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52)책봉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9.25 10:16:28
  • 호수 11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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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을 태자로 삼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의자왕의 애절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사택비가 운명의 끈을 놓았다.

사택비의 죽음을 바라보는 의자왕은 허망하다 못해 야속하기까지 했다.

아니 차마 믿기지 않는 모양으로 멍하니 그 상황을 바라만 보았다.

본격적으로 장례 절차가 진행되자 의자왕은 한사코 그녀의 시신이라도 곁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사택비의 경우 정실부인도 아니었고, 공식적으로는 돌아가신 아버지 무왕의 아내였던 관계로 세상의 이목으로 인해 궁궐 가까이 묘를 쓸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택비의 시신을 금마저(전북 익산)에 안치하고 나자 또 다른 현상이 찾아들었다.

사택비가 더 이상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세상 모든 일에 의욕이 떨어졌다.

장례 절차

그렇다고 현실이 그를 용인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고구려는 당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여파는 여하한 방식으로든 백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터였다.

특히 이웃한 신라의 보복은 단지 시간문제지 반드시 현실로 드러날 터였다.

스스로를 다잡지 못한 의자왕이 한날 저녁 수족들을 불러 모았다.

흥수를 비롯한 성충, 윤충 형제와 의직 등 의자왕의 최측근 신하들이었다.

그들이 자리 잡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술과 안주가 탁자를 가득 채웠다. 

“그동안 경들이 수고 많았소. 그런 연유로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하였소.”

“전하께서 실로 상심이 크시리라 생각되옵니다.”

성충이 묵직하게 말을 받았다.

그 말을 되새기던 의자왕이 흥수에게 시선을 주었다.

“특히 군사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오.”

사택비에게 부정적이던 흥수였다.

그러나 기왕의 사실을 인정하고 사택비의 장례를 선왕이었던 무왕에 견주어 소홀함 없이 진행시켰다.

“전하, 이미 지나간 일이옵니다. 그러니 이제는 향후의 일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옵니다.”

“당연히 그리해야 하고 말고.”

힘없이 대답한 의자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술병을 들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옥체를 보존하소서.”

윤충이 급히 일어나 만류했으나 의자왕이 손을 저었다.

“오늘은 내가 죄인 된 심정이라오. 그러니 그대들은 가만히 있으시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쳐댔다.

“짐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준 경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서 그런다오. 그러니 부디 가만히들 계시오.”

말을 마친 의자왕이 자리에서 움직이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왕이 그들 사이를 이동하며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차례로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모두의 잔이 채워지자 곁에 있던 흥수가 의자왕의 잔을 채웠다.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 경들에게 송구스럽소.”

말을 하는 의자왕의 눈가에 어리는 옅은 물기가 불빛에 반짝였다.

순간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경들은 내 이야기를 잘 새겨들으시오.”

말을 해놓고는 모두에게 잔 들 것을 권유했다. 

“짐이 이번에 아들 융으로 하여금 태자로 삼으려 하오.”

잔을 내려놓기 바쁘게 꺼낸 말에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무슨 의미인지 서로에게 묻듯이.

“큰 아들 융을 태자를 삼겠다 이 말이오.”

“전하!”

좁지 않은 공간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의자왕이 벌써 태자를 거론하는 부분에 대해 쉬이 납득되지 않은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만 보위에서 물러나겠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는 문제였다.

“짐이 보위에서 물러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오.”

“전하, 아니 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전하!”

의자왕 사택비 잃고 시름에 잠겨
당-고구려 위협…중흥의 꿈 과연?

사택비가 숨을 놓을 시점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곁에서 함께했다.

그녀와 삶은 물론 죽음도 같이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본능이 작용했다. 

자신도 모르게 함몰되어가는 그 기이한 현상을 살피며 그녀의 의미를 되새겼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또한 그다지 유쾌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그녀는 삶의 전부로 다가왔었다. 

그 시간까지 살아오면서 인간의 죽음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가고 오고 또 가고 또 오는 생명체의 순환을 살피며 그저 현실에 충실 하는 길이 삶의 방편이라 생각했었는데 사택비의 죽음이 주는 의미는 기존의 생각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 자신의 생 역시 마감된다는 착각에 빠져들었었다.

단지 착각이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에 자신 역시 동반하고 있었고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는 있을 수 없다는 확신까지 이르렀었다.

“짐을 너무 원망하지 마시오.”

거듭되는 신하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의자왕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흥수가 다시 피 끓는 듯한 소리로 말을 받았다.

“이보시게, 군사.”

“말씀 주십시오, 전하.”

“경이 가장 중시여기는 부분이 무엇이라 했는가?”

“당연히 우리 백제의 중흥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백제의 중흥을 위해 어떤 방식이 가장 합당하겠는가?”     

흥수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모두 의자왕과 흥수의 얼굴을 살피며 가볍지 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오면 향후 행보는 어찌 하시렵니까?”

순간 성충이 치고 나섰다.

“아들 융을 태자로 삼고 경들에게 잠시 조정 일을 맡기고자 하오.”

그 다음 말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훤했다.

의자왕으로서는 사택비와 연결의 끈을 어떻게든 잘라야 했다.

그래야만 홀가분하게 국정에 전념할 수 있을 터였다.

순행의 길

의자왕이 아들 융을 태자로 책봉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더불어 세상을 달리한 사택비의 극락왕생을 빌며 여러 죄수를 석방하고 자신의 운명이 잠들어 있는 금마저로 순행의 길을 떠났다. 

사택비의 무덤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사택비의 흔적을 지우려 애를 썼다.

그러나 지우려 하면 할수록 사택비의 환영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 의자왕의 몸과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를 거부하고자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보았다.

아버지를 배신한 교활한 여인, 그러고도 사랑을 운운했던 파렴치한 여인.

잠시 동안 그 생각에 빠져 치를 떨고는 했으나 이내 그런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택비의 체취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혹여 다른 여인에 심취하면 치유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새롭게 궁녀를 들여 잠자리를 함께 하려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치유는커녕 오히려 사택비의 환영을 더욱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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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