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로 본 북한 미사일 60년 개발사

김정은 깔봤다간 큰 코 다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북한의 미사일 개발 역사는 60여년에 달할 정도로 오래됐다. 이제는 대기권을 재진입하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뿐 아니라 가장 고난도인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미사일과 핵기술 분야서 강성대국을 눈앞에 둔 셈이다. 과연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돼 왔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이 처음 탄도미사일 보유에 나서게 된 계기는 주한미군의 전술 핵미사일 배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하고자 1960년대 말 옛 소련으로부터 지대함미사일 및 FROG-5/7 미사일을 획득하고 1970년경에는 중국으로부터 지대함미사일, 지대공미사일 및 기술지원을 제공받았다. 

1960년대부터…
자체개발 시작

북한은 1960년대 중반에 소련의 탄도미사일을 획득하려고 했었지만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S. Khrushchyov)는 스탈린과 같은 개인숭배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던 수정주의자 입장이었기 때문에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해 나가던 김일성의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 

이후 1971년 북한은 탄도미사일 및 다른 무기체계를 획득, 개발 및 생산할 수 있도록 중국과 합의서에 서명했다.

당시 북한은 러시아와 같은 미사일 기술 선진국으로부터 하드웨어 및 기술의 이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미사일 기술이전에 부정적이었다. 결국 북한은 역설계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획득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이 한창이던 이집트에 MIG-21 전투기 1개 중대를 파병해주고 그 대가로 이집트로부터 스커드-B 미사일과 발사차량, 정비 매뉴얼과 운용교범까지 넘겨받는 데 성공한 것. 

당시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소련의 충분치 않은 원조에 불만을 가지고 파견된 소련 기술자들을 추방하는 등 외교적으로 삐걱거리던 시기였기 때문에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허락 없이 북한에게 넘겨줄 수 있었다.

1984년경에 북한은 스커드-B 미사일의 독자개발 버전인 화성 5 미사일을 생산하고 비행시험을 수행했다. 1985년에는 미사일 개발 및 생산을 위해 재정적인 지원을 얻기 위해 이란과 합의문에 서명했고 향후 이란은 북한의 미사일을 구매했다. 

당시 이라크와 전쟁을 수행했던 이란에게 탄도미사일을 판매했던 북한은 외화를 벌고 미사일 생산의 경제성을 증진시키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화성 5 미사일의 대량생산 이후에 바로 북한은 화성 6(스커드 C) 미사일의 개발을 시작했다. 이후 1987년과 1989년경에 노동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 이러한 급격한 개발은 놀라운 일이었으며 역사적으로 작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구소련 기술이전 거부
이집트에서 우회 입수

1980년대 후반에 북한은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Medium Range Ballistic Missile) 개발을 시작했다. 1990∼1991년경에 화성 6 미사일의 양산이 시작됐고 첫 번째의 노동미사일 시제품이 제작됐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중동 국가들에 기술이전 및 완제품 스커드 공장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1990년 5월에 미국의 정찰위성은 무수단리 미사일 발사장의 발사대에 장착된 노동미사일을 탐지했다. 그러나 당시 영상에선 발사대에 검게 탄 자국만 보였기 때문에 시험의 실패로 추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1993년 5월 말, 북한의 유일한 독자적인 노동미사일 비행시험을 진행했다. 
 

지리적인 이유로 노동미사일의 완전한 사거리 시험을 할 수 없었던 북한이었지만 1995년부터 노동미사일을 전력화 배치하기도 했다.

북한 미사일이 전 세계에 각인된 것은 ‘대포동’ 시리즈부터다. 1998년 8월31일 북한은 노동미사일보다 사정거리가 훨씬 길고 한 차원 높은 대포동1호를 일본 상공을 건너 태평양을 향해 발사하며 대륙간탄도탄(ICBM)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포동미사일은 노동미사일과 스커드미사일을 조합한 3단 로켓으로 3단계 로켓은 첨단기술인 고체연료 로켓으로 제작됐다. 

미사일은 약 1600km를 날아갔지만 최종 단계의 3단계 로켓을 우주궤도에 진입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미국의 충격은 컸다. 

그동안 북한 미사일 수준에 대해 ‘별 것 아니다’는 인식을 가졌던 미국은 북한의 기술력이 상당하다는 데 경각심을 느꼈고 미사일 잔해 일부가 베링해 알래스카 앞바다까지 날아가면서 미국과 일본을 경악시켰다.

전 세계에 각인
‘대포동’ 시리즈

북한은 2006년 7월 대포동1호를 개량한 대포동2호를 시험발사했다. 그러나 1단 추진체가 분리되기 전 42초 만에 기술적 결함으로 공중서 폭발했다. 대포동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6700km로 미국 알래스카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성능으로 추정됐다. 

북한 외무상은 이 발사를 자체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정규적인 군사훈련이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훈련을 지속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6년 7월15일 UN 안전보장이사회(UN Security Council)는 만장일치로 결의안 1695를 통과시켰고 북한이 미사일 관련 행위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UN 회원국은 미사일 관련 소재 및 기술을 북한으로 이전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간격은 좁혀진다. 2009년 4월5일 북한은 은하 2호 위성발사체를 발사했다. 이는 대포동 2 미사일을 변경한 장거리 로켓이었다. 비록 북한 언론매체가 위성이 궤도로 발사됐다고 주장했지만 누구도 우주궤도서 북한의 위성 물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3단 로켓의 발사는 1단 로켓이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수역에 낙하되면서 기술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탑재체와 함께 나머지 단은 태평양 해역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됐다.


2012년 4월12일 북한은 김일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은하 3호 로켓을 이용해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발사를 시도했다. 발사는 1단 엔진의 연소 종료시점에서 실패해 로켓 추진체는 서해 앞바다로 추락했다. 

미사일 기술의 이중용도 때문에 미국과 한국은 이 발사를 장거리미사일을 시험하지 않는다는 UN 결의안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식량 원조를 중단했다. 

3일 후 북한은 평양 시내서 김일성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군사퍼레이드를 했으며 여기서 KN-08이라는 이동식 ICBM의 목업을 선보였다. KN-08 이동식 ICBM은 6대의 중국제 8축 트럭인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에 실려 전시됐다.

2012년 12월에 북한은 서해발사장서 은하 3호 장거리로켓을 재발사해 성공적으로 위성을 궤도에 올려놨다. 북한이 이 로켓을 우주발사체로 주장했지만 기술은 장거리로켓과 매우 유사했다. 

정치적 목적 위해
여러 가지 실험

핵탄두를 운반하기 위해서 로켓은 재진입체를 추가해야 하는데 이는 첨단기술 및 고급 소재를 필요로 하며 북한은 이러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북한은 대기권 재진입에 대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2016년 3월15일 스커드 엔진으로부터 내뿜는 배기가스에 견디는 재진입체 형상의 소재 삭마 특성시험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2013년 2월에는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북한은 2016년 4월 새로운 타입의 ICBM용 엔진 지상연소시험을 수행했다. 엔진은 옛 소련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R-27의 4D10 엔진과 유사한 것으로 보였다. 이 엔진은 2015년에 무려 8차례나 발사를 시도했던 무수단미사일의 엔진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수단엔진은 고에너지 추진제를 사용하고 고성능의 엔진성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무수단엔진 탑재 시뮬레이션 결과 250kg의 소형 경량 탄두를 장착해도 최대사거리는 9000km 이하였다. 2015년 9월 북한은 80톤급의 고추력 대형액체로켓엔진을 개발해 지상시험을 수행했다. 1기의 80톤 엔진 및 무수단엔진 탑재 시의 시뮬레이션 결과 1만2000km 이상의 사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무수단미사일은 2010년 10월에 외국 언론을 초청한 군사퍼레이드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퍼레이드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노동미사일의 파생 미사일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이란의 가더(Ghader)-1 미사일과 매우 유사한 삼중콘(Triconic Nose-Cone)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대포동 위성 궤도에…늘어가는 기술
ICBM에 놀란 미, 군사 대응 가능성도

2016년 전까지 단 한 차례도 무수단미사일의 시험비행을 수행한 적이 없었던 북한은 2016년 들어 연속적으로 무수단미사일 시험발사를 시도했다. 4월15일 첫 발사에 실패한 이후 13일 만인 4월28일 2∼3차 발사를 시도했다. 

5월31일에는 4차 발사를 시도했으며 6월22일 5∼6차 발사시험을 연속적으로 감행했다. 이 과정서 오직 6차 발사시험 한 차례만 성공했을 뿐이고 나머지 시도에선 모두 실패했다. 

10월15일과 20일에는 발사장소를 강원도 원산 인근서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평안북도 구성시서 무수단미사일의 7번째와 8번째 발사시험이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결국 북한의 무수단미사일 시험발사가 미사일의 성능 검증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추진한 것으로 추정됐다.

북한은 지난 5월14일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KN-17)’ 발사에 이어 지난 4일 탄도 미사일 ‘화성-14형’을 쏴 올리며 문재인정부 출범 후 6번째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특히 이번 ‘화성-14형’은 최소 사거리 5500㎞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분석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젠 ICBM 성공을 선언하는 단계에 이른 셈이다. 

화성-14형은 거의 수직으로 발사돼 2802㎞ 상공까지 치솟았고 약 933㎞ 거리를 날아갔다. 국방부는 각도를 조절해 북한 원산 지역서 발사한다면 최소 6000㎞서 최대 1만㎞를 날아가 알래스카(5800㎞)와 하와이(7500㎞)는 물론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미국 서부지역까지 타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운반과 로켓단 분리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자 미국 국방부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이라며 ICBM 개발에 성공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했다. 

제프 데이비스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사일 사정거리가 5500km에 달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미사일이 ICBM이란 뜻”이라고 밝혔다. 

데이비스 대변인은 북한이 재진입 기술을 완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ICBM에 재진입체가 탑재된 것은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이동식 평상형 트럭에 미사일을 실어 평안북도 방현 일대 공군기지로 옮겼지만 발사가 트럭서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동식 발사대서 즉각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이 완성되면 사전에 발사를 감지할 수 없어 한미 양국은 이 부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다른 발사대로 옮기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돼 사전탐지가 가능했다. 

데이비스 대변인은 “북한이 아직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기술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북한을 면밀히 지켜봤다.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우리의 방어능력을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폭스뉴스>도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 연료주입 단계부터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지켜봤다”며 “미 국방부는 역내 미사일방어(MD)시스템을 통해 북한이 발사한 ICBM을 격추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었지만 북미 지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격추를 시도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계속되는 도발
ICBM까지 성공?

항공우주연구기관 에어로스페이스의 존 실링 연구원은 이날 북한전문매체 ‘38노스’ 기고를 통해 “우리는 당초 북한이 2020년 초쯤 ICBM 능력을 갖출 것으로 생각했었으나 북한이 가진 시간표는 이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며 “(북한이) 미국의 특정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위협이 되려면 1∼2년 더 개발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서 미사일을 내려 다른 발사대를 활용한 것에 대해 “발사 시험 실패로 미사일이 폭발할 경우 값비싼 이동식 발사대가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라며 실전에서는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서 즉각 발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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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