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미술품 뒷거래 미스터리 <추적>

공중에 붕 뜬 40억 주인 누구?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검찰이 ‘오리온 비자금’을 캐기 시작한지 3개월이 흐른 지금, 수사의 초점이 ‘그림’쪽에 맞춰지고 있다. 미술품으로 ‘검은돈’을 조성하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앞서 돈을 세탁해준 혐의로 미술계 ‘큰손’이 쇠고랑을 찬 상태. 이제 그 수사망이 ‘최종 타깃’으로 좁혀지고 있다. 막바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검풍’이 담철곤 회장에 이어 누구를 덮칠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검찰 막바지 수사 총력…‘그림매매’에 초점
청담 마크힐스 땅 매각차익 최종 수수처 타깃

국세청이 오리온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횡령과 탈세 등의 의혹을 포착해 검찰에 고발한 지난해 8월. 그 즈음 <일요시사> 편집국으로 우편물 한통이 날아왔다. 익명의 제보였다. 그리 두껍지 않는 서류 봉투 속엔 눈을 의심할 만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재벌-미술상 이상한 관계’란 제목의 오리온그룹과 서미갤러리 간 미술품 거래 의혹이었다.

오리온-서미 거래
수사전 본지 제보

‘오리온그룹과 국내 미술시장 큰손이 운영하는 서미갤러리가 각종 미술품들을 자주 거래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금액은 어마어마합니다. 과연 정상적으로 거래를 했을까요. 그 의혹을 풀어줬으면 합니다.’

자신을 고위 공직자의 아내라고 밝힌 제보자는 제보 이유에 대해 “밝고 투명한 사회를 위해서”라고만 밝혔다. 그러나 제보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근거나 증거가 없었다. 그저 그럴만한 정황만 빼곡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리온그룹에서 별다른 잡음이 들리지 않아 제보 자체를 의심케 했다. ‘부부 경영’으로 유명한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사장이 ‘열린 경영자’ ‘클린 오너’란 그룹 안팎의 평가도 부담이었다.

<일요시사>는 우선 ‘보관 장소로 양평 별장이 의심된다’는 제보자의 힌트에 따라 취재 동선을 잡고 추적에 나섰다. 양평 별장은 오리온그룹 건설 계열사인 메가마크가 시공을 맡아 2008년 오픈한 연수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대심리 북한강변 경사지에 위치한 연수원은 대지면적 3540㎡(약 1072평)에 지상1∼2층 규모다.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공간디자인 우수상,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 등을 수상할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지어졌다.

설계를 담당한 T사 측은 “자유로움과 휴식을 담은 건축을 원하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뗏목을 물에 띄워 보내는 듯한 자유로움을 건축물에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T사는 2000년 서미갤러리 설계도 맡은 바 있다.

제보를 접하고 얼마 뒤 <일요시사>가 취재차 방문했을 당시 연수원의 문은 잠겨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내부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무슨 일로 왔냐”며 경계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구경 좀 할 수 있냐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황급히 모습을 감췄다.

당시 오리온그룹과 서미갤러리는 미술품 의혹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다.

{40억원 어디로…}
[오리온]→[시행사]→[서미갤러리]→[?]

회사 관계자는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냐. 그저 소설이고 추측일 뿐”이라며 “직원들 연수원에 그림이 왜 있고, 그림 창고가 왜 있겠냐. 미술품은 없다. 서미갤러리와도 거래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서미갤러리 측도 “오리온그룹과 개인적인 친분은 몰라도 거래 내역을 밝힐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이 ‘오리온 비자금’을 뒤지기 시작했고, 다른 대기업 총수들의 사건과 달리 전례가 없을 정도로 초고속으로 수사가 진행됐다.

‘3월22일 오리온 본사 등 압수수색…5월6일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 구속…5월11일 조경민 오리온 사장 구속…5월14일 담 회장 자택 압수수색…5월23일 담 회장 소환 조사…5월26일 담 회장 구속…’

16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담 회장을 구속한 검찰의 수사는 현재 ‘그림’쪽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미술품으로 ‘검은돈’을 조성하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검찰은 지난 3월 오리온그룹 본사와 계열사 등을 압수수색할 당시 <일요시사>가 먼저 두드렸던 양평 연수원 등도 뒤져 미술품 창고가 있다는 사실과 여기에 수십 점의 미술품이 보관된 것을 확인했다. 이 미술품들은 그룹의 비자금 조성 창구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미갤러리를 비롯해 여러 화랑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시사> 확인 취재 당시 “연수원에 무슨 그림이 있냐”며 딱 잡아뗐던 오리온그룹 측은 검찰의 압수수색 사실이 알려지자 “연수원에 그림창고가 있는 것은 맞다”고 말을 바꿨다. 다만 “이 창고는 회사가 구입한 뒤 미처 전시하지 못한 미술품을 보관해둔 곳으로, 모두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구매한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오리온그룹이 양평 창고 등에 보관 중이던 그림의 구입 경위와 출처 파악에 나섰다. 압수한 구매내역과 실제 보유현황, 거래내역 등이 일치하는지 들여다봤다. 또 담 회장의 성북동 자택도 압수수색해 고가의 미술품들을 발견, 비자금 조성에 활용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유통 경로를 추적했다. 동시에 오리온그룹이 주로 거래해온 서미갤러리와 홍송원 대표 집까지 뒤져 미술품 내역 등을 확보했다.

오리온 땅 판 돈
어디로 흘러갔나


홍 대표는 오리온 계열사 등 고객이 위탁판매를 맡긴 고가의 미술품들로 담보 대출을 받아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위탁 미술품 중엔 오리온그룹 미디어 계열사인 미디어플렉스 소유의 미국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스틸라이프’시리즈 중 한 작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틸라이프는 리히텐슈타인이 1970년대 주로 시도한 정물화 시리즈물로 가격은 수십억원에 이른다.

특히 검찰이 중점을 두고 수사 중인 사안은 오리온-서미갤러리간 거래 여부다. 공중에 붕 뜬 미스터리한 돈은 40억원에 이른다. 이 돈은 담 회장의 혐의엔 일단 포함되지 않았다. 담 회장은 ‘금고지기’조 사장 등에게 비자금 조성을 지시하고, 조성된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검찰은 담 회장 건과 별개로 미술품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은 담 회장의 부인 이 사장과 국내 미술계 ‘큰손’홍 대표다. 둘의 거래관계를 밝히는 게 미술품 수사의 관건이다.

홍 대표는 이미 구속된 상태. 검찰은 홍 대표가 미술품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하고 이 사장의 개입 여부 확인에 ‘핵심 고리’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홍 대표는 오리온그룹의 청담동 땅을 매각한 차익 40억6000만원을 시행업자로부터 송금 받아 미술품 판매대금인 것처럼 가짜로 꾸며 되돌려 줬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비자금 돈세탁을 도왔다는 것이다.

검찰은 오리온 비자금 ‘키맨들’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수수처로 이 사장을 의심했다. 이 사장은 미술품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고급빌라 ‘마크힐스’부지 매매에 어떤 역할을 했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40억원은 어떻게 조성됐으며, 어디로 흘러들어간 것일까.

오리온, ‘양평창고’ 없다더니…
검찰이 뒤지자 “있다” 말 바꿔
이화경-홍송원 관계는?
모종의 ‘빅딜’ 있었나

검찰에 따르면 홍 대표는 마크힐스를 짓는 과정에서 허위·이중 매매계약으로 부풀린 40억원을 서미갤러리와 거래한 것처럼 세탁해줬다. 오리온 건설사인 메가마크는 지난해 3월 마크힐스를 완공했다. 19가구 규모의 건물 2개동으로 이뤄진 마크힐스는 분양가만 40억∼70억원에 달하는 초호화 빌라다.

오리온그룹은 2006년 7월 물류창고 부지로 쓰던 청담동 땅(1755.7㎡·약 530평)을 시행사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금액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각하고 남은 차액이 40억원이란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이 파악한 이 땅의 실거래 가격은 209억원. 이중 169억원은 오리온 쪽에, 나머지 40억원은 미술품 구입 명목으로 홍 대표에게 송금됐다. 실제 미술품은 오가지 않았다.

검찰은 이 돈이 다시 오리온에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화경-홍송원 둘 사이에 모종의 거래를 의심하고 있다. 홍 대표는 돈의 일부를 이 사장의 친언니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 등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 사장과의 돈거래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다.

오리온 땅 매매 차익을 홍 대표에게 보낸 시행업자는 검찰 조사에서 “40억원은 이 사장에게 건네줄 돈이란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다른 시행사 관계자도 “(40억원은) 오리온 돈”이란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홍 대표를 상대로 돈을 입금 받은 경위와 출처, 성격, 사용처 등 자금 흐름과 관련한 사항을 중점 조사하고 있지만, 홍 대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홍 대표는 “40억원 가운데 16억원은 정상적으로 미술품을 판매하고 받은 돈이고, 나머지 24억은 시행업체와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한 것”이라며 “오리온 비자금과는 무관하다. 비자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과의 돈거래에 대해선 “개인 간 거래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장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지난 6일 이 사장을 소환해 서미갤러리를 통해 조성된 것으로 의심되는 40억원을 집중 추궁했다. 그러나 이 사장은 “전혀 모른다. 그룹 비자금 조성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는 후문이다.

부부 함께 처벌?
관행상 한 명만?

검찰은 그동안 수사 결과를 검토한 뒤 이 사장의 처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담철곤-이화경 부부가 함께 처분을 받는 재계 초유의 일이 벌어질지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보통 부부가 비슷한 혐의일 경우 한 명은 입건하지 않거나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관행이다. 담 회장이 이미 구속됐기 때문에 이 사장은 안심(?)해도 된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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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