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번지는 ‘묻지마 살인사건’

[일요시사=최형호 기자] 세계적으로 ‘묻지마 살인사건’이 유행처럼 터지고 있다. 노르웨이 출신 브레이브 빅은 세상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중국에서는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인해 한해 평균 9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 또한 일본은 도오리마(길거리의 악마)라는 신조어가 증명해주듯 묻지마 살인 사건의 온상이 된지 오래이며, 한국은 묻지마 살인이 2년 새 56% 급증했다. 문제는 묻지마 살인이 단순 살인사건을 넘어 테러수준을 방불케 한다는 것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에 있다.

한국도 묻지마 살인 2년 새 56% 급증
테러수준의 묻지마 살인 대책마련 절실

2011년 7월 22일 오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정부 청사와 오슬로 교외 우토야섬의 노동당 청년 캠프 행사장에서 연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최소 91명이 목숨을 잃었다. 범인은 백인 남성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으로 정치적으로 우파 성향이 강한 민족주의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단독으로 이 같은 만행을 저질렀으며 이슬람과 노르웨이 정치현실에 매우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평화의 이미지가 강한 노르웨이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에 대혼란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분쟁 없는 평화 도시 오슬로는 정치인이 무방비로 거리를 활보할 만큼 치안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인구 500만명의 노르웨이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연 40건으로 한국의 연 1000건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세계 경악시킨 브레이빅

노르웨이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는 나라인 만큼 개방과 평화, 안전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나라로 인식된다. 폭탄 테러가 일어난 정부청사 인근 오슬로시청에서는 매년 12월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며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이곳에서 상을 받았다.

또한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약인 오슬로 협약 체결과 2002년 스리랑카-타밀반군 간 휴전협정, 2005년 남·북 수단 평화협약 중재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온 나라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이 사건 때문에 오랫동안 쌓아온 개방과 평화, 안전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얼마 전 중국에서도 여러 건의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온천으로 유명한 랴오닝성 안산시 얼타이쯔촌의 한 공중 목욕탕과 바로 옆 세차장에서 일가족 3명 등 모두 10명이 시신으로 발견 된 것. 희생자는 저우모씨의 부인과 아들, 아버지 등 일가족 3명을 비롯해 목욕탕과 세차장 종업원, 이 건물주인 가족 등 모두 10명에 이른다.

푸젠성 난핑시 난핑실험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보건소 의사 출신인 40대 남성이 무차별적으로 휘두른 칼에 등교 중이던 초등생 8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한 것을 시작으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 지금까지 어린이 15명을 포함해 17명이 사망하고 90여 명이 부상당했다.

‘도오리마’를 아시나요?

일본에서는 ‘무고한 사람을 상처 입히거나 죽이는 끔찍한 범죄’를 일컬어 ‘도오리마(거리의 악마)’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사실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묻지마 사건의 온상이 된지 이미 오래다.

도쿄시내에서 전자상가로 유명한 아키하바라 대로에서 2톤 대형트럭을 몰던 20대의 남성이 신호를 무시하고 돌진,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 3명을 친 후 차에서 내려 등산용 칼로 행인 등 10여명을 칼로 찔렀다. 이 사건으로 시민 7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됐다. 범인은 가토 도모히로(25)라는 시즈오카현 출신의 남성으로, 사건 직후 뒤?아 온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아키하바라에 왔다”라며 “이 세상에 산다는 게 지겹다. 누구를 죽이든 상관 없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도쿄 외곽의 한 전철역 버스에서 20대 남성이 역 앞에 세워져 있던 버스 2대에 잇따라 올라타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이 사고로 10여명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이 남성은 경찰에 체포된 뒤 "내 인생을 끝내고 싶었기에 상대를 가리지 않고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일본에서 발생하는 도오리마 사건은 1998년 이후 80건을 넘어섰다.

묻지마 살인사건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6월 2일에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 인근 골목길에서 류모(여.32)씨가 흉기로 등을 찔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경찰조사에서 류씨의 뒷모습이 아내와 닮아서 홧김에 찔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5개월 전 아내가 딸을 데리고 가출한 데에 앙심을 품고 길에서 아무 여성이나 골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범행을 저질렀다.

서울 중구 신당동 주택가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던 노래방에서 청소 일을 하며 지내던 이모(29)씨가 귀가 중이던 여성을 뒤쫓아가 흉기로 등을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이씨가 현장 주변을 계속 돌아다닌 점, 정신감정 결과 편집증과 자폐적 특성을 보이는 점 등을 감안, 명확한 범행동기가 없는 묻지마 범죄로 판단했다.

이어 서초구 잠원동에서 미국 주립대 심리학과 출신의 박모(23)씨가 집으로 가던 20대 남성을 뒤에서 흉기로 살해했다. 수사진은 박씨가 유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사실과, 그가 평소 판타지게임에 몰두했다는 점, 폐쇄회로(CC)TV에 자신을 노출시킨 행태나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을 죽이겠다"고 진술한 점을 들어 이유 없는 살인으로 결론지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검찰청의 2010년 범죄분석에 따르면 우발적 현실불만 등이 이유인 묻지마 살인 사건은 2005년 363건(전체 살인사건의 37%)에서 2008년 532건(53%), 2009년 656건(54%)으로 늘어났다.

한 사회학자는 “폭력성이 짙은 게임을 장시간 오래 하다보면 가상을 현실세계로 착각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확률이 높다”며 묻지마 살인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로 폭력성 짙은 게임을 지적했다. 이런 지적을 뒷받침 해주듯 묻지마 범죄자들 대부분은 게임중독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브레이빅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평소 폭력적 게임을 즐겨왔던 것으로 진술했으며 한국도 미국 명문대 중퇴생 박씨와 어머니를 살해한 게임중독 중학생 사건 등이 게임과 연관되어 있다.

일본 역시 18명의 사상자를 낸 가토 도모히는 은둔형 외톨이란 뜻인 ‘히키코모리’로 알려졌으며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까지도 하루에 6~7시간 씩 폭력적인 게임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묻지마 범죄가 증가하는 또 다른 이유로 치열해지는 경쟁과 사회적 변화에서 낙오한 사람들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A대학 교수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는 대부분 내성적이거나 나약한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경쟁에서 낙오할 경우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억눌러 왔던 감정을 폭발시킨다"고 말했다.

B대학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박탈이나 실업 등이 행동유발에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 때문에 자기 자리 상실, 무능력함, 낙인 등 사회 분위기에 충동과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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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