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임금체불 업체 명단

월급 안주고 튄 사장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고용노동부에서는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임금을 체불해 2회 이상 유죄를 선고받고 체불총액이 3000만원 이상인 체불사업주들. 이 중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는 10곳은 어디일까?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제43조의2 및 같은 법 시행령 제23조의3에 의거, 명단공개기준일 이전 3년 이내의 임금 등을 체불해 2회 이상 유죄가 확정된 자로서 체불총액이 3000만원 이상인 체불사업주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또한 공공·민간고용포털에도 임금체불사업체 명단을 연계해 해당 사업주가 운영하는 기업들의 구인활동을 제한한다.

평균 1억 육박

2018년 임금체불 사업주 2차 명단에서 임금체불 사업주는 모두 1151명에 이른다. 상습 체불기업 1곳당 평균 체불액도 올 들어 급격히 높아졌다. 

고용노동부가 처음 명단을 공개한 2015년 1차 공개 당시 기업 1곳당 체불액은 평균 7480만원이었으며 같은 해 2차 공개에서는 6975만원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 기업 1곳당 체불액은 1차 명단공개에서는 평균 9886만원, 2차는 8775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임금체불이 가장 많은 곳는 대구에 위치한 가야기독병원으로 체불액은 37억3116만9749원에 달했다. 가야기독병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올해 갑자기 순위권에 들어섰고 2015년 경매로 넘어갔다. 당시 3명의 임차인이 있었지만 모두 대항력이 없었다. 


한 기업정보 사이트에 등록돼있는 정보에는 종합병원, 일반병원, 요양병원 사업을 하는 기업이며 자본금은 25억110만원 매출액은 130억6763만원 사원수는 150명으로 나와 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체불사업주 강모씨에게 명단공개 및 임금 등 체불자료 제공 대상 체불사업주에게 예고통지서를 3차례 이상 발송했으나 수취인불명 등의 사유로 반송됐다.

두 번째는 신도건설, 체불액은 23억9570만4328원이다. 신도건설은 오래전부터 뒷말이 많았던 회사다. 하청업체를 시켜 현장서 자재를 빼돌린 뒤 대표이사 개인집을 지은 사실이 밝혀지는가 하면 광범위하게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의정부에 본사를 둔 신도건설은 2009년 4월3일 신용위험평가 결과 C등급을 받았다. 직원들에게도 상당액의 급여와 퇴직금이 체불돼있는 상태서 100억원대로 추정되는 건물을 경민학원에 무상증여한 사실이 밝혀지는 등 계속해서 물의를 빚었다.

세 번째는 전주 시내버스 업체 중 하나인 신성여객, 체불액은 14억9995만5613원이다. 신성여객 한모 회장을 비롯한 3인의 임원은 시내버스 현금 수입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한 직원은 “신성여객은 지난 수년 간 경영악화를 핑계로 수시로 임금을 체불했고 이로 인해 빚어진 노사갈등은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큰 피해와 불편을 안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성여객 임원들의 범죄가액은 10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네 번째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아웃소싱 업체 코스모리치, 체불액은 12억7431만1652원이다. 이 회사 대표 이모씨는 지난 2012년 고용창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 단체로부터 ‘공로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는 12억7000만원의 임금을 체불한 뒤 자취를 감췄다. 코스모리치 회사 대표번호는 유명 패스트푸드 점포 번호로 바뀌었다.


그 뒤로 전북 군산의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도영이 체불액 9억1724만5795원으로 뒤를 이었고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해담은세상 7억6463만703원, 경북 구미의 백산중공업㈜ 5억9381만6806원, 경기 포천에 있는 ㈜정우텍스타일 5억8761만5694원, 경기 부천에 위치한 ㈜구룡물류 5억366만1414원, 경기 안산시의 하스㈜ 4억4890만7560원 순이다.

지역별로 살펴 보면 제주 지역이 4개 기업이 총 3억6900만원을 체불, 소재 기업의 1곳당 체불액수가 9236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광주·전라 90220만원, 부산·경상 80419만원의 순으로 높았다. 이어 서울 70685만원, 인천·경기 70453만원 등 수도권의 기업당 체불액도 적지 않게 집계됐다. 대전·충청 지역 기업당 체불액은 70295만원으로 비교적 낮았으며 강원 지역이 50680만원으로 가장 낮았다.

사업주 1151명 블랙리스트에 올라
2회 이상 유죄 3000만원 이상 밀려

명단이 공개된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 5명 중 3명은 수도권에서 사업체를 운영 중이었다. 

알바몬이 공개 명단을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서울과 인천·경기가 각 359건(31.2%)로 전체 명단의 약 62%에 달했다. 이어 부산·경상 263건(22.8%), 광주·전라 및 대전·충청 각 78건(6.8%)의 순으로 이어졌다.

한편 명단이 공개된 상습 체불업주 1151명이 체불한 총 금액은 무려 903억여원에 달했다. 2015년 1차 공개 이래 2018년 2차 공개시점까지 공개된 지역별 총 체불액수는 서울 지역이 275억890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2위는 인천·경기(267억5700만원), 3위는 부산·경상(221억4200만원)의 순이었다. 광주·전라(71억9200만원), 대전·충청(56억9000만원)도 적지 않은 체불액을 기록했다.

고용노동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영세사업주의 폐업과 근로시간 단축제 시행 등 정부 정책도 임금체불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이 지난해에 비해 16.4% 오르면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폐업이 증가하고 근로자들이 임금을 제대로 못받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부는 이처럼 임금체불을 막기 위해 매년 고액·상습 체불사업주의 명단을 공개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지만 오히려 임금체불액은 증가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근로감독관을 대폭 늘리는 등 관리감독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각에서는 체불사업주에 대한 검찰의 가벼운 처벌을 보다 무겁게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임금체불이 크게 증가한 것은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영세사업자의 부담 증가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임금체불은 근로자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당국이 악덕사업주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등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최근 경기침체와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으로 부득이하게 임금체불을 하게 된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어 이를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다만 정부의 임금체불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영세한 사업주의 부담을 더 늘린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크게 인상되는 만큼 최저임금 위반 단속에만 몰두할 경우 경영난 악화와 체불임금 확대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속과 처벌만을 강화하기보다는 노동법에 대한 사업주의 인식 개선과 경기활성화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범정부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 정책 때문?

고용부 관계자는 “예년에 비해 추가적인 감독이 이뤄진 데다 최저임금 취약업종 중심으로 감독이 실시됨에 따라 지난해보다 법 위반 적발 업체수가 증가했다”면서도 “취약사업장 대상 감독임을 감안해 단속·처벌 위주보다 계도 중심으로 감독을 실시함으로써 최저임금 위반으로 처벌된 건수는 오히려 감소한 만큼 올해 하반기에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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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