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과 조폭의 밀월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연예인과 폭력을 상징하는 조폭이 겉으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현실은 다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른바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조폭의 협박이나 폭력에 시달리며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연예인들도 있다.
트로트가수 A씨 “조양은으로부터 협박당했다” 경찰에 탄원
연예인 M양 지방조폭 협박에 팬 사인회 참석하느라 전국 돌아
한 때 국내 최대 폭력조직을 이끌었던 조양은씨가 청부를 받고 트로트가수 A씨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9년. 서울의 한 경찰서에 트로트 가수 A씨가 보낸 한 통의 탄원서가 접수됐다. 폭력조직 양은이파의 두목으로 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조양은씨로부터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
혐의 사실 부인하고
범죄 증거 인멸 시도
조씨의 지인 K씨는 가수 A씨의 말을 듣고 주식투자를 했다가 17억 원의 큰 손해를 봤다며 이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조씨가 A씨를 불러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하고 이후에도 조직원들을 보내 A씨를 잡아오라며 위협했다는 것.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조씨가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조직원 4명과 함께 A씨를 만났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2009년 8월 초 K씨에게 “A씨의 소개로 주식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봤으니 해결을 해달라”는 부탁을 듣고 해결사로 나서 A씨를 협박한 혐의다.
그렇지만 피해자인 트로트가수 A씨가 “조씨와 일면식도 없었다”고 진술을 번복한 데다 조씨도 “협박한 적이 없다”며 관련 혐의를 부인해 수사에 난항을 겪기도 했었다.
가수 A씨 관계자는 “본인도 모르는 이야기라고 해서 자세한 내용은 전혀 모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이 조씨와 A씨 간의 통화 내역을 확보해 수사를 재개했다. 이로써 신앙생활에 전념하며 폭력조직과의 결별을 선언했던 조씨가 다시 수사대상에 오르게 됐다.
한류 열풍 이용
해외 조폭도 개입
경찰 관계자는 “조씨가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조직적으로 범죄 증거 인멸을 시도해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며 “조사를 마치는 대로 조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조폭의 연예인 협박 사건은 그동안 종종 발생했다. 연예인들이 팬 사인회나 지방 행사, 밤무대 출연과 관련해 조폭의 협박을 받는 일은 여전히 상존 한다는 게 연예가 사람들의 증언.
서방파 두목 출신인 김태촌씨는 2006년 권상우에게 일본 팬 사인회를 강요하며 “집이 피바다가 돼도 상관없느냐”고 협박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연예인 M양의 경우 지방 조폭이 연계해 벌이는 팬 사인회에 참석하느라 전국을 돌아야 하기도 했다.
M양의 매니저는 “웬만한 매니저들은 친하든 친하지 않든 조폭 중간급 보스 정도는 알게 된다. 오랜 기간 연예계와 연관을 맺어온 사람들이어서 인맥도 상당하다”며 “정식 기획사를 차리고 이제는 사업가로만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연예계에서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조폭과 연관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매니저는 이어 “지방행사에 가면 더러 술자리를 함께 해달라는 요구를 받는데 이를 매번 묵살하고 돌아서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털어놨다.
거절했을 경우 은근한 회유와 협박이 따라붙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 물리적인 제재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개그우먼 K씨, 인기가수 C씨 등이 지방 공연 때 제대로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한 공갈협박에 시달린 것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K씨는 “그동안 보이지 않게 피해를 당한 연예인들이 많지만 그냥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예인 팬 사인회·지방행사·밤무대 관련 협박 비일비재
미남 탤런트 B군 소속사 K대표 “일본 조폭이 사업 제의”
연예계 관계자들은 몇몇 연예인들이 아직도 비밀리에 조폭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해 놀라움을 안겨 주고 있다.
신원이 밝혀지는 것을 꺼려한 한 연예계 관계자는 “조폭의 협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밤무대나 행사를 중간에서 연결해 주는 소위 ‘어깨’들이 있으며 관계가 잘 끝날 수도 있지만 법정까지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증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관계가 어긋나는 경우 조폭들이 주로 사생활 약점을 잡아 협박을 한다”며 “대단한 내용이 아니라도 연예인들로선 사생활 자체가 거론되는 것이 큰 타격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를 들어 준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유명 연예인들의 경우도 조폭 때문에 이중계약 등을 맺고 이를 어길 경우 ‘미사리 모래에 묻어버린다’는 등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한류 열풍이 불면서 일본과 중국 등 현지 조폭도 국내 연예산업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가수들의 공연이나 배우들의 팬 사인회 등 공식 활동 외에 이벤트성의 행사에 한류 스타를 끌어들이기 위해 조폭간의 연계가 행해지고 있다.
미남 탤런트 B군 소속사 K대표는 여러 곳으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고 미팅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곱상한 외모로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B군은 일본에서도 이름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
지난해 6월 중순 어느 날. K대표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날 밤에도 전화가 걸려왔으나 곧바로 끊어버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누구인지도 밝히지도 않고 다짜고짜 “B군의 일본 내 팬미팅 행사를 하자. 꼭 우리와 계약을 해야 한다. 다른 기획사와 계약을 하면 큰 일 날 것이다”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
약점 이용해 돈 뜯어내
보복 두려워 신고 못해
K대표는 “누군데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상대방은 “조만간 사람이 갈 것이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
이후 K대표는 여러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면서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던 지난해 7월 초, 일본 계열의 모 무역회사 G대표를 만났다. G대표는 B군의 일본 진출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제시했고, K대표는 그때 비로소 G대표가 전에 전화를 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일단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일어선 K대표는 다양한 정보망을 이용해 G대표에 대해 알아본 결과, G대표가 일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조폭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 조폭과 연계를 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K대표는 G대표와의 거래는 없던 일로 하고 일본 진출은 묻어두기로 했다.
B군의 한 측근은 “이곳저곳에서 각종 사업 제안이 오는데 이중 조폭들의 제안도 섞여 있는 게 사실이다”며 “이를 걸러내려고 노력하지만 교묘하게 위장돼 있어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일본 같은 경우, 해당 기업의 신뢰등급표가 갖춰져 있어 이를 활용하고, 중국은 지명도가 있거나 확실한 보장이 있는 기업을 파트너십 상대로 선택 한다”며 “해외 조폭과의 연결 고리는 철저히 차단된 상태다”고 설명했다.
조폭은 기획사에 침투해 얻은 연예인의 사생활 정보를 악용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정작 연예인들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보복이 두려워 조폭의 협박을 선뜻 밝히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