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모레퍼시픽 ‘수상한 부동산’ 추적

제주땅 알박기 의혹…큰 덩어리 노림수?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아모레퍼시픽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가 포착됐다. 제주 땅을 사는 과정에서 이른바 ‘알박기’식 투자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수만평의 임야 가운데 일부 지분만 매입한 뒤 수년째 버티고 있는 정황이 석연치 않다. 다른 토지주들이 원하는 토지분할도 거부하고 있다. 이 땅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아모레퍼시픽의 의문투성이 부동산 거래를 들춰봤다.

2005년 8만평 서광리 임야 지분 20%만 매입
6년째 더 사지도 팔지도 않고 눈치만 ‘살살’

아모레퍼시픽이 제주 땅에 이른바 ‘알박기’식 투자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몇년 전 수만평의 임야 가운데 일부 지분만 매입한 뒤 버티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다른 토지주들은 아모레퍼시픽 때문에 땅이 묶여 재산권 행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모씨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소재 임야 25만7096㎡(약 7만7900평)의 지분 20%를 30여년 전부터 소유하고 있다. 지인들과 함께 은퇴 후 제주에서 노후생활을 보내기 위해 지분을 나눠 공동소유하게 됐다.

“늙어 보낼 곳이…”
노후 꿈 산산조각

그러나 지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신모씨가 자신의 지분을 아모레퍼시픽에 매각하면서 강씨의 꿈이 꼬이기 시작했다. 신씨는 2005년 6월 소유하고 있던 지분 20%를 장원산업에 팔았다. 장원산업이 서광리 임야 5만1419㎡(약 1만5581평)의 소유권을 쥔 셈이다. 당시 매매가는 약 16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의 ‘장원(粧源)’이란 아호를 딴 장원산업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서 창업주의 차남)이 최대주주로 사실상 오너일가 소유의 개인 회사였다. 녹차를 생산하는 농장사업과 부동산임대업 등을 사업 목적으로 1974년 12월 설립됐다가 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따라 서광리 땅을 산지 6개월 만인 2005년 12월 ㈜태평양에 흡수합병됐다.

합병 당시 장원산업 지분은 서 사장이 53.63%를, 나머지는 대부분 기타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아모레퍼시픽 지주회사였던 ㈜태평양은 지난 3월 계열사간 연관성 강화 및 글로벌 기업이미지 구축 차원에서 사명을 아모레퍼시픽그룹으로 변경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서광리 땅의 지분을 매입한 뒤 그대로 뒀다. 다른 지분을 추가로 사지도, 갖고 있는 지분을 팔지도 않았다. 이 땅이 묶이면서 공동 토지주들은 재산권 행사를 전혀 하지 못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동의 없이 처분이나 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법 등 관련법에 따르면 공동소유의 물건은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공유물을 처분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한 필지의 땅을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면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는 권리를 제대로 내세울 수 없다. 지분만 거래한다 해도 개별 부동산의 구체적인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아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아모레퍼시픽 외 강씨 등 나머지 지분 소유자 5명은 아모레퍼시픽의 ‘알박기’식 지분 매입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지주들 땅 묶여 재산권 행사 못해
수십차례 토지분할 제의했으나 거부

이들은 “막강한 자금과 권력을 쥔 대기업이 힘없는 소시민들의 재산을 움켜쥐고 있다”며 “지난 6년간 20% 지분을 가진 아모레퍼시픽의 합의 없이 어떤 재산권 행사도 불가능했다”고 호소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제주에서 보내고자 했던 꿈과 희망이 무너지고 오히려 피맺힌 한과 절규만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강씨와 다른 토지주들은 아모레퍼시픽 측에 토지분할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토지분할은 지적도에 등록된 1필지의 토지를 지분만큼 2필지 이상으로 나누는 것을 말한다. 공유토지를 분할할 경우 공유자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1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분할이 이뤄질 수 없다.

이에 따라 토지주들은 수십회에 걸쳐 아모레퍼시픽에 토지분할을 제의했다. 그때마다 회사 측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다 나중엔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됐다. 한번은 아모레퍼시픽의 ‘OK 사인’을 받아 토지분할을 위한 지적 측량 등 용역에 착수했으나, 또 다시 뒤늦게 백지화해 토지주들이 수천만원을 날리기도 했다.

강씨는 “아모레퍼시픽에 토지분할을 요구했지만 부서간 서로 떠미는 것도 모자라 결제가 늦어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와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지금까지 왔다”며 “매번 토지분할을 해주겠다는 구두 약속만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1년에 세금만 수백만원씩 내는 등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아모레퍼시픽의 부지 점유도 지적했다. 그는 “지적 측량을 하면서 공동 소유의 부지 수천평을 회사 측이 주차장, 녹차밭 등으로 어떤 승인도 없이 무단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줄곧 시정을 요청해도 모른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랬다 저랬다’
말 뒤집기 반복

그렇다면 아모레퍼시픽은 왜 서광리 임야의 지분을 매입한 것일까.

문제의 땅 바로 인근엔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하고 있는 녹차밭 ‘서광다원’이 있다. 따라서 업계에선 아모레퍼시픽이 사업부지 확보 차원에서 땅의 지분을 사들인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 최초의 차 전문박물관인 ‘오설록 티 뮤지엄’이 있는 서광다원은 국내 최대 규모이자 최대 차 생산지로, 면적이 66만1160㎡(약 20만350평)에 이른다. 아모레퍼시픽의 녹차사업은 서 창업주의 필생의 의지로 이뤄진 산물이다. 이 창업주는 국내에서 사라진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1970년대 버려졌던 황무지를 직접 일궈 차나무 재배단지를 조성했고, 1980년대부터 설록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서 사장의 차 사업에 대한 의지도 남다르다. 선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차 사업 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울 방침을 내비치기도 했다. 녹차는 전통음료로서의 문화적 가치뿐만 아니라 미래 유망사업으로 손색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2015년까지 주사업인 화장품에 이어 핵심사업으로 성장시킨다는 구상이다.

서 사장은 평소 “녹차는 맥이 끊긴 우리나라 차 문화를 잇기 위해 부친이 필생을 바친 일”이라며 “그 유지를 받들어 우리나라를 녹차 강국으로 만들겠다” 고 임직원에게 강조해 왔다.

만약 아모레퍼시픽이 사업부지용으로 서광리 임야의 지분을 사들였다면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된다. 무슨 이유로 부지 전체를 매입하지 않고 일부 지분만 취득했느냐다.

"땅 문제 법적분쟁으로 끌고 가
싼값에 통째로 거머쥐려 한다"

이에 대해 강씨는 아모레퍼시픽의 야욕을 의심했다. 한마디로 땅 전체를 노린 포석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의도라는 게 강씨의 주장. 강씨는 또 땅 문제를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가 결국 싼값에 다른 지분까지 통째로 거머쥐려 한다고 의심했다.

실제 부동산 공유자간 합의가 되지 않아 토지분할이 불가능할 경우 법원에 공유물분할청구 소송을 낼 수 있다. 그러나 통상 서로 좋은 위치의 땅을 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실상 협의 분필이 어렵다. 이때 법원은 직권으로 경매를 명령하고, 경매 처분 후 매각 대금을 공유지분별로 배당받게 된다. 경매는 토지 공유자도 참여해 낙찰 받을 수 있다. 낙찰가는 대부분 일반 시세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강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른 토지주들의 부담이 커져 아모레퍼시픽이 협상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며 “소송을 하려고 해도 실거래 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나눠 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땅 시세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논란이 되고 있는 서광리 산XX번지의 공시지가는 지난 1월 기준으로 단위면적(㎡)당 8480원으로 나타났다. 총면적이 25만7096㎡란 점을 감안하면 이 임야의 땅값이 22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분을 매입한 2005년 1월 공시지가는 9770원. 6년 전에 비해 땅값이 내려갔지만, 실거래가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지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에 호재가 많아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보다 수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았다.

서광리 일대는 ▲첨단과학기술단지 ▲휴양형 주거단지 ▲신화·역사공원 ▲서귀포관광미항 ▲헬스케어타운 ▲영어교육도시 등 건설교통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서 추진하는 6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신화·역사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신화·역사공원은 오는 2015년까지 404만㎡(약 122만4000평)에 1조6000억원을 투입해 세계적 수준의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JDC는 2007년 12월 우선 510억원을 투입해 부지 조성공사에 착수했다.

일체 함구…의혹만 키워
확인취재도 응하지 않아

한국산업은행은 “신화·역사공원의 개발 효과가 고용 파급효과는 3만1497명, 생산 파급효과는 2조3553억원, 소득파급효과는 5015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제주 땅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어 의혹을 키우고 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사실 확인을 위한 본지의 취재에도 응하지 않아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

이희복 아모레퍼시픽 홍보팀장은 지난 10일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회사 땅 문제는 잘 모른다. 담당 부서에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19일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일요시사>는 11일 아모레퍼시픽 측에 지분 매입 배경, 토지분할 거부 이유, 부지 활용 계획 등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으나 이 역시 어떠한 회신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반론이나 해명을 듣기 위해 십여 차례에 걸쳐 연락을 취했지만, 회사 측은 “팀장이 자리에 없다.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여러 번 메모를 남겨도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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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