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맞아?’ 펑펑 물 쓰는 부자동네 백태

먹을 물도 부족한데…물장난이 웬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계속되는 최악의 가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지자체들의 물 낭비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공폭포·분수 등의 수경시설 가동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수경시설을 원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아 지자체들의 수심은 깊어만 간다. 또 농촌에선 가뭄으로 인해 서로를 감시하는 문화가 생겼다. 주민들 사이에 정(情) 마저 가뭄에 말라가고 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인공폭포·분수 등 공원 내 수경시설 가동에 나선 지자체들이 최악의 가뭄과 맞닥뜨리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가 예산을 지원해 여름철 한시적으로 가동하는 물놀이 시설은 시민에게 잠시나마 더위를 식히고 청량감을 준다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먹을 물도 부족할 정도로 가뭄이 심각한 현실을 감안할 때 부적절한 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농민 죽겠는데
볼거리 제공?

경기도내 지자체 등에 따르면 각 지자체들은 시민들의 무더위 해소와 볼거리 제공을 목적으로 지난달 또는 이달 들어 공원에 설치된 분수, 인공폭포, 물놀이 시설 등 각종 수경시설을 가동했다. 

수원시는 관내 46개 수경시설 운영을 시작했다. 어린이들이 물을 맞으며 간단한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는 물놀이 시설 8곳을 비롯해 바닥분수·음악분수·인공폭포 등으로 구성됐다. 용인시 또한 이달 초부터 33개 수경시설 가운데 근린공원 등에 설치된 바닥분수 10개를 우선 가동했다. 

안양시는 지난달부터 중앙공원과 삼덕공원 내 수경시설 운영에 나섰고 고양시도 호수공원 분수 8개와 근린공원 수경시설 43개를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 최악’으로 일컬어지는 가뭄이 지속되면서 수경시설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다. 일부 지역에선 먹을 물조차 부족한 실정서 물놀이 시설 가동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수원에 거주하는 주민 A씨는 “분수에서 시원하게 물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 더위를 잊을 수 있어 기분이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뭄이 심한데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씁쓸해했다. 

반면 어린 자녀를 둔 일부 부모들은 물놀이 시설을 계속 가동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용인에 거주하는 B씨는 “날이 더워지면서 아이들이 뛰놀 곳이 마땅치 않은데 수경시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며 “가뭄에 물 낭비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적정 수준에선 가동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경시설 운영에 도로에 물 펑펑
물낭비 비판 봇물…지자체 골머리

이에 지자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수경시설 가동-중단을 놓고 상충된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용인의 경우 민원이 잇따르며 이번 주까지는 시범운영을 하고 다음 주부터는 잠정 중단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가동을 하면 한다고, 안 하면 안 한다고 민원이 반복돼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참 난감한 상황”이라며 “다른 시군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시민 정서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가동 시기를 조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천 부평구는 친수공간 조성을 위해 상수도 원수를 사용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인천 부평구는 최근 서부간선수로(농수로) 700m 구간에 상수도 원수인 풍납취수장 물을 공급해 달라고 인천시상수도사업본부에 요청했다. 

물의 양만 하루 평균 3000∼5000t에 달하는 규모다. ‘물 재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먹는 물을 제외한 하천 유지용수, 친수용수, 조경용수 등은 빗물이나 재처리수를 사용토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부평구는 도시개발로 상류가 막힌 굴포천, 농수로인 서부간선수로를 주민들의 친수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라도 상수도 원수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부간선수로가 농수로다 보니 간헐적으로 물이 공급돼 악취, 미관 저해 등 민원이 꾸준히 제기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풍납취수장 물을 끌어 쓰기로 한 것이다. 

“물놀이라니” 
“놀 곳 없다”

그러나 인천시상수도사업본부 측은 이미 지난 2008년부터 굴포천 유지용수로 하루 2만여t(연간 4억∼5억원)의 상수도 원수를 공급하고 있다며 추가 공급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천유지용수를 위한 재처리수 사용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부평구가 상수도 원수에 의존해 친수공간을 만들려고 하면서 물 낭비의 우려가 있다는 반응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물절약을 위해 현행법상 하천유지용수, 친수·조경용수는 재처리수 사용이 원칙이고 대부분 하천이 재처리수를 사용하고 있다”며 “농수로인 서부간선수로에 농업용수가 아닌 하루 수천t의 상수원수를 공급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부평구 관계자는 “주민들이 친수공간을 원하고 있지만 도심 속 굴포천이나 서부간선수로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상수도 원수를 사서 끌어들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가뭄이 연례화, 장기화하면서 물 절약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자체들도 있다. 경기도 여주시는 가뭄이 장기화해 생활용수 부족이 우려되자 지난 2일 시민들에게 생활 속 절수를 당부했다. 양치질이나 면도 시 수도꼭지 잠그기, 주방용수 사용량 줄이기, 목욕이나 샤워 시 물 아껴쓰기 등 수돗물 절약방법 7가지를 담은 안내문을 배포하고 검침원을 통해 지속해서 절수를 안내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와 강원지방기상청, 강릉시의회 등 지역 내 16개 기관단체도 “당분간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생활용수 제한급수도 불가피해질 수 있다. 시민 모두 물 아껴 쓰기 실천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합동 담화문을 발표했다.

속초시 역시 가뭄에 따른 식수 부족이 우려되자 물 아껴 쓰기 운동에 나섰다. 시는 세수와 양치질, 면도 등은 수돗물을 잠그고 하고 세탁기를 이용할 때 가능한 한 세탁물을 모아서 하며, 설거지를 할 때는 세제 사용량을 줄이라고 당부했다. 
 


수도꼭지를 절수형 제품으로 바꿀 것도 주문했다. 속초시 관계자는 “가뭄이 더 이어지면 제한급수도 불가피하다”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한 방울의 물이라도 아껴 쓰는 습관을 생활화하자는 의미에서 절수운동을 벌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물 부족 해소를 위해 사용한 물이나 빗물을 재사용하려는 사업들도 곳곳서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 오산시는 2009년 5월부터 그동안 그냥 하천으로 흘려보내던 하수를 다시 처리해 인근 공업단지 내 기업체에 팔아 물 낭비를 막는 것은 물론 높은 수익까지 올리고 있다. 시는 한번 처리한 하수처리 수를 필터 등으로 재처리한 뒤 1t당 1014원씩, 하루 1만t가량을 공업용수로 공급한다. 

이같은 물 재활용 시설이 경기도 내에서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도내 물 재이용시설은 722개(시설용량 1일 629만4000여㎥)에 달한다. 건축물의 지붕 등을 통해 빗물을 모아 이용하는 빗물이용 시설이 437개, 오수를 개별적 또는 지역적으로 모아 처리한 뒤 재활용하는 중수도 시설이 136곳, 오산시와 같은 하수처리 수 재이용시설이 149곳이다. 

말라버린 물
말라버린 정

이들 물 재이용시설을 통해 현재 재활용되는 물은 1일 평균 70만9500여t으로, 2015년 말 기준 수원시와 성남시 시민들이 사용하는 하루 상수도 급수량과 비슷한 규모이다. 재이용하는 물은 주로 조경수나 화장실용수, 청소용수, 하천유지용수, 공업 및 농업용수 등으로 사용한다.

경기도는 최근 3년 연간 강우량이 평년 수준을 크게 밑돌면서 갈수록 물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라 이같은 물 재활용 시설 설치를 적극적으로 확대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물이 부족한 국가 중 한 곳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시설 설치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도 지역내 대표적 신도시인 상무지구에 대한 물 순환 선도사업을 최근 본격화했다. 이 사업은 빗물 유출을 줄이고 재이용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도시의 건전한 물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콘크리트, 아스팔트 등 도시화로 빗물이 그대로 하수관을 통해 일시에 하천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도심 물 순환 체계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상무지구 사업을 시작으로 물 순환 개선 사업을 도심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건축, 도시계획, 공원 등 관련 부서와 협업을 통해 민간사업에도 확대 적용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한국도 물 부족 국가 중 한 곳이다. 이제는 비만 기다려서는 안 될 시기가 됐다”며 “앞으로 주민들도 물 아껴 쓰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지자체들은 빗물이나 이미 사용한 물도 다시 사용하기 위한 사업을 활발히 펼쳐야 할 때”라고 밝혔다.

공용 지하수 서로 감시하고
먼저 쓰려다 주먹다짐 빈번

가뭄이 지속되면서 농촌에서 이웃 주민 간에 물과 관련한 다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14일까지 강수량은 전국 평균 187㎜로 평년 대비 54%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경기 안성시, 충남 서산시, 충남 예산군 등의 저수율은 13∼15% 수준이다. 

물이 모자라다 보니, 물 사용을 두고 이웃 간에 ‘물 분쟁’이 벌어지곤 한다. 

안성시 양성면에 사는 김모(56)씨는 “얼마 전에 이웃 주민이 집에 놀러 왔다가 ‘설거지를 바로바로 하나 보다’라며 눈치를 주고 갔다”며 “이제는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가뭄에 이웃 간 정(情)도 말라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 마을에선 최근 이모(62)씨가 이웃 밭이 말라가는 걸 보고 자신의 집에 모아뒀던 물을 뿌려줬다 주민들과 다투기도 했다. 지나가다 이 모습을 본 이웃 주민들이 “논에 댈 물도 없는데 밭에 물을 주느냐”며 화를 낸 것이다.
 

충남 서산시에서는 ‘관정(管井)’을 파는 것을 두고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산시에선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지하수를 쓸 수 있도록 관정 설치비를 지원했다. 

시에서는 비교적 지하수가 풍부한 인지면 산동리를 대형 관정 개발 지역으로 선정했는데 이 물이 다른 마을에도 이용된다는 걸 알게 된 농민들이 “우리 마을의 지하수가 마른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산동리 관정 개발’은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충남 홍성군에서는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대려고 싸우던 이웃 농민들 사이서 ‘물꼬 싸움’이 벌어져 마을 사람들 간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마을 이장들이 나서서 “물이 부족하니 생활용수를 최대한 절약해서 사용해달라. 빨래나 설거지도 자제 부탁한다”고 방송하는가 하면 이웃 주민 간에 서로 물을 사용하는 걸 견제하기도 한다. 

특히 마을 규모가 30∼40가구 정도로 작아 공동 지하수를 사용하는 곳에서는 주민 간 감시가 더욱 심하다. 지하수 물이 말라 단수가 되면 당장 생활에 큰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물 절약 적극 
나서는 지역도

물 부족이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힘들다. 기상청은 올해 장마도 늦어 가뭄이 8∼9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최대한 가뭄 피해를 줄일 방안을 고민 중이지만 이상 기후 때문에 벌어진 현상인 만큼 아껴 쓰는 것 이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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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