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97)사생결단

계백, 죽기를 각오하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목숨만은.”

“무어라. 이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 목숨을 구걸한다는 말이냐!”

“장군, 제발 용서해주시오!”

양팔이 묶인 상태서 두 사람이 급히 상체를 굽혀 계백의 발치에 머리를 조아렸다. 계백이 칼끝으로 중상의 턱을 들어올렸다.

얼굴에 눈물인지 콧물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물질이 가득 묻어 있었다. 뒤이어 상영의 얼굴을 들어올리자 마찬가지였다.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

계백의 외침

말과 동시에 계백의 칼이 햇빛에 반짝였다.

누가 먼저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순식간에 몸통을 잃은 두 개의 머리가 땅바닥에 뒹굴었다.

“이 두 놈의 머리를 장대에 매달아 조상께서 볼 수 있도록 하라!”

두 명의 병사가 달려들어 수급을 가져갔다.

“백제 병사들이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자고로 사내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두려워해야 한다. 아울러 조상들께 우리의 당당한 모습, 백제는 영원히 패할 수 없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계백의 외침에 병사들이 더욱 숙연한 모습을 보였다.

“백제 병사들이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라!”

순간 고함이 하늘로 울려 퍼졌고 병사들의 병장기에 반사된 햇빛이 급격하게 태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의 대군이 황산벌에 도착하자 척후병의 보고대로 강을 뒤에 두고 백제 군사들이 세 개의 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를 살피던 유신이 급하게 진을 구축하도록 지시했다.   

“대장군, 바로 공격하지 않습니까?”

흠춘이 유신에게 바짝 다가섰다.

“백제군의 진을 살펴보게.”

여러 장수들이 유신의 말에 따라 백제 진영을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이 전장에서 반드시 죽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러하오. 퇴로가 없는 지점에 진을 친 형세로 보아 반드시 사생결단하겠다는 의미로 보이오. 그러니 진을 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오.”

품일의 말에 유신이 여러 장수들의 면면을 훑었다.


“대장군, 진을 치는 동안 소장이 적의 전력을 탐색해보겠습니다.”

흠춘이 앞으로 나서자 유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여차하면 곧바로 돌아오게.”

전열을 정비한 흠춘이 서서히 백제군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살피던 백제 진영에서 계백이 말에 올라 깃발을 든 병사를 대동하고 진지를 나와 세 개의 진 모두에서 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백제 병사들이여!”


계백의 외침에 백제군이 함성으로 답했다.

“지금 쥐새끼 같은 신라군이 오만의 병력으로 백제를 멸하기 위해 이곳에 도착하였다. 우리 백제가 저 놈들에게 패하고 말 것인가!”

다시 북소리와 고함이 진동했다.  

“당나라 이전에 춘추시대 말기에 월(越)나라 왕으로 구천이란 자가 있었다. 구천은 단지 오천 명의 군사로 오(吳)나라의 칠십만 대군을 물리쳤다. 이는 전장에서 숫자는 아무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또한 바로 우리가 백제의 오천 결사대다.”

말을 멈춘 계백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만치서 신라의 군사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백제 병사들이여! 신라의 쥐새끼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황천으로 보내도록 하라!”

백제 군사들의 모습을 살핀 계백이 곧바로 신라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살피던 백제 병사들이 마치 선두 다툼을 벌이듯이 진에서 뛰쳐나와 계백의 뒤를 따랐다.

흠춘이 깃발을 들린 병사와 함께 달려 나오는 계백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진군을 멈추었다.

그 상태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있는 낮은 둔덕 뒤에서 금방이라도 백제 군사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백제군, 퇴로가 없는 지점에 진을 치다
연이어 패배하는 신라군…기백의 차이

다시 시선을 달려오는 계백에게 주었다.

그 뒤로 백제 군사들이 노도처럼 따랐다.

경계심이 갑자기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돌려 신라 진영을 바라보았다.

진을 치는 병사들이 자신의 부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진퇴양난의 지경에 빠졌다는 생각으로 다시 백제 군사들의 모습을 주시했다.

어느 사이 바로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급히 전열을 가다듬고 백제군을 맞이했으나 이미 사기가 꺾인 상태서 그야말로 백제군의 전력을 양념 맛보듯 대처하다 다수의 희생자를 내고 이내 물러났다.

그를 살피던 백제군들이 함성을 지르며 진지로 복귀하는 시점에 흠춘이 신라 진영에 도착했다.

“어떤가?”

“저놈들 완전히 죽기로 작정한 듯 보입니다. 아울러 이 전투 쉽게 끝나지 않을 듯합니다.”

유신이 가벼이 혀를 차고는 품일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소장이 출전해보겠소.”

시선의 의미를 살핀 품일이 당당하게 나서자 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품일이 아직도 숨이 고르지 못한 흠춘의 얼굴을 흘낏 바라보고는 자신의 군사들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진군을 서둘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금 전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었고 품일 역시 허겁지겁 퇴각했다.

유신이 재차에 걸쳐 신라군을 보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밤이 깊은 시간 자신의 막사에 들어 고민하던 유신이 흠춘과 품일을 은밀하게 불러들였다.

“이미 겪어봐서 알겠지만 저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있소.”

“백제군 모두 마치 야차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 두 분 장군을 불렀소.”

“말씀 하시지요.”

“신라군의 사기에 관한 일이오”

“방법이 있습니까?”

유신과 말을 이어가던 품일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물론 방법은 있소. 하지만 그 방법이란 희생이 반드시 수반되게 되어 있소.”

희생을 되뇌던 품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알겠소, 대장군. 백제군에 패해 돌아온 소장의 죄가 크지 않다 할 수 없소. 그러니 소장이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죽기를 각오하고 혈전을 불사하겠소.”

품일의 상기된 표정을 살피며 유신이 가볍게 혀를 찼다.

“왜 그러십니까?”

“설령 장군이 혈전을 벌이다 전사했다고 쳐 봅시다. 그런 경우 신라군의 사기가 올라가겠소?”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지요. 오히려 백제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꼴만 되고 말지요.”

흠춘 역시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죽기로 작정”

“누가 죽느냐의 문제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듯 품일과 흠춘이 서로의 얼굴을 주시했다.        

“대장군, 시원하게 말씀 주십시오!”

품일이 답답한지 목소리를 높였다.

“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겠소. 장군들의 아들들을 희생시킵시다.”

“소장의 아들을 말이오!”

둘이 동시에 반응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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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