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절대 망하지 않는 집창촌 실태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2.15 15: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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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홍등'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사라질 듯 절대 안 사라지는 곳이 있다. 지난 2004년 9월23일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그동안 여러 차례 집중 단속이 이뤄져 직격탄을 맞았던 서울시내 집창촌의 모습이다. 2000년 김강자 당시 종암경찰서장의 주도로 이뤄진 대대적인 단속과 2008년부터 시작된 재개발로 대부분의 업소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일부 업소들은 아직도 공사장에 둘러싸여 외로운 홍등을 밝히고 있다.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한 갖가지 영업 방식도 등장했다. <일요시사>가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들을 찾았다.

모텔로 옮겨서 성매매 하기도…경찰 눈속임 영업
없어졌다는 서울 5대 집창촌 대다수 성업 중

지난 7일 오후 5시.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아온 서울의 강추위는 매서웠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청량리역 광장은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 백화점을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광장을 빠져나와 5분쯤 걸었을까? 롯데백화점을 끼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말 그대로 암흑가가 펼쳐진다. 수백여m 남짓한 골목에는 성매매가 이뤄졌던 일명 ‘유리방’들이 양쪽으로 즐비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지금의 30~40대 남성들에게 '성지'(性地)라고 불렸던 속칭 '청량리588'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단속의 영향인지 홍등을 밝혀놓은 집은 한 곳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불 꺼진 청량리
실제 영업은?

드문드문 보이는 '청소년 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과 '철거'라고 적혀진 업소 출입문만이 기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멍하니 업소를 쳐다보고 있을 때 한 중년여성이 기자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멋진 오빠 오랜만에 왔나보네? 왜? 한번 하시게? 내가 평일 낮이니까 특별히 싸게 6만원에 해줄게. 아가씨 보러 가자."


못 이기는 척 여성을 따라 걸었다. 10여 분을 걸었을까? 여성이 기자를 한 PC방으로 이끌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트레이닝복 차림의 여성 몇몇이 온라인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경찰 단속을 피해 몰래 숨어서 영업을 이어가는 듯했다.

이곳에서 유리라는 이름을 쓰는 29살의 한 여성을 만났다. 유리씨와 함께 대실비 1만5000원을 지불하고 근처 여관으로 들어갔다. 옷을 벗기려는 그녀를 만류하고 취재 중임을 밝혔다. 돈을 지불하고 정해진 30분 동안 얘기를 나누자는 의사를 전달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유리씨는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건넨 6만원 중 2만원을 기자에게 다시 돌려줬다. 이유를 물어봤다.

"성매매방지특별법인가 뭔가 시행되고 지금까지 우리가 시위했을 때 기자분들이 저희 의견 잘 반영해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언니들이나 동생들이 많아요. 물론 매스컴이 집중되면 어쩔 수 없이 경찰들도 더 많이 오긴 하는데 살아남는 방법이 있어요. 3만원은 포주 언니 줘야하고 30분 비용으로 만원만 받을게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청량리588 일부 업소는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밖에서 봤을 때는 모두 철거되거나 문을 닫은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포주들이 근처 포장마차나 불 꺼진 업소에 대기하고 있다가 손님으로 보이는 남성이 나타나면 은근슬쩍 접근해 아가씨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근처 PC방이나 책방, 미용실 등으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손님은 마음에 드는 아가씨와 함께 모텔이나 여관으로 이동해 '연애'를 한다. 경찰이 오더라도 연인이라고 발뺌하면 그만이다.

무허가 집창촌
카드 결제 가능

현금이 없을 경우 카드로 계산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무허가 집장촌이 어떻게 카드 결제가 가능할까? 그녀는 속칭 '카드깡'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외부업체(카드깡업체)의 단말기로 손님이 결제를 하면 하루단위로 금액을 정산해서 일정 수수료를 떼고 남는 금액을 업소에 지급해 준다는 것. 수수료는 보통 15% 정도를 떼는데 가령 하루 결제금액이 100만원이라면 15만원을 카드깡업체에서 가져간다. 대신에 카드깡업체는 세금문제 등 불거져 나올 수 있는 각종 문제를 처리해주는 시스템이다.


업소가 문을 열지 않으면 여성들이 어떤 방법으로 숙식을 해결하는지 궁금해졌다. 유리씨는 이곳에서 4년을 일했다고 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대부분 '보도방'이나 '키스방' 등 유사 성행위 업소로 거처를 옮겼다. 유리씨는 현재 청량리588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포주의 횡포나 선불금, 감시, 감금은 옛말이에요. 지금은 하루 벌어 하루 챙기고 아프면 안 나올 수도 있고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어요."

시계를 보니 어느덧 약속시간인 30분을 한참 넘었다. 너무 늦게 가면 그만큼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유리씨와 함께 여관을 빠져나와 헤어졌다. 다시 업소가 모여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골목은 이내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퇴근시간 교통체증을 피해 진입한 몇몇 차량들의 전조등만이 을씨년스러운 골목을 간간히 비췄다.

이번에는 청량리588과 함께 서울의 양대 집창촌이라고 불리는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미아리 텍사스촌'을 찾기 위해 다시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오후 시간대와는 다르게 60~70대 여성들이 연신 기자에게 "3만원이면 돼" "한번 하고 가"라는 말을 하며 따라붙었다. 발길을 재촉해 저녁 10시경 길음역에 도착했다.

길음역 10번 출구로 나오니 노란색 바탕에 '청소년 보호구역'이라는 큼직한 빨간 글씨가 보였다. 그 앞에는 모텔 주자장 입구를 연상시키는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가림막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가니 청량리588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대부분은 문을 닫았지만 10여 개 업소는 홍등을 밝혀 놓고 호객에 여념이 없었다.

일부 업소
꾸준히 영업 중

업소들이 밀집된 골목 안쪽으로 들어섰다.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호객꾼들이 끊임없이 기자의 팔을 잡았고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며 흥정을 붙였다. 서툰 한국말로 실랑이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도 간혹 보였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일본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로 떠오르며 1000여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일을 하던 예전 찬란한(?) 텍사스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곳에서 20년 이상을 일했다는 한 50대 업주를 따라 업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에는 흰 드레스를 입은 두 명의 여성이 머리를 단장하고 있었다. 성매매특별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영업이 가능한 것일까?
이 업주는 현재 상황을 이른바 '폭풍전야'라고 말했다.

"어차피 올해 상반기 안에 철거가 시작된다고 하니까 우리가 너무 노골적으로 호객행위만 하지 않으면 눈을 감아주는 분위기에요.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미성년자 출입을 금지시키는 등 노력하고 있으니까…."

2009년 1월 '도시환경정비사업 신월곡 1구역'으로 지정된 미아리 텍사스 일대는 올해 상반기 내에 본격적인 이주 및 철거를 시작한다. 이곳에는 최고 39층 높이의 주상복합건물 9개동(1192 가구)이 들어선다. 현재 일부 업소의 성업은 조만간 있을 경찰과 성매매 업소 간의 '전쟁'에 대비한 '휴전상태'로 보인다.

"이곳을 없앤다고 성매매가 사라질까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또 다른 방법으로 성매매를 할 거에요. 요즘에도 아가씨들이 보도방이나 안마방 같은 데로 옮겨가고 있어요. 한 쪽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터진다고 미아리에서 텍사스촌이 사라지면 다른 지역에 새로운 텍사스촌이 생길거에요."

문을 열고 업소를 빠져나왔다. 골목에는 일(?)을 마친 것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택시를 잡기위해 연신 팔을 흔들고 있었다.


"한 쪽 누르면 다른 한 쪽이 터지는 법"
'배운 게 도둑질' "이 일 아니면 살 수가 없다"

이렇듯 사라진 줄 알았던 청량리588과 미아리 텍사스는 여전히 영업 중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9월 경찰이 자랑스럽게 완전히 없어졌다고 발표한 용산역 인근 집창촌은 어떨까?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용산역으로 향했다.

일단 용산역 집창촌이 있던 자리는 도로변 상인들의 안내가 없었다면 찾기 어려웠을 정도로 황폐했다. 쓰레기더미와 연탄재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고 업소 유리창은 깨지고 출입문은 너덜거렸다. 경찰의 발표대로 용산역 집장촌은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발길을 돌렸다. 영등포로 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용산역 파출소가 보이는 대로변으로 나왔다.

주차단속원으로 보이는 50대 여성이 도로변에 앉아 있었다. 택시를 잡고 있는 기자에게 갑자기 그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연애하러 왔어? 여기는 없어진지 오래고 딱 하나 남은 곳이 있는데 싸게 해줄 테니까 하고 갈래?"

팔을 잡아끄는 여성을 따라 골목골목을 지나 낡은 건물에 도착했다. '유리방'이 아닌 일반 가정집으로 보였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성매매 업소임을 증명하는 빨간 불빛이 새어나왔다. "생각 좀 더 해보고 오겠다" 는 말로 둘러대니 "너무 오래 끌지 말라"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을 골목에서 헤맨 끝에 다시 대로변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영등포역 인근 집창촌도 일부 업소는 영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천호동 텍사스' '파주 용주골' 수원역 집창촌'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4년 실시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 7년을 넘었다. 성매매를 알선한 업주와 성매수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크게 높여 원천적으로 성매매를 근절시키겠다는 것이 이 법의 취지였다. 분명히 집창촌 업소의 수가 대폭 줄었다는 사실은 취재 결과 확인됐다. 하지만 일부 업소는 아직 영업 중이며 성매매 여성들과 업소 주인들은 경찰의 눈을 속이기 위한 갖가지 비책(?)들을 내놓으며 변종 성매매를 양산해 내고 있다.

경찰, 일부 업소
영업 사실 파악

아무리 취재라고 하지만 경찰 단속이 뜨면 낯부끄러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에 내내 불안했다. 하지만 하루 동안 방문한 청량리, 미아리, 용산, 영등포에서는 단 한 번도 경찰을 볼 수 없었다. 집창촌 업자들의 말대로 지금은 '폭풍전야'인 것일까?  

경찰관계자는 "아직도 영업을 하는 업소가 있다는 사실은 경찰 내부에서도 파악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성매매 증거를 잡기가 힘든 실정이다"며 "가게 안에 아가씨가 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가지고 뭐라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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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마지막 관문<br> ‘헌법 제84조’ 대해부

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앞길에 주황불과 녹색불이 번갈아 들어서고 있다. 2심서 무죄를 받은 공직선거법 판결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면서 여전히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남은 재판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치권은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를 나노 단위로 뜯어 살피고 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당선돼도 찝찝하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021년 20대 대선후보이던 당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과 국정감사에서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이 같은 발언은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구체적으로 1심 재판부는 이 후보의 “김 전 처장과 골프 친 사진은 조작됐다”는 발언을 유죄로 봤지만 2심 재판부는 “김 전 처장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고, 아무리 확장 해석해도 같이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다”며 1심을 뒤엎었다.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의견 표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허위 사실 공표로 해석할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무죄 판결이 난 바로 다음 날 검찰은 곧바로 상고했다. 항소심이 끝난 지 하루 만에 상고장을 접수한 만큼 대법원 판단을 빠르게 받아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대법원서 다루는 상고심은 항소심 재판에 대한 불복 신청을 토대로 하는 만큼 사실관계를 판단하지 않는 법률심이다. 판결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신속하게 원칙에 따라 재판을 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며 내심 유죄를 희망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대법원서 판결이 뒤집혀야 한다고 보느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항소심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서 바로잡혀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1심과 2심의 판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대법원서 결정을 내려줘야 법적인 논란이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 된 밥에 또…파기환송 ‘주황불’ “노골적 대선 개입” 대법원장 탄핵? 반면 민주당 사법정의실현 및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윤석열의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상고도 포기하길 바란다”며 맞불을 놨다. 민주당의 바람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해 무죄였던 2심 판결을 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는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은 공직선거법 250조 제1항에 따른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2심 판단에는 공직선거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합 선고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 등 총 12명이 참여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의 발언은 허위 사실 공표가 맞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피고인이 허위 발언을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이번 선고는 대법관 10명 다수 의견으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 결정됐고 2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골프 발언은 6~7년 전에 있었던 기억을 주제로 한 발언에 불과하고, 백현동 관련 발언은 국토부의 의무 조항을 지적한 부분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닥쳐온 위기에 민주당은 “노골적인 대선 개입”이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겠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통상 파기환송심은 상고심 판결에 기속되는 만큼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의 탄핵에 속도를 냈지만 이 후보는 “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며 다소 거리를 뒀다. 문제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에 관한 해석은 밝히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까지 해석이 갈린 것이다. 어떻게 읽어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추는 ‘형사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일’로 정의할 수 있다. 소추의 범위가 ‘검찰의 공소 제기’만을 의미하는지, ‘진행 중인 재판’까지 포함하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현직 대통령을 내란, 또는 외환죄가 아니면 새로 기소할 수 없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내·외환죄가 아닌 죄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던 중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자로 풀어서 본다면 소는 기소, 추는 좇다, 즉 소추는 ‘공소와 공소 유지’를 뜻해 재판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해석이다. 기소가 중단될 수는 있지만 진행 중인 재판까지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된다면 이 후보는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더라도 재임 중 5개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현재 이 후보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선거법 위반·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유죄가 확정된다면 대통령직서 물러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소추가 기소까지만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면 이 후보의 모든 재판은 당선 즉시 중단된다. 이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해석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검사의 수사와 소추권을 다룬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 사건의 각하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다시 주목된다. 당시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관은 “형사상 소추는 심판 기관과 분리된 소추권자가 유죄 판결 및 적정한 처벌을 구하는 활동으로 소추 기능은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의 결정 및 공개된 법정서 피고인의 상대방 당사자로서 수행하는 변론 및 입증 활동, 이에 관한 법원의 재판에 대한 불복 등을 포함한다”고 밝힌 것이다. 만일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재판 진행 여부는 이 후보의 재판을 맡은 각각의 재판부의 몫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법원이 헌법 제84조와 관련해 개별 재판부에 재판을 어떻게 운영하라고 지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각 재판관이 알아서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구조상으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법률심으로 만약에 그런 쟁점을 다루게 된다면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본다면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등 재판부가 헌법 제84조를 해석해야 하지만 최종 결론은 대법원의 몫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까지 다방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헌재가 대통령과 법원 사이서 어떤 해석을 내리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한차례 끓어 올랐던 헌법 제84조 논란은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연기되면서 일단락하는 분위기다. 지난 7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오는 15일 예정됐던 첫 공판을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함”이라며 재판 기일을 대통령선거일 이후로 변경했다. 이로써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마찬가지로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등의 공판기일도 다음 달인 24일로 변경되면서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민주당의 날선 반응도 다소 누그러졌다. 상고심 일정이 연기되면서 한숨 돌리나 싶더니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서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을 정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삼권분립이 붕괴된 좋지 않은 선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불소추특권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확실히 못을 박는 분위기다. 이 후보의 파기환송이 결정된 다음 날인 지난 2일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국민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대법원의 비이성적 폭거를 막겠다. 헌법 제84조 정신에 맞게 곧 법 개정안(재판중지)을 법사위서 통과시키겠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예고대로 지난 7일 민주당은 형사소송법 제306조에 ‘피고인이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면 당선된 날부터 임기 종료 시까지 공판 절차를 정지한다’는 내용 신설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서 단독 처리했다. 대통령이 재판을? ‘소추’ 범위 물음표 최종심 연기됐지만…개정안 밀어 붙인다 민주당은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헌정 수행 기능 보장을 위한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현행 법령 체계에서는 기소 후 재판이 계속되는 경우 이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판 계속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형사·사법기관이 대통령을 대상으로 재판을 계속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법안 상정 당시부터 반발하며 퇴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서 “이런 무도한 집단이 깡패집단이지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며 “차라리 ‘이재명 유죄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왜 애꿎은 허위 사실 공표죄만 개정하느냐. 이참에 위증교사죄도 폐지하라. 대장동·백현동 관련 죄도 폐지해서 이 후보를 무죄로 만들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법무부는 “대통령 취임 전에 범한 범죄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무관함에도 재판을 정지하는 것은 공직 자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률 규정을 무력화하고 자격이 없는 피고인에게 부당하게 그 임기를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로써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헌법 수호 의무를 지는 대통령의 지위와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국민 신뢰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신인도 및 국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후보의 재판 날짜를 잡으면 권력을 총동원해서 팔을 비틀고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가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되지 않을 것 같으니 재판을 못하도록 법을 위헌적으로 뜯어고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유죄 판결을 한 대법원장이 보복 특검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눈앞에 와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헌법 제84조에 대해 “만사 때가 되면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된다. 법과 상식, 국민적 합리성을 가지고 상식대로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부질없다 헌법 제84조와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저마다 해석에 나섰지만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대선 이후로 연기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강신업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서 “(소추에 대한 정의는)대법원이 결정하면 그만인데, 만약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권한쟁의심판을 할 것이고 해당 문제는 헌재로 가게 된다”며 “(대통령이 된 이 대표가)두 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 헌재를 장악하는 수순이다. 결국 헌재는 대통령 편을 들 테니 사실상 그때 가서 헌법 제84조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달리는 이재명 대권 열차 대선 기간 동안은 사법 리스크 부담을 지우게 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본격적으로 민생·경제에 집중할 전망이다. 우선 이 후보는 지난 8일 경제5단체장을 만나 경제위기 극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이 후보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각 단체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내수 침체, 민생 경제 등을 논의했다.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12일부터는 ‘빛의 혁명’의 상징인 서울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 유세에 나선다. 한편 이 후보와 별개로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등 사법부를 겨냥한 전방위 공세를 이어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