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노량진 고시촌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오로지 꿈 위해 모든 것 버린 청춘들로 ‘넘실넘실’

[일요시사=이성원 기자] 노량진 하면 떠오르는 것이 수산시장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노량진 고시촌’이란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을 만큼 전국 각지에서 청운의 꿈을 품고 시험을 준비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문화를 창출하고 있는 노량진 고시촌. 그 곳 사람들의 일상을 파헤쳐본다.

임용고시·공무원 준비 등 각종 시험 준비로 분주
방학 맞아 독서실·고시원 등 빈방 하나도 없어

요즘 노량진은 신림동과 함께 묶여져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이 두 동네는 거리상으로는 많이 떨어져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노량진은 최근 9호선까지 개통이 되며 한결 이동하기도 수월해졌다. 지난 6일 점심 때 쯤 노량진을 찾았다. 역에서 내려 육교에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온통 20대의 청춘들이다. 이들이 더운 여름에도 이곳을 활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만의 이유가 있는 듯 했다. 오고가는 사람들 속에 뭔가 그들만의 비슷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복장은 참으로 수더분하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스타일로 옷을 입는다. 츄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끄는 사람에서부터 모자를 눌러쓴 사람, 뿔테 안경을 쓴 사람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이들은 멋과는 담을 쌓은 또 다른 세계의 사람들같아 보였다.

합격 위한 필사의 노력
“빨리 떠나고파”

손에는 저마다 책과 프린트물을 든 사람들이 많았고,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면 어깨에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길가에 빼곡한 학원들이다. 특히 임용고시와 경찰·9급·7급 공무원학원들이 많이 보였다.

임용고시학원에 들어가 보니 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강의실 밖에서 서성이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25·여)씨는 “임용고시를 준비한 기간은 1년밖에 안되는데 최대한 빨리 합격해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며 “노량진에 오래 있다 보면 이러한 생활에 젖어들어 안주할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7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유모(30·남)씨는 “군산에서 이곳에 올라온 지 벌써 4년째인데 시험에 붙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공부만 한다”며 “꼭 합격해서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고 싶다”고 애틋한 마음을 나타냈다.

노량진에 이토록 많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고시생들이 있지만 시험에 합격하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이들의 바람 또한 간절해 보였다.

고시생들에게 간절한 합격이라는 소식을 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 또한 제공되어야 한다. 이렇듯 노량진하면 또 빼 놓을 수 없는 게 고시원과 독서실이다. 특히 여름방학을 맞아 지방에 있는 대학생들까지 다수 올라오며 고시원에는 방이 없을 정도로 성수기를 맞고 있었다.

최모(23·여)씨는 “대전에 있는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데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방학을 맞아 올라왔다”며 “2달 정도 노량진에 있으면서 공부하려고 고시원을 알아봤는데 자리가 없어서 친척집에 머무르면서 통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노량진에 고시원과 독서실은 많으나 방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인 셈이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만큼의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고시원 비용 외에도 각종 추가 비용들이 들어 공부하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모(28·남)씨는 “매달 고시원에 30만원을 내고, 독서실 이용하는데 11만원, 이 밖에 학원비, 교재비, 식대 등을 합치면 대략 한 달 80만원 정도 나간다”며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노량진에 있는 고시생들 중에는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 학원 조교나 총무, 음식점 알바 등으로 돈을 벌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고시원의 한 관계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고시생들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다”며 “젊었을 때 자신들의 꿈을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나중에 무엇을 하던지 간에 좋은 산 경험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노량진 고시원과 독서실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꼭 해야 하는 공부와 또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돈 가운데서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밥값
가장 싼 곳으로 정평

무엇보다 노량진 고시생들은 돈을 아끼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노량진에 있는 음식점들에게도 여파를 끼친 듯하다. 정오 12시30분쯤 노량진역 주변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점심시간을 맞아 밥을 먹으러 나온 고시생들로 북적였기 때문이다.

노상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노량진만의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넓적한 종이컵에다가 밥을 떠서 파는 것이 바로 그것. 종류도 김치볶음밥, 비엔나소시지 볶음밥, 회덮밥, 오무라이스 등 매우 다양했고 가격도 2000원으로 저렴했다. 곱빼기는 500원만 추가해서 받는 곳도 있었다. 2000원의 한 끼 식사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별천지의 가격이다.

이곳에서 만난 오모(28·여)씨는 “시험준비를 하루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하다 보니 당연히 음식 값도 절약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노량진은 고시생들이 많다보니 가격이 저렴하고 양도 많은 이런 가게들이 많아져 먹는 것에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뷔페식당 북새통, 노상점심 싼 값에 매력
학원가에서 열애하며 공부로 인한 외로움 달래기도

2000원을 내고 받은 종이컵에는 한 가득 밥이 담겨 있어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해 보였다.

이번엔 학원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긴 줄이 끝없이 늘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뷔페식당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한 끼 식사를 뷔페식으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 주변 고시생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식권가격이 쓰여 있었다. 1장에 4000원이고, 1달은 18만원, 10장은 3만3000원 등 기간별 식권가격이 차이가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을 찾은 전모(26·여)씨는 “고시원 생활을 하다 보니 잘 챙겨먹지도 못하는데 여기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 주변 친구들과 자주 이용한다”며 “노량진에서 뷔페식당은 고시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중의 하나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량진은 고시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음식점들이 큰 인기를 누리며 그들의 삶과 함께 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각종 잡화상품점도 눈에 띄었다. 고시생들이 필요로 하는 문구류나 슬리퍼, 또한 각종 시험 족보물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것으로 넘쳐나는 곳이다.

공부하다 눈 맞은 남녀들
“공부하며 사랑도 쌓고”

노량진을 배회하다보니 손잡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들의 모습을 따라가 보니 학원에서 같이 수업을 듣고 나와서 밥을 먹는다. 꾸미지 않은 편안한 복장으로 손을 꼭 잡은 채 데이트 겸 고시준비를 하는 커플들이 속속 보였다. 막 학원 수업을 마치고 주변 분식집으로 들어간 한 커플을 따라가 보았다.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 커플은 사귄지 8개월 된 커플이란다. 9급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학원 스터디모임을 하다가 눈이 맞아 사귀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인 류모(31·남)씨는 “시험을 준비한지 2년째인데 여자친구가 있어서 힘이 된다”며 “시험준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풀 데가 별로 없었는데 여자친구를 만나고 나서는 함께 그 기분을 공유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통 학원에서 그룹스터디를 하거나 함께 강의를 듣다가 커플이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주변 친구들을 보면 여자친구가 생긴 이후 공부에 더 집중을 못하는 사람도 있어 노량진에서의 연애는 각자만의 소관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커플은 밤에 각자 고시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루종일 같이 움직이며 밥 먹고 공부한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근 카페의 주인은 “커플들이 대부분 이 곳을 방문한다”며 “공부하느라 외로울 텐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노량진은 각자의 꿈을 이루려는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고시생들에게 공부는 물론, 그 나이 때의 관심사인 사랑까지도 함께 잡으려고 욕심을 내는 오묘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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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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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