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미스터리 대해부

미궁 속 사건들…"사라진 악마를 찾아라!"

[일요시사=이보배 기자]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으로 불리는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고(故) 이형호군 유괴사건. 그리고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의 범인들은 이제 잡히더라도 어떤 법적 처벌도 받지 않는다. 세 가지 사건 모두 공소시효가 지난 2006년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세 가지 사건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용의자에 대한 윤곽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미제사건이라는 오명을 썼다. 2000년대 들어 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속속 개봉했고,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방송소재로 다룬다. 우리 사회가 세 가지 미제사건에 대해 그만큼 관심 있어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에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미스터리를 파헤쳐 봤다.

화성연쇄살인사건, 강간으로 시작해 살인 ‘쾌감’
개구리소년 범인, 살해 당시 아이들 고통 즐긴 듯

1986년부터 1991년까지 4년 7개월에 걸쳐 여성 10명이 잔혹하게 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 8번째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9건의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4월 마지막 열 번째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범인은 법 앞에서 자유로워졌다.

연쇄살인의 교과서
화성연쇄살인사건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2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지금까지 많은 연쇄살인의 교과서로 치부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화성사건은 지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계속됐다. 1986년 9월15일부터 화성군 태안읍을 중심으로 반경 3km내 4개 읍·면에서 부녀자 10명이 잇따라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됐다.

특히 1990년 11월15일 오후 630분께 태안읍 병점5리 소나무 숲에서 발견된 9차사건 피해자 김모(당시 13세·여)양은 최연소 희생자였던 데다, 범행수법도 가장 잔인해 온 나라를 충격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화성사건의 피해자들은 여중생에서 70대 노파까지 연령대가 다양했으며,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 옷가지 등으로 목이 졸렸고, 흉기 등을 사용한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범인은 피해여성의 몸에 엽기적인 흔적을 남겨 주민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전대미문의 사건인 만큼 경찰사에 남을 수사 진기록도 이어졌다. 수사에 동원된 경찰은 연인원 205만여 명으로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다. 또 수사 대상자는 2만1280명, 지문 대조 4만116명, 모발 감정은 180명이었고 화성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를 받다 다른 범죄가 드러나 붙잡힌 사람도 1495명에 이른다.

4, 5, 9, 10차 사건에서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통해 확인된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7차사건 이후 목격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몽타주가 그려졌고, 9차와 10차사건 범인의 유전자는 확인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1년 4월3일 발생한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2일로 만료되는 바람에 범인의 처벌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그런가 하면 지난 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 중 화성사건에 대해 집중보도하고 범인의 현재 모습을 그려낸 몽타주를 공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끝내 범인이 잡히지 않은 화성사건의 모든 자료를 미국의 범죄수사 전문가들에게 보냈다. 그 결과 미국 전문가들은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 전문가들은 "이 연쇄살인사건의 1차 사건이 가장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처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1차사건처럼 시체를 기괴한 모습으로 유기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제작진이 1차살인이 있기 전 화성지역의 유사한 사건을 취재한 결과 사건 발생 7개월 전부터 유사한 수법으로 강간당한 피해자가 7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강간당했던 피해자들이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가 모두 7차 사건의 목격자가 진술한 인상착의와 일치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여성을 강간하고 나아가 살인의 즐거움을 느꼈을 악마는 지금도 우리와 섞여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풀리지 않는 의문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초등학생 5명이 무참히 살해돼 유골로 돌아온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역시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지난 2006년 4월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됐다.

1991년 3월26일 당시 대구성서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우철원(당시 13세)군을 비롯해 조호연(당시 12세), 김영규(당시 11세), 박찬인(당시 10세), 김종식(당시 9세)군은 집 뒤편인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아이들은 와룡산에 오르기 전 인근 마을에 사는 학교친구와 마을주민들에게 모습을 보인 것을 끝으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실종되자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돌며 아이들을 찾아 나섰고, 개구리소년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가 제작되는가 하면 전국 초등학생들은 ‘대구 개구리친구 찾기 운동’을 펼치는 등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경찰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 특별지시로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수사본부를 구성, 와룡산 일대는 물론 전국을 이 잡듯이 뒤졌다.

전국 새마을중앙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 역시 700여만 장의 전단을 전국에 뿌렸고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기업체들도 담뱃갑과 상품에 실종 어린이들의 사진을 인쇄, 수색 작업에 동참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수년간 행적은 묘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부모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실종 11년6개월 만인 2002년 9월26일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 500미터 떨어진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됐다. 수사결과 타살로 판명됐으나 현재까지 범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피 말리는 그 놈 목소리 이형호 군 유괴사건 
세 사건 모두 공소시효 만료…여전히 남은 의혹

그런가 하면 이 사건은 경찰의 미흡한 수사 때문에 영구 미제가 된 사건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1992년 8월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를 유괴해서 죽였다는 뜬소문을 믿고 한센병 환자 정착촌을 강압적으로 수사하여 항의를 받았으며, 1996년 1월에는 김종식군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죽여 집에 묻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김군의 집 마당과 화장실을 임의로 발굴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개구리소년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아이들>이 개봉되면서 다시 한 번 사회적 관심을 끌었지만 용의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한편,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은 지난 14일 방송에서 당시 아이들을 살해한 살인무기와 매장 방법, 유골의 손상 등을 근거로 ‘프로파일링’ 해 범인의 윤곽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추정했다.

목격자도 생존자도 없어 화성사건처럼 몽타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범인의 심리와 범죄 행위를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사건 당시인 1991년에는 프로파일링이라는 기법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기시였기 때문에 범인에 대한 윤곽조차 나올 수 없었다.

프로파일러들을 찾아 그날의 범행을 분석한 결과, 범인은 살인을 즐기는 계획적인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로파일러들은 "개구리소년사건의 경우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크고, 아이들 두개골에 난 흔적으로 미뤄봤을 때 범인은 죽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고통을 즐기는 타입"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어 "범인은 그 후에도 살인을 멈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해 충격을 줬다.

잊을 수 없는 그놈 목소리
이형호 군 유괴사건

2007년 영화 <그놈 목소리>의 소재로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하고 많은 실종가족의 공감을 얻어냈던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 이 사건 역시 지난 2006년 1월 공소시효가 만료됐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1991년 1월29일 오후 5시20분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형호(당시 9세)군은 유괴 후 44일이 지난 3월13일 잠실대교 부근 한강고수부지 일명 토끼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형호군은 스카프와 나일론 끈으로 손이 뒤로 묶여 있었으며 입과 눈은 테이프로 막혀 있는 등 잔혹하게 살해된 모습이었다. 부검 결과 위에서 나온 현미, 오곡밥, 숙주나물 등이 유괴 당일 친구 집에서 먹은 점심으로 판명 나 형호군은 유괴 직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형호군의 유괴범이 더욱 비난을 받는 이유는 유괴 직후 형호군을 살해해놓고 44일 동안 형호군의 부모에게 60여 차례의 전화와 10차례의 메모를 남겨 끊임없이 협박한 데 있다.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44일을 버텨온 부모에게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아들의 사망 사실을 전한 것.

또 범인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듯 경찰의 통화추적을 피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이용해 전화를 걸었고, 이조차 4분 이상 통화시간을 길게 끌지 않았다. 또 형호군 부모에게 차 안에 카폰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후, 약속 장소를 수시로 바꿔가며 경찰의 미행을 따돌렸다.
철두철미한 범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딱 한 차례. 유괴·살해 후 약 한 달 뒤인 2월20일 상업은행 상계동 지점에서 700만원을 인출하려던 범인은, 담당 여직원이 범행과 관련된 계좌임을 알고 당황한 표정을 짓자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곧바로 달아난 뒤 연락을 끊었다.

명확한 단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5년간 범인은 오리무중인 상태로 지나갔고, 결국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범인은 이제 어딘가에서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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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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