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블랙 스완

2008년 가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걷힐 줄을 모르고 있다.‘검은 화요일’로 불리는 지난 9월16일 세계 증시는 9·11 테러 이래 최대 폭락을 기록했다. 이날 하루 전 세계에서 6천억 달러의 주식이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파산 위기에 놓인 미국 최대 보험회사인 AIG에 미국 정부가 8백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했다.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등을 비롯한 월가 굴지의 투자은행 12개가 무너졌다.
한편, 현직 투자전문가이면서 <능력과 운의 절묘한 조화 Fooled by Randomness>라는 전작으로‘월가의 컬트북 작가’라는 별명을 얻은 레바논 출신의 ‘월가의 이단아’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이 책을 발간하며 가진 한 강연에서 “앞으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파국이 월가를 덮칠 것”이라는 경고를 날렸다. 월가의‘전문가들’을 향해 강한 독설을 퍼부은 이 책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비판적인 서평을 게재했고, 미국통계학회는 탈레브의 기고문 한 편에 반박 논문 세 편을 함께 게재했다. 학계와 금융계의 반응은 매우 적대적이었다. 탈레브 역시 <가디언>의 자매지인 <옵저버>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반응을 생애 최악의 순간이라고 꼽은 바 있다. 그러나 탈레브는 <뉴욕타임스>에 실린 혹평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이 책에 대한 이러한 적대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측한 대로 지금의 월가는 혼란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리고 ‘월가의 이단아’는‘월가의 새로운 현자’로 불리고 있다.
모든 부문에 적용할 수 있는, 놀랍도록 잘 짜여진 모델인 검은 백조 아이디어를 사고실험, 인식론, 역사, 경제학, 경영학, 통계학은 물론이고 프랙탈, 수학, 심리학, 게다가 그 자신의 일화까지 재치있게 선보이며 풀어낸 나심 탈레브는 어떤 사람일까.
탈레브는 이 책에서 그가 살아온 다종다양한 경험을 반영하는 것처럼 위트있고 도발적이고 신선한 필치를 선보이며, 빌려오는 영역도 놀라울 정도로 폭넓다. 사고실험, 인식론, 역사, 경제학, 경영학, 통계학은 물론이고 프랙탈, 수학, 심리학, 게다가 그 자신의 일화까지 재치있게 선보인다.
나심 탈레브는 자신이 집필한 책만큼이나 문제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이다. 탈레브는 칵테일파티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저는 회의적 경험주의자이고 게으른 독서가이며, 한 가지 아이디어를 깊이 파고드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결국은 “리무진 운전기사”라고 간단히 말하는 인물이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기를 탔을 때 부르디외의 책을 읽고 있는 자신에게 어설픈 프랑스어로 말을 건 여성에게도 자신이‘리무진 기사’고, 심지어 ‘최고급’차만 운전한다고 짐짓 으스대 독서의 방해자를 물리친다.
이렇게 위트있는 인물인 탈레브는 레바논 출신으로 자신이 보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경험적 회의주의자’이면서‘월가 현직 투자 전문가에서 철학의 세계로 들어선’인물이다. 그가 열다섯이 되던 해에 그의 할아버지는 레바논의 내무장관이었는데, 학생 소요에 참여하고 있던 그는 투옥된 경험이 있다. 학생이 던진 돌에 맞아 흥분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난사했는데 당시 소요 진압을 명령했던 것은 그의 할아버지였다. 십대 시절을 레바논에서 보낸 그는 17년이나 끈 레바논 내전에 대해 주변의 어른들의“전쟁이 불과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사람들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들이 매일 일어나는데도 그 사건들이 예상 밖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한다. ‘검은 백조’ 아이디어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이 책이 이렇게 놀라운 통찰력을 담은 시대의 아이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이 책이 가져온 파장 역시 대단하며, 이 책이 나오자 이제 사람들은 <블랙 스완>과 <블랙 스완>의 통찰력에 대해 설명하려 들고 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저/ 동녘사이언스 펴냄/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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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