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식약처 소나기 행정 실태

‘이랬다∼저랬다∼’ 당최 믿을 수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세훈 기자 = 식약처가 일부 고혈압 약에 ‘발암물질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환자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리스트에 있는지 확인하며 우왕좌왕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식약처는 해당 리스트를 번복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식약처의 이런 행정 처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혈압약 복용 환자들은 식약처때문에 또 한번 혈압이 오른다.
 

지난 7일 발암물질로 알려진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일부 고혈압 약에 함유돼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82개사 219개 품목의 고혈압 약을 일괄 회수하고 판매중단 조치를 내렸다. 이 조치는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이 ‘중국산 고혈압 치료제의 원료에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이 검출됐다’는 발표에 대한 후속 조치였다. 식약처는 국내서 판매중단 조치를 내린 고혈압 약들이 실제로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았다.

600만명 혼란 

식약처는 이틀간 추가 조사를 벌였다. 조사결과 판매중단한 품목의 일부는 발암물질이 함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는 판매중단 조치한 품목 219개 의약품 가운데 104개 품목을 9일 판매중단 해제 조치했다.

지난 10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문제가 된 고혈압 약을 복용하는 환자 수는 17만8536명으로 조사됐다. 2016년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고한 고혈압 약 복용자 수는 600만명에 달한다. 600만명이 넘는 환자가 식약처의 발표에 분주하게 반응했다.

식품·의약품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식약처의 미숙한 대응은 논란거리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8월 ‘살충제 계란’ 이슈가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먹거리 안전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던 류영진 식약처장의 취임사가 무색할 만큼 식약처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국내에 살충제 파동이 일어나기 며칠 전, 류 처장은 앞서 유럽서 문제된 살충제 달걀에 대해 "국내는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고 생활해도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부터
전자담배 유해 논란까지

농림축산식품부가 국내 계란서 살충제 성분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제기를 미리 식약처에 했지만 결국 문제가 발생했다. 식약처와 주무부서 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준 대목이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어나기 4개월 전 한국소비자연맹이 “피프로닐 등 살충제가 들어 있는 계란이 시중에 유통 중이니 빨리 조처해야 한다”고 식약처에 알린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이에 류 처장은 “많은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상이 없다고 보고 받았다”고 말해 논란을 샀다.

현안으로 살충제 계란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검정조정회의를 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류 처장에게 수입 계란의 안전성 등을 물었을 때 류 처장은 상당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당시 이 총리는 “제대로 답변 못 할 거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지 말라”고 류 처장을 질책했다.

올해 3월에도 식약처의 행정에 의문을 가질 만한 사건이 있었다. 식약처가 우수하다고 인증한 제조사의 화장품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중금속이 검출된 것이다. 식약처의 인증을 믿고 제조사를 선택해 유통시킨 화장품 브랜드들은 판매중단 및 자진회수 명령을 받았다.

식약처가 중금속인 ‘안티몬’의 허용 기준을 초과했다고 밝힌 업체는 아모레퍼시픽, 에뛰드하우스, 스킨푸드 등 8개 업체다. 이들은 모두 화성코스메틱이라는 제조사에 제품을 의뢰했다. 화성코스메틱은 식약처가 우수제조공정(GMP) 업체로 인증한 회사다. GMP는 제조와 품질 관리가 우수한 제조사에 식약처가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 시스템이다.

GMP 인증을 받은 사업장은 일정기간 식약처의 감시 대상서 제외되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린다. 또 식약처 인증 마크를 부여 받아 기업 이미지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 인증을 받은 제조사에서 중금속이 과다검출 되면서 식약처는 허술한 검증과 관리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발표만 하고 나몰라
끊이지 않는 잡음

지난달 화제를 모은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에도 식약처의 대응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식약처가 발표한 주요 내용은 세가지였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니코틴 함유량은 일반담배와 유사한 수준이라는 것과 일부 전자담배서 일반담배보다 타르가 높게 검출된 것. 

그리고 궐련형 전자담배에도 발암물질이 다수 포함돼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타르에는 다양한 유해 물질이 혼합돼있다"며 "궐련형 전자담배에는 타르 함유량이 일반담배에 비해 높아 유해 성분도 더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의 이 같은 발표에 궐련형 전자담배 업체들은 각종 자료를 들이밀며 적극적으로 반발했다.

마누엘 피치 필립모리스인터네셔널(PMI)과학연구 최고책임자는 지난달 18일 기자간담회서 "궐련형 전자담배의 증기에 포함된 유해 성분 9종의 함유량이 일반 담배에 비해 평균 90%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식약처가 이런 분석 결과를 배제하고 타르 수치비교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한국필립모리스도 식약처의 발표에 "궐련형 전자담배의 타르 함유량을 측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일반 담배와 유해성을 비교한 식약처의 평가는 잘못된 것"이라며 "궐련형 전자담배의 증기와 일반 담배의 연기는 구성 성분이 질적으로 달라 배출 총량을 단순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담배회사가 자체 임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궐련형 전자담배가 덜 해롭다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식약처의 대응도 적절하지 않았다. 공신력을 입증해 보여줘야 할 식약처의 발표가 오히려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국민들에게 식약처 발표내용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신력 얻을까

판매금지된 고혈압 약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문제가 된 원료를 사용한 의약품은 신속하게 회수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며 “현재 원료의약품에 대한 수거를 진행하고 있고 불순물 포함 여부와 함량,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다각적으로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제적인 사안이므로 유럽을 비롯한 제외국과도 공조할 예정이며 조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알려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시작부터 삐걱거린 식약처의 행정 처리가 언제까지 잡음을 낼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kimseh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식약처, 아시아나와 조우?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아시아나항공과 식약처가 만났다. 

지난 1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일부터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식 제조현장에 식음료 검식관을 파견해 특별점검을 벌였다고 밝혔다. 최근 기내식 공급 차질을 둘러싼 이슈에 식품안전당국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식약처가 특별점검을 벌이는 곳은 식품제조업체 세 곳이다. 점검 대상은 샤프도앤코코리아, 케이터링서비스파트너, 이든푸드영농조합법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원재료 입고부터 기내식 배송까지 검수를 실시하고 기내식 적정 온도관리와 작업장 위생관리에 신경써 안전한 기내식이 공급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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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