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떠나는’ 이태원 스케치

“30년 장사 접어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지난해 미8군사령부가 경기도 평택에 새 둥지를 틀고 이전했다. 미군부대 이전의 여파인 듯 요즘 이태원을 찾는 외국인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외국인거리의 특색이 희미해지자 폐업하는 상점들도 늘고 있다. 일각에선 장기적으로 이태원 상권에 호재를 예상하기도 하지만 당장 들이닥친 막막한 현실에 상인들은 죽을 맛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녹사평대로서 20여년 동안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한 신발 전문매장이 지난해 12월 폐업했다. 동대문서 보세 신발을 떼다 팔던 업주 A씨는 미군 손님도 줄고 주변에 2∼3층 규모의 대형 의류 매장이 들어서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발길 뚝

지난해 용산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 시작되면서 미군 단골손님의 발길도 뚝 끊겼다. 거리를 찾는 20∼30대 젊은이들은 카페나 유명 맛집만 찾을 뿐 A씨의 가게에 들르지 않았다. 장사가 안되니 매달 300만원 가까운 임대료를 부담하기 버거웠다. 

건물 앞 노점상 상인 B씨는 “수천만원씩 권리금을 내고 들어왔지만 고스란히 포기하고 장사를 접고 떠나는 이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태원역 인근 상점 폐업률은 창업률을 훨씬 웃돌았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이태원역 인근 상점 폐업률은 4.2%를 기록했다. 홍대입구역과 명동역 인근 상점 폐업률(각각 2.5∼3.6%와 1.8%)에 비해 높았다. 


상가 공실률도 서울시 평균을 훨씬 웃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이태원 일대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1.8%를 기록했다. 스포츠의류 등 2∼3층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들어서면서 3분기(19.1%)보다 감소했지만, 서울 도심 지역 공실률(4.4%)보다 높았다. 

한 전문가는 “임대료가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점포를 정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도 공실이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3.3㎡당 17만4000원 정도였던 이태원 일대 1층 상가 평균 임대료는 올해 1분기 들어 16만3000원대로 하락했다. 이곳 상가 임대료는 지난해 2분기 정점을 찍고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 부동산전문가는 “이태원 상권 위축 상황이 지가에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럼에도 임대료 시세가 여전히 높은 편이라 앞으로 공실이 더 나오며 조정기간을 거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일대는 매해 250만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거리였다. 1997년 서울시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용산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미군과 부대 관련 종사자 덕분에 수요가 꾸준했다.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이곳에 자연스레 외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나 수입 제품 상점이 들어섰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려는 내국인들도 가세하면서 불황을 모르는 상권이 됐다. 

하지만 용산 미8군이 지난해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이태원 거리를 찾는 외국인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태원 거리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C씨는 “미군에 대한 의존도가 30% 정도고, 나머진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들이 차지했다”며 “미군의 공백이 생각보다 크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이전의 영향이 가장 역력하게 느껴진 곳은 이태원소방서 뒤쪽 골목에 형성된 윤락가(일명 후커스 힐)였다. 이곳은 용산미군기지 시절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던 곳이다. 지역 상권에 따르면 한때는 미 헌병대서 집중적으로 관리하던 지역이기도 하다.

외국인 거리 특색 희미…폐업·공실 증가
골목 상권도 예전만 못해…상인들은 울상

하지만 미군이 떠나간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이곳 분위기는 가라앉다 못해 썰렁함마저 느껴졌다. 좁은 골목 사이로 길게 늘어선 20여개의 업소 중 문을 연 곳은 단 두세 곳뿐이었다. 그나마 문을 연 업소서도 여종업원들이 가끔 지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호객행위를 했지만 별 성과는 없어보였다. 

장사가 잘 안되는지 업소 안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종업원들도 보였다.

이곳 업소서 일하고 있는 한 종업원은 “최근 두세 달 사이 인근 업소들 사이에서 문을 열지 않는 분위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상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곳은 미군기지가 철수한 이후 장사가 안 돼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

이국풍 식당이나 카페가 사라진 자리엔 국내 프렌차이즈 업체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태원역 반경 50m 안에 프랜차이즈 화장품 가게만 10여 개가 넘는다. 

이태원역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마진율이 높은 화장품 가게 등이 들어와 주변 지가와 임대료를 많이 올려놨다”며 “외국 음식을 파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다 외국인과 자연스레 대화를 트는 그런 모습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태원 상권의 인기는 경리단길 해방촌 등 인근 골목상권의 부상을 이끌었다. 대로변 임대료가 지나치게 높아지자 자영업자들이 인근 골목길로 이동하면서 신흥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골목의 다가구주택 1~2층은 속속 식당이나 카페로 변신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골목 상권마저 활기를 조금씩 잃어가는 분위기다. 경리단길 일대 1일 평균 유동 인구수는 올들어 감소 추세다. 지난해 12월엔 1만5000여명이었으나 올해 1월엔 1만3400여명, 2월엔 1만2790여명으로 감소했다. 

김민영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호황이던 경리단길 유입 인구가 인근 해방촌으로 이동하는 등 상권 위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그동안 임대료가 꾸준히 상승한 탓에 부담을 느끼고 폐업하는 점포가 하나둘씩 나오는 추세”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군기지 이전이 장기적으로는 이태원 상권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2005년 ‘미군용산기지 이전에 따른 이태원 관광특구의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미군부지에 용산공원이 들어서 이태원관광특구에 생태 및 녹지환경이 조성되면 쾌적한 주변환경으로 중장기적으로는 이태원의 개발 잠재력이 증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장 힘들다”

하지만 상인들은 “너무나도 먼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음식거리 인근서 기념품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용산공원이 조성된다고 해도 2029년이지 않느냐”며 “그때까지 견디라고 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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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