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떨어진 IT거성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

글로벌 IT업계 큰 별, 전설 속으로 사라지다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글로벌 IT업계의 큰 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등졌다. 애플 CEO에서 물러난 지 불과 40여일 만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는 비통에 잠겼다. 각계각층의 조문행렬이 줄을 이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면서도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면서(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자신의 신념에 따라 치열한 삶을 살다 떠난 잡스. 그가 걸어온 굴곡진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미혼 동거 커플 사이에서 태어나 1주일 만에 입양
비행청소년→대학 중퇴→애플 창업→IT업계 큰 별


스티브 잡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원생 동거 커플인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의 아버지 압둘파타 존 잔달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1주일 후 학교를 다니고 있던 그의 어머니에 의해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의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잡스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자주 빼 먹는 비행청소년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돈과 사탕으로 구슬려 겨우 학교생활을 했다. 그런 잡스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건 히스키트라는 아마추어 전자공학 키트를 얻은 순간이었다. 이 덕분에 잡스는 어려서부터 전자제품의 작동원리를 익히게 됐다.

대학교 중퇴 후
18개월 간 청강

197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잡스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리드대학교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1학기만 수강한 후 중퇴했다. 부모님들이 비싼 학비를 내주는 게 부담스러워서였다. 하지만 중퇴 후에도 잡스는 18개월 동안 학교에 머물면서 여러 강좌를 들었다. 특히 글자를 다루는 시각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수업은 이후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면서 수려한 글자체를 만들어 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대학을 중퇴한 직후에는 컴퓨터게임회사인 아타리에 취직했지만, 사실상 전자공학이나 컴퓨터에 대한 그의 지식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탁월한 직관을 지닌 몽상가였고, ‘잔머리 굴리기’에 능숙한 수완가였으며, 이런 성격은 훗날 그의 성공과 실패 모두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동업해 애플 컴퓨터를 설립했다. 여기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1을 공개했다. 애플1은 모니터도 없고 디자인도 투박했으나 의외로 큰 반응을 보이며 판매에 성공했다.

이어 출시한 ‘애플2’는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일종의 비싼 장난감 정도로만 여겨지던 PC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며 ‘애플신화’를 일궈냈다. 창립 4년 뒤인 1980년, 잡스는 PC 100만대 판매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단숨에 거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1981년에 IBM 사에서 ‘PC(Personal Computer)’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애플2의 독주가 위협받기 시작했다. IBM PC 시리즈의 최대 특징은 바로 완전한 공개형 아키텍처(Architecture: 시스템 전반의 구조 및 설계방식)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때문에 IBM 외의 제조사에서도 이와 완전히 호환되는 PC 본체 및 주변기기,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설계, 생산할 수 있었다. 애플2도 호환 기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애플에서 저작권을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애플2 호환 기종의 대부분은 비공식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이런 애플2의 호환 기종들은 법적, 성능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1982년 새해에 잡스는 20대의 거부로 <타임>지 표지에 등장하며 명성이 절정에 달했지만, ‘사과’는 속부터 곪아가고 있었다. 물론 애플의 핵심은 잡스와 워즈였지만,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는 외부 자본과 인력이 필요했으며 그로 인해 여러 가지 갈등도 불가피했다. 잡스의 성공 요인이었던 특유의 오만과 고집은 이제 내실을 기해야 하는 애플에는 오히려 부담이 됐다.

애플2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매출은 점차 떨어졌다. 야심작 매킨토시를 내놓았지만, 당시에는 구매자의 요구를 파악하기보다는 그저 외양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1983년에 애플은 PC 시장에서 IBM에게 추월당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권력다툼으로 인해 축출 위기를 맞은 잡스는 1985년에 이르러 애플을 떠난다. 잡스는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설립해 새로운 PC를 내놓지만, 개인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참담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 바로 그때, 오래 전부터 잡스의 소유였지만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했던 컴퓨터 그래픽 업체 픽사(Pixar)가 디즈니와 제휴해 만든 <토이 스토리>가 대박을 터트린다. 연이은 픽사 제작 애니메이션의 히트 행진에 잡스는 드디어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잡스 떠난 애플
급격한 내리막길

반면 잡스가 떠난 애플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급기야 1997년 적자가 18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결국 애플 이사회는 잡스에게 손을 내밀고, 잡스는 1997년 ‘임시 CEO’로 애플에 복귀했다.

굴욕의 퇴진을 당한 지 13년 만에 ‘왕의 귀환’을 이룬 잡스는 이듬해인 1998년 내놓은 아이맥이 히트를 치면서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흑자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2000년 1월부터 잡스는 정식 CEO가 됐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애플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2001년 아이팟 출시가 시작이었다. 아이팟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팟은 세계적인 열풍과 함께 잡스를 다시 한 번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줬다. 이와 같은 잡스의 업적과 영향력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 팬들은 잡스를 예수에 빗대어 추켜세우기도 했다.

1985년 내부 권력다툼으로 축출…다른 회사 창업
13년 만에 복귀해 전성기 이끌다 건강에 이상신호

성공에 취해 있을 당시 잡스에게 예기치 않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2003년 췌장암 선고를 받은 것. 다음해인 2004년에는 췌장암 수술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고 계속 악화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애플 측은 주가하락 등을 이유로 건강 이상설을 부인해왔다.

다행히 잡스는 2005년 췌장암을 극복했음을 알리며 화려하게 부활했고, 2007년에는 아이폰을 내놓으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잡스는 2008년 6월 아이폰3G 공개 행사 당시 수척해진 외모 때문에 와병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그해 10월에는 애플 연례행사에 불참하면서 이 같은 의혹에 불을 지폈다.

아니나 다를까 잡스는 2009년 6월 간 이식 수술을 위해 두 번째 병가를 냈다. 호르몬 이상으로 체중 또한 지속적으로 줄어 2009년부터 호르몬 치료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건강 이상설에 따라서 주가가 무려 6%나 등락했다.

그해 9월 잡스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며 또다시 부활을 알렸다. 곧바로 아이패드를 선보이며 화려하게 컴백했다. 2010년 4월 발매한 아이패드는 연말까지 1000만대 이상 팔렸고, 아이폰4 역시 공급부족에 허덕일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

하지만 2011년 1월 잡스는 건강이 다시 악화돼 병가를 냈다. 이에 따라 애플의 주가는 6.5% 급락했다. 건강에 대한 우려가 나오던 가운데 잡스는 백악관에서 만찬을 가졌고 사진도 공개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후 파파라치가 찍은 잡스의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이전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이어서 췌장암 악화로 인한 6주 시한부설이 사실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던 2011년 3월, 아이패드2를 발표하기 위해서 잡스가 모습을 나타냈다. 잡스는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 경영에 문제가 없음을 입증했다. 하지만 잡스가 연단에 선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잡스는 다시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지난 8월24일 CEO 자리를 후계자 팀 쿡에게 넘기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불과 40여일 뒤인 지난 5일 영면에 들었다.

잡스는 성공과 좌절이 교차하는 ‘롤로코스터’와 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스탠퍼드대 연설 말미에 밝혔듯이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면서(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자신의 신념에 따라 치열한 삶을 살다 떠났다. 이 같은 삶 자체야말로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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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