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자유한국당 구원투수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7.25 14:27:56
  • 호수 1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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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잡고 ‘보수굴’로 들어가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위기 속 자유한국당의 구원투수로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등판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 이어 6·13 지방선거까지 참패한 한국당은 계파 갈등으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 어느 시기 비대위원장보다 김 비대위원장의 어깨가 무겁다. 그러나 김 비대위원장이 인적청산 등 전권을 휘두르는 ‘저승사자’가 될지는 미지수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김성태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주간의 준비위 논의와 오늘 의원총회서 모아진 총의를 바탕으로 한국당 혁신 비상대책위원회 내정자로 김병준 교수를 모시게 됐다”고 밝혔다. 

만장일치로…
흔쾌히 수락

김 권한대행은 “김 교수와 통화했고, 비대위원장 수락 의사를 확인했다”며 “(수락 당시 요구 조건은)전혀 없었다. 흔쾌히 비대위원장을 수락했다”고 전했다.

김 권한대행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철한 현실 인식과 치열한 자기 혁신”이라며 “김 교수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발휘할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내정 배경을 설명했다.

6·13지방선거서 참패와 계파갈등으로 허덕이던 한국당을 쇄신할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지난 17일, 본격 출범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취임 일성을 통해 “제가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당의 많은 분야를 아주 많이 바꾸는 것”이라며 보수 대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국당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서 전국위원회를 열었다. 전국위원 총 631명 중 363명(참석률 57.5%)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선 김 비대위원장 선임 안건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김 비대위원장은 곧바로 직무에 돌입해 차기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끌게 된다.

김 비대위원장은 수락 연설서 “한국정치를 계파논리와 진영논리서 벗어나게 하는 소망, 미래를 위한 가치논쟁과 정책논쟁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도록 하는 꿈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저는 아무 힘도 계파도 없고 공천권도 없지만, 작지 않은 힘을 갖고 있다”며 “한국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지탄, 그러면서도 아직 놓지 않고 있는 희망이 한 가닥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하는 권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헌당규에 규정된 당 대표로서의 권한이 있다”며 ‘관리형 비대위’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혁신비대위의 중점 사안은 계파 청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당은 6·13 지방선거 이후 한 달 가까이나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지방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홍준표 전 대표가 물러난 이후 김 권한대행이 대표를 맡으며 당내 계파 갈등도 표면화됐다.   

3주간 논의 끝에 친노 브레인 영입
인적청산부터? 친박 저승사자 되나


김 권한대행이 지난달 18일 중앙당 해체와 혁신비대위 출범을 발표했다. 당내에선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는 독단적 행위였다”며 거센 비판을 샀다. 이튿날엔 ‘친박의 목을 친다’는 복당파 박성중 의원의 메모가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히면서 친박과 복당파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 과정서 김 권한대행의 사퇴를 요구하는 일부 의원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당내 갈등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지난 12일 의원총회에선 김 권한대행의 독단적 결정을 문제 삼으며 심재철 의원 등이 김 권한대행의 사퇴를 요구하자 김 권한대행은 “2013년 누드사진 보다가 노출됐을 때 막아주지 않았느냐” 등 감정적인 서운함을 표출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16일 의총서 김 권한대행이 막말 등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의원들도 당을 수습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면서 표면적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양태다. 

하지만 여전히 계파갈등의 불씨는 살아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선이다. 

한국당 한 당직자는 “화해가 아니라 휴전 상태다. 갈등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며 “김 비대위원장이 한국당 인적청산을 하는 과정서 분명히 계파 싸움이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물망에 올랐던 다른 후보들과 달리 하마평 당시부터 의욕을 보였다. 남다른 각오로 당 혁신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란 게 당 안팎의 기대다. 그러나 선거 참패 이후에도 처절한 반성보단 계파갈등에 골몰해왔던 한국당이 ‘공천권’이란 무기도 없이 들어설 비대위 체제 하에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당내에선 비대위원장의 임기와 역할에 대해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당초 김 권한대행은 2020년 총선의 공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비대위원장 모델을 제안했다. 그러나 총선이 2년 가까이 남은 상황서 성급한 접근이라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당 혁신 역할은?
허수아비 우려도

도리어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열기 전까지 혼란을 수습하는 ‘관리형’ 비대위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날 한국당 초선의원 모임서도 ‘전권형’ 비대위를 지지하는 의원과 관리형 비대위를 선호하는 의원의 숫자가 비슷했다.

구체적인 쇄신 작업은 더욱 막막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비대위원장은 인적쇄신, 보수 가치 재정립, 세대교체를 통해 다음 총선서 경쟁력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게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며 “중요한 점은 인적쇄신의 방법에 있어 원칙과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비대위원장의 일성처럼 한국당을 넘어 한국정치 변화까지 이루려면 이번 기회를 결코 놓쳐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땜질식 봉합’에 그친다면 한국당, 한국보수는 추락할 게 뻔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비대위는 전대, 총선 공천 등 향후 당 운영 시스템의 원칙을 바로잡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나아가 한국보수가 지향할 가치를 다시 세우고 젊고 참신한 인재들이 뛰어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잇따르고 있다.

비대위가 황폐화된 보수의 땅을 객토하고, 다음 지도부는 과감한 혁신 작업을 벌여야 한국의 보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병준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한국당 입장서도 모험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정부 청와대서 일한 ‘원조 친노’ 인사다. 김 비대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1994년 개인 자격으로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 노 전 대통령의 정책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책기조였던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지휘해 종합부동산세와 동반성장전략 정책 등을 수행했다. 

이 같은 이력 때문에 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김병준은 우리랑 출신이 다르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또 다른 암초도 만났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경찰에 따르면 강원지방경찰청은 지난 3월 권익위로부터 김 비대위원장의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를 접수받고 내사를 벌이고 있다. 

권익위는 올해 초 강원랜드 내부 인사로부터 김 비대위원장과 관련된 제보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무팀서 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강원경찰청에 이첩된 상태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신고를 접수한 기관은 60일 동안의 확인 과정을 거쳐 수사기관에 직접 고발하거나 감사기관 혹은 해당 수사기관에 사건을 넘기도록 돼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8월 국민대 교수 신분으로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프로암 경기 당시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의 초청을 받아 골프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은 골프비, 기념품, 식사비용 등을 포함해 모두 118만원가량을 접대 받았다는 제보 내용을 토대로 사실 관계 여부를 확인 중에 있다. 

청탁금지법 제8조(금품 수수등의 금지)에는 공직자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사립대 교수 신분이었던 김 교수도 적용 대상이다. 

이에 대해 김 비대위원장은 “접대라고 하긴 좀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8일 오전 국회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던 중 전날 언론에 보도된 ‘접대 의혹’과 관련해 질문을 받자 이같이 답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아시겠지만 공식 (골프)시합을 하기 전에 프로암대회가 있고 여기에 사회 각계 여럿을 초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초대를 받아서 갔다”며 “솔직히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그냥 상식선서 골프를 한 번 하고 오는 정도인데 그 비용이 김영란법이 규정하는 범위를 넘었냐 안 넘었냐는 알 수가 없다”며 “당시 대회를 주최한 대표(함승희)가 그 범위를 넘지 않는 범위 안에 있다고 했는데 그것 또한 저는 모른다”며 “기다려 달라. 서로 의견이 다르니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결론이 나지 않겠냐”고 말했다.

노의 사람 분류
16년 후 보수로

김 비대위원장은 1954년 생으로 경상북도 고령 출신이다. 영남대학교 정치학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델라웨어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를 받은 그는 좌·우를 오가는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참여정부서 정책실장을 맡으며 ‘노무현정부의 정책 좌장’으로 불렸던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서 새 총리로 지명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뿌렸다. 

김 비대위원장은 개헌과 지방분권을 강조해 온 학자다. 국민대 행정대학원장을 재임 시절 대선 전 노무현 대통령이 운영했던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이사장을 맡으며 정계에 인연을 맺었다. 

이후 캠프 정책자문단장, 인수위 정무분과위원회 간사를 거쳐 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을 앞장서 이끌었다. 노 전 대통령 탄핵도 그와 공교로운 인연을 맺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이 기각된 직후인 2004년 6월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됐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조각 당시 어떤 보직이든 맡길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그를 신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 8월까지 정책실장을 역임한 뒤에는 교육부총리로 임명됐으나 현재의 자유한국당인 한나라당이 논문 표절 문제를 제기하고 검찰에 고발하는 등 사퇴를 압박하자 13일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이후 국민대 교수로 재직하며 사단법인 공공경영연구원 이사장, 사단법인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냈다.

그는 노무현정부를 마친 후에는 보수진영과 접촉면을 넓혔다. 경북 고령 출신으로 TK인사와 교류를 지속했고, 한국당 내에서는 김용태 의원 등 소장파와 가깝게 지냈다. 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국무총리로 깜짝 지명되기도 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개헌’ 이야기를 꺼낸 데다 대통령의 2선 후퇴 필요성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11월3일 그는 박근혜정부의 4번째 총리이자 신임 총리로 지명됐지만, 12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자연스레 없던 일이 됐다. 

“계파·진영논리와 싸우다 죽으면 영광”
보수가치 재정립, 세대교체 등 현안과제

지속적으로 정치현안에 대한 발언을 지속해 온 데다 여·야를 두루 아우르고 계파색이 옅다는 점에서 ‘비대위원장’ 단골 후보이기도 했다. 과거 박근혜정부 총리 지명 수락 때 그는 이미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던 상태였다. 

당시 안철수 전 대표는 그를 비대위원장으로 강력하게 추천하며 당내 반발을 무릅썼다가 낭패를 봤다. 

김 비대위원장은 참여정부 정책실장이던 시절 당시 비서실장인 문재인 대통령으로 청와대서 ‘한솥밥’을 먹었지만, 2012년 대선에선 김두관을 지지하는 등 친문(친 문재인)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2007년 정책특보 시절 친노 진영서 이해찬 후보를 밀고 있는데도, 직접 대선 후보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친노(친 노무현) 인사들과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원조 친노’서 최근엔 두드러진 ‘우향우’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2016년 총선을 전후해 새누리당 의원 대상 특강을 하는 등 정계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1월에도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첫번째 외부 연사로 나서 “새로운 보수 가치 정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는 등 두드러진 ‘중도 보수 행보’를 보여왔다. 6·13 지방선거 때는 자유한국당 광역단체장 후보로서도 하마평에 올랐다.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참패 뒤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제일 먼저 거론된 인사였다.

그를 보는 ‘원조 친노’ 진영의 시선은 따뜻하지만은 않다. 이미 멀어진 인사라는 것이다. 2016년 탄핵 정국 때 총리 지명 소식을 접한 일부 민주당 인사들이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그가 수락하면서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반친노? 
친노화?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제2부속실장을 지냈던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쪽 일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일갈했다.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청와대서 노무현 대통령을 모시고 함께 일했던 사람으로서 김병준 교수를 너무나 잘 알기에 한 말씀 드린다. 그쪽 일을 하면서 당신의 출세를 위해 노 대통령님을 입에 올리거나 언급하지 말아주시기를 당부드린다”며 “당신의 그 권력욕이 참 두렵다”고 적었다.


<cmp@ilyosisa.co.kr>

 

[김병준은?]

▲1954 경북 고령군 ▲대구상고·영남대 졸 ▲미국 델라웨어 대 정치학 박사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박근혜 정부 당시 국무총리 지명자 ▲국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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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