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바보’ 윤병소 마포경찰서 생활안전계장

“아내,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가 되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지하철 스크린도어. 그저 이용객들의 안전을 위해, 필요성을 느껴서 만들어졌겠지 하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스크린도어에 얽인 슬픈 사연을 알게 되기 전까지…. 서울지하철 전역에 생명을 지키는 안전한 문, 스크린도어가 탄생하게 되기까진 경찰관 아내의 억울한 죽음이 있었고, 또 억울하게 아내를 잃은 한 경찰관의 외로운 노력이 있었다. 사건발생 8년, 결코 헛되지 않았던 아내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펜을 든 남자. 서울마포경찰서 생활안전계장 윤병소 경감이다. 윤 경감은 가슴 속에 담아온 아내 이야기를 수필로 엮었고, 이 작품으로 제12회 경찰문화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지난 1일 마포경찰서에서 기자와 만난 윤 경감은 “모든 것은 세월이 흐르면 잊히기 마련이지만 이 글이 아내에게 위로가 되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지하철역서 아내 잃은 윤 경감, 소송·탄원서 내며 스크린도어 세우기 앞장
아내 이야기 담아 써내려간 수필, 2011년 제12회 경찰문화대전 동상 수상


2003년 6월 26일 오전 10시 7분, 윤병소 경감의 부인 안상란(당시42세)씨는 회현역 3-4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대문시장 의류상가에서 숙녀복 매장을 운영하던 안씨는 밤샘 장사를 마치고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원단을 끊으러 가던 길이었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전동차가 역 구내로 들어와 안씨에게 다다른 순간, 노숙자 이모씨가 안씨의 등을 뒤에서 거칠게 밀었다.

무방비상태로 떠밀린 안씨는 전동차 앞부분과 부딪히며 선로 위로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전동차가 안씨를 덮쳤고, 33톤 무게의 전동차의 왼쪽바퀴가 안씨의 등 위로 지나갔다. 안씨는 가슴부위와 팔이 절단된 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내 희생이 만들어 낸 ‘결실’

당시 윤 경감은 종로3가역 지하철 경찰대의 형사반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야간 당직근무를 마치고 아내와 만나 집에 들어 갈 생각에 아내가 간다고 했던 동대문시장 원단가게로 먼저 향하던 길이었다. 도착해서 반복적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내가 받지 않자, ‘손님들과 이야기가 길어지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경기도 일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전화로 “아내가 사고를 당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통화를 나누던 아내였는데….

믿을 수 없었다.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아 아내와 마주했다. 온통 피로 범벅이 된 아내의 얼굴을 본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내의 입술에, 이마에 키스를 했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아내의 얼굴 위로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윤 경감과 안씨는 유난히 부부금슬이 좋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안씨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좋아하고, 먼 훗날 양로원과 고아원을 차리겠다는 꿈을 키워오던 정 많던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한 때 영화배우를 꿈꿀 만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데다 애교까지 많아 윤 경감에게 있어 만점짜리 부인이었다. 

윤 경감은 아내의 장례를 치른 뒤 사고역을 관할하는 서울지하철공사에 승강장 안전시설인 ‘스크린도어’ 설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내 아내의 희생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설치로 인명피해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각 언론사에 보냈다.

“당시 지하철 승강장은 승객들이 추락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무서운 공간이었어요. 지하철 수사대에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승강장에서 추락 또는 투신하여 토막이 난 채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괴로워했었는데, 내 아내의 희생을 계기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가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임무라고 생각했죠.”

안씨를 숨지게 한 노숙자 이씨는 살인죄로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2003년 8월 윤 경감은 서울메트로를 상대로 승강장에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약 3백 페이지 분량의 증거자료를 생산해 재판부에 꾸준히 제출했다. 그 결과 2년 반 뒤인 2005년 12월 서울메트로가 2억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시민의 생명과 신체 기본권을 보호하도록 공기업의 의무를 강조하는 ‘적극적인 판결’의 판례가 됨과 동시에 오늘날 서울지하철 승강장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게 된 법적 근거가 되었다.

이후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 설치된 스크린도어 첫 가동을 시작으로 2009년 12월 31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구간을 제외한 서울지하철 265개 역 모든 승강장에 스크린도어 설치가 완료됐다.

“지하철역에서서 ‘문이 열리고 닫혔다’하는 스크린도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아내를 보는 기분이에요. 진작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었더라면 저도 지금 쯤 아이들과 아내와 행복했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고요. 하지만 이제라도 설치가 되어서 이용객들이 안전하게 승·하차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지요. 아내가 떠난 그 자리에 서울 시민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스크린도어가 우뚝 서 있으니 다시는 그런 불행이 없을 테니까요.”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지만, 하늘나라로 떠난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의 흔적이 그리워 이사를 했고, 지하철만 봐도 마음이 아파 수년간 타지 못하다 근래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요”

가슴에 큰 멍 하나를 안은 채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윤 경감의 마음속에 아내 안씨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그대로다. 윤 경감은 그런 아내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 아내의 이야기를 수필로 써내려갔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글로 위로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글로라도 억울하게 하늘나라로 떠난 제 아내의 영혼을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윤 경감이 완성한 <아내,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되다>라는 제목의 수필은 경찰청이 주관한 2011년도 제 12회 경찰문화대전에서 동상을 차지했다. 윤 경감의 작품을 심사한 한 심사위원은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 심사했다”는 심사평을 남기기도 했다.

동료직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마포경찰서 내부 통신망에 수상한 글을 올리자 “글을 읽고 가슴이 미어져온다”, “별 생각 없이 이용하는 스크린도어에 저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 스크린도어 설치에 앞장서신 계장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고귀한 희생을 기리며 일상에서 열심히 살겠다” 등 수 백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런 응원에 힘입어 윤 경감은 4년 남은 정년까지 최선을 다해 마무리를 한 뒤 아내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끝으로 윤 경감은 “경기도 인구가 서울 인구보다 13.4% 더 많고 경기지역 전철역은 서울의 62.28% 수준이다”라며 “코레일 관할구역인 경기지역 전철 구간 승강장에도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는 안전한 문, 스크린도어 설치가 하루빨리 완료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삶의 한 부분은 어떤 이의 희생이 바탕이 된다. ‘희생’이야 말로 희망이라는 싹을 틔우는 거름이라는 사실을 그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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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