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生현장 르포>Senior 그들만의 아지트를 가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2.22 11: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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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노년 신(新)문화 "늙었다고 다 서글프다는 편견은 버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도 있고 시간도 있지만 갈 곳은 없다. 풀릴 듯 말 듯한 날씨 덕에 공원 나들이도 쉽지 않다. "요즘 뭐하세요?"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 "늙어서 주책이다"는 말도 듣기 싫다. 누구일까? 적극적인 소비와 문화 활동을 한다는 데서 기존의 '실버' 세대와는 구별되는 '시니어' 세대들이다. 이들은 경로당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탑골공원을 떠도는 백발의 노인들과는 다르다. 본격적인 은퇴시기와 맞물려 여유를 갖게 되면서 그들이 젊은 시절 누렸던 감성과 과거의 문화적 향수를 찾아 나서면서 서울시 종로구에 '시니어 특수'가 형성되고 있다. 노인전용영화관과 식당이 생겼고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됐던 카페에도 노인들만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일요시사>가 서울 종로구 낙원동을 찾았다.

영화도 보고 국화빵도 먹고…단돈 2000원에?
노년들만을 위한 식당, 라이브공연과 DJ까지

"이번 역은 종로3가역, 종로3가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12시께 두 번의 환승을 거쳐 기자가 도착한 곳은 1호선 종로3가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1번 출구로 나가는 기자 앞을 멋들어진 중절모와 반짝이는 머리핀으로 한껏 멋을 낸 중년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지나갔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다.

종로구에 날아든
'시니어 특수'

스마트폰을 꺼내 탑골공원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잠깐 고개를 숙인 사이에 중년부부는 H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발걸음을 재촉해 기자도 커피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메뉴판을 보다가 이내 능숙하게 커피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 두 잔하고 ○○머핀 한 개 줘요"


주문을 마친 노신사는 진동벨과 영수증을 들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부인에게 다갔다. 기자도 얼떨결에 커피 한잔을 주문해 그들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뒤 할아버지가 쟁반에 담긴 커피와 빵을 받아와 할머니 앞에 놓아줬다. 커피를 마시며 나긋나긋하게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30여 분 뒤 쟁반을 말끔하게 정리한 노부부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꼭 잡고 커피숍을 떠났다. 기자도 밖으로 나와 낙원상가로 향했다.

낙원상가를 가기위해 탑골공원 오른편 종로17길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담배꽁초와 종이컵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3000원짜리 이발소와 2000원짜리 밥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방금 만난 노부부와는 다른 분위기의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100원짜리 커피를 마시거나 대낮부터 벌건 얼굴로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은 많았지만 활기는 느낄 수 없었다.

200여m를 지났을까? 국내 최대의 악기매장인 낙원상가가 보였다. 장기판을 펼쳐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노인들을 지나 2층으로 통하는 외부계단을 올랐다. 세상의 모든 악기들을 다 모아 놓은 것 같은 악기 매장 사이를 한참 해맨 끝에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리는 순간 달콤한 국화빵 냄새와 함께 밝은 표정의 노인들이 기자를 반겼다. 국내 1호 노인전용영화관 '허리우드클래식'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족히 200여 명은 넘어 뵈는 노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자에게 꽂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김은주 허리우드클래식 대표를 만나 취재요청을 하고 본격적으로 극장 탐방에 나섰다.

가장 먼저 기자의 발길이 닿은 곳은 매표소. 멀티플랙스급 영화관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상영됐던 영화의 포스터나 눈이 흐릿한 노인들을 배려해 큰 글씨체로 적혀있는 안내문들이 어딘지 모르게 정겹다.

영화 관람료를 확인해봤다. 55세 이상은 2000원, 대학생을 포함한 일반인은 7000원, 학생은 5000원. 1000원 짜리 지폐 2장을 내고 영화표를 받아들고 가려는 노인 한명을 매표소 직원이 붙잡는다.

"할아버지~ 쿠폰 받아가셔야죠~ 국화빵 안 드실 거예요?"


영화관 입구로 이동하던 노인이 급하게 매표소로 다시 돌아와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한 장을 받아갔다. 노인을 따라 영화관 한쪽의 휴게실로 들어섰다. LP판이 가득한 DJ박스에서는 추억의 팝송과 가요가 흘러나왔고 60대로 보이는 노인 두 분이 연신 국화빵을 구워내고 있었다. 옆에서는 자원봉사 명찰을 단 할머니 한 분이 손님들의 쿠폰을 받고 고깔모양의 종이에 국화빵을 두 개씩 담아 건네고 있었다.

달달한 국화빵 향기
극장 안에 가득

어느덧 오후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출출해진 기자가 '1000원어치만 싸 달라'고 하자 국화빵 뒤집기에 여념이 없던 할아버지 한 분이 안 판단다. 이유를 물었다.

"여기 국화빵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거든 젊은 양반 말고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들 팔라고 해. 그런데 그러면 여기가 너무 복잡해지더라고. 돈 때문에 이런 것 하는 게 아니야. 여기 취재 왔다니까 내가 특별히 공짜로 줄게."

갓 구워낸 따끈한 국화빵 두 개를 받았다. 쿠폰 개수를 파악하던 자원봉사 할머니는 "오늘만 벌써 500명이 넘게 왔어"라며 커피 한 잔도 건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손에 들고 있는 국화빵 두 개가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지금 막 신청곡 쪽지를 받아 LP판을 바꿔 트는 DJ 장민욱씨와 얘기를 나눴다. 장씨는 지난해 6월부터 이곳에서 노인들을 위한 DJ로 활동하고 있다. 장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카페나 다방, 방송국에서 DJ를 할 때보다 행복해요. 아직 조금이라도 어린 내가 이 자리에서 인생의 선배들에게 아날로그의 추억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트는 노래로 인해 노인들이 인생의 황금기를 되돌아 볼 수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이 일을 할 생각이에요."

옆에 앉아 장씨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할머니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1월에도 왔고 12월에도 왔어. 저번 달에는 여기서 여고동창 모임도 했지. 인터넷에서도 들을 수 없는 노래 들으려고 여기 오는 사람들 많아. 영화를 안 봐도 여긴 올 수 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영화관, 365일 전석 매진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인 '맞춤형' 문화 절실

노인들과 정겨운 수다를 나누던 도중 상영관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영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니 한바탕 축제분위기다. 기자를 발견한 김 대표가 다가와 "왜 이렇게 늦었냐"고 타박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30분에 노인들을 위한 자선공연이 펼쳐진 다는 것. 기자가 도착했을 때는 전통가락에 맞춘 풍물패 공연이 한창이었다. 브라운관 앞 무대에서 북과 꽹과리, 징 등을 치며 공연을 하는 사람들, 공연을 보며 박수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모두 50대를 넘긴 노인들이었다. 풍물패가 연주하는 가락의 박자가 바뀔 때마다 흘러나오는 환호는 <전국노래자랑>을 방불케 했다. 비록 노인들과의 시간가는 줄 모르는 대화 덕에 앞부분 '복고 통기타' 공연은 놓쳤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20여 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브라운관에 김은주 대표가 나타나 화재 시 대피로를 설명했다. 영화 시작 전 화면에는 요실금, 임플란트, 관절파스 등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 광고가 비춰졌고 이내 이번 주 상영작인 <율리시스>(1954년작)가 시작됐다. 상영관은 장애인석 5석을 제외한 295석 모두 만석이었다.

허리우드클래식에서 현재까지 상영된 작품은 140편이 넘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 <해저2만리>(1954년) <하녀>(1960년) <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 <별들의 고향>(1974년) <지옥의 묵시록>(1979년) <영웅본색>(1986)년 등의 고전영화는 물론 <러브 액츄얼리>(2003년) <맘마미아>(2008년) <시>(2010년) 등 비교적 최신영화도 상영했다.

매달 적자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상영관을 빠져나와 김 대표를 만나 영화관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취재를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점은 '영업을 어떻게 할까?'였다. 김 대표는 개인 돈으로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그녀는 시사회 전용관을 운영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지난 2009년 1월 낙원상가 4층에 허리우드클래식을 개관했다. 반응은 한마디로 폭발적이었다. 지난해에만 관객 15만6000여 명이 이 극장을 찾았고 전국 곳곳에서 영화관을 찾았던 노인들이 영화관으로 감사의 선물을 보내온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적자가 나도 사업을 접을 수 없다고 했다.

"집도 팔고 차도 팔았어요. 가끔 들어오는 광고수익과 기부금으로는 연간 5억 가까이 되는 운영자금을 충당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어르신들 스스로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시며 전단지를 돌려주시기도 하고 떡이나 제사음식, 과일 같은 선물도 자주 보내주시니까 '보람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젊은 시절 (시사회 전용관을 운영하며) 돈 많이 벌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요."

뉘엿뉘엿 서산에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오후 5시30분께 영화를 보고 나오는 노인들 틈에 껴 낙원상가를 빠져나왔다. 가만히 노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대부분 식사를 하러 가는 듯 했다. 노인전용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노인들은 어디서 식사를 할지 궁금해졌다. 뒤를 따라 걸었다. 노인들은 기자가 낙원상가를 가기위해 지나왔던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탑골공원 돌담을 따라 2000~3000원짜리 메뉴로 가득한 허름한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노인들이 그 중 한곳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했던 기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골목을 빠져나간 그들은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건물을 올려다보니 '파고다타운'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식당 내부는 라이브공연이 한창이었으며 골목에서 봤던 식당과는 다르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아버지 대신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상준 사장의 안내에 따라 가게 전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박 사장의 말에 따르면 이 식당은 노인전용식당이다. 지난해 3월 오픈한 이 식당은 초기부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삼아 영업을 해왔다. 종업원들도 50대 이상이며 정기적으로 무료급식도 진행한다. 식당 내부는 노인들을 배려해 모두 금연구역이고 영업시간도 노인들의 생활패턴에 맞췄다. 종업원 모두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가게를 빠져나와 60세 이상의 어르신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타고 서빙도 한다는 실버카페로 향했다. 안국역 5번 출구를 나와 50여m를 걸었을까? '삼가연정'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실버 북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과 포근한 느낌이 드는 인테리어는 여느 북카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근무하는 직원들이 조금 달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노인들이 카운터를 지키고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커피류는 2000~3000원으로 서울 시내의 커피전문점에 비해 저렴하고 직접 만든 케이크, 양갱, 쿠키는 1000원에 제공됐다. 

운현궁이 잘 보이는 창가 쪽 자리에는 노인들이 자리했고 군데군데 직장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노신사는 "자주 이곳을 찾냐"는 기자의 질문에 칭찬일색이었다.


"카페는 젊은층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쉽게 찾아지지 않았는데 이곳은 마음 편히 책도 볼 수 있고 저렴한 가격에 차도 마실 수 있어 자주 찾아요."

노인전용공간
아직 부족하다

이밖에도 시니어 문화 발전을 향한 다양한 모색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7일 포항시시설관리공단 문화사업팀이 주최한 실버영화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유료상영에도 인기를 끌었던 실버영화제는 <겨울나그네> 상영을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매월 두 번째 주 목요일 오후 2시 무료입장으로 진행된다.

그런가 하면 각 지역마다 60세 이상 노인들이 참여하는 악단 창설도 붐이다. 각자 방법은 다르지만 이 모두가 시니어세대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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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