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다 정성 요리하는 미스터 초밥왕 안효주

"자신에게 주어진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

일식 요리사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의 유명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등장한 한국인 요리사.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초밥 왕으로 불리는 안효주(50) 대표다. 지난 5일 안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 ‘스시 효’를 찾아 훈훈한 그의 요리 인생에 대해 들어보았다.

‘스시 효’의 안효주 대표는 지난 2000년 일본 인기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서 수삼초밥을 만든 한국인 요리사의 실제 모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전북 남원 출생으로 1978년 일식에 입문하여 20여년 동안 일식 요리사로 일해 왔다.
“1985년 신라호텔에 입사했어요. 정말 맨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일식 주방장을 거쳐 일식당 총책임자 자리까지 올랐죠. 1998년에는 일식조리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고, 서울보건대학 전통조리과와 초당대학교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대경영대학원을 수려했어요.”
사람들은 그를 ‘초밥 왕’ ‘초밥의 달인’ 이라고 부른다. 1998년 당시 신라호텔 조리과장 시절에는 ‘초밥 명장’이라는 칭호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스시 효’를 열었을 때 그를 찾았던 신라호텔 손님들 80%가 옮겨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인생 공부도 마찬 가지지만 요리는 해도해도 끝이 없어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아요”라며 겸손해 한다. 오늘도 그는 새로운 요리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내며 연구한다. 요리도 우리네 인생살이와 같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예전에는 초밥을 만들 때 신선하고 살아있는 생선이 제일 좋은 재료인 줄만 알았는데, 생선을 숙성시켜서 만든 초밥이 더욱 맛있는 것도 있더군요. 그 당시 저도 숙성의 개념을 몰랐던 거죠. 생선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잡은 뒤 바로 먹어야 맛있는 생선이 있는 반면 5시간, 10시간 또는 하루를 숙성시켜 먹어야 맛있는 게 있어요. 참치는 7~9일 정도 지나야 제 맛이 나죠. 이런 지혜는 이론만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것이죠”
그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직접 신선하고 맛있는 생선을 구하기 위해 수산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장보기 정도는 아랫사람을 시켜도 될 법하지만, 후배 요리사들에게 부지런함의 모범이 되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안 대표는 젊은 시절 전국 아마복싱대회에서 라이트급 준결승까지 올랐던 복싱 유망주였다. 그런 그가 운동을 포기하고 ‘한국의 초밥 왕’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학생 복싱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뒤 고교 졸업 후 챔피언의 꿈을 품고 무작정 상경했다.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고향선배가 요리사로 있는 명동의 한 일식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운동을 시작했다.
“고향 선배가 있는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군대에 갔어요. 군 제대 후 선배에게 제대 인사를 하러 갔는데 마음이 참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고 틈틈이 요리학원도 다녔어요.”
그는 요리학원을 수료한 뒤 서초동의 일식집에 취직할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요리 인생의 스승인 이보경 주방장을 만났다. 안 대표의 인생 가운데 이 주방장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1년 정도 이보경 스승님 밑에서 배웠어요. 그리고 그분께서 저를 신라호텔에 추천해주셨는데, 그 당시 요리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단지 저의 성실함과 됨됨이를 보시고 추천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안 대표는 신라호텔에 입사한 뒤 본격적으로 요리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는 신라호텔에 근무하던 시절 지독하게 일했다. 다른 직원들이 쉴 때 일본어와 영어를 틈틈이 공부하며, 요리 연습에 몰두했다.
“열심히 일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제가 있는 위치와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죠. 3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저에게는 어릴 적 정신적 지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늘 ‘사람은 신용을 잃어서는 절대 안 되며,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돼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일을 하든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있다.
“저도 현재 1남1녀를 둔 아버지로 살아가는데,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지 않아요. 단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요. 그동안 경험을 통해 아버지가 저에게 말씀하신 것이 인생의 진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스시 효’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각계 인사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들은 ‘안효주 초밥’을 고집하는 단골손님들이다. 그중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최태원 SK 회장도 단골이다.
“박태준 회장은 제가 신라호텔에 있을 때부터 모셨던 분으로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어요. 박 회장님은 지금도 반드시 제가 있는지 전화로 확인한 뒤 식당을 찾으세요.”
이렇듯 계속해서 ‘스시 효’에 단골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맛보다 정성’을 먼저 생각하는 안 대표의 요리 철학 때문이다.

“저의 요리 철학은 첫째가 위생, 둘째가 정성, 셋째가 맛 이에요. 깨끗하지 않고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요리는 손님들도 단번에 알아요. 그리고 아무리 비싸고 좋은 재료라도 땅에 한번 떨어진 것은 버리라고 직원들에게 철저히 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요리는 청결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 맛을 내지 못하니까요. 음식에 정성이 들어가면 맛은 당연히 나게 되어있지요.”
 안 대표는 초밥을 먹을 때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며 소개한다. 양식처럼 절차가 복잡하지도 까다롭지도 않다.
“간단한 몇 가지 방법만 알면 훨씬 즐거운 식사가 될 수 있어요. 비즈니스와 관련된 식사를 하거나 일행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니라면 요리사들 바로 앞에 있는 바에 앉는 것이 좋아요.”
흔히 초밥은 3초만에 만들고 3초만에 먹으라고 한다. 짧은 시간에 만든 것을 빨리 먹어야 맛있다는 뜻이다.

“인생 공부도 마찬가지지만 요리 공부도 끝이 없다”
‘신용’ 지키고 ‘군계일학’이 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


“초밥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 록 생선의 무게 때문에 밥이 눌려요. 그러면 밥이 딱딱해지죠. 밥알 사이의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밥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을 때 먹어야 입 속에서 삭 퍼지는 초밥을 먹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초밥은 손으로 먹는 것이 좋아요. 젓가락으로 먹는다고 뭐라고 하는 요리사는 없지만 다만 손으로 먹으면 요리사는 속으로 ‘아, 이 분은 초밥 먹는 예의를 아시는 분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돼요.”
여기에는 요리사와의 교감이라는 측면도 있다. 초밥은 요리사가 맨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요리사의 체온이 녹아 있으니 손으로 집어야 그 체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지난 4월 그의 요리 인생을 되돌아보는 책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전나무 숲)를 펴냈다. 이 책엔 한국 최고의 초밥장인 안 대표의 요리와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오랫동안 신라호텔 일식주방장으로 일하다 현재는 초밥전문점의 대표로 명품 초밥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가, 요리 앞에서의 마음가짐, 초밥의 다양한 맛과 매력, 그리고 요리사로써의 인생에 관한 감칠맛 나는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놀랍기까지 한 그의 초밥 만들기와 인생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흥미롭고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책에는 안 대표가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를 만난 일화도 맛깔스럽게 담겨 있다.
“<미스터 초밥왕>에 나온 메뉴를 재현하는 이벤트를 하며 만화 작가를 초청했는데 그분이 ‘일본에는 없는 초밥을 만들어 달라’고 말 하더군요. 그래서 고민 끝에 만든 게 6년근 수삼으로 만든 ‘수삼초밥’이었죠. 1주일 뒤에 데라사와 다이스케 작가가 와서 맛을 보더니 만족해하더군요. 그래서 <미스터 초밥왕> 17권에 제가 등장하게 된 거에요.”

인삼이 쓴맛이라고만 생각했던 작가는 아삭아삭 씹히면서 간장 맛이 스며든 수삼초밥에 감탄했고, 만화에 소개하게 된 것이다.
지금 초밥을 쥔 그의 손은 예전에 권투장갑을 끼던 손이었다. 권투장갑과 초밥이란 그 엉뚱한 조합에 대해서도 안 대표는 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초밥을 만드는 일은 운동신경과 반사신경이 필요한 일이라고.
권투선수도 초밥요리사도 눈 깜짝할 새에 맛있는 초밥을 쥐어내기 위해서는 운동선수 이상의 반사신경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출판사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저의 삶에 대해서 또 요리 인생에 대해 책으로 내보자고 해서 낸 것이었어요.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지만 주간베스트로도 올랐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주위 분들은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말하곤 해요.”
이외에도 그의 저서로 <이것이 일본요리다> 등 3권이 있다.
‘스시 효’는 올 가을 네 번째 지점을 오픈했다.
“청담점, 서초점, 구로점에 이어 10월에 광화문점을 오픈 했어요. 지점을 늘려나가는 것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늘리는 것이 아니에요. 저와 함께 있는 후배 요리사들을 위해 지점을 늘리는 것인데, 후배들을 잘 양성해서 훗날 지점의 지배인으로 주방장으로 보내려고 해요. 그래야 그들도 더욱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물론 검증 안 된 사람은 절대 지점에 안 내보냅니다.”
안 대표의 직원 모집방법은 좀 남다르다. 그는 ‘스시 효’에 지원한 지원자들의 이력서보다 지원자들의 됨됨이를 먼저 본다고 한다.
“저는 이력서는 잘 안 봐요. 솔직히 이력서는 포장된 것이잖아요. 우선 그 사람이 부모님께 효도는 잘하는지, 인격은 어떤지를 먼저 봐요. 대화를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부모님께 효도를 잘하는 사람은 대인관계도 좋고 사회생활도 잘하지요.”
자신의 식당을 운영해보고 싶었던 그의 꿈은 이뤄졌다. 하지만 안 대표는 지금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스시 학교를 만들어서 품격 있는 요리사들을 양성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요리 실력뿐만 아니라 요리사로서의 인성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교육시키는 학교를 세워서 좋은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어요.”
안 대표는 지금까지 오로지 ‘요리’ 하나만을 위해서 살았다. 그런 그가 요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동안 소홀했던 친구들을 생각하며 먼 훗날, 깊은 산 속에 황토로 지은 일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안 대표.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시절, 미안한 마음으로 산속에 식당을 지어서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서울 도심에서 일본음식 맛보기

동부이촌동 초밥과 우동을 한번에
홍대 댕구우동 면발이 끝내줘요

서울에서 일본 음식을 느껴볼 수 있는 맛집이 있다. 특히 초밥은, 국내의 맛 전문가들은 신라호텔 아리아케[有名]를 으뜸으로 친다. 하지만 그곳 못지않은 곳들이 있다. 동부이촌동 하나[花]도 추천할 만하다. 기본에 충실한 집이다. 가격도 비교적 착하다. 3만원 정도. 낮에는 싸고 저녁에는 조금 더 비싸다. 주인이자 주방장을 맡고 있는 전병화씨는 같은 곳에서 20여년 초밥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딱 한번 확장했다. ‘하나’처럼 저녁 시간에도 초밥을 먹을 수 있는 집은 서울에서도 드물다. 이곳은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데다 주방장이 초밥을 고집해서 가능한 듯. 동부 충현교회 뒤편에 있다. (02)793-7733
동부이촌동의 아지겐[味原]도 권할 만하다. 메뉴는 일본라면, 볶음면, 짬뽕 등과 일본식 이자카야에서 만날 수 있는 가지구이, 시사모, 군만두, 고등어구이, 고등어 초절임 등 각종 사시미류와 생선구이류가 가득하다. 식사는 1만원 선, 안주는 5천원부터 1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일본 맥주 청주 종류도 다양하다. 화요일은 쉰다. (02)790-8177
달싹하고 따뜻한 국물과 간단한 김밥, 유부초밥을 먹고 싶다면 동부이촌동의 보천을 가볼 만하다. 달콤한 국물이 좋고, 더불어 주문한 초밥도 그럭저럭 괜찮다. 가격은 냄비우동이 8천원 선. 초밥도 더불어 먹자면 1만원 정도는 필요하다. (02)795-8730
우동집은 우선 사누키우동을 취급하는 두 집을 추천한다. 하나는 홍대(동교동 청기와예식장) 부근의 댕구우동이다. 간판에는 일본 카가와[香川] 사누키우동 대사라고 적혀 있다. 사누키우동의 면발로는 으뜸이다. 물론 면은 직접 만든다. 가격은 자루우동(모밀 먹듯이 국물에 찍어 먹는 것을 말한다)이 5천원 선. 추가로 돈까스 등을 덧붙여도 좋다. 추가 비용은 1천원 선. (02)333-9242
또 하나는 분당 오리역 인근 구미동의 야마다야[山田屋]다. 사누키(카가와 현의 옛 이름이다)에서 제면 법을 배워 왔다고 한다. 면의 상태도 좋고 국물도 퍽 좋다. 사누키우동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꼭 한번 가볼 만하다. 가케우동이 6천원 선. 한두 가지를 첨가하면 1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031)713-5242
(투어커플닷컴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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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텃밭 다지는 민주당 꽃놀이패

보수 텃밭 다지는 민주당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진통 끝에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정해졌지만 여전히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다. 그럼에도 “이재명은 싫고 국민의힘은 영 못 미덥다”는 한숨 섞인 푸념이 나온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더불어민주당은 갈 곳 잃은 보수 지지층의 마음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TK(대구·경북)를 대상으로 표심 구애에 나섰다. ‘흑묘백묘론’을 주장하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빨간색이면 어떻고, 노란색이면 어떻고, 파란색이면 어떻냐?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한번 만들어보는 것이 진정 행복 아니겠느냐”고 외쳤다. 중도 확장 큰 그림 민주당의 보수 끌어안기 전략은 대선 정국 이전부터 이뤄졌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서 흑묘백묘론을 꺼내면서 본격적으로 외연 확장에 나섰다. 흑묘백묘론은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뜻의 실용주의 철학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지도자 덩샤오핑이 사용한 속담이다. 기본소득을 강조해 왔던 이 후보는 이 자리서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고 주장했다. 공정과 성장을 앞세운 이 후보는 “새로운 성장 발전의 공간을 만들어 성장의 기회도, 결과도 함께 나누는 공정 성장이야말로 실현 가능한 양극화 완화와 지속 성장의 길”이라며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고 기업의 성장발전이 곧 국가 경제의 발전”이라고 밝혔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시대로의 전환과 주식시장을 선진화하는 등 경제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으로 탄핵과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던 때다. 줄탄핵으로 강경 노선을 유지했던 민주당이 성장을 키워드로 내걸면서 비상계엄 이후 어려워진 경제 상황을 타개해 기존 지지층은 물론 중도와 보수 표심을 아우르기 위함으로 해석됐다. 이 후보는 기본주택과 국토보유세를 사실상 철회하고 첨단산업 지원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경제 우클릭을 시도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줄도 믿을 수 없다”는 국민의힘의 맹비난이 이어졌지만 이 후보는 “민주당은 원래 경제 중심 정당”이라며 “경제와 성장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바로 국민의힘”이라고 받아쳤다. “코스피지수는 2600대로 겨우 턱걸이를 했는데 민주당이 집권하면 3000대를 찍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념이 밥 먹여주나” 노선 틀어 중도 보수 겨냥한 ‘흑묘백묘론’ 지난 2월에는 “민주당은 중도보수”라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우클릭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이 후보는 유튜브 채널 ‘새날’에 출연해 반도체 특별법에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 조항’을 넣으려다 철회한 일을 언급하며 “왼쪽에서는 진보의 가치를 버린 핵심 사례로 오해하고, 오른쪽에선 (오른쪽으로) 온다는데 가짜라고 해 쌍방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제가 우클릭을 한다는데, 우클릭 안 했다. 민주당은 사실 중도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며 “원래 우리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극우 세력이 강하게 결집했고,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이 여기에 끌려다니는 모양이 연출되자 빈집이 된 중도보수 영역까지 민주당이 발을 넓힌 것이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서 이 후보에게 도전장을 내민 김지수 한반도미래경제포럼 대표는 자신의 SNS에 ‘중도우파 이재명? 그는 지금 ‘국민 클릭’을 하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 후보는 기본소득을 말하면서도 시장 중심의 혁신 생태계를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성남시장 시절, 판교를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바꾸고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대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고민했다”며 “출정식 직후 곧장 판교로 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 엔진을 가장 먼저 클릭했다”고 설명했다. 4월,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되자 이 후보는 본격적으로 보수 인사 영입에 속도를 냈다. 한 야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흑묘백묘론이 전략이었다면 지금 민주당에는 현실”이라며 “조기 대선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넓은 전선으로 뻗어나가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보수 논객들을 만나 “장관은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일 잘하는 분을 모시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 지붕 밑 다 모였다 정 전 주필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정규재TV’를 통해 “(이 후보가) ‘새 정부는 좀 넓게 인재를 구해야겠다. 장관은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일 잘하는 분을 모시려고 한다. 업계 출신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민주당 내 극좌는 없다고 자신한다. 지난해 4·10 총선서 경선을 통해 극좌는 대부분 탈락했고, 탈락하지 않은 7명은 공천을 통해 교체했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이념 타령하겠나. 여기서 더 분열하면 안 된다” 등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출범한 ‘진짜 대한민국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의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영입했다. 그는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이회창 총재의 참모로 활동한 보수 원로로 꼽힌다.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거나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윤 위원장은 지난 11일 서울 민주당사에서 연 기자간담회서 “지난 3년에 걸친 윤석열정부의 국정 실패와 부조리·비정상적 행태에 대한 심판과 쇄신의 각오 속에서 미래를 다짐하는 선거를 해야 한다” “윤정부 3년 동안 국정 운영이 망가지는 것을 보며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합리적 보수 성향의 3선 국회의원 출신인 권오을 전 국회 사무총장도 이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 최고위원을 지낸 친유승민계 의원이다. 권 전 사무총장은 민주당 입당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이재명의 실용 정치가 국가 위상과 침체된 경제회복, 복지국가 실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박정부서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서 활동한 이인기 전 의원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대선을 3주 앞둔 지난 13일에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 지지자 일부가 이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과거 비명(비 이재명)계로 분류됐거나 한때 라이벌이었던 인물을 두루 영입하기도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측근인 고영인 전 의원은 캠프 직속위원회인 ‘모두의 나라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총괄선대위원장단에 임명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서 이 후보와 겨뤘던 김두관 전 의원은 ‘지방분권 혁신위원’을 맡았다. 이 밖에도 문재인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전 실장은 ‘평화 번영 위원회’를, 비명계 박용진 전 의원은 ‘사람 사는 세상 국민화합위원회’를 담당한다. 보수 심장 파랗게∼ 외연 확장 효과를 기대하는 반면, 민주당의 정체성이 흐려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여러 차례 탄핵을 입에 올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중도층의 역풍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중도만 집중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변화가 있어야 혁신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빛의 혁명’을 상징하는 서울 광화문서 출정식을 연 이 후보는 “이제부터 진보와 보수의 문제는 없고 오로지 국민의 문제만 있다”며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대립을 넘어 실용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낮은 자세로 통합의 정치를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이 후보는 정장 자켓을 벗고 파란색 바탕에 빨간색을 포인트를 준 운동화와 선거 운동복을 건네받았다. 선거 포스터와 현수막서도 빨간색 포인트를 찾아볼 수 있었다. 김영호 선대위 홍보본부장은 “태극 문양을 모티브로 민주당의 고유색인 청색과 보수의 적색을 함께 사용해 국민 통합의 의미를 담았다”며 “‘대한민국 상승’의 의미로 빨간색 삼각형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출정식 이튿날인 지난 13일 민주당은 ‘보수의 텃밭’ 내지는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TK를 찾았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이 후보는 대구서 21.6%, 경북서 23.8%로 가장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심기일전으로 재도전에 나선 이 후보가 이번에는 보수 인사를 등에 업고 선전에 나설지 이목이 쏠린다. 경북 구미역 광장을 시작으로 대구와 경북 포항, 울산을 돌며 집중 유세를 벌인 이 후보는 자신을 ‘유능한 도구’에 빗대 연설을 이어갔다. 이 후보는 구미에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젊은 시절 박 전 대통령을 사법 살인하고, 고문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만약 박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안 하고 민주적 과정으로 집권했다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어 모두가 칭송하지 않았겠느냐. 그 역시 지난 일이고 유능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충직한 일꾼을 뽑으면 세상이 개벽할 정도로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선 코앞인데 여전히 손발 안 맞는 국힘 낮아진 TK·PK 벽…‘보수 심장’ 격전지로 그러면서 “좌측이든 우측이든, 빨강이든 파랑이든, 영남이든 호남이든 무슨 상관이 있나”라며 “진영이나 이념이 뭐가 중요한가. 박정희 정책이면 어떻고 김대중 정책이면 어떤가”라고 호소했다. 울산서는 “유능하고 준비돼있으니 한번 맡겨봐 달라.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도구라면 여러분의 판단 기준으로 선택해야지, 다른 이유로 배제할 이유가 없다”며 “신상도 있으니 한번 써봐라. 지난 3년 동안 성능 개량 많이 했다”고 말해 현장의 웃음을 자아냈다. 지난 14일에는 역시나 당 약세 지역으로 꼽히는 PK를 찾았다.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참배로 일정을 시작한 이 후보는 “우리의 목표는 압도적 승리가 아니라 반드시 승리”라며 “낙관적 전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은 아주 박빙의 승부를 하게 될 거라는 게 저희의 예상”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한 표라도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하고 있다. 절박한 심정으로 세 표가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며 “국가의 운명이 달린 선거인 만큼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부산 서면서는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라며 “이 위기는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군사 쿠데타 세력의 책임이다. 친위 쿠데타 때문에 경제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을 겨냥해서는 “보수 정당이 맞냐, 민주 정당이 맞냐. 이제 그 당도 변화하든지 퇴출당하든지 선택해야 한다”며 “군사 쿠데타를 백배사죄하고 군사 쿠데타 수괴 윤석열을 즉각 제명해야 대한민국 헌법 테두리 안에 있는 보수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럴 기미가 전혀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날 이 후보는 부산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점을 거론하며 “이곳 부산은 민주주의 성지 아닌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민주투사 김영삼의 정치적 고향이 맞나”라며 “이번에도 확실하게 (국민의힘을) 심판해달라”고 강조했다. 차기 선거 바로미터? 민주당이 보수 텃밭을 누비는 와중에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윤석열 족쇄’에 발목 잡힌 모양새다. 아직 가시지 않은 후보 교체 여진에 윤 전 대통령의 탈당까지, 대선이 한 달여도 남지 않았지만 선거 공약보다는 윤석열 세 글자가 더욱 눈에 띈다. 민주당이 중도보수까지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앞으로 치러질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조기 대선은 단순한 승패를 떠나 지역별 투표율의 소수점까지 눈여겨봐야 하는 선거가 됐다. 내년 6월에 치러질 예정인 지방선거는 이번 조기 대선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에게 간 홍준표 지지자, 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지자 모임인 ‘홍사모(홍준표를 사랑하는 사람들)’ 등의 단체는 “국민의힘은 더 이상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수 정당이라는 자격이 없다”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신영길 홍사모 중앙대표는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경선 과정서 불거진 단일화 파행에 대해 “보수 정당을 지지해 온 수많은 유권자들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며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명태균 특검법’을 의식해 먼저 선수를 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김건희 특검법과 함께 명태균 특검법 상정은 불가피한데, 이 과정서 홍 전 시장에게 불똥이 튈 것을 미리 방지했다는 해석이다. 한편, 홍사모 등의 결정이 홍 전 시장의 의중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