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 '승부조작' 파문 끊이지 않는 이유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2.15 17: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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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손' 불법 스포츠토토가 '페어플레이' 좀먹는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작년 한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으로 홍역을 앓았던 국내 스포츠계에 지난 7일 배구선수 승부조작 가담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스포츠를 즐겨온 팬들에게 배신감을 더하고 있다. 주요 외신들도 이번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을 앞 다퉈 보도하며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게다가 최근엔 프로야구까지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폭로가 더해지면 국내 프로스포츠업계는 침몰 일보직전에 놓였다. 승부조작 사건의 이면에는 항상 ‘불법 스포츠토토’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돈 받고 패배’ 프로축구 이어서 프로배구·야구까지
"당혹스럽고 죄송하다"…가담 선수 영구제명 방침

스포츠계에 암암리에 퍼져있던 '악성종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지난 2010년 4월. 당시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몇몇 프로게이머 선수들이 일부 불법 배팅 사이트에서 돈을 받고 승부조작에 관여를 하지 않았을지 의심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e스포츠에서 시작된
'검은 거래' 유혹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조사결과 불법 배팅 사이트 관계자인 박모(25)씨가 조직폭력배인 김모씨와 함께 전?현직 코치나 감독, 은퇴한 프로게이머, 2군 선수들, 연습생에게까지 접근한 것으로 밝혀졌다. 코치진들에겐 엔트리 사전유출, 프로게이머에겐 고의로 경기를 질 것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2군 선수들이나 연습생에겐 출전하는 선수의 리플레이 파일을 빼돌릴 것을 요구했다.

승부조작에 매수된 프로게이머는 경기 전 전술을 미리 상대방에게 알려주거나, 경기 초반 우세를 유지하다 후반에 방어를 허술하게 해 역전되는 등의 방법을 주로 이용했다.

박씨와 김씨는 이러한 수법을 통해 11차례 승부를 조작하고 e스포츠 전문 불법 도박사이트에서 거액을 배팅해 총 1억4000만원의 배당금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브로커 박씨에게 징역 2년, 프로게이머 마재윤과 원종서에게 각각 징역 1년6월과 징역 2년형 및 추징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지난해 5월에는 K리그가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같은 달 창원지검 특수부는 프로축구 선수들을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게 한 뒤 스포츠복권에 거액의 돈을 걸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브로커 2명과 선수 2명을 구속했다.

이들이 검찰에 소환되자 K리그 비리가 속속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 중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김동현의 승부조작 개입은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결국 같은 달 30일 프로축구연맹은 승부조작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하는 등 사태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승부조작 연루 의혹을 받던 정종관이 자살하고 6월 연맹이 내놓은 자진신고제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했다.

승부조작 죄책감에
선수 · 감독 자살

그때까지 승부조작 혐의를 부인하던 공격수 최성국이 자진신고를 했고, 그 외에도 국가대표 출신 염동균과 이상덕 등 각 팀의 간판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알려졌다. 결국 지난해 10월에는 이수철 전 상무 감독의 자살까지 불러일으켰다.

창원지검이 K리그 승부조작과 관련해 기소한 전·현직 프로축구 선수는 59명. 지난해 7월 기준으로 K리그에 등록한 내국인 선수 603명의 10%에 이르는 광범위한 규모다.


연맹은 승부조작 관련자를 엄벌하며 후속조치에 나섰고 체육진흥투표권 발행사업자인 국민체육공단도 EWS(Early Warning System·조기경보시스템)을 통해 프로스포츠의 승부조작을 사전에 감지하고 예방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했다.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자진 신고한 최성국은 지난 9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200시간이 선고됐으며 나머지 실형을 받은 선수의 부모들은 ‘축구와 등불’이라는 봉사 모임을 만들어 자식 대신 속죄하고 있다.

불법 토토 사이트
신발 쇼핑몰로 위장

하지만 악성종양은 이들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전혀 제거되지 못했다. 프로축구 승부조작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프로배구에서 사건이 터졌다. 대구지검은 지난달 26일과 31일에 전직 선수 1명, 브로커 1명, 현직 선수 2명 등 총 4명을 구속한 데 이어 지난 8일 현역선수 2명을 추가로 체포했다.

검찰이 지난달부터 수사 중인 승부조작 경기는 지난 2010년 2월23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KEPCO와 현대캐피탈의 경기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8일 체포된 이들은 지난 시즌 경기에서 승부조작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KEPCO와 한국배구연맹은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사과하고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을 규정에 의해 엄격하게 처리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KEPCO 이외의 팀 선수들도 가담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선수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불과 2년 사이에 승부조작 사건이 3차례나 터지며 종양은 간단한 수술로 제거되지 않을 만큼 커져버렸다. 그렇다면 왜 이런 승부조작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걸까? 항상 승부조작 사건의 이면에서는 불법 스포츠 토토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합법적인 스포츠토토(www.sportstoto.co.kr)는 국내 스포츠 6개 종목(축구·야구·배구·농구·골프·씨름)을 대상경기로 하며 이번 승부조작사건이 발생한 배구종목에서는 2경기 또는 3경기의 경기별 최종 세트스코어와 1세트 점수차를 맞히는 '스페셜게임', 1경기의 1~3세트 세트별 승리팀과 점수차를 맞히는 '매치게임'을 배팅 상품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방문한 모 불법 토토 사이트에서는 e스포츠 리그를 포함한 국내 스포츠 종목과 해외 경기를 대상경기로 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경기결과 조차 알기 힘든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스라엘 내부 리그나 2부·3부 리그까지 대상경기로 삼고 있다.

불법 토토 사이트, 2~3일 한 번꼴 도메인 변경
프로배구 승부조작, 전·현역선수 브로커와 손잡아

배팅 상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농구에서는 '첫 3점슛' '첫 리바운드', 축구에서는 '첫 득점 및 실점', 배구에서는 '첫 블로킹' '첫 서브에이스'를 하는 선수를 맞히는 상품이 존재했다. 합법 토토 사이트에 비해 손쉽게 승부조작이 가능해 보였다. 적중 결과도 경기가 끝난 뒤 30분 내에 나와 중독성이 강하고 첫 금액 충전에 보너스 포인트를 얹어 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 스마트폰 전용 사이트까지 개설해 사람들의 접근성도 높였다. 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2~3일에 한 번꼴로 도메인주소와 입금계좌 변경을 안내하는 방식으로 사이트의 개설과 폐쇄를 반복하며 교묘하게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고 있다.

또 다른 불법 토토 사이트는 첫 접속 페이지를 여성 신발 온라인 쇼핑몰로 위장하고 추천인이 없으면 가입조차 할 수 없도록 했으며 전력차가 확실한 게임에서는 강팀에게 핸디캡을 주는 방식으로 배팅이 몰리지 않게 해 금액이 분산되도록 유도하는 상품도 존재했다.

국내에 서버를 두고 있는 불법 배팅 사이트의 경우 배팅금액은 100만원, 배당금액은 300만원을 넘지 못하지만 문제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사이트다. 이런 해외 사이트의 경우는 금액 제한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경찰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적발도 쉽지 않다.


지난 1월에는 유치원 홈페이지로 위장한 불법 배팅 사이트를 운영해온 부산 지역 폭력조직이 검찰에 적발됐으며, 이 사이트에서만 125억원 규모의 불법 배팅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지난해 6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불법 도박시장의 전체 규모는 50~70조원으로 파악됐다. 손쉬운 접근성을 앞세운 불법 온라인 배팅 사이트는 10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 배팅 사이트의 시장 규모는 체육진흥투표권의 연간 시장 규모 1조8000억원을 훌쩍 넘는 12조7400억원에 달했다.

이런 현상은 일확천금의 유혹에 불법과 탈법, 매수와 조작이 녹아든 '한탕주의'의 여파로 보인다. 또한 경기장 안에서는 페어플레이를 외치면서 밖에서는 더티플레이를 펼치고 있는 일부 선수들도 이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인 프로야구는 오는 4월 개막전을 앞두고 있다. 최근 프로야구에서는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플레이를 보일 경우 가차 없이 교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승부조작이 비교적 아려워 보이지만 여러 명의 선수가 가담하면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2008년 대만 프로야구에선 감독과 선수들이 연루된 승부조작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있으며 메이저리그에서도 1919년 월드시리즈 경기에서 이른바 '블랙삭스 스캔들' 사건이 발생했다. 1980년대에는 메이저리그 최다안타 기록 보유자 피트 레즈가 자신의 팀에 불법 배팅을 하다 적발돼 영구퇴출이라는 직격타를 맞았다.

야구·농구 승부조작
자유롭지 않다

내달 시즌을 마감하는 프로농구도 승부조작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농구의 경우 비교적 작은 코트에서 이뤄지는 경기이다 보니 승부조작 기미가 금방 눈에 띄지만 지난 2006년 동부 양경민이 자신의 경기 스포츠토토를 불법으로 대리구매 해 36경기 출장정지와 300만원의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와 관련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불법 스포츠 배팅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제는 불법 스포츠 사이트를 통해 배팅만 해도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문다.

또 불법 배팅 사이트 운영자와 승부조작 가담자의 경우는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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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