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31>

승승장구 끝에 나락으로 떨어져 ‘철창 신세’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야 이 새끼들아, 전부 다 대가리 숙여!”
집행유예 1년6개월, 사회봉사 180일

■ 하루 수익 200만원

그렇게 승승장구하고 있던 어느 날.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게에 정전이 됐다. 그런데 뭔가가 좀 이상했다. 밖이 무척 웅성거렸던 것이다.
‘무슨 일이지?’
알고 봤더니 경찰 단속이 뜬 것이다.
“야 이 새끼들아, 전부 다 대가리 숙여!”
경찰들의 거친 함성이 들려왔다. 수십명의 선수들과 손님들이 모조리 강남경찰서로 끌려갔다. 나 역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름, 나이, 주민번호, 주소… 그렇게 시작된 조사의 끝은 늘 ‘마약’으로 몰아갔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선수들에게 마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나는 마약이야말로 금시초문이었다. 간호사들이 선수들의 팔뚝에서 피를 뽑았고 즉석에서 마약복용검사를 했다. 전과가 없는 사람들은 풀려났지만 그날 이후 나에게 선수 일을 제안했던 그는 만나볼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수차례 마약으로 검찰의 추적을 받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경찰서에서 풀려나니 다음 날 해가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그날 저녁 혹시나 해서 가게로 출근해 보았지만 가게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몇몇 선수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동갑내기 선수인 진우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동이야, 지금 ‘미랑’이라고, 제일 잘 나가는 호빠가 있는데 한번 같이 가보지 않을래? 내가 거기 사장님을 좀 알거든. 너 정도면 충분히 될 거야.”
그렇게 나는 다시 미랑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미랑은 정말로 대단한 곳이었다. 선수들만 50명이 넘었고 매일 밤 수많은 여자들이 몰려와 룸은 꽉꽉 차기 시작했다. 나는 여지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매일 밤 3~4개의 방을 뛰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에이스 김동이’는 업계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 후 나는 ‘업주마담’이라는 것까지 하게 됐다. 이 업주마담은 업주가 가장 신뢰하는 마담일 뿐만 아니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업주를 찾는 모든 손님을 자신의 고객으로 할 수 있다. 손님도 가장 많았기에 돈도 가장 많이 버는 사람이다. 그때 내 나이 29살. 그간의 호스트빠 선수 생활에서 최고의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업주마담은 잘 만하면 한 달에 1000~2000만원까지 돈을 벌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의 엘리트로만 자신의 선수들을 구성해야 했다. 키 180cm 이상, 뛰어난 입심, 깔끔한 매너, 그리고 하루에 더블 이상만 뛰는 선수들을 엄격하게 골라 조각을 했다.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놓았으니 손님들이 몰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고, 손님이 몰리니 더욱 뛰어난 선수들이 몰렸다.

■ 당대 최고 선수 집합
당시 내가 두었던 선수들은 모두 24명. 그 이후 이들 중에서 가수와 탤런트로 데뷔한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 당시 나의 팀은 말 그대로 ‘드림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는 한마디로 돈을 긁어모았다고 할 정도였다. 아침에 집에 돌아가 가방을 열면 200~300만원이 쏟아져 나왔다. 그 금액은 단 하룻밤에 번 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엄청나게 돈을 벌어들이는 세월은 그 후 3년간이나 계속 이어졌다. 집은 1억짜리 전세방으로 옮겼고 자동차는 최고급 BMW 735를 몰았으며 속옷이나 양말조차도 명품 알마니가 아니면 입지 않을 정도였다. 재벌 2세만큼이나 호탕하고 럭셔리한 삶이었다. 드림팀은 당시 호빠계를 완전히 휩쓸고 다녔다. 한번은 팀이 전체로 한 업소에 갔는데, 그 업소에 원래 있던 마담들이 전부다 그만둔 것이다. 우리 팀만으로도 손님을 더 이상 받을 수가 없을 정도로 꽉꽉 들어찼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기가 죽어 일을 하지 못했던 탓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때부터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담이 가지는 돈은 40%, 업주에게 주는 돈은 60%. 만약 내가 업소를 차린다면 나의 수입은 딱 2배 이상으로 뛴다는 결론이다. 결국 압구정동과 신사동의 경계에 있는 지하 150평을 임대하고 직접 업주가 되기로 결심했다. 두려울 건 없었다. 이미 최고의 에이스 중의 에이스 30명이 있었고 업계의 현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 한달 만에 업소를 오픈했고, 역시 손님들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첫날부터 모든 테이블이 꽉 차며 만석이 됐던 것이다. 손님이 너무 많은 나머지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에 의자를 놓고 대기를 시킬 정도였다. 나는 선수들에게는 거의 ‘신’으로 대접을 받았다. 감히 눈빛도 마주칠 수 없었던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김동이의 NHK’는 호빠 일대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 또다시 불운이 닥쳤다. 너무도 유명한 업소였기에 단속 대상 1호가 되었던 것이다. 검사가 직접 진두지휘해서 업소로 들이닥쳤다. 도망갈 곳은 없었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단속반은 ‘김동이가 누구야?’를 끊임없이 외쳤다.
“제가 김동이입니다.”
“수갑 채워!”
유치장에서의 3일, 그리고 구치소에서 45일간을 생활해야 했다.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 세평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칼잠을 자야했고 화장실도, 씻는 것도, 설거지도 모두 그곳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 후 나는 폐쇄공포증을 앓기 시작했다. 좁은 곳에만 가면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뛰어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후로 KTX도 특실을 타고 비행기도 비즈니스 이상을 꼭 타고 다녔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고서는 한시라도 안정을 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재판 결과 집행유예 1년6개월, 사회봉사기간 180일.
이제 나는 다시 호빠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데리고 있던 에이스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재기를 꿈꿀 수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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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