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만에 간첩누명 벗은 중년남성 이야기

“사람들은 나를 ‘빨갱이’라 욕했다”

[일요시사=최형호 기자] “1986년 어느날 밤. 어김없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한손엔 군밤을 들고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고 허리를 숙인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건장한 남자 2명이 안기부에서 나왔다며 남산 지하실로 가자고 말했다. 내가 간첩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5년 3개월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누명을 풀기위해 싸워야 했다. 24년간의 싸움 끝에 결국 난 누명을 벗었다.”

몽둥이 타작에 짐승처럼 울부짖다 허위자백
아들에게 그동안 있었던 억울한 진실 말할 것

간첩누명을 쓰고 24년을 외롭게 싸우다 서울고법 형사5부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A(54)씨의 이야기다. 그는 혈기왕성했던 20대 때 돈을 벌기위해 몇 달간 일본에 다녀왔다. 그리고 몇 년 후, 돈 벌러 갔던 일본행이 A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지난 1986년 갑자기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수사관의 첫마디는 반국가단체 구성원인 B씨의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한 혐의로 체포한다였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남산 지하실로 끌려가 43일간 구금됐다. 구금된 기간 동안 그는 온갖 구타와 고문, 가혹행위를 당해야 했다.

43일의 모진고문

“오랫동안 간첩이 아니라고 버텼다. 하지만 몽둥이로 죽을 때 까지 맞으니까 더 이상 못 버티겠더라”라며 “어쩔 수없이 모두 허위자백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의 형을 확정받았고 5년3개월간 수감됐다.

그가 감옥에 있으면서 가장 걱정한 것은 생후 5개월 된 아들이었다. 그가 수감해 있던 기간 동안 아이가 아내에게 “아빠 어디 있어?”라고 물어보면 아내는 “아빠는 돈 벌러 일본에 갔다”라고 말하며 옥살이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5개월 된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몇 년 후 아들과 재회한 곳은 대전교도소였다. “아이가 나를 처음보고 했던 말이 ‘아빠 굉장히 큰 집에 산다’ 였다”라며 “수감생활 동안 단 하루도 잠을 이룬 적이 없었다. 눈을 감으면 나 때문에 고통 받고 있을 아내와 아빠라고 제대로 불러보지 못하는 아들이 떠올라 하루하루가 비탄의 나날이었다”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5년여의 형을 마친 그는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다. 가정을 책임져야 했기에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기억을 뒤로하고 뭐든 열심히 해야 했다. 억울함 보단 생계가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5년 만에 나타난 아빠가 낯설었던 모양이다. 아빠에게 다가가지 않고 주위만 빙빙 맴돌았다. 어렸을 때 나눠야 했던 정이 없었기에 부자 사이에서 흐르는 어색한 침묵은 그들에게는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

A씨는 아들과의 벽을 허물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들과의 대화는 겉돌았고, 구속된 생활을 살았던 A씨 스스로도 자유로운 생활이 어색했다. 그런 중에도 경찰은 보안관찰을 이유로 수시로 찾아왔고, 아파트 경비원에게 A씨의 동향 등을 캐물었다. 이것을 바라봐야 했던 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들 위해 결백주장

어쩔 수 없이 A씨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했다.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묻힐 뻔 했던 ‘자신이 간첩이었다’는 누명을 풀기 위해서 그는 동분서주 움직였다.

결국 진실화해위원회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2006년 위원회는 A씨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결국 3년여의 노력 끝에 A씨의 누명은 벗어날 조짐이 보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A씨는 일본에서 일한 회사가 조총련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음에도, 보안사는 42일간의 불법 구금과 고문 및 가혹행위로 구씨로부터 허위자백을 받아 간첩사건으로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A씨는 그로부터 1년 뒤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안영진 부장판사)는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한 혐의(국가보안법상 간첩)로 기소돼 징역 7년이 확정됐던 구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는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에 의해 연행돼 40여일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해 임의성 없는 자백을 했고, 신문에 참여한 적이 없는 국가안전기획부 수사관 명의로 수사보고서가 작성되는 등 증거서류의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A씨를 포섭했다는 B씨가 조총련 소속 북한공작원이라거나 A씨가 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지난 18일 24년 만에 자신의 누명을 벗은 A씨는 어느덧 훌쩍 커 27살이 된 아들에게 “아빠는 억울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A씨는 “아들은 내가 5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라며 “내가 간첩혐의로 징역을 살았다는 걸 평생 모르고 살아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족의 아팠던 과거가 아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결국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A씨는 끝으로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안기부 수사관들, 그들 못지않게 험악했던 검사들, 옷을 벗고 고문상처를 한 번 확인해달라는 호소를 오히려 나무라던 판사들 이름을 생생히 기억한다”며 “하지만 그들을 모두 용서하려 한다. 다만 국가가 저지른 반인권적 범죄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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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유튜버 데뷔 진짜 이유

문재인 유튜버 데뷔 진짜 이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잊히고 싶다던 사람의 행보는 절대 아니지 않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국민 행보를 시작했다. 전임 대통령과 달리 퇴임 후에도 활발한 활동으로 입길에 오르더니 최근에는 그 행보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을 얼마 앞둔 시점에 남긴 “잊히고 싶다”는 말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보수 정당은 문 전 대통령의 말을 ‘허언’이라고 치부하는 중이고 진보 세력에서도 “좀 너무한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임 대통령의 행보라고 하기엔 과하다는 지적이다. 의도 없어도 정치 행보로 문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30일 불교계 원로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퇴임을 40일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앞서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대통령 이후에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이라든지, 현실 정치와 계속 연관을 갖는다든지 그런 것은 일절 하고 싶지 않다”며 “대통령을 하는 동안 전력을 다하고 대통령이 끝나고 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대국민 소통을 이유로 SNS를 시작했다. 책을 추천하거나 시국과 관련해 발언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행사에 참석해 직접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 적도 있다. 선거 때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문 전 대통령의 행보는 매번 입길에 올랐다. 전직 대통령인 만큼 행보 하나하나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부분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이다. 백번 양보해서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말했다. 실제 문 전 대통령의 언행은 정치권은 물론 국민에게도 얘깃거리가 되곤 했다. 그런 문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유튜버로 깜짝 변신했다. 전직 대통령이 유튜버로 데뷔한 사례 역시 역대 최초다. 무엇보다 영상 제작을 방송인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겸손방송국’이 맡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해석이 줄을 잇고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초 친명 측서 민감하게 반응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유튜브 채널 ‘평산책방’에 게재된 ‘EP. 1 시인이 된 아이들과 첫 여름, 완주’ 영상에 출연했다. 채널명인 평산책방은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무는 경남 양산에서 운영 중인 서점이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평산책방’ 계정에 45초 남짓의 영상을 올려 유튜버로서의 출발을 알린 바 있다. 영상은 문 전 대통령과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됐다. 문 전 대통령은 평산책방의 ‘책방지기’로 소개됐다. 첫 번째 추천작은 시집 <이제는 집으로 간다>였다. 소년보호 사건 재판에서 보호위탁 처분을 받은 경남 청소년위탁센터의 청소년 76명이 작성한 시를 엮어 만든 책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아이들은 앞으로 우리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느냐, 안 그러면 계속 빗나간 생활을 하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며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애들은 들어주기만 해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집의 표제시인 ‘가만히’를 가장 기억에 남는 시로 꼽았다. 두 번째 책으로는 류기인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부장판사 등이 엮은 <네 곁에 있어줄게>를 추천했다. 청소년회복센터 교사, 자원봉사자 등이 소년재판과 소년사건 현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담은 책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책은 평산책방이 직접 출판했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출판할 수 있었다”면서 “책이 많이 팔려서 아이들에게 인세(저작권 사용료)를 나눠주고 아이들이 ‘시집도 냈고 인세도 받았다’는 자긍심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의 유튜버 데뷔는 정치권을 흔들었다. SNS 글, 직접 발언 등으로 메시지를 던진 적은 있지만 고정 출연을 명목으로 한 주기적인 방송 활동은 그 영향력에 있어서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문 전 대통령의 행보에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른바 ‘친명(친 이재명)계’ 쪽에서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뜬금없이 갑자기 왜? 실제 유튜브 영상은 물론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커뮤니티 등에는 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의견이 다수 올라왔다. ‘잊혀지고 싶다고 했으면 조용히 있어달라’ ‘왜 대통령이 순방길에 나선 시점에 유튜브를 하나’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영상 제작을 맡은 김씨와의 연관성을 언급하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통령의 행보를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와 연결 짓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전쟁이 본격화할 즈음에 ‘친문(친 문재인)’ 세력을 규합해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국민의힘 등 야권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부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의도로 비친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후보 공천 시기가 다가오면 민주당 지지층이 친명과 친문(친 문재인)으로 갈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 사이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정 대표는 임기 초부터 이 대통령이 주목받아야 할 시기마다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도 정 대표는 당원 주권 강화를 취지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값을 1인1표로 하겠다는 내용을 두고 의견 수렴을 하겠다며 전 당원 여론조사를 밀어붙였다. 이번 여론조사는 당 대표 선거에서 ‘당심’을 등에 업고 당선된 정 대표가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연임을 노리고,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의 공천권을 쥐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 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힘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친문 스피커로 불리는 김어준씨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 대표가 되기 전부터 김씨가 운영하는 <딴지일보> 온라인 게시판에 자주 글을 남겼다. 당 대표 취임 후에는 “사법개혁안을 당론으로 추진해 본회의에 통과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사 글을 남기기도 했다. 공천 전쟁 친문 결집? 지난 6일 제주도에서 열린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 ‘더민초’ 워크숍 강연에선 “민주당 지지 성향으로 봤을 때 <딴지일보>가 가장 바로미터”라고 발언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특정 지지층에 휘둘린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타나면서 지방선거가 ‘진흙탕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한편으로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과거와 비교해 많이 훼손된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임기 내내 4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점, 퇴임 후의 행보가 지지세를 깎아 먹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지난해 총선 때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4·10 총선 당시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는 유세 활동을 펼쳤다. 당시 그는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이라며 윤석열정부를 연일 공격했다. 국민의힘이 “최악의 정부는 문재인 정부”라고 정면 반박하면서 문 전 대통령이 선거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폭망’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부·울·경 일대를 돌며 민주당 후보 11명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9명이 낙선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문재인 책임론’이 불거졌다. 문 전 대통령의 등장이 역풍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보수층에서 ‘문 전 대통령 덕분에 보수가 결집했다’는 조롱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총선 유세 ‘폭망’ 조국 사면으로 민심 악화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사면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돼 수감된 상태였다. 조 대표가 받은 형량은 2년으로 만기 출소는 내년 2월로 예정돼있었다. 그런 그를 ‘광복절 사면’ 대상에 포함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조 대표 사면 요구는 이정부의 임기 초반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처음 정치권에서 조 대표의 사면 이슈가 흘러나왔을 당시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역대 정부에서 임기 초에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점, 조 대표에 대한 민심이 부정적인 점 등이 근거로 떠올랐다. 이른바 ‘조국 사태’는 대학 입시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 논란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줬다.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크게 흔들린 시점도 조국 사태였고, 결정적으로 윤정부의 탄생에 단초가 됐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사면 요구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류가 변했다. ‘조국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는 문 전 대통령의 생각이 사면 요구로 나타나면서 조 대표의 사면을 지지하는 쪽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 지지층에서는 ‘(대통령) 임기 때에도 못 한 일을 왜 현 정부에 해달라고 하느냐’는 의견이 분출했다. 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조 대표의 배우자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한 사면 요구가 있었지만 이뤄지지 않은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에 부담 주지 말라는 의견도 빗발쳤다. 정치권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면서 말을 아꼈다. 그러다 이 대통령이 조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을 이겼다’ ‘친문 살아 있다’는 등의 말이 나왔다. 후폭풍은 거셌다. 60%대를 견고하게 유지하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로 주저앉았다. 공정 이슈가 훼손됐다고 생각한 2030세대가 지지율 하락을 이끌었다. 영향력은 두고 봐야 문 전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평산책방’ 계정에 올라오는 영상 중 ‘평산책방 TV’라는 코너에 고정 출연할 예정이다. 문 전 대통령이 내놓는 발언, 추천하는 책, 출연자 등이 하나하나 입방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트로이 목마’가 될까, ‘서포터’가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