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판결] ‘시신 없는 살인’ 피의자에 무기징역

정황만 봐도 한눈에 ‘딱!’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화장한 뒤 자신이 숨진 것처럼 속여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려 한 ‘시신 없는 살인사건’ 피의자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정황 증거만으로 혐의가 인정됐다. 살인혐의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인 시신이 없음에도 실형을 선고한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재판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대체 어떤 사유가 있었을까.

40대 여성, 보험금 노리고 노숙인 살해…본인 사망 위장
법원 “사건 전 보험가입, 살인방법 검색 등 혐의 인정돼”

피의자 손모(여)씨의 삶은 일찍부터 순탄치 않았다. 1993년 대학 졸업한 손씨는 1997년부터 같은 학교 출신 방모씨와 동거를 시작했다. 둘 사이엔 딸도 있었다.

그러나 손씨는 늘 형편이 넉넉지 않았고 결국 범죄에 손을 대고 말았다. 손씨는 우선 방씨의 명의를 무단 도용해 차량할부구입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다른 사람에게 차량을 매도하겠다고 속여 돈을 챙긴 뒤 차량할부계약을 해약해 버리는 이른바 ‘차치기’ 수법으로 수천만원을 편취했다. 사기행각은 얼마 못가 덜미를 잡혔고 손씨는 1999년 구속됐다. 이 일로 방씨와의 관계는 파경을 맞게 됐다. 그때부터 손씨는 홀로 노모와 딸을 부양해야 했다.

궁핍한 생활

출소 후 손씨는 강사로 학원가를 전전했다. 이 역시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2004년 딸 손양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투병을 하게 되면서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어머니  명의로 어학원도 운영해 봤지만 영업이 부진해 2009년 처분했다. 직후 커피점을 열었으나 이마저도 시원치 않았다. 게다가 2010년 자궁근종수술을 받게 되면서 커피점까지 폐업하게 됐다. 일정한 수입은 없었고 날로 빚만 쌓여갔다.

이런 가운데서도 손씨는 2003부터 당시 대학생이던 13살 연하의 김모씨와 사랑을 싹 틔웠다. 손씨는 환심을 사기 위해 김씨와 그의 부모에게 “아버지로부터 20억 원 상당의 유산을 상속받았으니 결혼해서 해외로 나가 살자”라는 등 거짓말을 일삼았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았다. 손씨는 가짜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그랜저 승용차를 임차해 타고 다니는가 하면 김씨에게 용돈과 값비싼 선물을 주고 고급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물론 모두 빚이었다. 갈수록 손씨의 주머니 사정은 어려워져 갔다.

그러던 지난 2010년 김씨에게 결혼경력과 함께 딸의 존재가 발각되고 말았다. 김씨는 곧바로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를 붙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음은 물론이다. 급기야 김씨에게 ‘아이를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타인의 태아사진을 김씨와 그의 새로운 여자친구에게 보내 헤어지게 하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손씨는 김씨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새 신분과 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나쁜 마음을 먹은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손씨는 우선 사망하면 15억 원을 받는 7개 보험사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살인한 뒤 남의 시신을 자신인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내려는 의도였다. 범행대상은 오갈 데 없는 여성을 삼기로 했다. 그녀는 대구에 여성쉼터가 있다는 글을 읽고 지난해 6월16일 직접 찾아갔다. 자신을 어린이집 원장이라고 속였다. 쉼터에서 김모양을 소개받고 “대학에 보내주고 어린이집에 취직시켜 주겠다”고 꼬드겼다. 손씨는 김양을 부산으로 데려와 17일 새벽 살해했다.

이때부터 손씨는 ‘신분 세탁’을 했다. 그녀는 의사에게 시신 인적사항을 자기 것으로 둘러댔다. 자신은 아는 동생이라고 속였다. “평소 심장질환이 있었다”는 거짓말도 했다. 손씨를 믿은 의사는 사망진단서에 급성심근경색이란 판정을 내렸다.

손씨는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서 김양을 화장한 뒤 해운대구 청사포 앞바다에 뿌렸다. 지난해 7월 어머니 박씨가 부산진구청에 사망신고서를 냈고 손씨는 여지없이 ‘죽은 사람’이 됐다. 같은 달 30일 손씨는 어머니와 우체국에 사망진단서를 내고 600만원을 타냈다.

이로서 손씨는 새신분과 돈을 거머쥐었다. 떠났던 연인 김씨도 돌아왔다. 손씨는 김씨와 외국에 나가 제2의 인생을 꿈꿨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장밋빛 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손씨가 꼬리를 밟힌 건 보험금을 타내는 과정에서다. 지난해 7월30일 손씨는 해당 보험사에 사망보험금 2억5000만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손씨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사국 직원 송모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손씨의 범행 일체가 드러났다.

사건을 담당한 부산지법 형사합의6부는 “손씨가 지난해 4월부터 범행 직전까지 인터넷에서 독극물, 여성쉼터, 사망신고 절차 등의 단어를 검색한 데다 실제 독극물을 구입한 사실도 있다”며 손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내연남 관계회복 위해

재판부는 “피해자 사인(死因)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자연사나 자살했을 가능성이 낮고, 사건 전 거액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하고 인터넷으로 살인방법 등을 검색한 점 등으로 미뤄 혐의가 인정된다”며 손씨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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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