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개혁의 선구자’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

돛 올린 ‘박원순호’ 정치 개혁 이뤄낼까?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당선됐다. 시민후보였던 박 시장의 당선은 그간 이념갈등과 지역갈등을 부추긴 낡은 정치판에 대한 민심의 엄중한 경고로 보여진다. 압도적인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박 시장. 그는 과연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정치권의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안풍’ 등에 업고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비상
당선 기쁨은 잠시 서울시정 해결 과제 ‘산더미’ 

‘안풍’을 등에 업고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비상했다. 여야가 사활을 걸고 뛰어든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 시장이 당선된 것. 박 시장은 지난달 27일 당선소감에서 “서울시민의 승리를 엄숙히 선언한다”며 “시민은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다. 상식과 원칙이 이겼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은 “지난 1995년 시민의 손으로 서울시장을 직접 뽑은 이래 26년 만에 드디어 이번 선거에서 시민이 시장이다”면서 “민주주의 정신을 완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민들 삶 곳곳의 아픔과 상처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라며 “시민의 편에 서서 시민이 가라는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당선의 기쁨도 잠시. 박 시장이 오는 2014년 6월까지 2년8개월 간 이끌어갈 서울시정은 결코 녹록치만은 않다. 박 시장은 범야권 단일후보로 서울시 입성에는 성공했지만 무소속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2/3 정도를 차지하는 서울시의회와의 관계정립이 무엇보다 절실해 보인다.

“시민 편에 서서
상처 보듬을 것”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경우 무상급식 문제와 한강 르네상스 등 디자인 서울의 핵심 정책들이 사사건건 시의회와의 갈등으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재 민선 5기 서울시 구청장은 전체 25명 가운데 4명만이 한나라당이고 나머지 21명은 민주당 소속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도 106명 중 한나라당 소속은 27명인 반면, 무려 79명의 의원이 민주당 배지를 달고 있어 정책을 펴는데 절대적 협조와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오는 10일까지 의회에 제출해야할 내년도 예산문제가 급선무이다. 우선 현재 4학년까지 시행하고 있는 무상급식 예산을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떤 재원으로 5·6학년까지 늘릴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이미 695억원의 무상급식 예산을 책정해 놓아 서울시가 집행만 하면 되지만 오는 2014년까지 초·중학교 전 학년에게 무상급식을 확대하려는 그에게 재원조달 방안은 과제로 남게 될 전망이다.

또 선거과정에서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 전시성 사업을 모두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많은 예산을 들여 진행 중인 사업들을 세부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지도 고민거리다. 박 시장은 “전시성 사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향후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살펴보겠지만 ‘중단’ 쪽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 상태다.

박 시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임기 중 7조원의 부채를 줄여야 하고 일자리 창출, 그리고 서민을 위해 약속한 임대주택 8만호를 건설해야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 소통과 공감을 중시해 온 박 시장이 향후 시공무원들과 동반자로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후보자 펀드’로
새로운 선거문화


박 시장은 당초 서울시장 출마 당시 지지율이 4-5%대의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후보단일화로 40∼50%대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막강한 후보로 떠올랐다.

안 원장은 지난달 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박 시장과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오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만나 그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고 시민사회운동을 꽃피운 그가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당시 한나라당 관계자는 “안철수 원장의 40%에 육박하는 지지층 가운데는 보수성향의 사람들도 많았다”며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단일화를 했다고 해서 박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을 뒤엎고 박 시장은 탄탄한 정당 조직력을 갖춘 여야의 후보들을 맥없이 무너뜨리며 60년 정당정치의 역사에 굴욕을 안겨줬다.

재보선에 앞서 범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는 민주당의 탄탄한 조직표를 내세운 박영선 후보를 눌렀다. 이어 지난달 26일 치러진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 지도부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가세하며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받은 나경원 후보마저 꺾었다. 53.40%의 득표율로 46.21%의 득표율을 얻은 나 후보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

그간 국민들은 현 정권 인사의 측근비리와 낙하신 인사실태 등 부패하고 부조리한 정치판에 불신과 혐오를 느꼈던 게 사실이다. 이 같은 구태의연한 정치판을 국민 스스로가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번 선거에서 시민후보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박 시장의 당선으로 시민세력은 그 영향력을 입증 받게 됐다. 때문에 그간 민심을 등돌리게 만들었던 낡은 정치판에 대대적인 쇄신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박원순 펀드’로 깨끗한 선거문화 정착에 앞장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운동 1세대 선두주자

특히 박 시장은 서울시장 재보선의 법정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유시민 펀드’를 벤치마킹해 ‘박원순 펀드’로 선거비용을 모았다. 지난 9월26일 정오부터 개설된 계좌는 47시간 만에 목표액 45억 가량을 모으는 진기록을 남기면서 마감했다.

박원순 펀드는 박 시장 선거캠프 측에서 약정액을 입금하면 원금과 일정액의 이자를 돌려주는 형식으로 고안한 펀드로 ‘정치자금을 시민으로부터 끌어 쓴다’라는 기본개념을 가지고 마련된 안이었다. 현역 정치인이 아닌 후보는 후보자 등록 신청일까지 후원회를 할 수 없다는 선거법 때문에 만들어진 특단의 대책이었던 것.

그간 정치자금법 규정에 따라 후보등록 전에는 후원회를 둘 수 없는 현실적 한계점에 따라 번번이 정계 진출을 포기했던 정치신인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준 셈이다.

사실상 그동안 기존 정치인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재산과 후원금으로 선거를 치렀었다. 이에 반해 박원순 펀드는 젊은 정치신인들에게 ‘돈 없어도 정치할 수 있다’는 모범적 선례를 남기게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또 판매결과에 따라 후보의 역량을 홍보할 수 있고 선거 초기 바람몰이에도 효과적이어서 일석삼조의 특효가 입증됐다. 게다가 선거자금을 투명하게 모아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로 새로운 선거문화를 장착시키고 있다.

특히 박 시장은 국내 대표 진보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만든 시민운동 1세대 선두주자다. 박 시장은 오랜 기간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한 점을 높게 평가 받아 지난 200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시장은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1975년 서울대 1학년 재학시절,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고 김상진 열사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제적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로 적을 옮겼다.

유학생활 중
시민운동 눈떠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을 12기로 수료하면서 법조계에 입문한 박 시장은 대구지검에서 짧은 검사생활을 한 뒤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 권인숙 성고문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박 시장은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1991년 돌연 유학길에 올라 2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 1994년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참여연대를 창립, 사무처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소액주주운동 등을 성공시키며 우리 사회의 ‘1세대 시민운동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지난 2000년에는 8년간 몸담았던 참여연대를 떠나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면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또 2001년에는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하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를 지냈다.

안 원장이 ‘마음 속 응원자’라며 애정을 나타내며 후보직을 양보할 만큼 깊은 친분을 키운 것은 아름다운가게의 사회공헌 활동이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름다운재단이 본궤도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21세기 실학운동’을 기치로 ‘희망제작소’를 설립하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목표로 활동을 벌여왔다.

한때 대권 후보로 거론될 만큼 정치권의 영입 제의도 잇따랐지만 박 시장은 그간 시민사회 진영의 울타리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시장 당선으로 정치권의 새로운 ‘핵’으로 등장했다.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박 시장은 과연 정치권의 혐오와 불신을 종식시켜 정치판 개혁에도 앞장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프로필>

▲ 1956년 3월2일 경남 창녕 출생
▲ 경기고 졸업
▲ 단국대 사학과 졸업
▲ 사법시험 22회
▲ 대구지검 검사
▲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
▲ 참여연대 사무처장
▲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공동대표
▲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 아름다운재단 및 가게 총괄상임이사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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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