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③> 재계 총수들의 추석나기

이래저래…회장님은 머리가 아프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민족 명절 한가위. 국민들은 친인척들을 만나 재충전한다. 재계 총수들에게도 한가위는 머리를 식히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다. 각양각색 총수들의 추석나기를 <일요시사>에서 들여다봤다.
 

유난히 긴 올해 추석 재계 총수들은 어떻게 보낼까. 올해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바뀌는 등의 대변혁의 시기를 나고 있어 대체적으로 차분하게 보내려는 모습이다. 

건강이 최고

재계 1위 기업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건강 문제로 투병중이다. 이 회장은 장기 입원 중인만큼 이번 추석도 병원서 맞게 될 예정이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10일 밤 심근경색을 일으킨 뒤 3년여간 계속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현재 이 회장의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측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건강하다. 이따금 간병인에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병실 복도를 오갈 만큼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CJ그룹 이재현 회장 역시 건강관리에 힘을 쏟을 전망이다. 지난 8월 이 회장은 미국 LA서 열리는 ‘K-CON’에 불참하면서 그의 건강에 이목이 쏠렸다. 이 회장이 샤르코 마리투스(CMT) 병을 앓고 있기 때문. 

당시 주치의는 장시간 비행이 이 회장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밝힘에 따라 막판에 일정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몸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3일, 신입사원 아이디어 경연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이 회장은 “(몸 상태가)80∼90%정도 회복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업구상부터 건강관리 ‘조용하게’
차분한 분위기 속에 실속일정 소화

이 회장은 내달 16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PGA ‘더 CJ컵 @나인브릿지·이하 CJ컵)’에 참석해 글로벌 행보를 이어갈 전망이다. 이 회장은 이번 대회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회를 통해 CJ를 알리고 그룹 목표인 2020년 ‘그레이트 CJ’와 2030년 ‘월드베스트 CJ’에 한 발 더 나아갈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CJ는 2020년 매출 100조원, 해외 비중 70%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며 월드베스트 CJ는 2030년 세 개 이상의 사업서 세계 1등이 되겠다는 목표다.

이 회장은 이를 기점으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 위해 추석 기간동안 충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사드, 고민이네

사업에 빨간 불이 켜진 기업의 총수는 이번 황금연휴를 경영구상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미국과 중국의 무역장벽에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사드 보복으로 경영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구상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이 같은 상황을 풀어나갈 해법 찾기에 고심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지난 8월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서 판매한 자동차 대수(7만6060대)는 지난해 같은 기간(12만4116대)보다 39% 줄었다. 지난해 6위였던 시장점유율 순위는 13위까지 하락했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시장 개척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사드 관련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서도 당장 중국 시장 철수는 없을 전망이다. 오히려 현대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중국 시장 개척에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이다. 

현대차 중국 합자법인 베이징현대는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을 비롯한 7개 도시서 ‘올뉴 루이나’ 발표회를 열고 판매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전략형 소형세단을 앞세워 반전을 꾀하겠다는 복안이다. 

2010년 중국 시장에 첫 선을 보인 루이나는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 116만대를 기록한 베이징현대의 인기 차종이다. 

신형 루이나는 지난 6월초 열린 충칭 모터쇼서 처음 공개돼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 파워트레인은 카파 1.4 MPI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 및 4단 자동변속기를 얹었다. 소형 세단급인 만큼 20대 젊은 층을 공략할 계획이다.

사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롯데 신동빈 회장 역시 사드 관련 고민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추석 연휴기간 신 회장은 사드로 인해 피해를 받은 사업군에 대한 경영전략을 고민할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는 중국 시장서 백기를 들었지만 사드의 여파는 국내사업까지 퍼져있다. 롯데쇼핑은 지난 14일 중국 사업을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롯데마트는 최근 매각 주관사로 골드만삭스를 선정하고 매장 처분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매각 범위는 아직 정해진 상태는 아니지만 매장 전체를 파는 방안도 포함됐다.

한가위 앞두고 갈린 희비
한해 마무리 위해 재충전
 

철수 소식 전인 지난 3월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롯데마트는 112개 중국 내 점포 중 74점은 영업정지됐고 13점은 임시 휴업중인 상황이었다. 영업정지 상태가 지속된다면 올해 피해액이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3월말 증자와 차입으로 마련한 3600억원 규모의 긴급 운영자금도 소진됐고 또다시 약 3400억원의 차입을 통해 운영 자금을 확보했다.

롯데그룹이 2008년부터 3조원을 들여 추진해온 선양 롯데타운 프로젝트 공사도 사드 여파로 지난해 12월 중단돼 재개를 못하고 있다.

롯데의 고민은 중국내 사업뿐만 아니다.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 롯데면세점 역시 중국발 사드 영향권 아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는 수치상으로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면세점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74억원으로 지난해 2326원에 견줘 96.8% 감소하는 등 부침을 겪고 있어 신 회장에게 이번 추석은 사업 구상에 여념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사는 어떻게…

신 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이번 휴가는 가족들과 보내기 어려울 전망이다. 신 회장의 형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으로 불편한 관계가 깊어졌기 때문이다. 


신 전 회장이 지난 12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롯데제과 주식 대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면서 형제 관계 회복 여부에 눈길이 쏠렸지만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 확보의지를 재천명하면서 형제의 난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형제의 경영권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7000억원의 현금이 마련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롯데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일본 롯데 지분을 대거 사들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민유성 사단'과 결별한 신 전 부회장이 새 홍보자문역으로 국내 모 전문지 대표를 선임하면서 전열을 가다듬은 모습이다. 앞서 신 전 부회장 측 SDJ코퍼레이션은 대변인 직책으로 국내 홍보대행사 대표를 선임해 언론 홍보를 맡긴바 있다.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과의 계약해지와 함께 홍보방식에도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형제의 난’ 외에도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 신 전 부회장, 누나인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가족들이 대거 롯데 오너 일가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머리아픈 추석연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역시 가족간 송사로 따뜻한 한가위를 보내기 어려울 전망이다. 동생 조현문 전 효성그룹 부사장과의 소송전이 몇해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이 형뿐 아니라 아버지인 조석래 전 효성그룹 회장과 그룹 계열사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 

지난달에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부장판사 부상준)는 조 전 부사장이 부동산 매매업·임대업을 하는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최현태 대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결과적으로 조 회장이 소송에 이긴 모습이지만 재계에선 형제간 갈등이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온다.

휴가는 없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에게는 연휴기간이 좀더 특별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이달 말 ‘밴 플리트 상(Van Fleet award)’ 수상 기념 연례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 방문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미국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The Korea Society)’가 미국 뉴욕서 개최하는 연례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지난 7월 올해 코리아소사이어티의 ‘밴 플리트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밴 플리트 상은 코리아소사이어티가 한국 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을 지낸 고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이다.

최 회장은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으로서 해외 유학 장학사업을 진행하면서 국가 인재 양성은 물론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해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에 이은 2대째 밴 플리트 상 수상이다.

최 회장은 이번 미국 방문서 현지 법인과 사업장을 둘러볼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SK종합화학이 다우케미칼로부터 인수를 마무리한 에틸렌아크릴산(EAA) 사업장을 점검하고,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SK하이닉스와 SK E&S 현지 법인도 둘러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유력 인사들과의 면담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출국 날짜나 현지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잠 못 이룬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우 이번 한가위를 마음 놓고 즐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자택에서 조용히 보낼 것이란 전언. 현재 조 회장은 회삿돈 유용 혐의로 사정당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19일에도 조 회장은 경찰 수사를 받았다. 조사는 16시간이 걸릴 정도로 강도가 셌다.

조 회장은 경찰조사에서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와 관련된 회삿돈 유용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조 회장은 직원들의 자체 판단으로 회삿돈을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로 썼을 뿐 본인이 직접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경찰은 조 회장을 재소환할 계획은 없다. 그러나 경찰이 한진 임직원들을 통해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어서 이번 추석 기간 마음 편히 가족과 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역시 이번 한가위를 만끽하기 어렵게 됐다. 한화그룹은 방산 계열사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달 서울 중구 한화빌딩과 경남 창원 한화테크윈 본사 등에 방문해 한화와 한화테크윈 세무 및 회계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한화는 한화그룹 지주사로 탄약, 정밀유도 및 레이저 무기 등 방산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고 한화테크윈은 케이(K)-9 자주포를 생산하고 있다. 이번 세무조사는 정기조사가 아니라 기획 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서 전격 착수한 탓에 한화 측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문재인정부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방산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 강도를 높이는 상황이어서 김 회장의 여유로운 추석나기는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개인사 악몽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이번 추석연휴가 악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추행 혐의를 받고 경찰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곤혹스런 명절이 됐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성추행 고소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김 회장은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비서로 일했던 A씨를 상습적으로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지난 11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은 A씨의 진술을 토대로 관련 증거를 조사한 후 김 회장을 불러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김 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건강문제 때문이라는 전언이지만 세간에선 경찰 조사를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동부그룹 측은 김 회장이 억울한 상황에 놓였다는 입장이다. 동부그룹 측은 신체 접촉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오히려 A씨 측이 거액의 돈을 요구하며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A씨가 제3자를 통해 100억원 플러스 알파(+α)를 요구했다”며 “100억원은 기본이고 알파의 수준을 봐서 합의 혹은 고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협박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A씨가 의도적으로 영상을 녹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신체 접촉 과정서 강제성은 결단코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실이 어찌됐든 김 회장은 불명예스러운 송사에 휘말리게 된 모습이라 이번 추석에는 해결책을 찾는 데 골몰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재계의 분위기는 중국의 사드 문제와 미국 무역 장벽이 맞물리면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바뀐 기조에 맞춰 체질 개선까지 해야하는 과제가 주어져 추석 기간 총수들은 비교적 차분히 한해 마무리를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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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