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96)결사

드디어 황산벌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그거 참.”

짧게 탄식을 내뱉은 유신이 지나쳐 온 길을 돌아보았다.

“백제 놈들 이미 포기한 거 아닐까요?”

“이 좋은 지점에 군사를 배치하지 않은 상태로 보아 그렇게 보아도 무방할 듯합니다.”

흠춘과 품일 역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주거니 받거니 말을 이었다.


“워낙에 간사한 놈들이라 무슨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여기서부터 척후조를 먼저 내보내면서 신속하게 이동합시다.”

의아한 신라군

유신의 명에 따라 십여 명의 병사로 하여금 척후조를 구성하여 급하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했다. 척후조를 보내고 진군에 속도를 더하여 가는 중에 척후병이 달려왔다.

“대장군, 백제의 군사들이 황산(黃山, 충남 논산 연산면 일대) 벌판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들판에 말이더냐?”

“그러하옵니다.”

“병력은 어느 정도 되어 보이느냐?”


“어림잡아 한 오천여 명 정도 되어 보입니다.”

“오천여 명으로 들판에!”

유신이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곁에 있는 품일과 흠춘을 바라보자 그들 역시 믿기지 않는지 서로의 얼굴을 주시했다.

“대장군, 무슨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전술상으로 살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오천의 군사로 오만에 이르는 신라의 대군과 들판에서 일전을 치루겠다는 발상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들이 진을 친 장소를 상세히 말해보거라.”

“황산 벌판 뒤로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이라. 그러면 결국 배수진을 쳤다는 말이로고.”

유신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혹시 백제군 장수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계백이란 이름이 깃발에 적혀 있었습니다.”  

“계백!”


외마디 소리를 지른 유신이 흠춘과 품일을 바라보았다.

“아는 자입니까?”

품일의 질문에 지난 시절 자신의 곁에서 계백의 화살에 목을 맞아 쓰러졌던 부장을 떠올렸다.

“결코 쉽지 않은 전투가 되겠구려.”

계백이 황산벌에 세 개의 진을 치고 중앙에 위치한 진의 막사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에 중상과 상영이 들어왔다.

“두 분이 어인 일입니까?”


계백이 건성으로 그들을 맞이하며 자리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둘은 자리에 앉을 생각도 않고 멀뚱한 표정을 지으며 계백을 주시했다.

“왜 그러시오?”

“왜나마나 지금 신라의 대군이 침현을 지나 이리로 쳐들어오고 있다는데 장군은 준비하지 않고 뭐하는 게요?”

“침현으로 달려가서 신라군과 일전을 벌이오리까?”

“그곳에 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군사를 이동해서 적절한 지점을 찾아 적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일 없소.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동안 휴식 취하면서 기다리다 이곳에서 신라군을 맞이할 것이오.”

“이 벌판에서 오만의 신라군을 맞이한다는 이야기요?”기어코 중상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차피 죽을 목숨 당당하게 죽어야지 않겠소?”

“죽다니!”

김유신, 5만 병력으로 황산벌 진격
계백 백제군 앞서 중상·상영 베다

죽는다는 소리에 상영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이미 백제는 기울었고, 단지 시간 문제지 조만간 신라와 당나라에 의해 점령당할 터요. 그러니 당연히 나라와 명을 함께해야지요.”

남의 일 말하듯 건성으로 답하는 계백의 표정을 살피며 두 사람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왜, 죽는 게 겁나시오?”

“이리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요.”

“당연하고 말고요.”

기어가는 소리로 답한 두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는 게요?”

“이곳은 장군에게 맡기고 우리는 궁으로 돌아가 전하를 보필하는 게 이로울 것 같소.”

“전하를 보필한다, 어떻게 말이오!”

계백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여하튼 전하와 함께하겠소.”

막 걸음을 떼는 순간 계백이 칼로 탁자를 내리쳤다.

“이런 쥐새끼들 같으니라고. 내가 왜 네놈들을 이 전장으로 끌고 들어왔는지 아직도 모르는 게냐!”

계백의 돌연한 변화에 둘의 동작이 동시에 멈추었다.

“밖에 누구 없느냐!”

계백의 외침에 병사 여러 명이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

“이 두 놈을 포박하라!”

“장군, 그 무슨 소리요!”

갑작스럽게 변한 상황에 두 사람의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변해갔다.

“백제의 멸망을 가져온 네 두 놈을 제물로 삼아 조상들께 이 사실을 고하련다. 그래서 내가 애초에 네 놈들을 이리 끌어들인 게다. 알겠느냐!”

계백의 고함에 병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여 둘을 포박하였고, 움직이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두 사람을 개 끌듯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를 살피며 계백이 복장을 가지런히 하고 칼을 들고 막사를 나섰다.

“백제의 모든 병사들을 이곳으로 소집하도록 하라.”

계백의 명령에 따라 좌우 진에 있던 병사들이 가운데로 운집하여 정렬을 끝내자 둘을 끌고 병사들의 한 가운데로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병사들이 거리를 두게 되자 정 중앙에 계백과 포박당한 두 사람이 자리하게 되었다.

“백제 병사들이여!”

계백의 고함 소리에 병사들이 계백을 연호했다.

“나 계백은 결코 살아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다. 아니 돌아갈 곳도 없다.”

갑자기 백제 군사들이 숙연해졌다. 

이미 계백이 자신의 식구들을 죽이고 출전한 사실을 알고 있던 터였다.

“나 계백과 또 백제와 운명을 함께하고 싶지 않은 군사들은 지금 바로 뒤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라!”

이어 어정쩡한 모습으로 백제군을 살피는 중상과 상영의 발목을 전광석화처럼 칼로 베었다. 

순간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그 상태에 이르러 사방을 살펴보았다. 어느 한 사람의 이동도 보이지 않았다.

“백제 병사들이여, 고맙고도 고맙다.”

계백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장군, 저희는 장군과 마지막을 함께하렵니다.”

정렬해 있던 부대에서 한 명의 병사가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꿇고 외쳐대자 모든 병사들이 따라 했다.

백제와 함께…

“고맙다, 백제 병사들이여.”

잠시 침묵을 지키며 병사들의 모습을 찬찬히 훑던 계백이 중상과 상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 계백은 전투에 앞서 이 두 간신 놈들의 피로 조상들께 우리의 처참한 현실을 고하려 한다.”

계백의 말이 끝나자 중상과 상영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장군, 제발.”

“제발 무어란 말이냐. 이제는 그 간사한 세치 혀가 굳기라도 했느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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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