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이미자’…잘하지만 참신하지 않다"

<대한민국 이끄는 유력정치인 릴레이 인터뷰>⑪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부자 추가감세에 대해 “벼락 맞을 짓”이라고 격한 감정을 나타냈다. ‘민생경제’를 최우선으로 챙기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 것이다. 그는 취임 후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 ‘저축은행 사태’, ‘사법개혁’, ‘반값 등록금’ 등 각종 현안들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하루 다섯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지난 17일 여의도 국회 본청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만나 그간 소회와 앞으로의 비전을 들어봤다. <대담= 최민이 편집국장>

부자 추가 감세 “벼락 맞을 짓”…민생 경제가 최우선
물가상승비 등록금인상률 세계 1위 “반값등록금 시급”

김진표 원내대표는 지난달 13일 재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위 강봉균 의원과 불과 1표차로 민주당을 이끌 새 원내사령탑으로 당선됐다. ‘수도권 원내대표를 통한 전국정당화’를 모토로 내건 김 원내대표가 정책능력과 개혁바람을 앞세운 호남 출신의 두 후보를 꺾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이는 당내에서 내년 총선·대선을 통한 정권교체를 위해 호남을 뛰어넘은 전국정당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원내대표가 필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섯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김 원내대표는 최근 가장 큰 화두인 ‘반값 등록금’ 문제에 대해 각종 수치와 선진국들의 모범사례를 예로 들며 빠른 시일 내에 반값 등록금이 이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얼마 전 무산된 검찰 사법개혁에 대해선 “한나라당에 몹시 실망스럽다”며 “이젠 특위가 아닌 법사위에서 사법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내대표 재임 기간 중 ‘날치기 없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는 “트집 잡다 보면 발전은 없다”며 “대안 없는 비판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다음은 김 원내대표와의 일문일답.


- 재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1표 차이 극적으로 원내대표에 당선 돼 감회가 새로울 것으로 여겨진다. 소회와 각오는.
▲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치란 것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는데 원내대표로서 여러 상임위와 의원들 간의 의사와 갈등을 잘 조절하는 역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여야 간 ‘대화정치’를 위해 원내대표의 역할은.
▲ 대화정치를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두 가지 필요하다. 첫 번째가 상대방에 대한 신뢰이고 두 번째가 대화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다. 이 마음가짐에 따라 ‘타협’인가 ‘날치기’를 위한 과정인가로 나뉠 수 있다. 여당 원내대표와 신뢰를 쌓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원내대표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 여당 원내대표와의 관계는 어떤가.
▲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신뢰받는 사람이기에 믿는다. 그가 날치기 하면 국회출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FTA나 예산안 등에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대화를 통해 원만히 문제를 풀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한나라당은 청와대 하수인
날치기 없는 국회 만들 것

-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 잘하는 공무원’이라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천거한 유일한 공직자로 알려졌는데 두 정부를 평가한다면?
▲ ‘민주진보정부’ 10년은 역사의 물줄기를 올바르게 흐르게 한 기간이라 생각한다. 선진국을 향한 기본 발판을 마련했다. 10년 동안 안보, 남북관계, 국민 희망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고 균등한 교육기회와 기본적 복지제도의 근간을 만들었다. 나라에 격을 제대로 높였다고 생각한다.

- 이명박 정부를 평가해달라.
▲ 역사흐름을 크게 역류하는 정부다. 언론자유와 남북관계가 역류됐고, 정경유착도 심화됐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양극화도 심화됐다. 지난 독재시절부터 이러한 정책들이 썩고 곪아서 터진 것이 IMF다. 지난 10년간 나라다운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는데 다시 나락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다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정권교체가 필요한 이유다.

- 중수부 폐지 등 검찰개혁이 흐지부지 되고 있는데.
▲ 중수부 폐지와 관련해 한나라당에 너무나도 실망스럽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룬 합의를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리니 신뢰가 무너진 기분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다. 하수인하고 이야기 할 바에야 청와대와 이야기 하겠다.

나라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 검찰개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서라도 반드시 해결하겠다. 금주 내 사개특위를 마무리하겠다. 사개특위는 ‘검·경 수사권’까지만 마무리하고 4대 핵심 쟁점을 여야 원내대표 회담에서 논의해 법사위에 상정하면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반값등록금’이 단연 최대 화두다. ‘반값등록금’에 대한 견해는?
▲ 교육의 경쟁력과 효율을 높이려면 투자가 많아야 한다. 물가상승 대비 등록금인상률이 너무 커 국민들의 부담 또한 만만치 않다. 세계에서 한국이 압도적인 세계 1위다. 반값등록금은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

- 제도적인 문제점도 많을 텐데.
▲ 대학의 적립금을 쌓기 위해 지금껏 과다한 등록금을 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5조7000억의 고등교육 제정지원교부금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회계운영의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 재정지원을 받기 원하는 대학은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고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안 된다.

- 6년 전 국립대 등록금을 높여야 한다는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 당시 대학의 경쟁력 강화방안으로 인터넷 매체와 ‘고등교육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이냐’라는 주제로 3시간 동안 공개인터뷰를 가졌다. 일부 언론사들이 3시간의 인터뷰 중 30초 만 발췌해 확대해석해 이를 여당에서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30초간의 발언 요지도 ‘당시 국공립대는 등록금이 싸기 때문에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였고 지금은 오히려 잘 사는 집안의 아이들이 다니니 등록금을 낮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값 등록금의 추진 동력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문재인? 너무 선명해 내공 있을까"
"MB는 7~80년대 대통령 했어야"

- 영수회담에 대한 의미는.
▲ 민생경제 파탄이 심각하다. 청와대는 민심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 ‘희망이 없다’고 국민들이 앓고 있는데도 대화가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직접 대통령과 대화를 통해 민생문제를 집중해서 논의해야 한다. 가급적 빨리 만나야 한다. 각종 민생경제 파탄상황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 이번 영수회담을 정치적 전략으로 보는 이들도 있는데.
▲ 억측이다. 우리는 민생경제 파탄의 심각성을 알리고 해결점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고물가, 고금리, 실업자 대란, 가계부채, 전월세 대란, 일자리 추경 등 민생현안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것이다.

- 내년 총선과 대선을 어떻게 예상하고 준비과정과 대비책은.
▲ 내년에 한나라당은 국민적 심판대에 오를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대안이 없는 비판은 하지말자”고 정했다. 대안정당, 정책정당으로 나아갈 것이다. 민주당에는 인재들이 많다. 스타플레이어를 홍보하고, 부족한 분야에서는 인재를 영입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 내년 총선에서 150석이 목표다. 장점을 부각시키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인물을 얻을 것이다.

-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대통합은 필수다’라는 관측이 지배적인데.
▲ 통합이 최선이다. 대통합을 위해 다각적 방법으로 노력하고 시스템을 개혁하고 있다. 야당 대표들과 자주 만나 토론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총선이 있으니 늦어도 9월말에서 10월말까지 끝내야 한다. 통합이 안 될 경우 어떠한 상황이라도 1:1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 경선룰 방식에 대한 입장은.
▲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개방형 공천제도가 합리적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자칫 동원선거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동원선거는 곧 돈 선거로 연결될 우려가 있어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전국단위의 선거 즉 대선은 개방형 공천제도가 옳고 지역단위 선거인 총선에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기초로 하되, 폐쇄형 공천제도와 결합되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평가한다면.
▲ 박근혜 전 대표는 한마디로 ‘이미자’에 비유하고 싶다. 이미자가 노래 잘하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자 노래만 듣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참신한 신인가수도 원한다. 이른바 ‘슈퍼스타 K’가 인기를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한 견해는?
▲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문제였다. 이것은 80년대에나 맞을 법한 정책이다. MB정부는 대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국내로 들어온다고만 생각해 대기업을 위한 정책을 폈다. 대기업은 머니게임만 하고 투자는 MRO(소모성 자재 구매대행사업)에 하고 있다. 정책기조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모든 재원을 대기업에만 몰아줬다. 때문에 만성적 수요부족으로 물가가 뛰고, 소비가 줄었다. 정책기조에 전면적 변화가 필요하다.
 
2012 총·대선 승리엔
‘야권대통합’ 필수

- 한나라당이 부자감세 철회를 사실상 당론으로 채택한 것에 대한 입장은.
▲ 미국발 금융위기가 왔을 때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준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이나 하던 시절에나 맞을 법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부자에 대한 추가감세는 ‘벼락 맞을 짓’이다. 세탁이나 제빵 등 중소기업 고유 업종 지정이 다시 부활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부자감세 철회를 당론으로 채택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한다.

- ‘문재인 대망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는데.
▲ 참여정부 시절 가까이서 본 문재인은 깨끗하고 투명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험난한 난관을 극복할 내공이 있을까를 우려했던 발언이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문 이사장처럼 깨끗하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지도자로 부각되는 것이 선진국가라고 본다. 민주당이 노력한다면 그런 사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 원내대표 재임기간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여야 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생관련 법안 처리할 것이다. MB정부 들어 3차례나 예산안 날치기를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날치기 대신 치열하게 토론해서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국민에게 거둔 세금을 어떻게 국민에게 돌려주느냐는 것이 예산안이다. 트집만 잡다보면 발전이 없다. 모든 현안을 풀어 낼 수는 없지만 한두 꼭지라도 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야당 지도자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통해 원만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큰 정치를 보이겠다.


정리=이주현, 서형숙 기자


<김진표 원내대표 프로필>

▲1970년 행정고시 13회 합격
▲1971년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83년 영월세무서장
▲1988년 미)위스콘신대학 법학과 졸업
▲1998년 세제실장
▲2001년 재정경제부차관
▲2002년 국무조정실장(장관)
▲2003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2004년 제 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2005년 미)컴버랜드대 명예박사(행정학)
▲2005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2006년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2008~현재 제18대 민주당 국회의원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
▲2011.5∼ 민주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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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