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축제 ②경상남도 함양군

꽃무릇 즐기며 산삼한 뿌리 꿀꺽

9월이면 함양상림(천연기념물 154호)에 붉은 융단이 깔린다. 꽃무릇이 피기 때문이다. 초록이 우거진 숲과 붉은 꽃이 여행자를 유혹한다. 9월8일부터 17일까지 이곳서 함양산삼축제와 함양물레방아골축제도 열린다. 올가을에는 푸른 산과 맑은 물이 있는 함양의 축제 속으로 풍덩 빠져보면 어떨까.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에 들어앉은 함양은 예부터 오지로 통했다. 전체 면적 중 산지가 78%를 차지하고,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15군데나 된다. 도시에 비해 공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토양은 몸에 좋은 게르마늄을 품어 산삼을 비롯한 약초가 자라기 적당하다.
 

올해로 14회를 맞는 함양산삼축제는 함양의 산삼을 맛보고 즐기는 건강 축제다. 산삼이라고 하면 가격 부담 때문에 엄두도 못 내는 이들이 대부분. 함양산삼축제에 가면 저렴한 산삼부터 고가의 산삼까지 한자리서 구경하고 맛볼 수 있다. 

올해 축제는 ‘산을 느끼고 삼을 만나고 삶을 즐기자’라는 주제 아래 산삼골과 산삼숲, 산삼아리랑길, 심마니 저자거리 등 네 가지 테마로 각종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천년의 숲’ 상림공원

대표 프로그램은 ‘황금산삼을 찾아라’와 ‘산삼 캐기 체험’이다. 황금산삼을 찾아라는 상림공원 앞에 조성된 황금삼밭에서 진행자의 설명을 들으며 황금산삼을 찾는 프로그램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다. 


산삼 캐기 체험은 관광객이 상림공원 건너편 필봉산에 있는 산삼을 직접 채취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산양삼 떡 만들기, 산삼 꿀단지 담기 등 산양삼을 이용한 체험 행사도 마련된다. 
 

함양군은 산양삼을 재배하는 모든 농가를 대상으로 산삼왕선발대회를 개최한다. 전국의 산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산삼을 평소보다 저렴하게 구매하는 기회는 덤이다. 부스도 심마니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초가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놀며 산삼을 접하고, 어른들은 저잣거리서 옛 추억에 빠진다. 또 지역 농·특산물을 이용한 향토 음식을 개발해 축제서 선보일 예정이다.
 

함양산삼축제가 건강 축제라면, 물레방아골축제는 문화 예술 축제다. 5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함양물레방아골축제는 함양의 옛 지명인 ‘천령’이라는 축제를 진행하다가, 2003년 크고 작은 축제를 통합해 물레방아골축제로 이름을 바꿨다. 

올해는 ‘보고 즐기고 화합하고’라는 주제 아래, 전국지리산트로트가요제를 비롯한 각종 예술 경연과 주민 참여 행사가 열린다. 
 

물레방아는 함양의 중요한 아이콘이다. ‘함양 산천 물레방아 물을 안고 돌고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도네’라는 민요도 전해진다. 함양이 물레방아골이 된 배경에는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있다. 

연암은 청나라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는데 여기서 물레방아를 소개했다. 이후 1792년경 함양군 안의현감으로 재직할 때 물레방아를 실용화한 것. 


물길을 이용한 물레방아는 농업혁명의 시작이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시골 정취를 풍기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연암의 실학 정신이 오롯이 담겼다. 함양서 물레방아가 자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용추계곡 입구에는 지름 10m, 폭 2m 로 거대한 물레방아와 연암 박지원의 동상이 있는 연암물레방아공원이 조성됐다. 
 

산삼축제와 물레방아골축제가 열리는 상림공원은 함양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천년의 숲’이라는 수식에 걸맞게 남다른 기품이 느껴진다.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태수를 지낸 최치원 선생이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이다. 

함양산삼축제가 건강 축제라면
물레방아골축제는 문화예술축제

당시에는 10리(4km) 숲길이었으나 중간 부분이 파괴돼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었다. 현재 1.6km 둑을 따라 낙엽활엽수 120여 종이 자란다. 우거진 숲속 오솔길을 걷다 보면 마음의 때가 씻기는 듯하다. 

사계절 다른 풍광을 보여줘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때로는 혼자 걸어도 좋은 길이다. 상림에는 함화루와 사운정, 최치원 신도비, 이은리 석불 등 함양의 소중한 유적도 있다. 
 

상림공원서 축제를 즐긴 뒤에는 함양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자. 함양은 ‘좌 안동, 우 함양’이라고 불릴 정도로 선비가 많았다. 선비 문화를 엿보기 위해 먼저 가볼 곳은 함양 남계서원(사적 499호)이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 정여창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사액서원이다. 홍살문을 지나 풍영루에 오르면, 들판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남계서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개평한옥마을이 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이 태어난 함양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재 186호), 풍천노씨대종가(경남문화재자료 343호), 함양개평리하동정씨고가(경남문화재자료 361호), 함양오담고택(경남유형문화재 407호) 등 유서 깊은 고택이 여럿이다. 

이중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일두고택으로, 솟을대문 아래 걸린 편액을 보면 집안에 충신과 효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일두고택은 경남 지방의 대표적인 건축물이자, 개평한옥마을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드라마 〈토지〉가 이곳서 촬영된 후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걷기를 좋아한다면 선비문화탐방로를 추천한다. 함양은 선비 마을답게 정자와 누각이 100여개나 있다. 선비문화탐방로는 과거를 보러 가는 영남 유생들이 덕유산 육십령을 넘기 전에 지난 화림동계곡에 있는 정자를 따라 걷는 길이다. 

거연정서 영귀정, 동호정을 지나 농월정에 이르는 6km 구간과 농월정서 월림마을, 광풍루까지 이어지는 4.1km 구간으로 나뉜다. 

곳곳에 다양한 볼거리


선비문화탐방로가 시작되는 거연정은 남강천 암반 위에 세운 정자로, 당시 정자 건축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달을 희롱하며 논다’는 뜻의 농월정은 앞에 펼쳐진 거대한 너럭바위가 인상적인 정자로, 선비들이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긴 곳이다. 2003년 화재로 전소됐다가 2015년 복원, 예전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숲과 계곡을 거닐다가 정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아보자.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가을 여행이 완성될 것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걷기 여행] 상림공원→개평한옥마을→남계서원→선비문화탐방로 
[전통주 체험 여행] 상림공원→개평한옥마을(솔송주)→남계서원→두레마을(머루와인)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상림공원→개평한옥마을→남계서원→선비문화탐방로 
[둘째 날] 오도재→지리산제일문→벽송사→서암정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함양군 문화관광 http://tour.hygn.go.kr
- 함양산삼축제 http://www.sansamfestival.comhttp://blog.naver.com/hygnsansam
- 함양물레방아골축제 http://blog.naver.com/hywm2012" target="_blank">http://watermill.hygn.go.kr, http://blog.naver.com/hywm2012

문의 전화
- 함양군청 문화관광과 055)960-5555
- 상림공원 관광안내소 055)960-5756
- 함양산삼축제 055)964-3353
- 함양물레방아골축제 055)964-7785
- 남계서원 055)960-6114
- 일두고택 055)962-7077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함양, 동서울종합터미널서 하루 11회(07:00~23:59)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서 하루 8회(07:30~ 23:50) 운행, 3~4시간 소요. 부산-함양, 부산서부버스터미널서 하루 직통 6회(07:00~17:00) 운행, 약 1시간50분 소요. 
*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http://www. ti21.co.kr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예매 http://txbus.t-money.co.kr 부산서부버스터미널 1577-8301 버스타고 http://www.busta go.or.kr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통영대전고속도로→함양 IC 

숙박 정보
- 함양일두고택: 지곡면 개평길, 055)962-7077, 
http://www.ildugotaek.kr(명품고택)
- 정일품명가: 지곡면 개평길, 1577-8958, 
http://www.jung1poom.kr(한옥스테이)
- 용추자연휴양림: 안의면 용추휴양림길, 055)963-8702, 
http://www.yongchoo.or.kr
- 호텔라온: 함양읍 함양로, 055)962-1234, https://raonhotel.modoo.at
- 다볕자연학교: 서하면 봉전길, 055)964-3773, http://dagreen.or.kr 

식당 정보 
- 예당(새싹삼소고기버섯전골·새싹삼산채비빔밥): 함양읍 상림3길, 055)963-1600
- 옥연가(연잎밥): 함양읍 상림3길, 055)963-0107
- 늘봄가든(오곡정식): 함양읍 필봉산길, 055)962-6996, http://nbgarden.com
- 옛날금호식당(갈비탕·갈비찜): 안의면 광풍로, 055)964-8041
- 안의원조갈비집(갈비탕·갈비찜): 안의면 광풍로, 055)962-0666

주변 볼거리
함양 용추계곡, 함양약초과학관, 하미앙 와인밸리, 오도재, 서암정사, 벽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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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