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3구역 재개발 지연되는 내막 <현장취재>

2011년 명동의 ‘잠 못 이루는 밤’

[일요시사=이성원 기자] 서울의 번화가 명동. 맛있는 먹거리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한번쯤은 꼭 들러봐야 될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렇게 화려하게만 보이는 명동의 또 다른 한 곳에서는 서로간의 이익다툼을 놓고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명동 3구역 재개발 문제를 놓고 충돌하고 있는 상인과 시행사 측의 입장을 취재했다.

상인 측···적절한 보상 요구하며 4개월 째 연일 농성
시행사 측···“형평성 때문에 무리한 요구 수용 불가”

지난 19일 오후 명동 3구역 재개발 지역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재개발에 항의하며 명동 3구역에 위치한 카페 ‘마리’에서 농성 중이던 명동 3구역 상인 11명이 재개발 시행사 측이 고용한 용역직원 약 20여명과 몸싸움을 벌이게 된 것. 이날 세입자들은 용역직원들에게 격렬하게 대응했고 이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등 불상사도 발생했다.

지난 21일 농성이 진행 중인 카페 마리를 찾아가 봤다. 명동 3구역에 위치한 이 카페도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지난 14일 완전히 철거됐지만 상인들은 카페를 점거한 채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카페 내부는 철거된 상태였고 벽에는 ‘모퉁이 식당’ ‘오징어 식품’ 등의 철거된 식당 이름들이 적혀있었다.

오전 일찍 이 곳을 방문했을 때는 계속되는 농성에 피곤에 지친 듯 아직 이불을 덮은 채 누워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이 농성을 벌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재개발로 인해 받게 되는 보상 금액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이다.

보상금액 생활도 어려워

이곳에서 삼계탕 집을 운영하던 원모씨는 “시행사와 구청에서 보상하겠다고 제시한 금액들로는 도무지 생활하기가 어렵다”며 “동일한 조건의 가게를 열 수 있는 보상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다”고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원씨는 이어 “한 순간에 노숙자 신세로 전락해 기본적인 의식주문제도 해결하기가 어렵다”며 “세입자들을 아무런 대책없이 무대포로 밀어붙여 벼랑으로 몰아버리고 있는 현실에 사회가 공동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는 명동 3구역에서만 재개발사업이 확정됐으나 조만간 명동 2, 4구역도 재개발이 예정돼 있어 2, 4구역에 속한 상인들도 3구역 사태가 남의 일 같지는 않은 눈치다. 4구역에서 15년간 한식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씨는 “조만간 4구역에 속한 상인들에게도 닥칠 일이라 여겨져 이 자리에 와서 상인들과 의견을 나누려고 참여하게 됐다”며 “그동안 이곳에서 일한 상인들이 명동 상권에 기여한 점을 감안해서라도 보상 문제를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피력했다.

4개월간 이어지고 있는 농성현장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장면들이 있다. 대학생들이 이들과 함께 상주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 대학생들은 상인들이 용역직원과 다툼을 벌일 때도 함께 맞서 싸우면서 상인들을 지켜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도 약 5~6명의 남녀 대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이곳에 나와 상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한양대 재학생 김모씨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해 알게 돼서 참여하게 됐다”며 “보증금을 포함해 1억에 넘는 돈을 가게에 쏟아 부었는데 보상금은 몇 백, 몇 천 밖에 안 되는 것은 자본권력의 심각한 폐해다”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어 “젊은 대학생들이 이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용역들이 이곳을 침탈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며 “상인들께서 우리 같은 대학생들이 함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말씀하셔서 뿌듯하다”고 했다.

합의점 찾기 어려워

명동 3구역 재개발 시행사는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이다. 국민은행과 기업은행, 대우건설 등이 지분을 투자해서 만든 것. 시행사 측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2009년부터 제 3구역 상인들 102세대와 보상문제로 협상을 진행해 합의점을 찾아 해결을 봤고, 아직 협상이 안 돼 남아있는 사람이 총 11명이다”면서 “이들은 보상금액보다는 가게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 요구들을 들어주면 앞으로 2, 4구역 재개발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도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뿐더러 이미 합의하고 떠난 다른 3구역 상인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보상금액은 구청에서 지정한 감정평가법인에 의해 책정됐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게 매출액에 의거한 것이었기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며 “세무신고는 적게 해놓고 지금에 와서 자기 권리만 찾겠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관할관청인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세입자들이 똑같은 조건의 가게를 얻어달라고 하는 것은 수긍하기에 무리가 있다”며 “현재도 상인들과 시행사 간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세입자들이 현실적인 보상금액을 요구하면 원만히 해결하도록 중재할 것”이라며 “상인들의 권리금 문제는 법적 보장이 안 되어있기 때문에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렇듯 수개월 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명동 3구역 재개발 문제는 서로의 상반된 입장 차가 너무 커 현실적인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는 이상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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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