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인사 빼곡, 건설사 ‘뇌물 수첩’ 미스터리

메가톤 충격 담긴 ‘회장님 다이어리’

[일요시사=박민우 기자] 정·관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방발 ‘스폰서 살생부’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업체 오너가 작성한 이 리스트엔 그동안 접대한 인사들이 빼곡하다. 거액의 돈을 건넨 정황도 담겼다. 지검장을 낙마시킬 정도로 메가톤급 충격이 담긴 ‘회장님 다이어리’를 펼쳐봤다.

하도급 비리 수사 과정서 ‘스폰서 리스트’ 발견
수백만원씩 건넨 내역 메모…‘판도라 상자’ 덮나


신종대 대구지검장이 돌연 사표를 냈다. 신 전 지검장은 대구지검장 발령 2개월 만인 지난달 27일 사직했다. 지병을 앓고 있는 부모와 개인 건강 등 일신상의 이유로 물러났다는 게 검찰 설명. 하지만 신 전 지검장의 갑작스런 사퇴를 두고 뒷말이 많다. 금품수수 의혹으로 경찰의 내사를 받던 중이어서 더욱 그랬다.

전남지방경찰청은 지난 4월부터 건설업체 하도급 비리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도장전문업체 P사 K회장이 신 전 지검장에게 금품을 전달한 정황을 포착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2006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1400만원이 신 전 지검장 측에 넘어간 메모를 발견했다. K회장의 다이어리였다.

마당발 인맥 자랑

경찰은 이 메모를 근거로 6개월 동안 강도 높은 내사를 벌였다. 그러나 신 전 지검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경찰은 1400만원 가운데 확인된 금액이 90만원으로 소액이고, 공소 시효가 대부분 지난 데다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검찰 지휘를 받아 지난달 25일 최종 내사종결 처리했다.

경찰은 이튿날 K회장과 그의 사위이자 P사 대표, 경리사원 등 3명에 대해 최근 3년간 약 110억원 상당의 공사를 수주한 후 무면허 건설업자 23명에게 불법 재하도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신 전 지검장은 조용히 사표를 냈다.

이렇게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지만, 최근 K회장의 다이어리에 정·관계 인사들에게 금품을 전달한 내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경찰 안팎에선 메가톤급 충격이 담긴 다이어리가 공개될 경우 파장이 만만찮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 정·관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4월 불법 재하도급 비리를 수사하면서 K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13권의 다이어리를 압수했다. 문제는 이 다이어리에 이름을 올린 인사는 신 전 지검장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신 전 지검장 외에 정·관계 인사 4∼5명도 돈을 받은 것으로 적혀 있다. K회장이 신 전 지검장뿐만 아니라 정·관계 인사들에게도 금품을 건넸다는 정황이다.

경찰에 따르면 책상 달력 형태의 이 다이어리엔 2000년부터 K회장이 만난 사람, 장소, 시간, 금품 내역 등이 메모 형식으로 기록돼 있다. 여기엔 K회장이 이들에게 2000년부터 2006년 9월까지 수표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금품을 건넨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K회장과 리스트에 오른 정·관계 인사들의 계좌 100여개와 자기앞수표 2000여장 등을 추적한 결과 이같은 증거를 일부 확보했다.

나아가 관련 업계는 K회장이 평소 정치 쪽으로 마당발 인맥을 자랑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K회장의 ‘스폰서 다이어리’에 거물급 정치인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도 “K회장의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인사들은 신 전 지검장 말고도 한두명이 아니다”라며 “금품수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단 돈이 오간 표시는 돼 있다”고 귀띔했다.
K회장이 오너로 있는 P사는 1980년대 중반 설립된 회사로 연매출 수백억원대의
도장·방수 전문업체다. 서울과 전남 여수에 사무실이 있다. K회장은 P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2008년부터 경영을 사위 김씨에게 맡기고 대외 행보를 본격화했다. K회장이 정치권으로 발을 넓힌 것도 이때부터다.

K회장은 2007년 6월 김영삼 전 대통령 직계의 민주계 인사 200여명이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할 때 참여했다. 또 모 단체 고문을 맡으면서 정치권 인사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래서인지 K회장은 경찰 조사에서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명박을 지지한 김영삼 직계”라고 으스댔다는 후문이다.

경남 거제 출신인 K회장은 김 전 대통령과 동향이다. 신 전 지검장도 고향이 같다. ‘회장님 다이어리’에 올라있는 정·관계 인사 4∼5명 역시 K회장과 동향이거나 개인적 친분 관계가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K회장은 자신이 유명 정치인들과 친하다는 말을 주변에 자랑스럽게 하고 다녔다”며 “지금은 정계에서 은퇴한 정치인이 대부분이지만 현직에 있는 정치인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신 전 지검장과 마찬가지로 K회장이 돈을 건넨 것으로 표시된 인사들에 대해 내사를 벌였다. 뇌물수수, 배임,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 적용을 검토했다.

정치인들과 친분

내사 과정에서 모 사립대 교수 3명이 걸려들었다. 다이어리엔 이들이 2006년 K회장의 대학원 논문을 대신 써준 대가로 각각 수백만원씩을 K회장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경찰은 조만간 교수들을 불러 논문 대필 혐의에 대해 조사, 입건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경찰은 지방발 ‘살생부’에 오른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선 신 전 지검장처럼 내사 종결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시효가 모두 지난 데다 대가성 역시 입증하기 어렵다는 까닭에서다.

일부의 경우 단순히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의한 금품제공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또 금품이 전달된 시점에 정·관계 인사들이 현직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직무 내지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경찰은 소환조사 등 관련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 채 내사 종결해 부실수사란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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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