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자유한국당 구원투수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7.25 14:27:56
  • 호수 1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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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잡고 ‘보수굴’로 들어가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위기 속 자유한국당의 구원투수로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등판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 이어 6·13 지방선거까지 참패한 한국당은 계파 갈등으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 어느 시기 비대위원장보다 김 비대위원장의 어깨가 무겁다. 그러나 김 비대위원장이 인적청산 등 전권을 휘두르는 ‘저승사자’가 될지는 미지수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김성태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주간의 준비위 논의와 오늘 의원총회서 모아진 총의를 바탕으로 한국당 혁신 비상대책위원회 내정자로 김병준 교수를 모시게 됐다”고 밝혔다. 

만장일치로…
흔쾌히 수락

김 권한대행은 “김 교수와 통화했고, 비대위원장 수락 의사를 확인했다”며 “(수락 당시 요구 조건은)전혀 없었다. 흔쾌히 비대위원장을 수락했다”고 전했다.

김 권한대행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철한 현실 인식과 치열한 자기 혁신”이라며 “김 교수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발휘할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내정 배경을 설명했다.

6·13지방선거서 참패와 계파갈등으로 허덕이던 한국당을 쇄신할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지난 17일, 본격 출범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취임 일성을 통해 “제가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당의 많은 분야를 아주 많이 바꾸는 것”이라며 보수 대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국당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서 전국위원회를 열었다. 전국위원 총 631명 중 363명(참석률 57.5%)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선 김 비대위원장 선임 안건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김 비대위원장은 곧바로 직무에 돌입해 차기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끌게 된다.

김 비대위원장은 수락 연설서 “한국정치를 계파논리와 진영논리서 벗어나게 하는 소망, 미래를 위한 가치논쟁과 정책논쟁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도록 하는 꿈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저는 아무 힘도 계파도 없고 공천권도 없지만, 작지 않은 힘을 갖고 있다”며 “한국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지탄, 그러면서도 아직 놓지 않고 있는 희망이 한 가닥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하는 권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헌당규에 규정된 당 대표로서의 권한이 있다”며 ‘관리형 비대위’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혁신비대위의 중점 사안은 계파 청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당은 6·13 지방선거 이후 한 달 가까이나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지방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홍준표 전 대표가 물러난 이후 김 권한대행이 대표를 맡으며 당내 계파 갈등도 표면화됐다.   

3주간 논의 끝에 친노 브레인 영입
인적청산부터? 친박 저승사자 되나


김 권한대행이 지난달 18일 중앙당 해체와 혁신비대위 출범을 발표했다. 당내에선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는 독단적 행위였다”며 거센 비판을 샀다. 이튿날엔 ‘친박의 목을 친다’는 복당파 박성중 의원의 메모가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히면서 친박과 복당파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 과정서 김 권한대행의 사퇴를 요구하는 일부 의원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당내 갈등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지난 12일 의원총회에선 김 권한대행의 독단적 결정을 문제 삼으며 심재철 의원 등이 김 권한대행의 사퇴를 요구하자 김 권한대행은 “2013년 누드사진 보다가 노출됐을 때 막아주지 않았느냐” 등 감정적인 서운함을 표출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16일 의총서 김 권한대행이 막말 등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의원들도 당을 수습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면서 표면적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양태다. 

하지만 여전히 계파갈등의 불씨는 살아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선이다. 

한국당 한 당직자는 “화해가 아니라 휴전 상태다. 갈등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며 “김 비대위원장이 한국당 인적청산을 하는 과정서 분명히 계파 싸움이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물망에 올랐던 다른 후보들과 달리 하마평 당시부터 의욕을 보였다. 남다른 각오로 당 혁신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란 게 당 안팎의 기대다. 그러나 선거 참패 이후에도 처절한 반성보단 계파갈등에 골몰해왔던 한국당이 ‘공천권’이란 무기도 없이 들어설 비대위 체제 하에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당내에선 비대위원장의 임기와 역할에 대해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당초 김 권한대행은 2020년 총선의 공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비대위원장 모델을 제안했다. 그러나 총선이 2년 가까이 남은 상황서 성급한 접근이라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당 혁신 역할은?
허수아비 우려도

도리어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열기 전까지 혼란을 수습하는 ‘관리형’ 비대위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날 한국당 초선의원 모임서도 ‘전권형’ 비대위를 지지하는 의원과 관리형 비대위를 선호하는 의원의 숫자가 비슷했다.

구체적인 쇄신 작업은 더욱 막막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비대위원장은 인적쇄신, 보수 가치 재정립, 세대교체를 통해 다음 총선서 경쟁력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게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며 “중요한 점은 인적쇄신의 방법에 있어 원칙과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비대위원장의 일성처럼 한국당을 넘어 한국정치 변화까지 이루려면 이번 기회를 결코 놓쳐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땜질식 봉합’에 그친다면 한국당, 한국보수는 추락할 게 뻔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비대위는 전대, 총선 공천 등 향후 당 운영 시스템의 원칙을 바로잡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나아가 한국보수가 지향할 가치를 다시 세우고 젊고 참신한 인재들이 뛰어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잇따르고 있다.

비대위가 황폐화된 보수의 땅을 객토하고, 다음 지도부는 과감한 혁신 작업을 벌여야 한국의 보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병준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한국당 입장서도 모험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정부 청와대서 일한 ‘원조 친노’ 인사다. 김 비대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1994년 개인 자격으로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 노 전 대통령의 정책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책기조였던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지휘해 종합부동산세와 동반성장전략 정책 등을 수행했다. 

이 같은 이력 때문에 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김병준은 우리랑 출신이 다르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또 다른 암초도 만났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경찰에 따르면 강원지방경찰청은 지난 3월 권익위로부터 김 비대위원장의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를 접수받고 내사를 벌이고 있다. 

권익위는 올해 초 강원랜드 내부 인사로부터 김 비대위원장과 관련된 제보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무팀서 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강원경찰청에 이첩된 상태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신고를 접수한 기관은 60일 동안의 확인 과정을 거쳐 수사기관에 직접 고발하거나 감사기관 혹은 해당 수사기관에 사건을 넘기도록 돼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8월 국민대 교수 신분으로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프로암 경기 당시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의 초청을 받아 골프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은 골프비, 기념품, 식사비용 등을 포함해 모두 118만원가량을 접대 받았다는 제보 내용을 토대로 사실 관계 여부를 확인 중에 있다. 

청탁금지법 제8조(금품 수수등의 금지)에는 공직자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사립대 교수 신분이었던 김 교수도 적용 대상이다. 

이에 대해 김 비대위원장은 “접대라고 하긴 좀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8일 오전 국회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던 중 전날 언론에 보도된 ‘접대 의혹’과 관련해 질문을 받자 이같이 답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아시겠지만 공식 (골프)시합을 하기 전에 프로암대회가 있고 여기에 사회 각계 여럿을 초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초대를 받아서 갔다”며 “솔직히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그냥 상식선서 골프를 한 번 하고 오는 정도인데 그 비용이 김영란법이 규정하는 범위를 넘었냐 안 넘었냐는 알 수가 없다”며 “당시 대회를 주최한 대표(함승희)가 그 범위를 넘지 않는 범위 안에 있다고 했는데 그것 또한 저는 모른다”며 “기다려 달라. 서로 의견이 다르니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결론이 나지 않겠냐”고 말했다.

노의 사람 분류
16년 후 보수로

김 비대위원장은 1954년 생으로 경상북도 고령 출신이다. 영남대학교 정치학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델라웨어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를 받은 그는 좌·우를 오가는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참여정부서 정책실장을 맡으며 ‘노무현정부의 정책 좌장’으로 불렸던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서 새 총리로 지명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뿌렸다. 

김 비대위원장은 개헌과 지방분권을 강조해 온 학자다. 국민대 행정대학원장을 재임 시절 대선 전 노무현 대통령이 운영했던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이사장을 맡으며 정계에 인연을 맺었다. 

이후 캠프 정책자문단장, 인수위 정무분과위원회 간사를 거쳐 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을 앞장서 이끌었다. 노 전 대통령 탄핵도 그와 공교로운 인연을 맺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이 기각된 직후인 2004년 6월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됐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조각 당시 어떤 보직이든 맡길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그를 신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 8월까지 정책실장을 역임한 뒤에는 교육부총리로 임명됐으나 현재의 자유한국당인 한나라당이 논문 표절 문제를 제기하고 검찰에 고발하는 등 사퇴를 압박하자 13일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이후 국민대 교수로 재직하며 사단법인 공공경영연구원 이사장, 사단법인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냈다.

그는 노무현정부를 마친 후에는 보수진영과 접촉면을 넓혔다. 경북 고령 출신으로 TK인사와 교류를 지속했고, 한국당 내에서는 김용태 의원 등 소장파와 가깝게 지냈다. 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국무총리로 깜짝 지명되기도 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개헌’ 이야기를 꺼낸 데다 대통령의 2선 후퇴 필요성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11월3일 그는 박근혜정부의 4번째 총리이자 신임 총리로 지명됐지만, 12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자연스레 없던 일이 됐다. 

“계파·진영논리와 싸우다 죽으면 영광”
보수가치 재정립, 세대교체 등 현안과제

지속적으로 정치현안에 대한 발언을 지속해 온 데다 여·야를 두루 아우르고 계파색이 옅다는 점에서 ‘비대위원장’ 단골 후보이기도 했다. 과거 박근혜정부 총리 지명 수락 때 그는 이미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던 상태였다. 

당시 안철수 전 대표는 그를 비대위원장으로 강력하게 추천하며 당내 반발을 무릅썼다가 낭패를 봤다. 

김 비대위원장은 참여정부 정책실장이던 시절 당시 비서실장인 문재인 대통령으로 청와대서 ‘한솥밥’을 먹었지만, 2012년 대선에선 김두관을 지지하는 등 친문(친 문재인)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2007년 정책특보 시절 친노 진영서 이해찬 후보를 밀고 있는데도, 직접 대선 후보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친노(친 노무현) 인사들과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원조 친노’서 최근엔 두드러진 ‘우향우’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2016년 총선을 전후해 새누리당 의원 대상 특강을 하는 등 정계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1월에도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첫번째 외부 연사로 나서 “새로운 보수 가치 정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는 등 두드러진 ‘중도 보수 행보’를 보여왔다. 6·13 지방선거 때는 자유한국당 광역단체장 후보로서도 하마평에 올랐다.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참패 뒤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제일 먼저 거론된 인사였다.

그를 보는 ‘원조 친노’ 진영의 시선은 따뜻하지만은 않다. 이미 멀어진 인사라는 것이다. 2016년 탄핵 정국 때 총리 지명 소식을 접한 일부 민주당 인사들이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그가 수락하면서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반친노? 
친노화?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제2부속실장을 지냈던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쪽 일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일갈했다.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청와대서 노무현 대통령을 모시고 함께 일했던 사람으로서 김병준 교수를 너무나 잘 알기에 한 말씀 드린다. 그쪽 일을 하면서 당신의 출세를 위해 노 대통령님을 입에 올리거나 언급하지 말아주시기를 당부드린다”며 “당신의 그 권력욕이 참 두렵다”고 적었다.


<cmp@ilyosisa.co.kr>

 

[김병준은?]

▲1954 경북 고령군 ▲대구상고·영남대 졸 ▲미국 델라웨어 대 정치학 박사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박근혜 정부 당시 국무총리 지명자 ▲국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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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