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미술품 뒷거래 미스터리 <추적>

공중에 붕 뜬 40억 주인 누구?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검찰이 ‘오리온 비자금’을 캐기 시작한지 3개월이 흐른 지금, 수사의 초점이 ‘그림’쪽에 맞춰지고 있다. 미술품으로 ‘검은돈’을 조성하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앞서 돈을 세탁해준 혐의로 미술계 ‘큰손’이 쇠고랑을 찬 상태. 이제 그 수사망이 ‘최종 타깃’으로 좁혀지고 있다. 막바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검풍’이 담철곤 회장에 이어 누구를 덮칠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검찰 막바지 수사 총력…‘그림매매’에 초점
청담 마크힐스 땅 매각차익 최종 수수처 타깃

국세청이 오리온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횡령과 탈세 등의 의혹을 포착해 검찰에 고발한 지난해 8월. 그 즈음 <일요시사> 편집국으로 우편물 한통이 날아왔다. 익명의 제보였다. 그리 두껍지 않는 서류 봉투 속엔 눈을 의심할 만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재벌-미술상 이상한 관계’란 제목의 오리온그룹과 서미갤러리 간 미술품 거래 의혹이었다.

오리온-서미 거래
수사전 본지 제보

‘오리온그룹과 국내 미술시장 큰손이 운영하는 서미갤러리가 각종 미술품들을 자주 거래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금액은 어마어마합니다. 과연 정상적으로 거래를 했을까요. 그 의혹을 풀어줬으면 합니다.’

자신을 고위 공직자의 아내라고 밝힌 제보자는 제보 이유에 대해 “밝고 투명한 사회를 위해서”라고만 밝혔다. 그러나 제보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근거나 증거가 없었다. 그저 그럴만한 정황만 빼곡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리온그룹에서 별다른 잡음이 들리지 않아 제보 자체를 의심케 했다. ‘부부 경영’으로 유명한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사장이 ‘열린 경영자’ ‘클린 오너’란 그룹 안팎의 평가도 부담이었다.

<일요시사>는 우선 ‘보관 장소로 양평 별장이 의심된다’는 제보자의 힌트에 따라 취재 동선을 잡고 추적에 나섰다. 양평 별장은 오리온그룹 건설 계열사인 메가마크가 시공을 맡아 2008년 오픈한 연수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대심리 북한강변 경사지에 위치한 연수원은 대지면적 3540㎡(약 1072평)에 지상1∼2층 규모다.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공간디자인 우수상,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 등을 수상할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지어졌다.

설계를 담당한 T사 측은 “자유로움과 휴식을 담은 건축을 원하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뗏목을 물에 띄워 보내는 듯한 자유로움을 건축물에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T사는 2000년 서미갤러리 설계도 맡은 바 있다.

제보를 접하고 얼마 뒤 <일요시사>가 취재차 방문했을 당시 연수원의 문은 잠겨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내부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무슨 일로 왔냐”며 경계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구경 좀 할 수 있냐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황급히 모습을 감췄다.

당시 오리온그룹과 서미갤러리는 미술품 의혹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다.

{40억원 어디로…}
[오리온]→[시행사]→[서미갤러리]→[?]

회사 관계자는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냐. 그저 소설이고 추측일 뿐”이라며 “직원들 연수원에 그림이 왜 있고, 그림 창고가 왜 있겠냐. 미술품은 없다. 서미갤러리와도 거래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서미갤러리 측도 “오리온그룹과 개인적인 친분은 몰라도 거래 내역을 밝힐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이 ‘오리온 비자금’을 뒤지기 시작했고, 다른 대기업 총수들의 사건과 달리 전례가 없을 정도로 초고속으로 수사가 진행됐다.

‘3월22일 오리온 본사 등 압수수색…5월6일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 구속…5월11일 조경민 오리온 사장 구속…5월14일 담 회장 자택 압수수색…5월23일 담 회장 소환 조사…5월26일 담 회장 구속…’

16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담 회장을 구속한 검찰의 수사는 현재 ‘그림’쪽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미술품으로 ‘검은돈’을 조성하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검찰은 지난 3월 오리온그룹 본사와 계열사 등을 압수수색할 당시 <일요시사>가 먼저 두드렸던 양평 연수원 등도 뒤져 미술품 창고가 있다는 사실과 여기에 수십 점의 미술품이 보관된 것을 확인했다. 이 미술품들은 그룹의 비자금 조성 창구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미갤러리를 비롯해 여러 화랑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시사> 확인 취재 당시 “연수원에 무슨 그림이 있냐”며 딱 잡아뗐던 오리온그룹 측은 검찰의 압수수색 사실이 알려지자 “연수원에 그림창고가 있는 것은 맞다”고 말을 바꿨다. 다만 “이 창고는 회사가 구입한 뒤 미처 전시하지 못한 미술품을 보관해둔 곳으로, 모두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구매한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오리온그룹이 양평 창고 등에 보관 중이던 그림의 구입 경위와 출처 파악에 나섰다. 압수한 구매내역과 실제 보유현황, 거래내역 등이 일치하는지 들여다봤다. 또 담 회장의 성북동 자택도 압수수색해 고가의 미술품들을 발견, 비자금 조성에 활용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유통 경로를 추적했다. 동시에 오리온그룹이 주로 거래해온 서미갤러리와 홍송원 대표 집까지 뒤져 미술품 내역 등을 확보했다.

오리온 땅 판 돈
어디로 흘러갔나


홍 대표는 오리온 계열사 등 고객이 위탁판매를 맡긴 고가의 미술품들로 담보 대출을 받아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위탁 미술품 중엔 오리온그룹 미디어 계열사인 미디어플렉스 소유의 미국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스틸라이프’시리즈 중 한 작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틸라이프는 리히텐슈타인이 1970년대 주로 시도한 정물화 시리즈물로 가격은 수십억원에 이른다.

특히 검찰이 중점을 두고 수사 중인 사안은 오리온-서미갤러리간 거래 여부다. 공중에 붕 뜬 미스터리한 돈은 40억원에 이른다. 이 돈은 담 회장의 혐의엔 일단 포함되지 않았다. 담 회장은 ‘금고지기’조 사장 등에게 비자금 조성을 지시하고, 조성된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검찰은 담 회장 건과 별개로 미술품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은 담 회장의 부인 이 사장과 국내 미술계 ‘큰손’홍 대표다. 둘의 거래관계를 밝히는 게 미술품 수사의 관건이다.

홍 대표는 이미 구속된 상태. 검찰은 홍 대표가 미술품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하고 이 사장의 개입 여부 확인에 ‘핵심 고리’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홍 대표는 오리온그룹의 청담동 땅을 매각한 차익 40억6000만원을 시행업자로부터 송금 받아 미술품 판매대금인 것처럼 가짜로 꾸며 되돌려 줬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비자금 돈세탁을 도왔다는 것이다.

검찰은 오리온 비자금 ‘키맨들’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수수처로 이 사장을 의심했다. 이 사장은 미술품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고급빌라 ‘마크힐스’부지 매매에 어떤 역할을 했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40억원은 어떻게 조성됐으며, 어디로 흘러들어간 것일까.

오리온, ‘양평창고’ 없다더니…
검찰이 뒤지자 “있다” 말 바꿔
이화경-홍송원 관계는?
모종의 ‘빅딜’ 있었나

검찰에 따르면 홍 대표는 마크힐스를 짓는 과정에서 허위·이중 매매계약으로 부풀린 40억원을 서미갤러리와 거래한 것처럼 세탁해줬다. 오리온 건설사인 메가마크는 지난해 3월 마크힐스를 완공했다. 19가구 규모의 건물 2개동으로 이뤄진 마크힐스는 분양가만 40억∼70억원에 달하는 초호화 빌라다.

오리온그룹은 2006년 7월 물류창고 부지로 쓰던 청담동 땅(1755.7㎡·약 530평)을 시행사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금액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각하고 남은 차액이 40억원이란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이 파악한 이 땅의 실거래 가격은 209억원. 이중 169억원은 오리온 쪽에, 나머지 40억원은 미술품 구입 명목으로 홍 대표에게 송금됐다. 실제 미술품은 오가지 않았다.

검찰은 이 돈이 다시 오리온에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화경-홍송원 둘 사이에 모종의 거래를 의심하고 있다. 홍 대표는 돈의 일부를 이 사장의 친언니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 등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 사장과의 돈거래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다.

오리온 땅 매매 차익을 홍 대표에게 보낸 시행업자는 검찰 조사에서 “40억원은 이 사장에게 건네줄 돈이란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다른 시행사 관계자도 “(40억원은) 오리온 돈”이란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홍 대표를 상대로 돈을 입금 받은 경위와 출처, 성격, 사용처 등 자금 흐름과 관련한 사항을 중점 조사하고 있지만, 홍 대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홍 대표는 “40억원 가운데 16억원은 정상적으로 미술품을 판매하고 받은 돈이고, 나머지 24억은 시행업체와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한 것”이라며 “오리온 비자금과는 무관하다. 비자금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과의 돈거래에 대해선 “개인 간 거래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장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지난 6일 이 사장을 소환해 서미갤러리를 통해 조성된 것으로 의심되는 40억원을 집중 추궁했다. 그러나 이 사장은 “전혀 모른다. 그룹 비자금 조성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는 후문이다.

부부 함께 처벌?
관행상 한 명만?

검찰은 그동안 수사 결과를 검토한 뒤 이 사장의 처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담철곤-이화경 부부가 함께 처분을 받는 재계 초유의 일이 벌어질지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보통 부부가 비슷한 혐의일 경우 한 명은 입건하지 않거나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관행이다. 담 회장이 이미 구속됐기 때문에 이 사장은 안심(?)해도 된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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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