구를 나와 50여m를 걸었을까? '삼가연정'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실버 북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과 포근한 느낌이 드는 인테리어는 여느 북카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근무하는 직원들이 조금 달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노인들이 카운터를 지키고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커피류는 2000~3000원으로 서울 시내의 커피전문점에 비해 저렴하고 직접 만든 케이크, 양갱, 쿠키는 1000원에 제공됐다. 

운현궁이 잘 보이는 창가 쪽 자리에는 노인들이 자리했고 군데군데 직장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노신사는 "자주 이곳을 찾냐"는 기자의 질문에 칭찬일색이었다.


"카페는 젊은층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쉽게 찾아지지 않았는데 이곳은 마음 편히 책도 볼 수 있고 저렴한 가격에 차도 마실 수 있어 자주 찾아요."

노인전용공간
아직 부족하다

이밖에도 시니어 문화 발전을 향한 다양한 모색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7일 포항시시설관리공단 문화사업팀이 주최한 실버영화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유료상영에도 인기를 끌었던 실버영화제는 <겨울나그네> 상영을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매월 두 번째 주 목요일 오후 2시 무료입장으로 진행된다.

그런가 하면 각 지역마다 60세 이상 노인들이 참여하는 악단 창설도 붐이다. 각자 방법은 다르지만 이 모두가 시니어세대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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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