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공신’ 무적 7인방 비화

최강 드림팀…그들이 해냈다!

[일요시사=박민우 기자] 강원도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됐다. 2010년(2003년 선정)과 2014년(2007년 선정)에 이어 3번째 도전 끝에 이룬 쾌거라 더 값지고, 더 뜻 깊고, 더 감격스럽다. 하나로 똘똘 뭉친 국민들 모두가 성원한 결과로, 그 뜨거운 염원을 전 세계에 그대로 전한 7인의 일등공신 역할도 컸다. 대한민국의 꿈을 현실로 일궈낸 공로자들의 땀방울을 담아봤다.

하나로 똘똘 뭉친 국민들 염원 전세계에 전해
수년전부터 IOC 표심 잡기…빼곡한 일정 소화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데는 남다른 노력을 쏟았던 기업인들의 공로가 컸다. 일단 기업 경영은 뒷전. 수년전부터 IOC 위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빼곡한 일정을 소화해 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은 이번 유치에 크게 기여한 기업인들로 꼽힌다.

2003년부터 한 우물 ► 이건희
이 회장(IOC 위원)은 평창이 첫 출사표를 던진 2003년 전부터 동계올림픽 유치에 공을 들여왔다. 꾸준히 스포츠외교 활동을 펼치다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건 것은 지난해부터다. 이 회장은 지난해 2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참석을 시작으로 이번 더반 IOC 총회 참석까지 약 1년 반 동안 모두 11차례에 걸쳐 170일 동안 해외에 체류했다. 총 이동거리만 21만㎞에 달한다. 이는 지구를 5바퀴 넘게 돈 거리에 해당한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평창을 찾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실사단을 접견하는 것으로 본게임에 들어갔다. 당시 실사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영국 런던 ‘스포츠 어코드’(4월), 스위스 로잔 ‘IOC 테크니컬 브리핑’(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 총회’(7월) 등 유치전의 핵심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110명의 IOC 위원 중 만나지 않은 위원들이 없을 정도로 동계올림픽 유치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IOC 공식 행사가 있으면 하루 종일 IOC 위원과의 면담 일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회장은 “평창을 믿고 지지해 주신 로그 IOC 위원장을 비롯한 여러 IOC 위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평창이 유치에 성공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와 체육계, 국민 모두의 열망이 뭉친 결과”라고 말했다.

지구 13바퀴 돈 ► 박용성 
박 회장(대한체육회 회장)도 이 회장 못지않게 전 세계를 발로 뛰었다. IOC 위원을 한 명이라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박 회장은 과거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IOC 위원 등을 역임하며 그동안 국제 활동을 통해 쌓아온 탄탄한 인맥을 활용했다. 박 회장이 지난해부터 지난 6월까지 평창 유치를 위해 비행한 거리는 지구 13바퀴에 해당하는 51만376㎞다. 총 272일을 국외에서 머물렀을 정도다.

2009년 3월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은 지난해 동안 지구 8바퀴에 해당하는 32만6000㎞를 비행했다. 이를 위해 1년의 반이 넘는 182일을 해외에서 체류했다. 올해도 더반으로 떠나기까지 지구 4.6바퀴 거리인 18만4370㎞를 이동하고 90일 간 해외에 머물렀다. 박 회장은 해외출장비를 사비로 지출하고 부족한 대한체육회 유치활동비를 지원하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은 하루에 한 국가씩 방문하는 강행군을 펼치기도 했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열리는 국제 스포츠행사에 모두 참석해 단 한번이라도 IOC 위원과 더 접촉하기 위해 아예 유럽으로 짐을 옮겼다. 각종 행사에 최대한 참석해 IOC 위원들을 닥치는 대로 만났다.
박 회장은 “유치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없었다”며 “늦었지만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나니 평생의 한을 푼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2년간 회사일 접은 ► 조양호 
지난 2년 가까이 한진그룹 회장실은 거의 비어 있었다. 조 회장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외부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2007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고문을 역임한데 이어 2009년 9월 김진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특임대사(당시 강원도지사)와 함께 유치위 공동위원장에 선출됐다.

지난해 6월 김 특임대사의 퇴임으로 조 회장의 어깨가 무거워졌지만,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조 회장은 덴마크와 캐나다에서 열린 IOC 총회, 스위스 다보스포럼, 싱가포르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 등 각종 국제 행사에 참석해 평창 홍보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평창 관련 행사엔 거의 빠지지 않았다. 조 회장이 최근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몽땅 평창 얘기뿐이었다. 그는 2년간 34개의 해외 행사에 참석했다. 물론 모두 평창 유치를 위해서였다.

최근엔 더욱 바빴다. 조 회장은 지난달 토고에서 열린 아프리카올림픽위원회(ANOCA) 총회에 참석해 뮌헨(독일), 안시(프랑스)와 합동 프레젠테이션을 가졌다. 이후 40여명의 IOC 위원들이 대거 하객으로 참석한 모나코 알베르 2세 대공 결혼식에 참석해 맨투맨 식으로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이렇게 조 회장이 달린 거리가 지구 13바퀴 정도인 50만9000㎞에 이른다. 조 회장은 “저도 열심히 했지만 저 혼자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들이 10년 동안 계속 90%가 넘는 지지를 해주셔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끝까지 포기 않은 ► 김진선
지난 7일 더반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호명되자 김진선 특임대사는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유치 대표단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2번 통한의 눈물에 이은 환희의 눈물이었다. 김 특임대사는 개최지 발표가 결정된 직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고맙다. 너무 고맙다”며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1999년 당시 강원도지사였던 김 특임대사는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천명했다. 하지만 첫 번째 도전은 아쉽게 좌절됐다.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 IOC 총회에서 평창은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결선에서 캐나다 밴쿠버에 역전을 당했다. 두 번째 도전이었던 2007년 7월 과테말라 과테말라시티 IOC 총회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초 강력한 유치 1순위로 꼽혔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앞세운 러시아의 막강한 물량공세에 밀려 또 다시 막판에 뒤집혔다.

김 특임대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3수에 도전했다. 지난해 6월 3선의 도지사 임기가 끝나 잠시 뒤로 물러섰다가 11월 정부로부터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유치 특임대사로 임명되면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김 특임대사는 매일 유치에만 매달렸다. 그가 첫 도전부터 평창을 알리기 위해 움직인 거리는 무려 지구 22바퀴(87만6533㎞)에 해당한다.

위원들 사로잡은 퀸 ► 김연아
이번 평창의 유치 성공의 주역으로 단연 ‘피겨여왕’김연아 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김 선수는 2009년 4월 유치위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평창 지원사격에 나섰다. 세계 최고기록으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각종 공식행사에서 ‘평창의 얼굴’로 활동해왔다.

동계스포츠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선 김 선수는 최종 프레젠테이션(PT)에서 빛을 발했다.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직전 실시되는 후보도시 PT는 평창의 유치 여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어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여유 있는 모습과 제스처로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김 선수는 직접연설 3분과 영상메시지 4분을 합해 모두 7분에 걸쳐 진심이 담긴 연설로 IOC 위원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내 꿈은 내가 누렸던 기회를 새로운 지역의 재능 있는 선수들과 나누는 것”이라며 “내가 어릴 적 나가노 동계올림픽(1998년)을 보고 꿈을 키웠듯이 평창 동계올림픽이 아시아의 다른 선수들에게도 같은 꿈을 이루는 데 새로운 지평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제가 ‘친애하는 IOC 위원 여러분, 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다른 이들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호소해 IOC위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더반의 ‘PT 여왕’ ► 나승연 
나승연 유치위 대변인은 이번 유치전에서 최고의 화제 인물로 떠올랐다. 나 대변인은 PT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그는 유창하고 깔끔한 영어 실력과 함께 빼어난 미모로 IOC 위원들에게 평창의 뜨거운 열망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다.

나 대변인은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올림픽 유치에 도전했고 실패했다. 한국의 동계올림픽 유치는 꿈에 불과하다는 말에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인내와 끈기라는 단어가 한국인의 삶 속에 스며있다”며 “평창사람들의 꿈이었던 올림픽 유치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열망”이라고 말했다.

지구 돌고, 돌고, 또 돌고…
각국 위원들 ‘사로 잡았다’

나 대변인은 지난해 4월부터 유치위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국제행사에서 PT를 도맡아 ‘평창의 입’역할을 톡톡히 했다. 나 대변인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자마자 1995년 한국은행에 총재 비서로 입행했다. 이후 1996년부터 아리랑 TV 개국과 함께 공채 1기로 입사해 4년여 동안 방송 기자로 활동했던 나 대변인은 외교관 부친을 따라 캐나다, 영국, 덴마크,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어렸을 적부터 생활하며 영어와 프랑스어를 익혔다.

나 대변인은 사업가 남편과 사이에서 외아들을 두고 있다. 남편은 한국타이어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퇴직하고 현재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유치전 ‘깜짝 카드’ ► 토비 도슨
한국계 미국인 스키선수 토비 도슨(본명 김봉석)은 유치위의 ‘깜짝 카드’였다. 도슨은 PT에서 감성적 호소로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는 “난 프리스타일 스키선수이자, 올림픽 선수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난 미국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입양된 과거를 소개했다. 이어 “평창을 지원해 준다면 동계올림픽 선수가 되고 싶지만 기회조차 없었던 수만 명의 어린 아이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난 도슨은 3세 때인 1981년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인파에 밀려 미아가 된 후 잠시 고아원에 맡겨졌다 미국 콜로라도주 베일의 스키강사 부부에게 입양됐다.

평소 과묵했던 도슨은 스키를 배운 뒤 수다쟁이가 될 정도로 스키의 매력에 푹 빠졌고, 미국 국가대표로까지 성장해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모굴(인공적으로 울룩불룩한 눈 둔덕으로 만들어 놓은 슬로프에서 타는 프리스타일 스키의 한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한국에 알려지면서 도슨은 이듬해 그토록 그리워했던 생부와 남동생을 만났다. 2014년에 이어 2018년 평창 유치를 위한 홍보대사로 위촉된 그는 유치가 확정되자 “한국인이라는 게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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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