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살해 ‘무서운 남편들’ 천태만상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잠든 남편도 다시보자"

[일요시사=이보배 기자] 얼마전 실종됐다 50여일 만에 심하게 훼손된 변사체로 발견된 교수 부인 살해사건의 충격파가 가시질 않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잔인한 살인사건의 범인이 다름 아닌 남편이라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교수라는 사람이 재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아내를 잔인하게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것. 최근 이 같이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아내들이 늘고 있다. 홧김에 혹은 내연녀 때문에, 계획적으로 아내를 살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서운 남편들의 천태만상을 들여다봤다.

실종 50여일 교수 아내 변사체로 발견 충격
만삭 아내 살해한 의사부터 아내 목 조른 교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고 믿었던 가정에서, 가장 돈독한 관계라고 믿었던 부부관계에서 살인사건이 잦아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안전한 곳도, 믿을 사람도 없는 것일까. 최근 드러난 교수의 아내 살인사건은 7년이나 교제한 내연녀와 짜고 저지른 것이라 더욱 소름이 돋는다.

최근 낙동강 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박모(50·여)씨는 대학교수인 강모(53)씨와 재혼 1년여 만에 이혼 소송을 벌이던 중 지난 4월 실종됐다.

처음에는 범행 부인
추궁하면 자백 뻔한 코스

박씨의 친정 식구들은 실종 4일 만인 지난 4월5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박씨의 인상착의와 사진을 담은 광고는 물론 트위터에도 도움을 청했다. 결정적인 제보를 하는 사람에게는 자그마치 1억원의 사례금을 주겠다고 했다. 경찰의 신고포상금이 아닌 실종자 가족이 목격자나 제보자에 대해 거액의 사례금을 제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박씨의 실종신고가 접수된 직후부터 남편인 강씨는 유력한 용의자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강씨는 박씨의 행방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달 21일 박모씨의 주검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박씨의 시신은 부산 사하구 을숙도대교 부근의 낙동강 주변에서 발견된 등산용 가방 속에 있었다. 시신은 크기 1m 가량의 등산용 가방 안에 토막 난 상태였고, 얼굴 등 몸 전체가 상당히 부패한 상태였다.

경찰은 박씨가 실종 50일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되자 수사를 서둘렀다. 경찰은 이미 박씨가 실종된 직후부터 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강씨의 승용차에서 발견된 혈흔, 가방 구입 경위 등 살해 증거와 시신을 유기한 증거들을 충분히 수집해 강씨를 붙잡았다. 

경찰의 계속되는 추궁에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던 강씨는 지난달 23일 밤늦게 돌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강씨는 "지난 4월2일 해운대 모 호텔에 주차된 자신의 차량 안에서 아내를 만나 이혼문제로 다투던 중 우발적으로 목 졸라 숨지게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강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시신을 담은 가방을 범행 며칠 전에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공범과 함께 치밀한 계획 하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던 것.

경찰의 집요한 추궁에 강씨는 결국 사실을 털어놨다. 역시 강씨에게는 또 다른 공범이 있었다. 다름 아닌 내연녀.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 4월2일 밤 11시께 부산 해운대구 모 콘도 앞에서 아내 박씨를 만나 자신의 차에 태운 뒤 모 호텔 인근 공영주차장에서 노끈으로 목 졸라 살해했다. 당시 강씨의 내연녀 최모(50·여)씨는 호텔 인근에 자신의 차량을 대기 시켜 놓고 있다가 박씨의 시신을 옮겨 실었다. 이후 강씨는 자신의 집에 차를 두고 나온 뒤 인근 주점에서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그 사이 최씨가 박씨의 시신을 유기하면 이들의 비밀은 영원히 묻힐 것 같았다. 하지만 최씨는 박씨의 시신이 든 가방을 혼자 힘으로 바다에 던지기 힘들었고, 결국 강씨에게 전화를 걸어 을숙도대교로 오게 한 뒤 함께 시신을 유기했다. 이 과정에서 강씨는 최씨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문자를 남기기도 했다.

범행 이후 강씨는 내연녀 최씨가 가담한 흔적을 없애기 위해 서울 카카오톡 본사를 찾아가 문자메시지 삭제를 요청했지만 경찰의 복원으로 들통 났다.

강씨와 최씨의 내연관계는 벌써 7년째 계속됐다. 2004년 최씨가 대리운전기사 일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두 사람은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으며, 최씨는 강씨에게 "당신을 놓치지 않겠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씨는 지난해 3월 박씨와 재혼했고, 이미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했던 강씨의 재혼생활을 순탄치 않았다. 두 사람은 자주 다퉜고, 그때마다 강씨는 최씨를 만나 고민을 털어놨다. 급기야 두 사람은 지난 3월 부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살해 방법과 유기 장소 등을 꼼꼼히 찾아 범행을 저질렀다. 완벽한 계획범죄였던 것.

하지만 경찰의 조사가 강화되자 최씨는 아랍에미리트로 출국했고, 호주에 머물다 점점 조여오는 수사망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얼마 전 자진 귀국해 조사를 받았다.

의사, 만삭아내 살해
엘리트가 더 무섭다


앞서 1월에도 충격적인 아내 살인사건이 발생해 사람들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다. 만삭 의사부인 살해사건이 바로 그것. 출산을 한 달 여 앞둔 만삭의 여성이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엘리트 외과의사인 남편 백모씨로 밝혀졌다. 당시 백씨는 의사다운 소견을 동원해 범행 사실을 부인했지만 검찰은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백씨가 부부싸움 도중 아내의 목 졸라 숨지게 한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백씨는 전문의 1차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하고도 새벽 3시까지 게임을 했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부인과 부부싸움을 벌이던 중 화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부인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는 것.

사건 발생부터 백씨가 구속될 때까지 해당 사건은 한국판 OJ심슨 사건으로 화제가 됐었으며, 네티즌들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가설과 분석을 내놨다.

이번 교수아내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당시 범인인 남편이 의사라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사회적 지위에 오른 의사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것.

그런가 하면 지난 3월에는 부부싸움 끝에 아내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12년간 그 시신을 집안에 보관해온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충격을 줬다.

2010년 통계, 5일에 한 명 꼴로 남편에게 살해
갈등 상황 속 아내 이견, 남성 권위 훼손 판단

1999년 6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거주하던 이모(51)씨는 다음날 이사를 앞두고 동갑내기 아내(당시 39세)와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1층 단칸방으로 이사를 앞두고 아내가 "이사를 가지 않겠다"며 완강히 버틴 이유에서다.

아내를 설득하던 이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말다툼을 벌였고, 결국 우발적으로 아내의 목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씨는 아내의 시신을 흰색 비닐, 은박지 등으로 겹겹이 둘러싸 종이상자에 넣어 밀봉했고, 다음날 이사하면서 시신이 든 종이상자 역시 이삿짐인 것처럼 가장해 새 집으로 옮겼다.

이후 이씨는 당시 8살 난 딸아이와 3년 정도 생활한 뒤 집을 나가 한 달에 2~3번 정도만 집에 들렀고, 이씨의 딸(20)은 단칸방에서 어머니의 시신이 담긴 상자와 12년간 함께 생활했다.

성년이 된 이양은 이사를 앞두고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종이상자를 열어봤고 미이라 상태의 시신이 나오자 경찰에 신고했다. 지문감식과 유전자조사 결과, 발견된 시신은 이양의 친모임이 확인됐고, 경찰은 그 길로 이씨를 추적, 지난 3월15일 붙잡았다.
이씨는 범행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고, "숨진 아내와 딸에게 미안해 시신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영원히 시신을 보관하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결국 이씨는 지난 4월, 서울서부지법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남편들의 아내 살해
치정·무시발언 때문

도대체 아내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기에 남편은 아내를 죽이는 것일까. 범죄심리학자들은 남편의 아내살해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치정 관계이고, 두 번째는 부부싸움 도중의 무시발언 등 평상시 얽힌 갈등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치정에 의한 살인은 아내가 외도를 했을 경우와 자기 자신이 외도를 했을 경우에 모두 해당된다. 앞선 교수 아내 살인사건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부부싸움 도중 홧김에 살해는 설명이 좀 더 필요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성의 가해행동은 상대방의 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행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남성은 자가-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남편들의 분노 폭발은 시작부터 끝까지 남편 뜻대로 라는 말이다. 아무리 말리려고 애써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

쉽게 말해 남편들은 아내에게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가질 때 분노가 상승하고 이때 화를 참지 못하면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평소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우던 남편이 아내와 부부싸움 도중 무시 발언을 참지 못하고 아내를 살해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0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집계한 결과, 남편 혹은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된 여성들이 최소 7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5일에 1명 꼴이다. 하지만 이는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숫자에 불과하다. 때문에 실제로 남편에 의해 살해당하는 아내의 수는 훨씬 많을 가능성이 높다.

남으로 만나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인연을 맺었지만 최근 돌아가는 사회상을 보면 더 이상 남편과 부인이라는 관계가 모든 것을 믿고 함께 할 수 있는 관계인지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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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