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미스터리 대해부

미궁 속 사건들…"사라진 악마를 찾아라!"

[일요시사=이보배 기자]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으로 불리는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고(故) 이형호군 유괴사건. 그리고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의 범인들은 이제 잡히더라도 어떤 법적 처벌도 받지 않는다. 세 가지 사건 모두 공소시효가 지난 2006년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세 가지 사건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용의자에 대한 윤곽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미제사건이라는 오명을 썼다. 2000년대 들어 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속속 개봉했고,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방송소재로 다룬다. 우리 사회가 세 가지 미제사건에 대해 그만큼 관심 있어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에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미스터리를 파헤쳐 봤다.

화성연쇄살인사건, 강간으로 시작해 살인 ‘쾌감’
개구리소년 범인, 살해 당시 아이들 고통 즐긴 듯

1986년부터 1991년까지 4년 7개월에 걸쳐 여성 10명이 잔혹하게 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 8번째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9건의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4월 마지막 열 번째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범인은 법 앞에서 자유로워졌다.

연쇄살인의 교과서
화성연쇄살인사건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2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지금까지 많은 연쇄살인의 교과서로 치부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화성사건은 지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계속됐다. 1986년 9월15일부터 화성군 태안읍을 중심으로 반경 3km내 4개 읍·면에서 부녀자 10명이 잇따라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됐다.

특히 1990년 11월15일 오후 630분께 태안읍 병점5리 소나무 숲에서 발견된 9차사건 피해자 김모(당시 13세·여)양은 최연소 희생자였던 데다, 범행수법도 가장 잔인해 온 나라를 충격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화성사건의 피해자들은 여중생에서 70대 노파까지 연령대가 다양했으며,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 옷가지 등으로 목이 졸렸고, 흉기 등을 사용한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범인은 피해여성의 몸에 엽기적인 흔적을 남겨 주민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전대미문의 사건인 만큼 경찰사에 남을 수사 진기록도 이어졌다. 수사에 동원된 경찰은 연인원 205만여 명으로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다. 또 수사 대상자는 2만1280명, 지문 대조 4만116명, 모발 감정은 180명이었고 화성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를 받다 다른 범죄가 드러나 붙잡힌 사람도 1495명에 이른다.

4, 5, 9, 10차 사건에서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통해 확인된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7차사건 이후 목격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몽타주가 그려졌고, 9차와 10차사건 범인의 유전자는 확인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1년 4월3일 발생한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2일로 만료되는 바람에 범인의 처벌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그런가 하면 지난 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 중 화성사건에 대해 집중보도하고 범인의 현재 모습을 그려낸 몽타주를 공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끝내 범인이 잡히지 않은 화성사건의 모든 자료를 미국의 범죄수사 전문가들에게 보냈다. 그 결과 미국 전문가들은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 전문가들은 "이 연쇄살인사건의 1차 사건이 가장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처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1차사건처럼 시체를 기괴한 모습으로 유기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제작진이 1차살인이 있기 전 화성지역의 유사한 사건을 취재한 결과 사건 발생 7개월 전부터 유사한 수법으로 강간당한 피해자가 7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강간당했던 피해자들이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가 모두 7차 사건의 목격자가 진술한 인상착의와 일치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여성을 강간하고 나아가 살인의 즐거움을 느꼈을 악마는 지금도 우리와 섞여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풀리지 않는 의문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초등학생 5명이 무참히 살해돼 유골로 돌아온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역시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지난 2006년 4월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됐다.

1991년 3월26일 당시 대구성서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우철원(당시 13세)군을 비롯해 조호연(당시 12세), 김영규(당시 11세), 박찬인(당시 10세), 김종식(당시 9세)군은 집 뒤편인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아이들은 와룡산에 오르기 전 인근 마을에 사는 학교친구와 마을주민들에게 모습을 보인 것을 끝으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실종되자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돌며 아이들을 찾아 나섰고, 개구리소년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가 제작되는가 하면 전국 초등학생들은 ‘대구 개구리친구 찾기 운동’을 펼치는 등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경찰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 특별지시로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수사본부를 구성, 와룡산 일대는 물론 전국을 이 잡듯이 뒤졌다.

전국 새마을중앙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 역시 700여만 장의 전단을 전국에 뿌렸고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기업체들도 담뱃갑과 상품에 실종 어린이들의 사진을 인쇄, 수색 작업에 동참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수년간 행적은 묘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부모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실종 11년6개월 만인 2002년 9월26일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 500미터 떨어진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됐다. 수사결과 타살로 판명됐으나 현재까지 범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피 말리는 그 놈 목소리 이형호 군 유괴사건 
세 사건 모두 공소시효 만료…여전히 남은 의혹

그런가 하면 이 사건은 경찰의 미흡한 수사 때문에 영구 미제가 된 사건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1992년 8월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를 유괴해서 죽였다는 뜬소문을 믿고 한센병 환자 정착촌을 강압적으로 수사하여 항의를 받았으며, 1996년 1월에는 김종식군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죽여 집에 묻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김군의 집 마당과 화장실을 임의로 발굴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개구리소년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아이들>이 개봉되면서 다시 한 번 사회적 관심을 끌었지만 용의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한편,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은 지난 14일 방송에서 당시 아이들을 살해한 살인무기와 매장 방법, 유골의 손상 등을 근거로 ‘프로파일링’ 해 범인의 윤곽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추정했다.

목격자도 생존자도 없어 화성사건처럼 몽타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범인의 심리와 범죄 행위를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사건 당시인 1991년에는 프로파일링이라는 기법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기시였기 때문에 범인에 대한 윤곽조차 나올 수 없었다.

프로파일러들을 찾아 그날의 범행을 분석한 결과, 범인은 살인을 즐기는 계획적인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로파일러들은 "개구리소년사건의 경우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크고, 아이들 두개골에 난 흔적으로 미뤄봤을 때 범인은 죽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고통을 즐기는 타입"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어 "범인은 그 후에도 살인을 멈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해 충격을 줬다.

잊을 수 없는 그놈 목소리
이형호 군 유괴사건

2007년 영화 <그놈 목소리>의 소재로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하고 많은 실종가족의 공감을 얻어냈던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 이 사건 역시 지난 2006년 1월 공소시효가 만료됐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1991년 1월29일 오후 5시20분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형호(당시 9세)군은 유괴 후 44일이 지난 3월13일 잠실대교 부근 한강고수부지 일명 토끼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형호군은 스카프와 나일론 끈으로 손이 뒤로 묶여 있었으며 입과 눈은 테이프로 막혀 있는 등 잔혹하게 살해된 모습이었다. 부검 결과 위에서 나온 현미, 오곡밥, 숙주나물 등이 유괴 당일 친구 집에서 먹은 점심으로 판명 나 형호군은 유괴 직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형호군의 유괴범이 더욱 비난을 받는 이유는 유괴 직후 형호군을 살해해놓고 44일 동안 형호군의 부모에게 60여 차례의 전화와 10차례의 메모를 남겨 끊임없이 협박한 데 있다.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44일을 버텨온 부모에게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아들의 사망 사실을 전한 것.

또 범인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듯 경찰의 통화추적을 피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이용해 전화를 걸었고, 이조차 4분 이상 통화시간을 길게 끌지 않았다. 또 형호군 부모에게 차 안에 카폰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후, 약속 장소를 수시로 바꿔가며 경찰의 미행을 따돌렸다.
철두철미한 범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딱 한 차례. 유괴·살해 후 약 한 달 뒤인 2월20일 상업은행 상계동 지점에서 700만원을 인출하려던 범인은, 담당 여직원이 범행과 관련된 계좌임을 알고 당황한 표정을 짓자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곧바로 달아난 뒤 연락을 끊었다.

명확한 단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5년간 범인은 오리무중인 상태로 지나갔고, 결국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범인은 이제 어딘가에서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