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토로> 모자 농락한 사이코패스 양아들 사건 전말

“어머니를 대신해 목숨 겁니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간암말기의 어머니가 그동안 당하신 고문과 위협이 온 몸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슬픔과 분노가 찹니다. 수개월 동안 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돈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을 종용했다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과연 이 사회에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사회에 최소한의 양심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한 글자 한 글자 슬픔과 분노를 가득 담은 이 편지의 발신자는 다름 아닌 아들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직장생활을 하지도 못한 채 외로운 싸움에 매달렸지만 그의 손을 들어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처갓집에서 어렵게 만난 그의 방에는 각종 증명서류들과 법원자료들이 빼곡했다. “난 이세상이 싫다! 이렇게 더러운 세상이 정말 싫어!”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 아들의 가슴에 메아리로 남는다. 그 억울한 한을 풀어주기 위해 모든 것을 건 남자. 그의 눈은 흔들렸고 또 간절했다.

남편의 ‘결백’ 주장, 18년간 억울한 누명
45년간 묻힌 사건,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

지난 2009년 8월. 간암 말기로 치료 중이던 어머니 김순애(가명ㆍ2009년 사망)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어느 날 이었다. 김씨가 갑자기 토혈과 혈변을 하면서 긴급수혈이 필요한 위급상황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박영진(가명ㆍ44)씨 남매는 지금까지 O형인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의 혈액형이 AB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매는 의구심을 품었다. 평소 입버릇처럼 어머니는 박씨에게 “내 혈액형은 O형이고 네 큰 형은 엄마를 닮아 O형이며 그래서 성격이 좋고 활동적이다”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 후 김씨가 회복되자 남매는 어머니를 붙잡고 물었고,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렵게 입을 뗐다. 그리곤 지난 45년간 비밀로 묻힐 뻔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

비밀로 묻힐 뻔한
사건의 전말 ‘혈액형’

1965년. 김씨가 남편 박명일(가명)씨와 결혼 후 첫째 딸 박진희(가명ㆍ50)씨를 낳고 3년 동안 자식 소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김씨의 시아버지에게 10대 후반의 다방 레지(커피를 배달하는 여자를 일컫는 은어)가 찾아와 “자기 뱃속에 당신 아들의 자식을 임신하였다”며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울 능력도 없고, 키울 자신도 없으니 받아 달라”고 말했다.

당시 김씨의 시댁은 경기도 일대에서 알아주는 유지였고, 남편 박씨는 장손이었다. 하지만 박씨는 이 같은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시내에 손님을 만나러 그 다방 종업원이 일하고 있었던 다방에 몇 번 갔을 뿐, 그 여자와는 손 한번 잡아 본적이 없다”며 “그 여자 뱃속의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남편이 밖에서 실수를 해놓고 자신에게 미안하여, 엄했던 시아버지에게 혼 날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또 당시는 남아선호사상이 심했던 시절이었고 딸 낳은 죄인으로 3년 동안 애소식이 없었던 김씨는 남편과 시아버지가 다툼이 잦아지자 그 애를 거둬 키우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다방 여종업원을 산부인과에 입원시키고 “이 애는 내 친아이와 다름없이 잘 키워 주겠다”고 약속하며 아직 어리니 모든 것을 다 잊고 새 출발하라고 돈까지 쥐어주었다. 김씨는 아이의 이름을 박영호(가명ㆍ47)라 지었고, 아이를 집에 데려온 3년 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박영진(가명ㆍ44)을 낳았다.

그렇게 박영호는 김씨의 집에서 친아들과 다름없이 길러졌고, 박영호가 7~8세가 되던 해 시아버지는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남편 박씨는 계속해서 그 아이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씨가 “이제 아버님도 돌아가신 마당에 좀 솔직해 질 수 없냐”고 다그쳐도 남편은 부인만 했고, 부부는 이 문제로 말다툼을 자주했다.

박영호가 고등학생이 되던 시절까지도 남편의 결백주장이 이어지자 김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전자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김씨는 그 후 엄청난 결과를 확인했다. 박영호는 남편의 자식이 아니었던 것. 18년 동안 간직했던 남편의 억울한 누명을 벗은 것도 잠시, 부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수습하나 많은 고민에 빠졌다.

18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 온 자식을 하루아침에 너는 우리 자식이 아니니 집에서 나가라고 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렇게 한다면 그 이후 더 큰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 아이의 친 엄마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지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냐고 생각하여 자식들에게 모든 사실을 비밀로 덮고 친 자식과 다름없이, 또 집안의 장남으로서 키우기로 결정한다. 

너희 부부 때문에
난 친부모와 헤어졌어!

세월이 흘러 남편이 ㅅ떠났고, 1989년 박영호는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후 김씨는 박씨가 원하는대로 뉴질랜드로 투자이민 길에도 함께 올랐다. 또 박영호가 낳은 자식을 친손자와 마찬가지로 애지중지 키웠다. 그러나 박영호의 결혼생활은 3년 만에 끝이 났다. 이혼 후 혼자 방황하는 박씨를 보다 못한 김씨가 두 번째 결혼을 시켜주었지만, 두 번째 부인과의 결혼생활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한인사회에 소문이 파다할 정도로 여기 저기 여자와 바람을 피우거나, 김씨와 부인 앞에 내연녀를 데려오기도 하는 등의 방탕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박영호는 자신이 김씨 부부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어렸을 적 부부가 다투는 소리를 몰래 엿듣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양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척 살아온 박영호는 이때부터 김씨에게 “너희부부 때문에 자신은 친부모와 헤어졌다”면서 “그로 인해 자신은 과연 누구의 자식인지 조차도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고 원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매일 술과 여자문제로 두 번째 부인과도 싸움이 잦아지자 보다 못한 김씨는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느냐”고 물었고, 박영호는 한국에 돌아가서 사업을 하겠다며 사업자금을 대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승낙했고, 한국에 남겨두었던 재산 일부를 팔아 회사에 투자해 주었다. 그 후 김씨는 박씨의 둘째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뉴질랜드 생활을 이어갔고, 박씨는 한국에 홀로 귀국해 회사를 경영했다.

박영호는 한국에서 지내면서도 계속해서 회사 재정이 어렵다는 핑계로 김씨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하였고, 김씨가 더 이상 돈이 없다고 거절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 갈취를 시작했다.


돈에 미쳐 키워준 어머니 협박폭행 일삼아
은혜와 노고를 패륜으로 갚은 양아들‘충격’

“한국에 어머니 명의로 남아있던 강남의 아파트 2채를 찾아내어 어머니 모르게 서류를 위조해 팔았고, 또 땅까지 대출 받았다. 또 그맘때 한국에서 술집여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된 둘째부인은 어머님 앞에서 회사 직원과 맞바람을 피우는 등 파렴치한 행위들을 서슴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박영호의 아이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박영호와 동거하던 여자와 아이들과 함께 살다 파주에 아파트를 장만하게 된다. 이 때 김씨가 그동안 자신의 회사에 모든 재산을 투자하여 돈 한 푼 없다고 했던 말이 거짓이라 확신한 박영호는 남아있는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김씨를 본격적으로 협박하기 시작한다.

또 친자식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면 김씨뿐 아니라 친자식들까지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고, 김씨는 자신보다 친자식들의 안전을 생각하여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참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김씨는 2007년 말 간암 선고를 받게 된다. 이를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은 박영호. 그러나 박영호는 김씨와 친자식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숨겼고 이후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는 친자식들에게 “2007년 말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으셨고,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이때까지 만해도 친형제라고 믿고 있었던 박씨 남매는 박영호의 행동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어렸을 적부터 평소 어머니가 장남인 박영호를 많이 챙겨왔고, 장남이기 때문에 또 장남으로서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두 얼굴의 양아들
패륜행위…‘충격’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박영호는 2008년 12월, 김씨가 간암말기 판정을 받았다며 살 수 있는 날이 3~4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남매에게 전했다. 

박영진씨는 “박영호는 어머니가 아프신 데도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가 남은 재산의 행방을 묻고 목을 조르는 등 폭력ㆍ협박을 서슴지 않았고, 또 그간 어머니 신분증을 위조하여 다른 사람이 어머니 행세를 하며 어머니의 명의의 모든 부동산과 토지를 팔아먹고 다녔다. 또 어머니가 직접 대출을 받는 것처럼 사인을 위조하는가 하면 아프신 어머니를 감금하여 유언동영상을 찍게 하는 등 45년 간 친자식보다 더 소중하게 양자임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신의 혈액형까지 속이시며 정성으로 키워온 어머니의 은혜를 상상하기조차 힘든 패륜행위로 보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영호는 남매의 이런 주장을 전면 일축한다. 현재 진행 중인 법적 공방에 대해서도 형제간에 벌어지는 ‘재산다툼’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씨는 2009년 8월 쓸쓸히 눈을 감았다. 핏덩이 때부터 데려와 아버지의 말류에도 불구하고 친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하며 온갖 정성으로 키워냈고, 수백억의 사업자금까지 아낌없이 내주었던 양자에게 무참히 짓밟히면서….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라며 병실 주위 사람들 앞에서 김씨의 볼에 뽀뽀까지 해대던 박영호는 양어머니 김씨의 장례식장에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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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