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문건’ 송영무 VS 조국 파워게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7.23 10:02:57
  • 호수 1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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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한 명은 날아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의 촛불집회 계엄령 문건 사태가 청와대-국방부 간 갈등설로 확전됐다. 기무사 문건이 문재인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보였다는 정황이 곳곳서 포착된다. 여기에 더해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과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기무사 개혁과 관련해 파워게임을 벌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무사 문건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현 상황과 관련해 조 수석 책임론이 불거졌다.
 

시간은 지난 4월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은 이날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들과 ‘기무사 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이때 송 장관은 청와대 참모진들에게 처음 기무사 문건의 존재와 문제점에 대해 언급했다. 

국방부는 지난 16일 “논의과정서 (송)장관은 과거 정부시설 기무사의 정치개입 사례 중 하나로 촛불집회 관련 계엄을 검토한 문건의 존재와 내용의 문제점을 간략히 언급했다”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내놨다.

4월30일
무슨 일이?

송 장관은 이날 배석한 청와대 참모진에게 기무사 문건을 직접 전달하지는 않았다. 국방부의 비공개 방침 때문이었다. 지난 16일 국방부는 비공개 방침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송)장관은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분위기를 유지하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우호적인 상황 조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또한 6월1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문건을 공개했을 시 쟁점화될 가능성을 감안해 문건을 비공개키로 했다.”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 6·13지방선거를 고려한 ‘정무적 판단’이었다는 해명이다.

송 장관이 기무사 문건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시기는 4월30일에서 한 달 반을 거슬러 올라간 3월16일. 지난 3월 해당 문건을 발견한 기무사 직원이 이석구 기무사령관에게 알렸고, 3월16일 송 장관에게 이를 보고했다. 

다시 말해 송 장관은 3월16일부터 4월30일까지 기무사 문건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 송 장관에게 ‘직무유기’ ‘안일한 대응’ 등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국민들에게 기무사 문건을 공개한 곳은 청와대와 국방부가 아닌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군인권센터였다. 이 의원과 군인권센터는 지난 5일과 6일 기무사에서 작성한 문건을 최초로 공개했다.

문건이 작성된 시점은 지난 2017년 3월. 그해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고 결정하기 직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무사 문건에 ‘(2017. 3. . )’이라고만 돼있기 때문에 날짜를 특정할 수 없다. 대신 문건 도입부에 탄핵이 ‘인용’ ‘기각’되는 상황을 전망하는 것으로 보아 선고가 나기 전임을 알 수 있다.

문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에야 청와대는 움직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기무사에 대한 수사를 특별지시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건이 공개된 이후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이유에 대해 “이 사안이 가지고 있는 위중함과 심각성, 폭발력 등을 감안해서 국방부와 청와대 참모진들이 신중하고 또 면밀하게 들여다보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고 해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국방부·기무사와 각 부대 사이에 오고간 모든 문서와 보고를 즉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하루가 지난 17일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4월30일(문건의 존재 사실을) 보고받았을 때에는 문건 자체를 받지 못했고, 6월28일 문건을 (공식으로)받았을 때서야 검토에 들어갔다. 문건을 봤다고 해서 바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는 성격의 문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건 내용을 점증적으로 더 들여다보고 당시 상황을 맞춰가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밝혔다.

송영무만
직무유기?

청와대 참모진도 직무유기를 했다는 지적서 자유로울 수 없다. 4월30일 송 장관이 청와대 참모진에게 기무사 문건의 존재에 대해 알렸음에도 청와대는 이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위해 투신했던 임 실장과 조 수석이 기무사 문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즉각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조 수석은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할 당시 “민주화운동 과정서 중요한 의미를 가짐은 물론 법적 제도적 공인이 이루어진 4·19혁명과 함께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대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비상계엄, 부마항쟁 당시에는 위수령이 내려졌으며 6·10항쟁 때는 위수령이 검토됐다. 운동권 출신의 청와대 참모진 대부분은 현재 기무사 문건의 내용이 시행됐을 때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4월30일 임 실장과 조 수석이 기무사 문건의 문제점을 보고받았음에도 청와대는 그로부터 약 두 달여가 지난 6월28일이 돼서야 문건을 공식 보고받게 된다. 6월28일 당시 송 장관은 임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해당 문건을 제출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청와대와 국방부 간 보고체계가 유기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송 “청 보고” vs 조 “기사보고 알아”
논란의 4월30일…왜 한 달 넘게 묵혔나

조 수석과 송 장관이 기무사 개혁을 두고 파워게임을 벌이면서 생긴 갈등이 유기적인 작동기제를 막은 원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송 장관이 기무사를 축소하는 개혁에 과감했던 데 반해 조 수석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 갈등을 벌였다는 것이다.


송 장관은 기무사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약 1년여 전 송 장관은 자신의 취임식을 마친 후 국방부에 기무사와 사이버사에 대한 개혁안을 마련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방침에는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오해를 사거나 사찰로 오해받을 수 있는 기무사의 동향정보 수집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 포함됐다. 
 

기무사 내에서 군 인사 정보와 동향 파악을 담당했던 1처를 없애는 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송 장관은 평소 자신의 참모진에게 “임기 동안 ‘송영무가 기무사 개혁만큼은 해냈구나’하는 말을 듣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 장관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기 전부터 기무사 개혁에 적극적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합참전략본부장을 지낸 시절에도 기무사의 권위적인 모습과 월권행위 등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진다. 2012년 제18대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과 국방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도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장관에 취임한 후에는 기무사 개혁의 칼을 꺼내들었다.

위기 맞은
기무사 개혁

반면 조 수석은 기무사 개혁에 신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무사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했지만, 대대적인 기무사 축소에는 반대했다는 것이다. 정부 안팎서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두 사람은 60단위 기무부대 축소 문제에서 큰 이견을 보였다. 송 장관은 60단위 기무부대의 전면 폐지를 주장한 반면, 조 수석은 과하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송 장관이 조 수석 등에게 기무사 문건의 존재를 알린 4월30일 청와대 참모진과의 회의서도 60단위 기무부대 축소 등 기무사 개혁에 대한 안건을 논의했다. 

국방부는 지난 17일 기무사 문건 논란과 관련한 별도 입장문을 내고 “4월30일 기무사 개혁 방안을 놓고 청와대 참모진과 논의를 가졌다”며 “당시 장관과 참모진들은 기무사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동감했고 개혁 방향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도출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실과 정황들을 종합하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국방부가 추진 중이던 기무사 개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민정수석실의 관여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일각에선 기무사가 국방부 소속인 만큼 군을 관장하는 국가안보실이 아닌 민정수석실이 기무사 개혁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기무사가 일종의 군 사정기관이니 민정수석실 소관이고, 군 담당인 국가안보실에는 수사나 조사 기능이 없는 만큼 민정수석실에서 기무사 개혁 문제를 다루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기무사 문건을 처음 공개한 ‘내부고발자’가 송 장관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지난 16일 한 라디오 인터뷰서 “송 장관이 내부고발자”라는 임태훈 군 인권소장의 주장을 거론한 뒤 “기존 조직에 맡기면 기무사 개혁이 물 건너갈 것으로 본 송 장관이 내부고발자로 돌변했다는 설명으로 사실과 부합하는 일리 있는 견해”라고 지원했다.

뇌관은 결국 기무사 개혁? 
“또 다른 문건 존재할지도”

송 장관은 3월16일 이석구 기무사령관으로부터 문건을 보고받은 뒤 국방부 법무관리실이 아닌 외부 전문가에게 법리검토를 맡겼다. 문건의 위법성 여부를 확인해 수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수사 대상으로 삼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이에 송 장관은 기무사가 문건을 작성한 일을 월권행위로 간주하고 이를 계기로 기무사 개혁을 위한 고강도 드라이브를 걸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5월 초 민간 전문가 등이 포함된 ‘기무사 개혁위원회’를 발족시킨 일이 그 증거다. 

해당 위원회는 곧바로 기무사의 명칭 변경은 물론 조직 축소 등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정치권은 기무사 개혁을 두고 정권 내부에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지난 14일 자신의 SNS에 “지금 이 정권 내부에서는 기무사를 개혁하려는 측과 적당히 존속시키려는 측간에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의원은 여권이 여차하면 폭로할 수 있는 또 다른 문건을 가졌을 가능성까지 제기한 상태다.

국방부와 어긋나는 조 수석의 해명도 두 사람의 갈등설에 힘을 싣는 요소다. 조 수석은 지난 13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기무사 문건은 최근(지난 5일) 언론보도가 되기 전까지 보고받은 적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4월30일 송 장관이 조 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이 참석한 자리서 기무사 문건의 존재를 알린 점, 6월28일 국방부가 기무사 문건을 청와대에 정식 보고한 점 등과 어긋나는 해명이었다. 

패싱인가
거짓인가

4월30일과 6월28일에 있었던 일은 청와대도 인정한 바 있다. 특히 6월28에 있었던 일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이 사정기관을 총괄하기 때문에 3실장에게 보고된 문건은 조 수석에게도 당연히 전달된다”고 밝힌 바 있다. 조 수석만 기무사 문건에 대해 몰랐다는 사실은 청와대 내에서 ‘조국 패싱’이 있지 않고서야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정부 2기 청사진

문재인정부 2기 개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최종 결정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결심만 남겨둔 상황이다. 자연스레 시선은 개각의 폭과 구체적인 대상으로 모아진다.

장관 3∼5명 교체가 예상된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가장 교체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송영무 국방부장관이다. 

최근 송 장관은 촛불집회와 관련된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진들과 불협화음을 벌여 도마 위에 올랐다. 

기무사 문건 사태 외에도 송 장관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에 대해 “학자 입장서 떠드는 느낌이지 안보 특보로 생각되지 않아 개탄스럽다”라고 말해 청와대로부터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그 외 국무총리실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환경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등의 교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공석으로 있는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번에 개각이 확실시된다. 청와대는 이달 안으로 개각을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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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