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수사 총정리>검찰 공소장에 비친 담철곤 두 얼굴

과자 판 회삿돈으로 뻔뻔한 ‘황제생활’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3개월 동안 이어진 검찰의 ‘오리온 비자금’수사가 일단락됐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결국 쇠고랑을 찬 채 재판에 넘겨졌다. 담 회장의 횡령·배임 의혹 금액은 수사 초기 의심됐던 40억원에서 구속 당시 100억원대로, 다시 최종적으로 이를 훌쩍 넘어선 300억대로 늘어났다. 혐의를 들여다보면 더 기가 막히다. 하도 뻔뻔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담 회장의 두 얼굴이 담긴 검찰의 공소장을 펼쳐봤다.

3개월 스피드 조사 종료…담 회장 쇠고랑 찬 채 재판
비자금 40억서 300억대로 불어 “그림유용 혐의 추가”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습니다."

오리온그룹 측은 검찰이 지난 3월22일 서울 용산구 문배동 오리온그룹 본사와 계열사 등을 압수수색할 당시만 해도 관련 의혹들을 전면 부인했다. 특히 비자금에 대해선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226억원 빼돌리고
74억원 손해 끼쳐

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회장님은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검찰이 오해한 것 같다. 내 자리를 걸고 확신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오리온그룹 측의 과한 자신감은 본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일요시사>는 검찰의 수사 시작과 동시에 오리온그룹과 담철곤 회장 등이 받고 있는 의혹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에 오리온그룹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가 공동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새빛을 통해 본지 기자 등을 상대로 총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통상적으로 기업이 언론 기사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먼저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요구를 거치기 마련이지만, 오리온그룹은 이를 무시하고 곧바로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입막음용’으로 풀이됐다.

오리온그룹은 소장에서 “<일요시사>가 오리온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해 그룹의 오너가 횡령, 배임을 저질렀다는 취지의 기사를 보도했다”며 “이는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추측성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또 “기사에 그룹 오너들의 사진 2장을 게재해 독자들에게 보도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3개월이 흐른 지금, 오리온그룹의 당찬 기세는 다소 누그러진 모양새다. 믿었던(?) 담 회장이 구속되면서 오히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딱히 할 말도 없는 듯한 표정. 그저 재판에서 모든 게 밝혀질 것이란 기대만 하는 분위기다.

검찰의 ‘오리온 비자금’수사가 일단락됐다. 담 회장은 결국 쇠고랑을 찬 채 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지난 13일 담 회장을 3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유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로 구속 기소했다. 담 회장의 비자금 조성을 도운 조경민 그룹 전략담당 사장도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이와 함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오리온그룹의 위장계열사인 포장재 인쇄업체 I사의 김모 대표와 옛 계열사 온미디어의 김모 전 대표, 김 전 대표에게 청탁 명목으로 부정한 돈을 건넨 온라인게임 개발업체 김모 대표를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또 I사 전 중국 대표 신모씨의 신병을 추적 중이다.

관심을 모았던 담 회장의 부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은 구속되지 않았다. 담철곤-이화경 부부가 함께 처분을 받는 재계 초유의 일이 벌어질지 세간의 시선이 쏠렸었다. 이 사장은 부동산 매각을 통한 40억원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의혹 등을 받아왔다.

하지만 검찰은 남편 담 회장이 구속된 점과 경영공백이 우려되는 점, 본인 건강이 좋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입건유예했다. 보통 부부가 비슷한 혐의일 경우 한 명은 입건하지 않거나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관행이다. 입건유예는 일부 범죄 혐의가 있으나 여러 상황을 참작해 입건과 기소 등 사법절차를 유예하는 처분이다.

담 회장은 회삿돈 226억원을 빼돌리고 회사에 74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담 회장은 임원에게 급여와 퇴직금을 주는 것처럼 가장하거나 차명지분을 페이퍼컴퍼니에 이전하면서 비용을 허위·과다계상하는 등의 방법으로 회삿돈 226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담 회장은 포장재 납품업체 I사의 중국법인 자회사 지분을 오리온의 홍콩 현지법인에 헐값 매각하는 등 회사에 74억원의 손해도 입혔다.

담 회장의 횡령·배임 의혹 금액은 수사 초기 의심됐던 40억원에서 구속 당시 100억원대로, 다시 최종적으로 이를 훌쩍 넘어선 300억대로 늘어났다. 담 회장 자택에 있던 100억원이 넘는 미술품들의 가격이 횡령액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회삿돈으로 구입한 개인 소장 미술품에 대해 횡령 혐의를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이 밝힌 담 회장의 ‘회삿돈 쓰기’는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하도 뻔뻔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검찰에 따르면 담 회장은 해외 유명작가의 고가 미술품들을 계열사 법인자금으로 매입해 서울 성북동 자택에 설치하는 수법으로 회삿돈 14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화경은 입건유예
남편 구속 등 감안

담 회장이 회사 소유의 그림을 대여료 없이 자신의 집에 걸어놓는 작품은 모두 10점이다. 담 회장은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이 가운데 6점을 경기도 양평 그룹 연수원으로 옮겨 놨다.

검찰은 지난달 14일 담 회장 자택을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머지 4점이 인테리어 용도로 설치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모두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작품으로, 담 회장이 대표로 있던 계열사들이 이미 구속된 이화경 대표의 서미갤러리에서 구입했다.

담 회장은 회사가 구입한 프란츠 클라인(1919∼1962)의 시가 55억원짜리 그림 ‘Painting 11’을 자택 식당에 걸었다. 클라인은 미국 뉴욕 출신의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자신의 그림 중에서 한 부분만을 확대해 작품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방 천장엔 알렉산더 칼더(1898∼1976)의 28억원짜리 모빌 ‘Three White Dots and One Yellow’를 매달았다. ‘모빌의 창시자’칼더는 철사 틀에 다양한 크기와 무게의 물체를 매달아 균형을 이루면서 계속 흔들리는 모빌을 발명한 미국의 조각가다.

담 회장은 독일 출신의 신표현주의 화가 안젤름 키퍼(1945∼)의 작품 ‘Rock and Lead Books’도 자택에 설치했다. 이 작품의 가격은 14억원에 이른다.

현대 미술의 거장인 영국 설치미술가 데미안 허스트(1956∼)의 설치미술 작품 ‘After Stubbs Cigarette Butts Wall Mounted Cabinet’도 있었다. 이 작품은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출품된 것으로 오리온 계열사가 약 20억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산 그림 집에 걸고,
회사가 돈 준 가정부 두고,
회사가 지은 건물 딸 주고,
회사가 빌린 외제차 굴렸다!

검찰은 “담 회장 자택에 걸린 작품들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오리온그룹 계열사 4곳의 법인자금으로 사들인 것”이라며 “미술품의 경우 소유자를 공시하지 않는 만큼 지속적으로 집에 걸어뒀다면 소유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담 회장이 회삿돈으로 고가의 외제 고급 슈퍼카를 굴린 사실도 밝혀냈다. 담 회장은 2002∼2006년 계열사에서 법인자금으로 사들이거나 리스한 ‘포르쉐 카레라 GT’,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포르쉐 카이엔’, ‘벤츠 CL500’등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계열사가 리스료와 차량보험료, 자동차세 등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검찰은 “‘자동차 마니아’로 알려진 담 회장은 회삿돈으로 고급 외제차량을 리스해 자녀 통학 등 개인 용도로 무상사용, 해당 계열사에 2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전했다.

담 회장이 ‘공짜’로 몰고 다녔던 차량들의 가격은 웬만한 집 한 채보다 비싼 고가다. ‘스포츠카 황제’로 불리는 ‘포르쉐 카레라 GT’는 수입가가 8억8000만원에 달한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는 3억5000만원, ‘포르쉐 카이엔’과 ‘벤츠 CL500’은 각각 2억원대를 호가한다.

담 회장은 회삿돈으로 ‘황제 같은 생활’도 누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담 회장은 1999년부터 최근까지 자택에 집사와 가정부 등 관리자 8명을 두고 연간 2억원씩 10여년 동안 총 20억원의 급여를 지급했다. 이들은 각각 사택 관리, 세탁, 청소, 자녀보육, 주방요리, 차량운전, 경비 등을 맡았다.

하지만 담 회장은 자택 관리 인력의 월급을 계열사 돈으로 지급했다. 다시 말해 오리온그룹 소속 인력들이 담 회장 일가에 파견돼 봉사한 것이다.

담 회장은 또 위장계열사 I사가 매입한 터에 건물을 세우고 가족들의 공간으로 사용했다. 담 회장은 2003년 자택 인근의 대지 1319㎡(약 400평)를 39억원에 사들였고, 이듬해 3억원의 웃돈을 얹어 I사에 되팔았다. 2005년 갤러리를 설립한 I사는 이 자리에 18억원을 들여 지상 1층·지하 2층짜리 건물을 신축했다. 이 건물은 I사가 운영하는 갤러리로 신고됐다.

기소 내용 보니…
혀 내두를 수준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담 회장 가족들의 체력단련실, 외제차 보관소 등으로 사용된 것. 담 회장은 지난해 6월 다시 딸의 사진작업실로 만들어줬다. 당시 사용된 공사비 3억원도 I사가 대신 부담했다. 검찰은 이 건물의 관리비 5억원과 임대비 3억원 등을 담 회장의 횡령액으로 잡았다.

검찰은 “담 회장은 I사가 소유한 서울영업소 부지와 건물을 자신의 딸 침실과 화실 등으로 무상사용해 회사에 8억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설명했다.

담 회장은 혐의를 딱 잡아떼고 있다. 담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같은 의혹 등 혐의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 회장의 변호인단도 비자금 조성 의혹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선 순환출자구조와 배당금, 변제 등의 이유를 들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벌어질 재판에서 검찰과 담 회장 사이에 치열한 법리공방이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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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